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들 팔월의 하동] 산… 강… 바다에서 즐기는 늦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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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 정상의 짚 와이어 승강장에서 출발을 기다리는 관광객. 3.2㎞에 달하는 아시아 최장 코스에서 맛보는 극한의 스릴이 입소문을 타면서 하동에서 꼭 체험해야될 레포츠로 자리잡았다.


늦여름 더위가 지나고 가을의 길목에 접어든다는 처서가 어느덧 다음 주로 다가왔다. 아직까지 막바지 더위가 기승이지만 곧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가을 기운이 자리 잡을 터이다. 여름 휴가철과 바쁜 농사일은 끝나고 아직 가을은 먼, 옛 사람들이 ‘건들 팔월’이라고 부른 팔월 중순에 경남 하동을 다녀왔다. 지리산의 넉넉한 품과 섬진강의 하얀 모래, 그리고 남해의 푸른 바다까지. 그야말로 산과 강, 바다를 한데 아우르는 하동에서 느린 걸음으로 가을을 맞이할 채비를 차린다.

주민산책로로 바뀐 경전선 철로

‘알프스 하모니 철교’ ‘스카이워크’…

더위 식힐 새로운 즐길거리 풍성 3년 된

‘신상’ 구재봉 자연휴양림

아시아 최장 짚라인 등 다양하게 체험

‘아자방’ 간직한 칠불사는 숨은 명소

옛 섬진철교를 리모델링한 알프스 하모니 철교.


하모니 철교, 스카이워크… 확 바뀐 하동

오랜만에 찾은 하동은 그야말로 확 바뀐 모습이다. 하동읍을 관통하던 옛 경전선 철로는 주민산책로로 재탄생했고, 섬진강을 가로질러 영호남을 이어주던 섬진철교도 ‘알프스 하모니 철교’라는 이름으로 거듭 나 관광명소로 떠올랐다.

하동읍 시가지는 전신주 지중화 사업과 함께 곳곳에 회전 교차로가 들어서 깨끗하게 정돈된 느낌이다. 부산 등 대도시에서도 보기 어려운 깔끔함이 하동읍의 첫 인상이다.

옛 하동역에서 하동군청까지 1.1㎞ 구간의 폐철로는 산책로와 화단을 조성하고, 야간에는 조명까지 들어와 주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443m 길이의 옛 철교를 보도교로 바꾸고, 다리 중간에 투명 바닥창을 설치한 알프스 하모니 철교는 영호남 뿐 아니라 신구 세대, 남녀 간 화합과 조화를 추구한다. 하동군은 산책로를 송림공원까지 연장하고, 알프스 하모니 철교 위에는 전망대와 카페 등을 설치해 관광객을 끌어들인다는 계획이다.

섬진강과 평사리 들판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스카이 워크. 8월 말 완공 예정이다.


하동에 들어선 또 다른 볼거리는 평사리 들판과 섬진강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스카이워크다. 형제봉 자락의 고소산성 아래에 들어서는 스카이워크는 산중턱에서 170m나 앞으로 돌출돼 있어 섬진강의 상·하류와 평사리 들판을 극적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마치 숲 위를 걸어가 하늘 위에 서 있는 느낌이다. 정식 명칭은 ‘스타웨이’로 현재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8월말에 완공되면 하동의 새 랜드마크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주말에 하동을 찾는다면 매주 토요일 저녁에 하동공설시장 광장에서 열리는 ‘섬진강 두꺼비 야시장’을 놓치지 말자. 다양한 먹거리와 함께 공연도 즐기고 직접 만든 공예품들을 구입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국내 최대 크기의 복두꺼비 조형물 입에 동전을 던지면서 소원을 빌고, 그 앞의 금두꺼비 입에 물고 있는 엽전에 손을 얹고 대박을 기원하는 이벤트가 인기다. 섬진강이라는 이름에 들어가 있는 섬(蟾)은 두꺼비라는 뜻으로 고려 말에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들이 침입한 왜구를 쫓아내고 우리 군사의 승리를 도왔다는 전설에서 유래됐다.

구재봉 자연휴양림의 숙박시설인 트리 하우스.


구재봉 휴양림, 휴양과 레저, 체험까지 한곳서 해결

하동읍에서 청학동과 삼성궁으로 가는 길 중간에 있는 구재봉 자연휴양림은 문을 연 지 3년도 되지 않은 ‘신상’이다. 그런 만큼 아직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레저·체험 시설과 함께 숲속의 집, 트리하우스 등 자연 친화형 숙박 시설을 갖춰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탐방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있다.

구재봉 자연휴양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체험 프로그램은 산속에서 즐기는 모노레일과 산림 레포츠 시설이다. ‘1004 라인’으로 불리는 1004m 구간의 짚라인과, 난이도에 따라 어린이와 성인·스포츠 코스로 나눠진 에코어드벤처는 온몸으로 자연을 느낄 수 있어 인기가 높다.

