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일보 기자가 본 한국사회 갈등

  •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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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11 08:06  |  수정 2019-10-11 10:39  |  발행일 2019-10-11 제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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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갈등이 극을 향해 치닫고 있다. 조국 사태를 두고는 급기야 국민이 반으로 갈라졌다. 지난 3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조국 반대’ 집회(왼쪽)에 앞서 지난달 28일 이와 반대되는 ‘검찰 개혁’ 촛불집회가 서초동에서 열렸다. 연합뉴스

‘기자’는 이 사회를 가장 예민하게 보고 받아들이는 직업 중 하나다. 사회의 혼란도, 갈등도, 부조리도 기자들이 먼저 느끼고 기록해야 한다. 그들이 취재를 하거나 글을 쓰면서 느낀 점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사회 갈등·분열의 현실과 원인에 맞닿을 수 있지 않을까. 사회부·정치부·교육팀·논설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영남일보 현직 기자들에게 최근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현상에 대한 분석과 진단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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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면서부터 기회·빈부 불평등”
“정치권서 갈등 조장해 정쟁 도구화”


▲서민지 사회부 기자= “최근의 사회 갈등이나 분열 양상의 원인은 진영간 갈등, 그러니까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 아니라 계급 갈등 쪽이 더 가까운 것 같다. 계급 속에 숨어있는 갈등을 정치권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부추기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캐치프레이즈인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를 매우 좋아했다. 그런데 지금은 “과연 기회는 평등할까”라는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애초에 그런 것(기회의 평등)이 존재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취재를 하면서 더욱 그런 시각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얼마 전 동료 기자와 함께 대구의 대중교통망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기사를 썼다. 그 취재를 하면서 대중교통 인프라뿐만 아니라, 자본이나 편의시설이 몰리는 곳에 계속 몰리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디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태어나면서부터 격차가 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대구에서도 잘 사는 지역은 혜택을 당연하게 여기고, 못 사는 지역은 낙후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요즘 들어 지방대를 나온 친구들이 출신 대학을 ‘지잡대’라고 스스로 비하하는 것도 구조적인 불평등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민경석 정치부 기자= “여러모로 혼돈의 시기인 것 같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여유가 없다. 세상 돌아가는 것에도 관심이 없다. ‘제 코가 석자’이기 때문에 여유도 없고 세상에 관심도 없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오직 ‘나’만 남아있다. 그런 현상이 과연 개인의 책임일까. 정치권과 사회 전반의 책임이라 본다. 취업도 해야 하고 가정도 꾸려야 하며 ‘내 집 마련’도 해야 하는 상황에 남을 생각하고 배려할 겨를이 있을까. 그렇기에 ‘남녀, 노사, 빈부, 나이, 학벌, 지역 간 갈등’은 자연스레 심해질 수밖에 없다. 갈등이 심해진다는 것은 사회가 갈수록 예민해지고 있다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이 같은 갈등을 누가 중재라도 해주느냐. 그렇지 않다.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권은 오히려 갈등을 조장할 뿐이다. ‘조국의 딸’ ‘나경원의 아들’로 대표되듯이 정쟁의 도구로 사용될 뿐이다. 한국 정치권은 ‘공감능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지역도 마찬가지다. 말로는 청년 정치인을 등용한다고 하고 약자를 위한 정책을 내놓는다 하지만 정책의 혜택을 실제로 받은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20~30대 정치인도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사회 갈등이 조금이라도 완화되려면 갈등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이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우선이라 생각한다.”


“檢·言·學 집단이 이익 방편으로 써”
“보복 반복했던 한국 정치사에 원죄”


▲박종문 교육팀장= “냉정하게 현 사태를 분석해 보면 대학(교수), 검찰, 언론이라는 세 집단이 가진 특수성과 그에 따른 모순이 한꺼번에 드러난 사건이다. 민주국가에서 국가와 사회의 필요에 의해 대학에는 학문발전을 위한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고, 검찰은 공정한 수사를 위해 독립성이 부여돼 있다. 언론 또한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보도를 위해 보도의 자유를 인정해 주고 있다.

하지만 이번 ‘조국 사태’는 과연 대학의 자율성, 검찰의 독립성, 언론의 자유가 원래 의도대로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느냐에 대한 심각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대학, 검찰, 언론 모두 이런 일종의 특권을 국가와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각 집단의 이익을 지키고 극대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문제의식이다.

국가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건전한 사회를 위해서는 학문의 자유, 사법기관의 독립성, 언론의 자유가 당연히 보장돼야 하지만 이들 집단이 그에 따르는 사회적 책임은 방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물음이다.

우리나라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사회 전반적으로 특권이 사라지고 수평적 의사결정 구조가 확산되는 추세이지만 이들 세 집단은 여전히 특권의식이 강하고 상명하복 같은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가 잔존하고 있다. 때문에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가장 변하지 않은 집단(수구집단)이 교육계(대학), 법조계(검찰), 언론계이며, 이로 인해 이들 세 집단을 향한 개혁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여론에 주목해야 할 때다.”

▲원도혁 논설위원= “최근 우리사회에서 극심해진 계급 및 이념(진영) 갈등을 목도하고, 그 원인을 파악하고자 애썼다. 오랫동안 신문 기자로 일해온 만큼, 작금의 갈등과 분열을 지켜보는 마음이 더욱 남다르다.

우선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해봤다. 현 시대 상황에서는 성선설보다 성악설이 더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악해져야 생존 경쟁에서 유리하고, 다들 그 악한 본성을 순간순간 드러내고 있다는 느낌이다. 두번째로는 한국 정치사의 흐름에 그 원죄가 있다. 통합이나 화해의 정치보다 정적이나 반대세력에 대한 보복을 반복해왔다는 점이다. 그 악순환으로 인한 부작용이 극에 달한 것 같다. 세번째로 고위 공직자의 자세 문제다. 공직을 맡는 사람은 투철한 국가관과 국민을 받드는 위민정신, 자기 희생정신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점점 그런 자세가 부족해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마지막으로 사회변화와 세태변화 탓도 크다고 본다. 개인주의와 나쁜 형태의 이기주의가 확산되면서 빈부갈등이나 진영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이웃이나 사회, 국가는 어찌되든 나만 잘되면 된다는 편협한 생각이 사회를 망치고 있다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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