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다이아몬드가 반짝…당첨 됐구나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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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푸르미의 얹혀살기 신기술(5)
로또를 구입한 한 남성.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연합뉴스]

어떤 이가 매일 간절히 기도했다.
“로또 1등 당첨되게 해주세요.”
신이 대답하셨다.
“일단 로또를 사거라.”

아버지는 복권을 꾸준히 샀다. 좋은 꿈 꿨을 때는 물론 예기치 않게 점심값이 굳었을 때,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타야 할 버스가 도착했을 때 등 아주 작은 행운이라도 찾아온 날엔 어김없이 복권을 샀다. 주택복권에서 88올림픽복권, 연금복권 그리고 로또에 이르기까지 무려 40년 이상 사 왔건만 안타깝게도 만 원 이상 당첨되어본 일이 없다. 수차례 배신을 당하면서도 주말이면 늘 큰 선심 쓰시듯 말씀하신다.

“너 이거 몰래 바꿔치기하면 안 된다. 맞춰봐라. 분명히 당첨되었을 거다.”
당당하게 내놓으시지만 결과는 늘 낙첨. 그 많은 숫자 가운데 당첨번호 6개 중 단 하나도 없었던 적도 많다.

언젠가 로또에 당첨되면 상금을 어디에 쓸 것인지 여쭌 적이 있다. 큰 그림을 명확하게 그려놓고 계셨다.
“우리 딸들 빚부터 다 갚아줘야지.”
“그다음엔?”
“나랑 사느라 고생한 너, 살 집은 있어야지.”
“만약에 그래도 남으면?”
“더는 탐내지 마라.”

진심이셨다. 어려운 가정에서 자라 겨우 학업을 마치고 객지에서 빈 몸으로 가정을 꾸려 두 살 터울 딸을 넷이나 낳아 키우느라 아끼고 또 아껴가며 살아온 가장의 결론이었다.

나는 빚 갚아주시고 집 사주신다는 말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당첨 기쁨을 누리게 해드리고 싶었다. 그날로 확률 높은 번호를 사전에 알려주는 사이트를 찾아 유료회원에 가입했다. 매주 번호가 20세트씩 제공되는 연회비 30만 원의 VIP서비스. 언니 중 로또를 자주 사고 은행 빚도 좀 있는 셋째 언니에게 제안했다. 당첨될 경우 아버지와 언니, 그리고 내가 3분의 1씩 나누는 것으로 하고 언니와 내가 아버지 몰래 매주 10세트씩 나눠 사는 계약을 맺었다. 매주 토요일 아침 문자로 제공되는 번호를 받아 사기를 두 달쯤 했을까? 언니가 먼저 지쳤다.

“이제 우리 그만하자. 한 주에 만 원이면 애들 학습지 하나 더 할 금액이다. 너무 안 되니까 만원도 아까운 것 같아.”
기왕에 목표 세우고 시작한 일, 나는 100일은 채우고 싶었다. 기도도 백일기도가 기본인데, 그 정도는 해보고 그만둬야 한다 싶어 언니를 설득하며 지속하기를 다시 한 달여, 목표했던 100일이 된 날 당첨번호를 확인했지만 나의 믿음과 상관없이 꽝!

사진은 서울 종로구의 한 복권방의 모습. [연합뉴스]

예상번호가 도착하면 행여 잘 못 옮겨 적어 낙첨되는 건 아닌가 눈이 빠져라 확인 또 확인하며 정성 들여 응모했건만, 유료회원에 가입한 뒤 더 안 맞는 것 같았다. 허황된 횡재를 바랐기 때문에 그간 소액이라도 당첨되던 로또가 오히려 잘 안 되는 거라 냉정하게 결론 내리고, 비밀리에 진행되어온 로또 프로젝트를 잠정 중단했다.

그런데 사람 심리는 참으로 신비롭다. 그만두니 그다음부턴 ‘보내준 번호가 만약 당첨번호면 어쩌나?’ 걱정되기 시작했다. 회원 가입 기간이 1년이라 매주 예상번호가 도착하는데, 구입은 하지 않는 상황.

