닳도록 걸어도 아쉬울 秘境… 차로 오르니 죄스럽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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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09.10.21. 오후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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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매산의 암봉들을 병풍처럼 둘러친 영암사지. 언제 지어졌는지, 얼마나 큰 절이었는지를 짐작할 만한 아무런 기록도 남아 있지 않지만, 절집이 있던 터에는 오랜 세월을 건너온 삼층석탑과 쌍사자석등, 석축과 돌계단이 남아 있다.

# 산이 바다가 돼서 출렁인다… 오도산 오르는 길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경남 합천은 산으로 가득한 곳이다. 합천의 산이라면 해인사가 자리잡고 있는 북쪽의 가야산과 봄이면 철쭉군락이 장관을 이루는 남쪽의 황매산 정도가 알려져 있지만, 사실 합천에서는 어디로 고개를 돌리든 우뚝 솟은 산들이 시선을 가로막는다. 합천의 면적은 983.42㎢. 경남에서 군 단위로는 가장 넓다. 전국의 군단위와 겨뤄도 10등 밖으로 밀려나지 않을 정도인데, 이 너른 땅의 90%가 산지라니 더 말할 것도 없겠다.

합천의 산은 강원도의 산들과는 사뭇 다르다. 강원도의 산처럼 험준한 느낌은 아니다. 해발고도 탓도 있겠지만, 그건 아마도 펼쳐진 마을과 누렇게 익어가는 벼들이 출렁이는 논들 때문이리라. 합천을 보겠다면, 합천의 산이 가진 진면목을 만나겠다면 그 최고의 전망대는 바로 합천의 한가운데 솟은 오도산 정상이다.

오도산(1134m)은 1962년 남한 땅에서 마지막 야생 표범이 포획됐을 정도로 깊은 산이지만, 지난 1982년 정상에 한국통신(KT)무인중계소가 들어서면서 산 정상까지 시멘트 포장도로가 놓였다. 뾰족하게 솟은 산의 형세로 보면 도무지 도로로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지만, 길은 남쪽 사면을 타고 오른다. 급한 경사를 누이느라 산 아래 자락부터 정상까지 닿는 포장도로 길이만 무려 10㎞에 달한다. 길은 산촌마을과 짙은 숲 사이로 이어지다가 팔분능선을 넘어서면 사방이 탁 트인다. 발밑으로 첩첩이 이어진 산들이 마치 파도처럼 일렁이는 모습은 그야말로 감동이다. 한눈으로는 ‘산이 만들어낸 바다’를 도저히 담을 수 없어 시선을 180도로 돌려야 한다.

# 가을을 전망한다… 오도산에서 내려다본 풍경

오도산은 ‘가을의 전망대’라고도 할 수 있다. 오도산에서의 전망은 가을이 최고다. 봄여름 동안은 시계가 탁해서 좀처럼 시원한 조망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대기가 깨끗해지는 가을 무렵이면 감탄이 터져나올 정도의 경관이 펼쳐진다. 오도산에서 내려다보이는 것은 산뿐만이 아니다. 산자락 비탈면을 따라 촘촘히 칼집을 낸 듯 펼쳐지는 다랑논의 벼가 노랗게 익었다. 게다가 아침나절에는 합천호 위로 운무가 자욱하게 드리워지면서 언뜻언뜻 구름 사이로 호수의 물빛이 은색으로 반짝인다.

팔만대장경판이 보관돼 있는 해인사 장경판전의 둥글게 깎은 문.

이런 풍경들은 정상 인근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방향을 달리하면서 펼쳐진다. 대개 조망이 빼어난 산들도 정상 부근의 좁은 공간에서만 시야가 터지는데, 오도산에서는 정상 부근의 도로를 따라 360도 어느 한곳 시야를 가리는 데가 없다. 그중 가을을 전망할 수 있는 압권은 KT중계소 앞에서 내려다보이는 미인봉 너머 분지의 풍경이다. 이쪽은 군 경계 너머 거창군 가조면 땅인데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는 광활한 논이다. 마치 백두산 천지의 풍경을 보는 듯하다. 천지처럼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물 대신 노랗게 익은 벼들이 출렁인다.

이런 풍경을 마주치면 발로 딛지 않고 차로 올라온 것이 조금은 죄스러워질지도 모르겠다. 27년 전 산 정상까지 포장도로를 냈던 이들의 마음도 그랬는지, KT중계소 내에는 ‘나라의 필요에 따라 내 고장 오도산 정상이 훼손돼 더 이상 원래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됐다’는 독특한 기념비가 남아 있다.

