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어린왕' 단종 슬픔 어린 영월 여행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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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 ‘청령포’ 절벽과 강으로 둘러싸여 육지속의 섬/단종이 세상을 떠난 나이 겨우 열일곱/비운의 어린 왕 마지막 발자취 찾아가는 또래 아이들은 그저 철부지 같이 밝기만/슬픈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청령포의 하늘과 솔숲은 너무 아름다워 마음이 애잔

단종 유배지 영월 청령포
“17살이요? 정말요? 제가 17살인데···.”

학생은 믿지 않는 눈치다. 우연일까. 강원도 영월 단종의 묘가 조성된 장릉(莊陵)에서 만난 수학여행 온 학생들과 사약을 마시고 죽임을 당한 뒤 강에 버려진 조선의 6대왕 단종의 나이가 일치했다. 그 어린 나이에 얼마나 잘못했기에 죽임을 당해야 했을까. 수다 떨고 장난치기 바쁜 학생들은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도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다. 단종도 저들처럼 그저 철부지 소년이었을 텐데. 그의 묘를 바라보고 있자니 초가을
푸른 하늘이 더 서럽고 쓸쓸함마저 밀려온다.
청령포로 가는 배
#비운의 왕 단종 유배길을 따라가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 놋다.’ 금부도사 왕방연은 세조의 명으로 단종에게 사약을 받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처럼 비통한 심정으로 읊조린다.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단종 유배지 청령포(淸怜浦). 남한강 상류의 서강이 돌아나가는 청령포 건너 언덕 위에는 왕방연 시조비가 서 있다. 자신의 손으로 어린 왕의 목숨을 끊어야 했으니 심정이 오죽했으랴.
청령포 본채에 재현해놓은 단종 유배생활 모습
단종은 1452년 12살에 왕위에 올랐는데 ‘고아’였다. 어머니 현덕왕후는 단종을 낳자마자 출산후유증으로 하루 만에 세상을 떴고 아버지 문종도 재위 2년4개월 만에 승하했기 때문이다. 아무 세력도 없는 고독한 어린 단종이 왕이 되려는 작은아버지 수양대군(세조) 밑에서 얼마나 노심초사했을까. 결국 3년 만에 왕위를 내준 단종은 1456년 박팽년, 성상문 등의 상왕복위 시도가 사전에 누설되는 사육신 사건이 터진 뒤 1457년 6월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돼 청령포로 유배됐고 그해 10월 세조의 사약을 마신다. 실록에 따르면 왕방연이 도착하자 단종이 목을 매 자진했다는 기록도 있다. 정치권력에 희생된 단종의 열일곱 짧은 생은 영창대군, 사도세자와 함께 우리 역사에서 가슴 아픈 사건들이다.
청령포
청령포
하지만 가을냄새가 물씬 묻어나는 9월의 청령포는 이런 슬픈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높고 푸른 하늘이 아름답기만 하다. 동, 남, 북 삼면이 푸른 서강으로 둘러싸이고 서쪽에는 험준한 암벽 육육봉이 병풍처럼 둘러섰다. 여기에 청령포를 드나드는 배까지 두 척 떠 있으니 여행자들은 경치에 감탄할 수밖에. 우리에게는 사진 찍기에 바쁜 빼어난 경관이지만 단종에게는 바깥세상과 완전히 고립된 유배지였으리라.
청령포 가는 길

청령포 본채와 소나무숲
청령포 소나무숲
청령포는 배로만 드나들 수 있다. 선착장에서 불과 1분이나 걸릴까. 다리를 놓아도 충분하지만 경관을 훼손하지 않아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강을 건너 척박한 자갈길을 조금 걸어 올라가면 울창한 소나무숲이 반긴다. 나무마다 번호가 매겨져 있으며 730여그루가 빽빽한 숲을 이뤘다. 수백년이 넘은 소나무들이라 산림청이 2004년 ‘천년의 숲’으로 지정했는데 이 중 가장 오래된 나무는 높이 30m 둘레 5m의 관음송(觀音松)이다.

