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만 80%, 임대 아파트로 간 그들은 왜 홀로 남았나 [공공임대주택-구멍뚫린 복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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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10.17. 오후 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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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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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여성의 빈곤, 여성의 집 - 수도권 어느 영구임대 아파트



여성 가구주 비율 전국의 두 배

여성 한부모가족·독거노인 몰려

응답자 93명 중 74% “혼자 번다”

대부분 식당일·청소일로 생계

한부모가구 84%는 일하지만

대다수가 소득 낮은 근로빈곤층


2700여가구가 사는 수도권 ㄱ영구임대 아파트 단지에는 ‘명당’이라 불리는 장소가 있다. 단지 안 공원 옆 곧게 뻗은 소나무 아래. 명당에 자리 잡은 요구르트 전동차 주변엔 항상 사람이 북적인다. 지난달 5일, 단지 안 성추행 사건이 화제가 됐다.

“며칠 전에 한 할아버지가 어떤 할머니 가슴을 만지면서 막 웃고 있더라고. 내가 ‘그러지 마라, 더 하면 경찰에 신고한다’고 그랬지.” 아파트에서 자식 둘을 홀로 키운 입주민 박임순씨(62·이하 가명)의 성토에 주변 여성들이 맞장구쳤다. ㄱ아파트에선 종종 있는 일이다. 이들의 한탄이 단지를 벗어나 알려지는 일은 드물다. 고독사 같은 ‘사건’이 아니면 이곳에 누가 사는지 사람들은 모른다.

ㄱ아파트 거주자 상당수가 여성이다. 주택관리공단은 ㄱ아파트 거주자의 70~80%를 여성으로 추산한다. 여성 가구주도 많다. 전체 2688가구 중 1630가구(60.6%)가 여성 가구주다. 전국 기준 여성 가구주 비율(31.2%)의 두 배다. 1992년 최초 입주 시에는 68%에 달했다.

요구르트를 판매하는 정진숙씨(60)가 사람들에게 자판기 커피를 빼 주겠다며 동전을 한움큼 꺼냈다. 그는 요구르트 전동차 근처 음료 자판기를 “대박 커피숍”이라고 불렀다. 자판기에선 얼음이 반쯤 담긴 냉커피가 나온다. 한 잔에 400원이어서 하루 2~3잔 즐기는 주민도 많다.

커피 한 잔을 들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추석 전 과일 따는 일을 하면 일당이 8만원이라는 정보가 관심을 끌었다. 이곳에는 철칙이 있다. 일 이야기, 자식 이야길 하며 웃고 떠들다가도 낮 12시가 되면 다들 집으로 향한다. 점심은 각자 챙겨 먹고 오후에 다시 만나는 식이다. ‘400원짜리 대박 커피숍’ 같은 식당은 찾기 어렵다. 6000원씩 하는 밥값은 서로에게 부담을 지운다.

여성, 그중에서도 가난한 여성이 영구임대에 몰렸다. 입주 자격에 한부모가족과 저소득층이 있었고 상당수가 여성이었다. 정부 통계를 보면 한부모가족 세 가족 중 두 가족은 어머니와 자녀로 구성된 모자 가정이다. 혼자 사는 노인 10명 중 8명은 여성이다. 한부모가족과 혼자 사는 노인이 모이면 여성이 많을 수밖에 없다.

ㄱ아파트 여성의 삶은 유사한 궤적으로 흘렀다. 주로 서울 외곽지역에서 월세로 살다 아파트에 들어와 집 한 채에 의지해 살았다.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거나 이혼한 뒤 자식을 홀로 키웠다. 하루 10시간이 넘게 판매원, 청소부, 공장 생산직, 식당 서빙 등을 했다. 자식들을 키워 내보낸 여성들은 홀로 아파트에 남았다. 한부모가족의 가장이 여성 노인이 된 것이다. 이젠 돌봐줄 이도 없어 “치매라도 걸리면 낭패”라고 걱정한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만 반짝 임대아파트에 세간의 관심이 쏠린다. “게으르다” “현실에 안주한다”는 편견만 입길에 오른다. 정작 임대아파트에 응축된 여성의 노동과 결혼, 안전과 돌봄에 관심 갖는 이들은 많지 않다.

■ 일을 해도 가난했다

경향신문은 지난달 19일부터 3주간 ㄱ아파트에 거주하는 여성 93명의 노동·주거 이력, 가족 형태를 심층 조사했다. 응답자 중 일부는 개별 인터뷰했다. 40~70대 응답자 중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시세 30% 수준 월세에도, 부지런히 일을 해도 돈을 모을 수 없었다.