# 단풍이 물색마저 붉게 물들였네… 홍류동

합천의 북쪽 지붕이라는 가야산에는 이제 막 정상 부근이 물들기 시작했다. 가야산 자락의 해인사로 드는 홍류동계곡의 단풍나무는 정상에서 밀려 내려오는 단풍의 물결을 기다리지 않고 성급하게 불이 붙어 버렸다. 정상과 거의 동시에, 어쩌면 정상보다 더 빨리, 차가운 계류를 따라 단풍이 시작된 것이다.

단풍색이 워낙 짙어 물빛까지 붉게 물든다 해서 ‘홍류(紅流)’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단풍이 어우러지는 홍류동계곡의 길이는 4㎞ 남짓. 해인사 매표소에 이르기 전까지는 출입통제구간인 데다 숲이 우거져 들지 못하고, 매표소를 넘어서면서 비로소 홍류동계곡에 바짝 다가설 수 있다.

홍류동계곡은 깊다. 불쑥 솟은 가야산의 암봉들이 계곡을 굽어보듯 우뚝 서 있는데 맑은 물빛에 단풍이 어우러지니 선경(仙境)이 따로 없다.

계곡 건너편에는 최치원이 은거했다는 농산정이 있다. 최치원은 난세에 뜻을 펴지 못하고 말년에 스님인 형을 따라 가족들과 함께 가야산의 해인사에 숨어 살며 농산정에서 풍류를 즐겼다.

황강을 끼고 서있는 함벽루. 누각에 오르면 황강을 헤엄치는 은어가 내려다보인다.

최치원의 최후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삼국사기’나 ‘동사강목’에는 늙어 죽었다고 기록돼 있고 조선시대 김종직과 서유구는 그의 무덤이 있던 곳을 지목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숲속에 갓과 신발을 남겨둔 채 자취를 감추고는 가야산으로 들어가 신선이 됐다”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믿고 싶어진다.

# 해인사에서 백련암 찾아가는 길

세계 일체가 바다에 그림자로 찍히는 ‘삼매(三昧)’의 경지를 말한다는 ‘해인(海印)’. 이를 절 이름으로 쓰는 해인사는 양산 통도사, 순천 송광사와 더불어 ‘삼보사찰’로 꼽히는 명찰 중의 명찰이다. 누구나 알듯 해인사는 팔만대장경판으로 알려진 곳. 팔만대장경판은 불운하고 불안했던 고려 패전의 시대에 이름 모를 판각공들이 한획 한획 새겨넣은 ‘평화의 기원장’이다. 팔만대장경판이 보관된 장경판전은 한번도 청소한 적이 없지만 판자 위에 먼지 한점, 거미줄 하나 낀 적이 없고, 판전을 에워싼 담장 안마당에는 낙엽 한장도 떨어지지 않으며, 상공으로는 새 한 마리 넘어가지 아니한다던가.

해인사에서는 절집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대적광전을 유심히 살펴보자. 대적광전 정면 현판의 힘찬 글씨는 안평대군의 것이다. 기둥에 걸린 오른쪽 끝의 주련 2개는 고종이 등극하기 이전인 6세때 쓴 글이고, 나란히 걸려 있는 것은 고종의 생부인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글씨란다. 드물게도 부자의 글씨가 나란히 대적광전 기둥을 장식하고 있는 셈이다.

해인사는 창검처럼 솟은 가야산 자락에 모두 14개의 암자를 거느리고 있는데, 그중 찾아가볼 만한 곳이 백련암이다. 산내 암자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해 제법 가파른 길을 올라야 하지만, 시야가 탁 트이는 데다 단풍색도 이쪽 산자락이 유독 붉다. 백련암을 찾는 이유는 풍경 때문만은 아니다. 백련암은 성철 스님이 말년을 보냈던 곳. 주불전은 물론이고 암자의 전각들은 모두 색이 칠해지지 않았다. 암자의 전각들은 그저 제가 드리운 그림자만으로 치장하고 있을 뿐이다. 성철 스님뿐만 아니다. 일제강점기 서정주와 김동리가 이 곳에 머물면서 불교사상을 공부하며 문학수업을 했다.

