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하 주 영국대사 "선택의 순간엔 머리보다 심장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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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10.09. 오후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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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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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th 이데일리 W페스타, Choice1 선택]
여성 최초 외무고시 수석·UN 안보리 상임이사국 대사
유럽 교환학생 시절에 사학도→외교관으로 진로 바꿔
"여성의 권리만 주장할 게 아니라 사회적 의무도 고려"
[이데일리 박경훈 기자] “선택의 순간에는 과연 내가 하고 싶은 일인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인지, 내 커리어와 주변에 미치는 영향이 관리 가능한 수준인지를 생각합니다. 이를 토대로 다시 한 번 머리로 생각하고 심장이 시키는 대로 하지요.”

박은하(57·사진) 주 영국대사는 △여성 최초의 외무고시(19회) 수석 합격 △여성 직업 외교관 출신 첫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 주재 대사라는 특별한 이력을 갖고 있다. 지난해 취임한 박 대사는 국익 증진과 한국 문화를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는 “지난 5월 우리 국민들이 영국에 입국할 때 자동입국심사(E-passport gate)를 적용받도록 개선한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지난 8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대비해 우리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한영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도움이 된 것도 성과”라고 강조했다.

박 대사는 상대적으로 늦게 외교관의 꿈에 도전했다. 그는 “사실 어릴 때는 그림에 소질이 있어서 화가를 꿈꿨지만 예술가로서의 천부적 재능에 대해서는 회의감을 가졌다”며 “그 공백을 역사에 대한 흥미가 채워줬다”고 말했다.

역사를 더 깊게 배우기 위해 사학과에 진학한 그는 유럽 생활 중 외교관이라는 직업을 마주했다. 박 대사는 “독일 본대학 교환학생 시절, 라인강변의 한 클럽에서 열린 환영식에 참석했다”며 “그곳에서 필리핀 여성외교관과의 대화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유럽 배낭여행을 하며 프랑스 파리에 소재한 한국대사관을 찾아갈 일이 있었는데 영사실 책상 위에 있던 태극기를 잊을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때까지 만해도 박 대사는 직업으로서의 외교관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한국 근대사를 더 연구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려 했지만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며 “이를 계기로 마음 한구석에 있던 외교관의 길을 선택하게 됐다”고 했다.

박 대사는 1985년 여성 최초로 외무고시 수석 합격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그는 “저도 결과를 보고 놀랐다”면서 “대학원 시험도 낙방한 여자가 외무고시를 공부하고 있다고 우습게 보던 주변 사람들도 놀랐다”고 웃음 지었다.

박 대사가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던 1980년대만 해도 남성 중심의 문화가 지금보다 훨씬 강했다. 그는 “(여자라는 이유로) 아무리 설명을 해도 믿지 않고, 결재판을 들고 간부실에 들어가면 ‘왜 아가씨가 결재받으러 왔느냐’며 돌려보내는 상사도 있었고 ‘구두 딸깍거리며 다니지 말라’는 선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남성중심의 문화 때문에 적응이 편한 면도 있었다. 박 대사는 “저에 대한 주변의 기대치는 낮았고 회의적으로 절 보는 시각도 많았었다”며 “이 때문에 사실 일하기 편한 측면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그는 외교관 생활을 하며 세계 각국의 양성평등문화를 봐왔다. 박 대사는 우리 사회의 특징으로 “양성 간 극한 대립 양상을 보이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점”이라며 “여성의 권리만 주장하기보다는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의무도 같이 고려해야 한다. ‘양성평등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사회적 공감대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경훈 (view@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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