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만지고 먹이고… 관람객은 교감? 동물들은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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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가하는 실내동물원… ‘동물학대’ 논란 / 좁은 공간에 갇힌 야생동물들 / 65%가 생태·습성 무시 ‘무경계’ 전시 / 미어캣·수달 등은 좁은 철창·유리안에 / 아이들 체험학습장 활용… 마음껏 만져 / 손님에 늘 노출되는 동물카페 더 열악 / 질병에 취약… 사람·동물에도 위험 / 식수 제대로 공급 안되고 배설물 방치 / 스트레스 받은 동물들 ‘정형행동’까지 / 사람과 접촉 과정서 감염병 노출 우려 / “종별 적절한 환경기준 명시 법 개정 필요” / 해외 동물체험시설 관리 어떻게

“미어캣, 사막여우, 개미핥기는 본능적으로 흙에서 굴을 파는 습성을 갖고 태어난 아이들인데 여기서는 그런 행동 자체가 불가능하죠.”

지난 20일 서울의 한 대형복합쇼핑시설 안에 위치한 실내체험동물원을 찾은 사단법인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이형주 대표가 ‘우드팰릿’(바닥에 까는 목재의 일종)이 얇게 깔려 있는 콘크리트 바닥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동물원에는 수달, 홍학부터 소형 포유류인 코아티, 나무늘보, 카피바라 등 평소 도심에서 볼 수 없는 야생동물 800여 마리가 전시돼 있었다. 주로 남아메리카에 서식하는 코아티는 운동량이 많아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이곳에는 코아티가 타고 다닐 수 있는 공중 나무 구조물이 있었지만, 지상 사육공간은 매우 좁았다.
최근 복합쇼핑시설 등 실내에서 야생동물을 전시하는 ‘유사 동물원’인 실내체험동물원이 늘어나는 추세다. 날씨 제약을 받지 않고 ‘동물들을 가까이서 보고 직접 교감할 수 있다’는 슬로건을 내걸어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과 유치원에서 체험학습현장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나 동물의 생태와 습성을 고려한 사육환경을 적절히 마련하지 않는 등 동물 복지를 침해하고 있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생태와 습성이 무시된 전시공간”

23일 어웨어의 ‘동물체험시설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동물체험시설 20곳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65%에 달하는 13개 업체가 별도의 사육공간을 마련하지 않고 관람객이 있는 공간에 자유롭게 돌아다니도록 하는 ‘무(無)경계 전시’ 형태였다. 조사는 지난 3월부터 약 3개월 동안 전국 동물체험시설 100여개 가운데 20곳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조사한 업체의 75%가 사육장 외부로 동물을 꺼내 관람객에게 보여주고 접촉을 유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업체는 동물들을 만지지 말고 ‘눈으로만 봐달라’고 안내하고 있으나 관리자가 잠시라도 한눈판다면, 금세 손을 뻗어 만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또 다수의 업체가 동물들이 내려오지 못하도록 상자, 나무통, 선반이나 나무기둥 형태의 구조물에 올려놓고 전시하거나, 청소 및 관리 편이성을 위해 뜬장 등을 활용했다. 한 업체에서는 미어캣을 좁은 철장에 넣어 키우고 있었다. 또 다른 업체는 물 위에 설치된 ‘T자’ 형태 구조물에 슬로로리스를 사육하고 있었다. 슬로로리스는 방글라데시 등 열대우림에서 서식하는 포유류 동물로 손·발로 매달릴 수 있는 나뭇가지가 필요하지만 휴식하고 걸을 수 있는 바닥 역시 제공돼야 한다. 그러나 이곳의 슬로로리스는 영업이 끝난 후에도 구조물에 종일 매달려 있어야 한다.

야생동물카페에 있는 동물들의 복지 수준은 더 처참했다. 야생동물카페는 식음료를 파는 카페에서 야생동물을 동시에 전시하는 형태다.

22일 방문한 서울 마포구의 한 동물체험카페는 입장하자마자 치우지 않은 동물들의 배설물 냄새가 진동했다. 카페에는 강아지 10여 마리와 고양이, 라쿤, 파충류, 미어캣 등 수십여 마리의 동물들이 있었지만, 관리자는 한 명이었다. 라쿤 대여섯 마리는 콘크리트 바닥에 누운 채 가만히 있었다. 이 중 한 마리는 다른 라쿤을 공격하거나 구석에서 한 방향으로 끊임없이 빙빙 도는 정형행동(무의미한 행동을 목적없이 반복하는 것)을 했다. 다른 공간에 분리돼 있는 코아티 두 마리도 모두 정형행동을 했다. 지난달 어웨어가 발표한 ‘2019 전국 야생동물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에서 운영되는 야생동물카페는 2017년 35개에서 64개로 증가했다.

카페의 운영시간은 통상 10∼12시간으로, 전시시간 내내 동물들은 불특정 다수의 방문객에게 직간접적으로 노출된다. 그러나 사람과 소음으로부터 휴식할 수 있는 은신처가 제대로 제공되는 곳은 2개 업소였다. 적절하지 않거나 부분적으로 제공되는 곳이 4곳이고 나머지 6곳은 은신처가 전혀 없었다.

