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영웅들 67년만에 무공훈장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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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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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베티고지 전투` 김두식 예비역 중령 등 45명에 수여

金중령 "죽음을 무릅쓰고
수많은 전투에서 싸웠는데
지금이라도 인정받아 감사"


14일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무공훈장 추가서훈 수여 행사에서 백금봉 예비역 하사(88· 당시 일병)와 김두식 예비역 중령(88·당시 소위·앞줄 왼쪽 둘째부터) 등 서훈 대상자 및 가족·유가족이 서욱 육군참모총장 등 군 관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육군]
6·25전쟁 당시 북한군과 중공군 공세를 온몸으로 막은 베티고지 영웅들이 뒤늦게나마 정부에서 무공훈장을 받았다. 진지를 사수하던 용사는 미수의 백발노인이 되어서도 먼저 간 전우들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6·25전쟁에서 큰 공적을 세웠음에도 여태껏 공로를 인정받지 못한 참전용사 45명에게 뒤늦게나마 무공훈장이 수여됐다. 육군이 14일 충남 계룡대에서 6·25전쟁 추가 서훈 대상자에 대한 무공훈장 수여식을 하고 경기도 연천 베티고지 전투 참전용사인 김두식 예비역 중령(88·당시 소위) 등 추가 서훈 대상자 7명에게 무공훈장을 수여했다. 추가 서훈이란 혁혁한 전투 공적을 세웠으나 당시에는 훈장을 받지 못한 전투영웅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것으로, 2011년부터 시행됐다.

육군은 올해 6·25전쟁사를 확인해 실명과 전투 공적이 명시돼 있으나 현재까지 훈장을 받지 못한 전투영웅을 발굴했고, 최근 국무회의에서 45명에 대한 무공훈장 수여를 확정했다. 이에 육군은 김 예비역 중령과 백금봉 예비역 하사(88·당시 일병) 등 2명의 생존자와 5명의 전투영웅 유가족을 계룡대로 초청해 무공훈장을 수여했다.

이날 훈장을 받은 7명은 모두 1사단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다. 김 예비역 중령은 1952년 12월 소위 신분으로 노리고지, 베티고지 전투에 참전했다. 당시 부상을 당했으나 대원들을 이끌고 최후 돌격을 감행해 적을 격퇴시키고 진지를 사수한 공적을 인정받아 이번에 충무무공훈장을 받았다. 충무무공훈장은 직접 참전해 특출한 공적을 세워 아군 작전에 크게 기여한 자에게 수여된다.

백 예비역 하사 등 6명은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백 예비역 하사는 1952년 10월 연천북방지구 전투에서 적의 티엔티(TNT) 공격으로 정신을 잃고 고립됐지만, 탈출에 성공해 적의 정세를 보고하면서 차후 반격 작전에 기여했다.

보은지구 패잔병 토벌 작전에서 적을 사살·생포한 문학현 하사(91·당시 병장), 함창지구 전투에서 특공대로서 적을 생포한 고(故) 민경호 하사(당시 병장), 조림산 전투에서 적 잠복조를 탐지해 격멸한 고 최안 병장(당시 상병), 운산지구 전투에서 적 공격 속에서 고지를 점령하는 데 기여한 고 공상렬 병장(당시 상병), 적에게 포위된 아군을 탈출시키고 적을 섬멸한 고 이해영 일병도 공적을 인정받아 무공훈장을 받았다. 이 외에 38명의 전투영웅에 대한 무공훈장 수여식은 39사단 등 거주 지역 부대에서 각각 시행됐다.

뒤늦게나마 무공훈장을 받은 김 예비역 중령은 "조국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수많은 전투에서 적과 싸웠는데 이제라도 공적을 인정받아 감사하다"며 "당시 전장에서 함께한 전우들에게 모든 영광을 돌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서욱 육군참모총장은 "지금이라도 전투영웅들께 훈장을 달아 드리게 돼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선배 전우들의 숭고한 조국애와 군인정신을 계승해 이제는 우리 후배들이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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