# 암봉 둘러친 영암사지, 함벽루와 영화세트장

가야산에 해인사가 있다면, 황매산에는 영암사가 ‘있었’다. 언제 지어졌는지, 얼마나 큰 규모였는지, 언제 폐사됐는지에 대한 기록은 전무하다.


영암사의 절집터는 황매산 모산재의 기골이 장대한 암봉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한눈에도 명당 중의 명당임이 느껴지는 자리다. 제법 잘 정돈돼 있는 회랑이 있던 자리와 금당터 자리에 놓인 주춧돌의 흔적만 보더라도 예사 크기의 절집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영암사지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쌍사자 석등. 사자 두 마리가 일어서 석등을 받쳐 들고 있는 모습인데 두 마리의 사자 형상을 하나의 돌에 깎아냈다. 석등을 받친 채 버티고 선 사자 뒷다리의 근육이 튼실하다. 석등에는 사천왕상이 정교하게 돋을 새김돼 있다. 석등이며 석탑, 금당터를 돌며 찬찬히 들여다보노라면 1000년의 시간 저편으로부터 연꽃무늬와 구름무늬 문양이 하나하나 살아 나온다.

산이 깊을수록 물은 맑은 법. 합천의 산자락에서 흘러나온 계류들이 황강을 이뤄 흘러내린다. 황강은 곧 어두운 오염의 낙동강 줄기로 합류되지만, 합천을 휘감아 흐르는 시간만큼은 맑게 흘러내린다. 그 황강변에는 고려 충숙왕때 지어졌다는 함벽루가 있다. 취적봉 기슭의 함벽루는 퇴계 이황, 남명 조식, 우암 송시열의 글이 현판에 걸려 있다. 정자 뒤 암벽에 새겨진 함벽루(涵碧樓)란 글씨도 송시열의 솜씨다.

이밖에 합천영상테마파크도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다. 중년쯤의 세대라면 1980년 서울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는 풍경이 더 각별하리라. 버스정류장과 거리의 굴다리 아래 여인숙과 만두집을 지나 이제 막 상륙한 촌스러운 패스트푸드점이 늘어서 있는 거리로 접어들면 혈기왕성했던 젊은 시절 추억의 공간으로 감쪽같이 빠져들게 된다.

합천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합천 가는 길

합천은 워낙 넓어서 동선을 정하지 않고 계획없이 다니다 보면 이동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북쪽의 가야산 해인사 쪽부터 차근차근 남쪽으로 목적지를 정해 움직이는 것이 요령. 따라서 해인사와 홍류동계곡을 첫 목적지로 삼는 편이 낫다. 해인사로 가려면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김천분기점을 지나 중부내륙고속도로 성주나들목에서 나온다. 성주나들목에서 33번 국도를 따라 좌회전한 뒤 수륜면 소재지 삼거리에서 해인사쪽으로 우회전하면 된다. 오도산은 묘산면사무소에서 묘산초등학교를 지나 500m쯤 가다 KT중계소 표지판을 보고 우회전하면 산 정상으로 가는 외길에 접어들게 된다. 함벽루는 합천읍내에 있고, 영암사지는 황매산군립공원 입구, 합천영상테마파크는 합천댐 근처에 있다.

먹을 곳·묵을 곳

합천초등학교 맞은편의 어신민물매운탕(055-931-1266)의 어탕국수(5000원)가 일품이다. 합천호를 끼고 있는 고가식당은 음식보다는 전통주인 ‘고가송주’로 유명한 곳. 7대째 내려왔다는 송주는 엿기름이 들어가 특유의 달큼한 맛이 감돈다. 해인사 입구에는 산채정식을 내놓는 집들이 줄지어 있다. 고바우식당(055-932-7311)이 그 중 가장 인기있는 곳. 향원장식당(055-932-7575)과 대가야식당(055-931-1592), 백운식당(055-932-7393) 등도 알려진 곳들이다. 합천호반 회양관광지 내 선착장 인근 황강호식당(055-933-7018)은 직접 키운 토종흙돼지를 내놓는 것으로 유명하다.

합천호를 끼고 있는 대병면 일대에는 최근 펜션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아름다운 펜션(055-931-2343), 무지개펜션(070-8800-2345), 동화속 펜션(055-931-1080) 등이 대표적이다. 민들레모텔(055-933-1279), 풍경좋은 돌담집(055-931-4900)도 추천할 만하다. 합천읍 인근의 MS모텔(055-934-1642)도 깔끔한 편이다. 해인사 인근에는 해인사관광호텔(055-933-2000)이 대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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