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칼럼- 김다은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 서로 사맛디 아니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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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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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작가 펄벅은 한글을 “세계에서 가장 단순하면서도 훌륭한 글자”라고 말했다. 그런데 현장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외국인들은 한글 배우기를 매우 어려워한다는 사실이다. 가르치는 쪽도 한글을 쉬운 글자라고 여기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단순하면서도 훌륭한 글자가 그토록 어렵게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펄벅이 작가다 보니 글자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서 일 수도 있겠지만, 세계적인 언어학자 샘슨 교수도 한글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글자”라고 인정했다. 문제가 무엇일까.

한편, 심슨 교수는 자신의 저서 《글쓰기 체계 Writng Systems》에서 한 가지 의문을 제기했는데, “한국인들이 실제로 한글의 창제 원리에 따라 한글을 배우고 인지하는가”라는 것이었다. 대답은, 물론 그렇지 않다. 현재 우리는 한글 창제 원리에 따라 가르치고 배우지 않는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간단하고 훌륭한 글자가 복잡하고 배우기 어려운 글자가 되어버렸다. 한글의 창제 원리를 밝힌 제자해 순서에 따르면, 발성 기관을 본 떠 만든 다섯 가지 기본음(ㄱ, ㄴ, ㅁ, ㅅ, o)에 획을 더해 거세지는 ㄱ→ㅋ, ㄴ→ㄷ→ㅌ, ㅁ→ㅂ→ㅍ 등의 순서가 된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자음 순서 ㄱ, ㄴ, ㄷ, ㄹ… 은 조선 중기 최세진 한글 교본인 ‘훈몽자회’가 채택한 것을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거치면서 굳어진 것이라 보는 견해가 많다. 이는 조음 위치에 따라 자음과 모음을 과학적으로 배열했던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순서가 무너진 것이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한글이 가장 과학적인 글이라는 명예를 누리는 있는 이유를 우리는 진작 잘 알지 못하는 셈이다.

이 순서를 바꾸어 놓으려는 국내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7년 국회에서는 국립국어원과 강길부 의원실의 주최로 ‘훈민정음 창제 원리와 한글자모 순서’라는 토론회가 개최된 바 있다. 많은 학자들이 참가하여 한글자모 순서를 바꾸는데 찬반의견을 낸, 토론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다. 10월 9일 한글날을 하루 앞두고 보니, 깨어지고 비틀어진 한글의 자모 순서를 바로잡는 원년이 되면 좋겠다는 심정이 생긴다. 물론 학자들을 포함한 정치와 문화 경제 그리고 국민들의 정서적 동의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나라가 ‘두 쪽’이 난 판에 그것이 무슨 대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오나라와 월나라의 사람들도 같은 배를 타게 되면 서로 협조한다는 오월동주(吳越同舟)가 떠오른다. ‘손자병법’의 이 표현은 적이라도 서로 도와야하는 부분이 있음과, 자국의 군사를 늘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신적으로 뭉칠 때 진정 강한 군사력이 만들어짐을 가르쳐주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요즘 우리나라의 ‘두 쪽’은 동원된 무리의 수로 자신들의 세를 과시하지만 서로 협조할 방법을 찾지 못한다. 훈민정음의 어제 서문에 나오는 표현처럼 서로 사맛디 아니한다(서로 통하지 아니한다). 한 쪽의 정의가 다른 쪽에서는 정의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이 난국을 헤쳐 나가 화합의 장을 찾는 방법으로 한글의 자모 순서를 돌아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 함께 기본으로 돌아가 글자 자체가 사맛디 아니한 것을 돌아본다면, 양쪽이 서로 통하는 나라를 구현하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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