이명자씨(61)는 결혼 4년 만에 이혼했다. 남편에게 양육비나 생활비를 받지는 못했다. 이혼 후 한부모가정으로 ㄱ아파트에 들어와 20년 가까이 살았다. 지금은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결혼 전후로 놀이공원 안내원, 백화점 판매원으로 일했다. 작은 의류 공장, 코다리찜 전문점, 포장마차를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음식점에선 사고도 났다. 손님들 사이 큰 다툼이 벌어진 뒤 가게를 접었다. 일이 안 풀려 한때 종교에 심취하기도 했다. 이씨는 “포장마차 할 때는 단속 걱정도 많았다. 이때 관절이 안 좋아졌다”고 했다.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고생했다. 자식 하나는 그래도 간수해야 했다. 지하철과 시장에서 양말, 곶감, 마른 갈치, 돋보기, 바퀴벌레약도 팔았다. 요즘 이씨는 오전에 녹즙 배달을 한다.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투잡’도 고민 중이다. 무릎이 안 좋지만 신문배달을 해볼까 고민했다. 중학교까지만 다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첫 직장인 놀이공원 안내원을 빼면 정규직이었던 적은 없었다. 자주 바뀐 일터는 불성실의 증거가 아니라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려는 생존 흔적이었다.

이씨가 해봤다는 일 중 대부분을 응답자들도 경험했다. 식당일(40명)이나 청소일(20명)을 했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지난 7월 기준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력조사를 보면 식당업의 월평균 세전 임금은 188만6000원이었다. 노동부가 분류한 산업 중 식당업은 임금이 가장 낮은 업종이다. 청소일이 포함된 사업시설관리의 세전 월급은 230만1000원으로 식당일 다음으로 낮았다.

공장 생산직(19명), 가사도우미(12명)를 한 이들도 많았다. 가사도우미는 현재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아 최저임금 제한이 없는 직종이다. 공공근로(17명)에 참여한 여성들도 있었다. 노점상(9명)이나 가게를 차린(17명) 이들도 있었다. 가내수공업(6명), 마트 계산원(5명)나 보험 영업(7명), 회계 사무보조(5명), 공사장 일용직(3명)으로 근무한 여성도 적지 않았다. 몸이 불편해도 집에서 인형 눈을 붙이고 상자를 접었다고 답했다. 배달일이나 페인트칠, 만화가게 아르바이트를 한 여성들도 있었다.



설문 응답자 69명(74.2%)은 홀로 생계를 이어왔다. 대개 저학력에 숙련 기술도 없었다. 같은 일을 해도 남성보다 임금이 낮았다. 지난해 기준 여성의 월평균 임금은 남성의 66.6%에 불과했다. 사별한 남편은 재산을 남기지 않았고 이혼한 남편은 양육비를 주지 않았다.

여성가족부의 ‘2018년 한부모가족 실태조사’를 보면 한부모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219만6000원이었다. 전체 평균 가구가처분 소득의 절반을 겨우 넘는 수준(56.5%)이었다. 여성 한부모가족은 전체 한부모가족의 65.5%를 차지했다. 여가부는 “한부모가구의 84.2%는 취업 중이지만, 근로소득은 낮아 근로빈곤층 특성을 보였고 근무시간이 길어 일·가정 양립이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 빈곤 가속화한 결혼의 덫

최명순씨(67)는 19세 때 전남 장성에서 서울로 왔다. 집안이 어려워 초등학교만 졸업했다. 최씨는 ㄱ아파트 최초 입주자다. 스스로 “박복하게 그리고 힘들게 살았다”고 말했다. 27세 때 중매로 결혼했다. 남편은 직장에 다녔다. “아들, 딸 낳고 그럭저럭 잘 살았다”고 했다. 결혼한 지 6년 만에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먹고살 길을 찾다 요구르트 판매원이 됐다.

설문에 응답한 이들 중 최씨처럼 사별한 여성 가구주가 38명(40.9%)으로 가장 많았다. 이혼한 여성 가구주는 12명이었다. 이혼과 사별한 여성을 합치면 전체 응답자(93명)의 절반을 넘는다. 홀로 자식을 키운 여성들이 가난에 내몰렸음을 추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미혼 여성도 8명 있었다.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여성은 13명이었다. 이 중에는 남편의 장애로 사실상 홀로 생계를 책임진 여성도 있었다.

