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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유배지 영월 청령포 |
학생은 믿지 않는 눈치다. 우연일까. 강원도 영월 단종의 묘가 조성된 장릉(莊陵)에서 만난 수학여행 온 학생들과 사약을 마시고 죽임을 당한 뒤 강에 버려진 조선의 6대왕 단종의 나이가 일치했다. 그 어린 나이에 얼마나 잘못했기에 죽임을 당해야 했을까. 수다 떨고 장난치기 바쁜 학생들은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도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다. 단종도 저들처럼 그저 철부지 소년이었을 텐데. 그의 묘를 바라보고 있자니 초가을
푸른 하늘이 더 서럽고 쓸쓸함마저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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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포로 가는 배 |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 놋다.’ 금부도사 왕방연은 세조의 명으로 단종에게 사약을 받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처럼 비통한 심정으로 읊조린다.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단종 유배지 청령포(淸怜浦). 남한강 상류의 서강이 돌아나가는 청령포 건너 언덕 위에는 왕방연 시조비가 서 있다. 자신의 손으로 어린 왕의 목숨을 끊어야 했으니 심정이 오죽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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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포 본채에 재현해놓은 단종 유배생활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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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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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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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포 가는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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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포 본채와 소나무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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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포 소나무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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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포 관음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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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포 충절의 소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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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이 매일 오른 청령포 노산대 전망 |
600살이 넘었으니 단종의 유배생활을 모두 지켜보고 오열하는 소리도 들었다는 뜻에서 사람들이 이런 이름을 붙였단다. 단종은 유배생활 때 두 갈래로 갈라진 이 관음송에 걸터앉아 쉬었다. 희한하게도 소나무들은 단종이 머물던 본채를 향해 고개를 숙이듯 휘어져 있다. 특히 한 나무는 아예 90도로 절을 하고있어 ‘충절의 소나무’로 불린다. 노산대에도 올라보자. 단종은 매일 이곳에 올라 저 멀리 한양 쪽을 바라보며 슬픔을 달랬다고 하는데 청령포를 돌아 나가는 강줄기의 아름다운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청령포에서 차로 5분을 가면 단종 묘장릉이 나온다. 단종은 사후 241년이 지나 1698년(숙종 24년) 11월 왕으로 복위됐는데 지금도 이곳에서는 매년 4월 한식일과 마지막 주 금∼일요일, 10월3일 그를 추모하는 단종제향이 열린다. 장릉 입구에는 충신 엄홍도의 정여각이 서 있다. 단종은 사약을 마시고 죽은 뒤 강물에 버려졌는데 그의 시신을 거둔 이가 영월 호장 엄홍도다. 그는 단종의 시신을 거두면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에도 몰래 시신을 수습해 자신의 조상묘 46기가 조성된 곳에 단종의 묘를 몰래 만들어 숨겨 놓았다. 그가 없었다면 아마 단종의 시신은 강물에 떠내려가 물고기 밥이 됐을 테니 후대에게는 참 고마운 이다. 1516년 중종 11년에 어명으로 단종의 묘를 찾아냈고 발견된 자리에 비로소 왕릉의 모습이 갖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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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장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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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장릉을 찾은 열일곱 학생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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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돌 |
영월은 단종으로 유명하지만 젊은이들에게는 래프팅 등 수상레저의 명소다. 또 빼어난 절경들이 많아 여행하는 즐거움도 만끽하게 해준다. 대표적인 명소가 ‘신선암’으로 불리는 선돌. 영월읍 방절리 소나기재 정상에서 서쪽으로 100m 지점의 서강 주변에 높이 70m의 장엄한 기암괴석 2개가 거대한 탑모양으로 우뚝 서 있는데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운 진기한 풍경이다. 마치 쪼개진 듯한 바위 사이로 보이는 서강의 푸르름과 선돌의 층암절벽이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 탄성을 자아내게 만드니 영월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다. 신선들이 노닐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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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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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지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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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을 좋아한다면 영월 주천면 송학주천로에 마련된 복합예술공간 ‘젊은달 와이파크’에서 가을을 즐길 수 있다. 조각가 최옥영의 거대한 작품들이 입을 벌어지게 만드는데 입구에는 금속파이프를 활용한 ‘붉은 대나무’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신비로운 공간을 창출했다. 소나무를 엮어서 만든 설치미술 ‘목성’ 안에 들어서면 마치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보며 우주 속을 거니는 환상에 빠져든다. 젊은달 와이파크는 술이 샘솟는다는 이곳의 지명 ‘술샘’에서 모티브를 얻어 2014년에 오픈한 술샘박물관을 재생공간으로 재탄생시킨 복합예술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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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달 와이파크 ‘붉은 대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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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달 와이파크 ‘붉은 대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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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달 와이파크 ‘목성’ 내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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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달 와이파크 ‘목성’ 외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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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달 와이파크 최영옥 붉은 파빌리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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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달 와이파크 최옥영 바람의 길 |
영월=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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