신기하게도 로또를 샀을 때보다 당첨 여부가 더 궁금한 게 아닌가. 나에게 보내진 번호 가운데 행여 당첨번호가 있으면 어쩌나 하는 그 아슬아슬한 심리…. 실제 그런 일이 있다면 아마도 땅을 치며 후회할 것이다. 어차피 사지도 않을 건데 회원탈퇴를 해 버리면 그만인데 그러지도 못한다. 30만 원이나 낸 이 서비스가 과연 효과가 있을까 두려우면서도 궁금한 까닭이다.

어느 날 아침, 까치가 유난히 다정하게 울었다며 아버지가 로또 한장을 주셨다. 까치 얘길 들으며 나는 로또보다 곧 발표를 앞둔 민영임대아파트 청약 결과를 기대했다. 발표 전날, 목욕재개하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에 잠을 깼는데, 눈앞에 커다란 다이아몬드가 반짝이는 장면이 선명한 게 아닌가. ‘됐구나!’ 느낌이 왔다. 옛 어른 말씀에 좋은 꿈은 감추고 나쁜 꿈은 널리 퍼뜨리는 법. 아버지에게도 꿈 이야기를 하지 않고 추첨발표 시간만을 기다렸다. 오후 4시, 추첨발표 시간이 지났는데 전화도 문자도 오지 않았다. 사이트에 접속해 당첨자 명단을 아무리 보고 또 찾아도 내 이름은 없었다. 이럴 수가 분명 길몽인데…. 낙심하는 동시에 또 다른 기대가 바로 피어났다. 로또!

‘그래, 아파트가 아니라 아버지 말대로 로또였어!’

토요일 저녁이 돌아왔지만 나는 번호를 맞추지 않았다. 다음 날이 11월 11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숫자 11이 두 번이나 겹친 날이라 그 날 맞추는 것이 진정한 행운의 완성일 것 같았다. 11일 아침, 떨리는 마음으로 로또 당첨번호를 검색했다. 차례로 맞춰 가는데, 이럴 수가…. 6개 중 세 개 일치, 당첨 액 5천 원이었다.

길몽을 꿨는데 청약이 된 것도, 로또가 당첨된 것도 아니었다. 다 아니라면 무엇인가 하는 사이에, 청약했던 주택의 미계약분이 생겨서 선착순 계약을 할 기회가 생겼다. [연합뉴스]

아파트도 로또도 아니라면 다이아몬드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바로 그때였다. 거짓말 같이 문자 메시지가 도착하는 게 아닌가. ‘미계약분 선착순 접수’ 라는 제목의 장문 메시지에는 내가 청약했던 주택이 어제까지 계약을 진행한 결과 미계약분이 발생하여 오늘부터 선착순 계약에 들어간다는 내용이었다.

아버지에게 전화했다. 무조건 택시 타고 모델하우스에 가서 줄을 서시라고. 영문도 모르고 서울역 12번 출구로 가신 아버지는 무사히 남향집을 골라 계약에 성공했다. 추첨으로 당첨되면 동호수가 무작위로 결정되고 입주 때까지 무주택자격을 유지해야 하는 까다로운 규정을 적용받는데, 선착순으로 계약한 우린 동호수도 원하는 것을 고르고 무주택 조건도 지킬 필요가 없는, 더 좋은 조건이었다. 그야말로 ‘신의 한 수’가 아닌가.

아침 출근길 아버지가 로또 한 장을 손에 꼭 쥐어주신다. 매번 5세트가 꽉 차 있었는데, 웬일? 오늘은 1000원 어치 한 세트뿐이다.
“이제 용돈도 절약해야겠다. 4500원 담배 두 갑 사면 9천원이니 만 원짜리 내고 거스름 안 받는 셈 치고 딱 1000원 어치만 살란다. 당첨될 운이면 1개 사나 10개 사나 똑같겠지.”

쉰다섯에 퇴직하고 팔십을 넘어선 오늘까지 30년 가까이 백수로 지내시다 보니 아무래도 로또가 당첨될 때까진 긴축정책이 불가피한 모양이다.

공무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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