청령포 관음송
청령포 충절의 소나무

단종이 매일 오른 청령포 노산대 전망

600살이 넘었으니 단종의 유배생활을 모두 지켜보고 오열하는 소리도 들었다는 뜻에서 사람들이 이런 이름을 붙였단다. 단종은 유배생활 때 두 갈래로 갈라진 이 관음송에 걸터앉아 쉬었다. 희한하게도 소나무들은 단종이 머물던 본채를 향해 고개를 숙이듯 휘어져 있다. 특히 한 나무는 아예 90도로 절을 하고있어 ‘충절의 소나무’로 불린다. 노산대에도 올라보자. 단종은 매일 이곳에 올라 저 멀리 한양 쪽을 바라보며 슬픔을 달랬다고 하는데 청령포를 돌아 나가는 강줄기의 아름다운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청령포에서 차로 5분을 가면 단종 묘장릉이 나온다. 단종은 사후 241년이 지나 1698년(숙종 24년) 11월 왕으로 복위됐는데 지금도 이곳에서는 매년 4월 한식일과 마지막 주 금∼일요일, 10월3일 그를 추모하는 단종제향이 열린다. 장릉 입구에는 충신 엄홍도의 정여각이 서 있다. 단종은 사약을 마시고 죽은 뒤 강물에 버려졌는데 그의 시신을 거둔 이가 영월 호장 엄홍도다. 그는 단종의 시신을 거두면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에도 몰래 시신을 수습해 자신의 조상묘 46기가 조성된 곳에 단종의 묘를 몰래 만들어 숨겨 놓았다. 그가 없었다면 아마 단종의 시신은 강물에 떠내려가 물고기 밥이 됐을 테니 후대에게는 참 고마운 이다. 1516년 중종 11년에 어명으로 단종의 묘를 찾아냈고 발견된 자리에 비로소 왕릉의 모습이 갖춰졌다.
단종 장릉
단종 장릉을 찾은 열일곱 학생들
처음부터 왕릉으로 택지된 곳에 조성된 능이 아니어서 전형적인 조선왕릉의 구조와는 많이 다르다. 병풍석과 난간석도 없고 석물 또한 단출해 문인석과 석마 각 한 쌍이 있지만 무인석은 세우지 않았다. 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이어지는 참도도 다르다. 보통 일자형이지만 장릉의 참도는 ‘ㄱ’ 자로 꺾여 있다. 참도의 왼쪽길은 임금의 영혼이나 신만이 다니는 신도, 오른쪽 길은 임금이나 일반 제관들이 다니는 왕로이니 오른쪽길로만 가시길. 단종역사관에서는 그의 탄생과 유배, 죽음과 복권에 이르는 각종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단종이 유배길 중간중간에 멈춰섰던 장소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와 설명을 보면서 유배길도 체험할 수 있다.
선돌
#신선이 노닐던 기암괴석에 탄성이 절로

영월은 단종으로 유명하지만 젊은이들에게는 래프팅 등 수상레저의 명소다. 또 빼어난 절경들이 많아 여행하는 즐거움도 만끽하게 해준다. 대표적인 명소가 ‘신선암’으로 불리는 선돌. 영월읍 방절리 소나기재 정상에서 서쪽으로 100m 지점의 서강 주변에 높이 70m의 장엄한 기암괴석 2개가 거대한 탑모양으로 우뚝 서 있는데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운 진기한 풍경이다. 마치 쪼개진 듯한 바위 사이로 보이는 서강의 푸르름과 선돌의 층암절벽이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 탄성을 자아내게 만드니 영월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다. 신선들이 노닐 만하다.
선돌
전설이 하나 내려온다. 선돌 아래 깊은 소에 자라바위가 있는데 선돌 아랫동네 남애 마을에서 태어난 장수가 적과의 싸움에서 패하자 선돌에서 투신해 자라바위가 됐다고 한다. 1820년 순조 때 영월부사를 지낸 홍이간과 뛰어난 문장가 오희상, 홍직필이 구름에 싸인 경관에 반해 시를 읊조리며 ‘운장벽(雲莊壁)’이라는 글자를 선돌에 새기고 붉은색을 칠했는데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한반도 지형
영월에는 독특한 주소 ‘한반도면 한반도로’가 있다. 이곳에 한반도를 꼭 닮은 한반도지형이 있어서다. 서강이 굽이쳐 돌아나가며 침식과 퇴적으로 만들어진 지형인데 동쪽은 높고 서쪽은 낮은 한반도 지형을 쏙 빼닮았다. 수천만 년 전, 땅 표면이 높아져 생긴 감입곡류하천과 하안단구도 관찰할 수 있다.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뒤쪽은 도덕산(높이 508.6m)에 가로막힌 마을로 이곳 역시 경치에 반한 신선들의 놀이터였단다. 강 건너편 병풍처럼 펼쳐진 절벽 위에 아름다운 신선바위가 있어 마을의 지명을 ‘선암’ 또는 ‘서남’이라고 부른다.

현대미술을 좋아한다면 영월 주천면 송학주천로에 마련된 복합예술공간 ‘젊은달 와이파크’에서 가을을 즐길 수 있다. 조각가 최옥영의 거대한 작품들이 입을 벌어지게 만드는데 입구에는 금속파이프를 활용한 ‘붉은 대나무’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신비로운 공간을 창출했다. 소나무를 엮어서 만든 설치미술 ‘목성’ 안에 들어서면 마치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보며 우주 속을 거니는 환상에 빠져든다. 젊은달 와이파크는 술이 샘솟는다는 이곳의 지명 ‘술샘’에서 모티브를 얻어 2014년에 오픈한 술샘박물관을 재생공간으로 재탄생시킨 복합예술공간이다.
젊은달 와이파크 ‘붉은 대나무’
젊은달 와이파크 ‘붉은 대나무’
젊은달 와이파크 ‘목성’ 내부
젊은달 와이파크 ‘목성’ 외관
젊은달 와이파크 최영옥 붉은 파빌리온
젊은달 와이파크 최옥영 바람의 길
다양한 현대미술 작품과 여러 박물관, 공방이 합쳐진 공간으로 조각가 최옥영의 공간기획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기존 건물의 내벽, 천정을 모두 뜯어내고 붉은 파빌리온, 목성, 붉은대나무, 바람의 길 등 미술관의 공간을 연결하고 새롭게 공간을 만들어내어 젊은달 와이파크가 되었다. 최옥영의 시그니처 컬러인 붉은색을 사용한 작품으로 공간을 구성했으며,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작가의 의도처럼 ‘우주’속을 거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총 11개관으로 구성된 거대한 미술관이자 대지미술 공간이다.

영월=글·사진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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