동물 사육의 가장 기본조건인 식수 공급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동물이 상시 물을 마실 수 있게 해 둔 곳은 12개 업체 중 5곳뿐이었다. 라쿤은 북미원주민 말로 ‘씻는 자’라는 뜻이다. 그만큼 야생의 라쿤은 앞발을 물에 담그고 먹이를 찾는 행동을 자주 한다. 그러나 라쿤이 물에 손을 담그도록 한 곳은 12곳 중 한 곳에 불과했다. 12개 업체 모두 먹이주기 체험을 상시적으로 하고 있었다. 특히 라쿤은 상시적으로 개나 고양이 사료를 받아 먹고 움직임은 제한되다 보니 조사업체 라쿤 모두 비만 상태였다. 또 동물들은 갇힌 공간에서 흥분하거나 새로운 자극에 노출될 기회를 잃기 때문에 만성 무기력증이 빈번하게 발견된다.
◆스트레스 및 질병에 노출… “사람·동물 모두 위험”

동물들은 관람객과의 원치 않는 접촉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되고, 이는 극도의 공포와 스트레스를 유발해 질병에 취약한 상태를 만든다. 조사된 동물체험시설의 70%에 달하는 14곳에서 외상 및 질병이 의심되는 동물들이 확인됐다. 또 17곳에서 정형행동을 심하게 보이는 동물들이 관찰됐다. 동물체험카페 역시 12곳 중 8곳에서 라쿤, 미어캣, 코아티의 정형행동이 드러났다. 정형행동은 지루함과 좌절을 이겨내기 위한 방어기제이자, 동물들이 느끼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보여주는 지표다.
동물과 사람이 접촉하는 과정에서 동물 체액, 분변 등으로 사람과 동물 사이에 상호전파되는 인수공통감염병에 노출될 위험성이 높다. 스컹크와 라쿤 등은 대표적인 광견병 숙주 동물이다. 관람객이 손을 씻지 않은 상태에서 동물을 연속적으로 만지고 먹이를 주는 행동도 동물 간 질병을 전파시키는 원인이 된다.

동물권단체와 전문가들은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동물원법) 등 관련법 개정을 통해 등록제인 동물원법을 허가제로 전환해 유사동물원의 난립을 금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 대표는 “동물들이 생태적 습성을 잃지 않도록 국내 법에도 종별 적정한 사육환경 기준을 명시하고, 정부에서 철저히 관리감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휴메인벳 최태규 수의사도 “실내체험동물원 등 유사동물원은 애초에 야생동물들이 살 수 없는 환경”이라며 “2017년 만들어진 동물원법을 강화해 더 이상 희생되는 야생동물이 늘어나지 않도록 유사동물원을 없애는 것이 답”이라고 했다.

◆전시목적 시설 ‘허가제’ 사육환경 주기적 감독

우리나라와 달리 영국과 유럽연합(EU), 미국, 호주, 인도 등 해외 대부분 국가에서는 동물원 설립 및 운영과 관련해 법에 제시된 일정 요건을 갖춰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허가제(면허제)를 채택하고, 당국이 주기적으로 관리·감독한다. 또 생물 종에 따라 제공해야 할 사육환경을 법이나 지침으로 규정하는 등 전시동물의 복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영국은 1984년부터 시행된 ‘동물원 면허법’에 따라 전시목적으로 사육하는 시설은 반드시 면허를 취득하고 주기적으로 면허를 갱신해야 한다. 또 ‘현대동물원운영지침’을 통해 동물원의 모든 동물에게 △배고픔과 갈증 △환경이나 신체적 불편함 △고통·질병 △정상적인 습성 표현 불가 △두려움과 스트레스 등으로부터 자유롭도록 하는 5대 원칙을 마련했다.

뉴질랜드도 ‘전시동물복지법 규칙’을 통해 동물의 종, 나이, 성별, 성장 상태에 맞춰 물과 먹이를 제공해야 하고, 종 습성에 따라 적절한 사육환경을 제공한다. 또 전시동물에 대한 사육시설 기준을 마련해 기어오르기나 땅파기, 점프 등 각 동물들이 자연상태에서 할 수 있는 행동들을 고려하도록 했다.

스위스에서도 야생동물 사육 시 동물 종별로 개체수에 따른 실내외 사육장의 최소 면적기준을 조례에 명시했다. 또 동물이 정상적인 행동을 표출하기 위해 의무적, 최소한으로 제공해야 하는 특별요건을 포유류, 조류, 양서파충류 등으로 나눠서 안내한다. 예컨대 포유류의 경우 ‘굴을 파거나 급히 도망갈 수 있는 기회 제공’, ‘나무나 신선한 나뭇가지 같은 씹을 수 있는 물체 제공’, ‘카피바라 등 일부 종에는 물웅덩이를 의무적으로 제공할 것’ 등이 포함돼 있다.

EU는 1999년 ‘동물원 지침’을 만들어 동물원 운영 요건과 면허, 검사, 폐업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회원국들이 자국 내 법에 반영하도록 했다. 관할당국의 요구사항을 2년 안에 시행하지 않을 경우 동물원 허가를 철회하거나 문을 닫도록 할 수 있다.

개인이 야생동물을 소유하는 것도 엄격히 제한한다. 미국의 경우 20개 주에서 거의 모든 희귀애완동물 소유를 금지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야생동물 종별로 금지 이유를 코드별로 분류해놓고 수입, 소유, 이송까지 금지하고 있다.

새로운 야생동물 종 수요가 생길 때마다 법을 개정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줄인다는 점에서 개인이 사육할 수 있는 야생동물을 지정하는 영국의 ‘백색목록’ 제도도 효율적인 관리방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벨기에와 네덜란드, 룩셈부르크도 ‘포지티브 리스트’를 통해 개인이 사육 가능한 동물을 지정하고 있다. 스위스에서는 동물복지법을 통해 상업적 또는 개인적으로 특정한 관리가 필요한 야생동물을 보유하는 경우 반드시 면허를 발급받도록 하고 있다.

남혜정 기자 hjn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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