최씨의 삶은 늘 고됐다. 오전 5시 첫 차를 타고 신설동에 갔다. 요구르트가 담긴 카트를 끌고 해질 때까지 영업을 했다. 요구르트 전동차도 없던 시절이었다. 일을 마치면 오후 9시에야 집에 돌아왔다. 집에서도 할 일이 있었다. 다음날 아이들이 먹을 밥 한 솥, 국 한 냄비를 끓여놨다. 1998년 물혹이 발견돼 자궁을 들어냈을 때도 쉬지 못했다. 2006년 뇌출혈이 일어나기 전까지 20년을 꼬박 일했다. 후유증으로 지금도 왼쪽 팔다리가 저리다. 요구르트 일을 그만두기 직전 한 달에 140만원 정도 벌었다. 그는 “내가 동료들보다 부족해서 못 번 거였다”고 했다. 몸이 상할 만큼 일을 했는데도 헤어나지 못한 가난을 본인 탓으로 돌렸다.

◆“반지하 벗어나 숨통 트였나 했더니…” 이젠 돌봄·안전 걱정

수도권 ㄱ영구임대아파트에서 한 할머니가 보행기에 의지한 채 집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 아파트 거주자 10명 중 8명이 여성으로, 전체 2688가구 중 60.6%는 여성 가구주다. 이들은 대개 남편과 사별했거나 이혼 후 식당일 등을 하며 홀로 생계를 이어왔다. 소득 최하위 계층이 입주할 수 있는 영구임대아파트에 여성 빈곤이 집약돼 있는 것이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입주 전 대부분 반지하·단칸방 등

전·월세 저렴한 주택가서 살아

아파트서 생존 보장 받았지만

모녀가구 등 안전은 또 다른 문제

단지 내 근거 없는 소문에도 취약

“치매라도 걸리면 누가 돌보나”

안전망 없는 노후 생활 이어가


김승희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가 지난해 발표한 ‘한부모가족 형성과정에서 주거상태 변화와 주거이동 유형에 관한 연구’ 논문을 보면, 이혼·사별 등으로 한부모가족이 된 가정의 50.0%는 주거지가 하향 이동했다. 한부모가정이 되기 전 자가 비율이 26.8%였지만, 6.6%로 급격히 떨어졌다. 월세 비중은 23.6%에서 32.4%로 높아졌다. 논문에서 조사한 한부모가족 가장의 95.4%가 여성이었고 자녀는 1인 이상이었다.

여성 가구주들은 사별이나 이혼 직후 경제력에 타격을 입었고, 이는 주거불안으로 이어졌다. 일자리, 자녀 교육 등과 맞물리지 못한 주거지 이동은 이들의 빈곤을 가속화하는 원인 중 하나였다. 일부 여성들은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 ‘안정적인 가정’을 꿈꿨지만 쉽지 않았다.

김옥경씨(39)는 ㄱ아파트에 살며 아이 셋을 키운다. 첫째와 둘째는 첫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았다. 막내는 두 번째 남편과 결혼했을 때 태어났다. 김씨는 “첫 이혼과 재혼 사이에는 한 달에 2만원으로 생활할 때도 있었다. 반지하에서 살아 아이들 호흡기가 안 좋아졌다”고 했다. 두 번째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두 번째 남편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던 편이라 아이들이 좋은 환경에서 크면 좋을 것 같아 재혼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재혼한 남편의 폭력에 또 한 번 이혼을 택했다. 이혼한 두 남편 모두에게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있다.

결혼과 이혼, 다시 재혼으로 이어지는 연애와 사랑은 대개 이들의 생활 수준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불러왔다. 궁핍한 삶에서 만난 인연은 소중했다. 음주가 심하거나 폭력을 사용한 이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 무기력해진 남자들도 있었다. 건설노동, 배달 등 주로 몸을 쓰는 일을 했던 남성들은 쉽게 사고나 질병의 위협에 놓였다. 가난의 그림자가 언제든 덮칠 수 있는 조건이었다.

■ 안전과 돌봄의 굴레

그나마 김씨는 지난해 5월 ㄱ아파트에 입주하면서 숨통이 트였다. 이전에는 서울 도봉구 쌍문동 지하방에서 살았다. 비가 많이 오면 늘 물이 넘쳤다. 지하에 살 때는 아이들이 호흡기 질환을 달고 살았다.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30만원이었다. ㄱ아파트는 월세 10만원 안팎인데, 주거급여로 충당할 수 있다. 다만 보증금이 부족해 제2금융권에서 빌렸다. 이자만 한달에 10만원이 넘지만 김씨는 “그래도 이전 주거지보다 환경이 훨씬 낫다”고 했다.