구재봉의 자연을 가장 편안하게 즐기는 방법은 녹차밭과 짚라인 탑승장 등을 순환하는 모노레일이다. 숲 속을 지나며 구재봉 정상과 산 아래 마을을 바라보고, 때로는 짚라인을 타는 사람들의 즐거운 모습을 보노라면 몸과 마음이 절로 힐링 되는 기분이다. 마지막의 급경사 구간에서는 아찔함도 맛볼 수 있다.

구재봉 자연휴양림에는 이밖에 우드스피커와 책꽂이 등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목재문화체험장도 있어 가족과 함께 색다른 추억을 쌓을 수도 있다. 숙박 시설과 목재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이용하려면 홈페이지(www.hadongforest.co.kr)에서 예약을 해야 한다.

하동의 대표적 레포츠 시설인 금오산 짚와이어는 금오산 정상(해발 849m)에서 바다를 향해 떨어져 내리는 듯한 짜릿함으로 SNS, 블로그 등에서 핫 플레이스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3.2㎞에 달하는 아시아 최장 코스에서 최고 시속 120㎞로 미끄러져 내리는 극한의 스릴과 시야 가득 들어오는 남해바다의 탁 트인 전망이 꾸준한 인기 요인이다.

짚와이어를 타지 않더라도 자동차를 이용해 금오산 정상부까지 올라갈 수 있다. 방아섬, 굴섬, 솔섬 등 올망졸망 정다운 섬들과 멀리 삼천포, 사량도 등 한려수도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경관이 기다린다.

금오산 정상에서 바라본 한려수도의 절경.


한번 불 때면 겨우내 따뜻...불가사의한 아자방

하동을 대표하는 명소로는 누구나 쌍계사를 꼽는다. 가을 단풍과 기와로 장식된 꽃담이 특히 아름다운 천년 고찰이다. 화개장터, 십리벚꽃, 야생 차밭, 불일폭포 등이 주변에 있어 가히 하동 관광의 일번지라고 할 만 하다.

칠불사는 쌍계사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져 있지만 가락국 김수로왕의 일곱 아들이 창건했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지리산의 기가 이곳에 모여드는 명당 터라는 소문과 함께 정치인, 기업인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쌍계사에서 계곡을 따라 지리산의 넓은 품 안으로 한참 들어가면 범왕리 보건소 삼거리가 보인다. 여기에서 왼쪽으로 접어들어 목통골 마을을 지나면 토끼봉 자락으로 이어진 길이 나오고, 그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칠불사가 자리잡고 있다.

칠불사의 창건 설화는 우리나라의 불교 전래 시기가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이라는 종래의 북방전래설을 300년 가까이 앞당기는 것으로 역사의 논쟁거리로 남아있다.

칠불사는 ‘아자방’이라 불리는 온돌방으로도 잘 알려진 사찰이다. 아자방은 신라 효공왕 때 김해의 담공선사가 만든 아(亞) 자 형태의 방이다. ‘구들도사’로 불릴 만큼 온돌방을 잘 놓았던 담공선사가 만든 아자방은 초겨울에 한번 불을 지피면 온돌과 벽면까지 100일이나 따뜻한 기운이 계속됐다는 기록이 전한다.

아자방은 만든 이래 1000년을 지내는 동안 한 번도 고친 일이 없다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1951년 빨치산 소탕작전 때 불타고 말았다. 1983년에 복원됐지만, 제대로 된 발굴과 고증을 거치지 않는 바람에 예전 같은 온기는 찾을 수 없게 됐다. 현재 국가문화재 지정을 위한 재복원사업이 마무리돼 가고, 오는 12월 말에는 일반인이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는 체험관도 따로 문을 열 계획이어서 새 관광명소로 거듭날 전망이다.

칠불사는 이밖에 다성(茶聖)으로 불리는 초의선사가 머물며 책을 저술하고, 차 문화를 널리 알린 곳으로도 유명하다. 칠불사로 들어가는 일주문 앞에 서있는 초의선사 다신탑비 주위로 차향을 머금은 솔바람이 불어오는 듯하다.

절 안에는 영지(影池)가 있는데, 가락국의 허 왕후가 일곱 왕자의 성불한 모습을 보았다는 연못이다. 영지 안에 노니는 금붕어의 색깔이 유난히 빛나는 것은 지리산의 품 안에서 내 마음이 덩달아 맑아졌기 때문일까.

신라의 옥보고가 이 절에서 50년 동안 거문고를 공부하고 30곡을 지어 세상에 전했다는 얘기도 전해온다. 칠불사는 곳곳에 불교 전래와 온돌, 차, 거문고의 이야기가 꽃을 피우는 옛 이야기의 보물창고인 셈이다.

글·사진=정상섭 선임기자 ver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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