ㄱ아파트 여성들의 주거 이력을 보면 영구임대 입주는 여러모로 나은 선택이었다. 이들은 ㄱ아파트에 오기 직전 대부분 다세대주택의 반지하나 단칸방에서 지냈다. 판잣집과 원룸, 쪽방에서 지낸 여성들도 있었다. 일부(3명)는 가게에 딸린 방에서 거주했다고 답했다. 아파트에서 살았다고 답한 응답자는 6명에 불과했다.

ㄱ아파트 입주 직전 주거지는 상대적으로 월세가 저렴한 주택가에 몰려 있었다.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영등포구 문래동, 성북구 석관동, 중랑구 면목동, 노원구 월계동, 강북구 미아동 등이 대표적이다.

거주 형태는 전세보다 월세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임대아파트가 최소한의 생존은 보장했지만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지는 못했다. 딸과 단둘이 산 성명숙씨(61)는 “한여름에도 문 한 번 열지 않고 지냈다”고 말했다. 전기료가 좀 나오더라도 현관문을 닫고 선풍기, 에어컨을 켰다. 홀로 사는 유영자씨(73)는 “머리 맡에 야구방망이를 두고 잔다”고 했다. 사건이 일어나도 분양 아파트처럼 사후관리가 되지 않았다. 입주자대표회의조차 없는 상황에서 아파트 관리에 주민 의견수렴이 이뤄지지 않은 탓도 있다.

여성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수군거림에도 취약하다. 10여년 전 박임순씨의 집에 큰불이 났다. 알 수 없는 화재로 집이 몽땅 탔다. 집에 아무도 없었기에 인명 피해는 없었다. 어느 날부터 “박씨가 아이들을 없애고 다른 남자를 만나려 불을 질렀다”는 소문이 퍼졌다. 여성이 혼자 사는 집에 대한 과도한 관심 탓이었다. 분양 아파트에 비해 주민들 사이 소통이 활발해 소문은 더 빨리 퍼졌다.

소문과 달리 박씨의 삶은 여전히 ‘돌봄’에 얽매여 있다. 박씨는 요즘 손자를 키운다. 이혼한 둘째 아들의 자식이다. 이 아이를 봐주기 전에는 첫째 딸의 자식도 17세가 될 때까지 돌봤다. 자녀에 이어 손주까지 돌봄의 도돌이표가 계속되고 있다.

먹고살기 바빠 아이를 돌보기도 어려운 자녀들에게 노후까지 기대하기는 어렵다. 박씨는 자녀들에게 “나는 여기서 평생 살 테니 너희는 알아서 살라고 말한다”고 했다.

평생 일만 하다, 자식만 돌보다 막상 혼자가 된 이들이 ㄱ아파트에는 많다. 조사에 응답한 ㄱ아파트 여성 93명 중 47명이 혼자 살고 있다고 했다. 딱 절반이다. 대부분 60대 이상이다. 설문조사 과정에서 요양병원에 장기입원(2명)하거나 치매에 걸려 응답할 수 없는 여성(1명)도 있었다. 2명은 홀로 살다 최근에 사망했다.

임대아파트의 진짜 문제는 입주자들의 나태함이 아니었다. 여성들은 장시간 일했지만 돈을 모으기 어려웠다. 사별이나 이혼을 한 뒤 양육비를 보장받지도 못했다. 대부분 정규직이 아니었기에 연금도 없었다. 한부모가족에 대한 정부 지원은 ‘집 한 채’가 전부였다. 이마저도 행운이라고 여겼지만, 노후를 보장받긴 어려웠다. 혼자가 된 여성을 보호할 제도가 없어 문제였던 것이다.

지난 11일 오전 ㄱ아파트 관리사무소에 60대 여성이 찾아왔다. 그는 주저앉아 “집이 너무 커, 10만원 내놔”를 반복했다. 혼자 사는 여성이었다. 관리사무소는 치매 환자로 추정했다. 자식이 둘 있지만 연락처를 알 수 없다고 했다. 출동한 경찰관 두 명도 신원 파악에 실패했다. 그는 그렇게 30분을 울다가, 바닥에 앉아만 있다 집으로 돌아갔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하루에도 3~4명씩 치매 환자들이 찾아온다”고 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월부터 전국 15개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에 주거복지사를 배치했다. 국토부는 주거취약계층을 위한 돌봄서비스라고 밝혔다.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치매 노인 대응을 떠안고 있다는 점에서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들의 남은 삶을 누가 돌봐줄 수 있을까.

※시리즈

1 들어간 사람들, 기다리는 사람들

2 국가가 사랑한 중산층 임대주택

3 여성의 빈곤, 여성의 집

4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5 누구도 반대는 하지 않았다

6 어떻게 지키고 채워갈 것인가


김원진·고희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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