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맛 입은 내장 쫄깃쫄깃… 술 한잔 곁들이면 스트레스 싹 [안젤라의 푸드트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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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안 먹고 버리던 부위, 재일교포들이 요리 / 곱창·대창은 물론 소 동맥·돈설·목연골 등 즐겨

이탈리아에 살고 있는 부부가 한국에 찾아와 푸드트립 가이드를 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었다. 떡볶이나 김밥, 닭갈비 등은 본국에서도 많이 먹어봤으니 한국에서만 먹을 수 있는 독특한 음식을 소개해달라고 했다. 노량진 수산시장을 찾아가 산낙지를 맛보이기도 했고, 간장게장 집에 가서 주황색 알이 터져 나오는 통통한 알배기 간장게장을 소개하기도 했다.

산낙지의 생동감 있는 빨판과 참기름에 몸을 비비는 모습, 간장소스에 진득하게 배어 있는 녹진한 간장게장의 맛을 보고 이탈리아 부부는 한국 음식의 매력에 빠졌다. 하지만 그들이 가장 맛있게 먹었던 음식은 바로 곱창구이. 쫄깃쫄깃한 식감 속에서 흘러나오는 곱과 함께 느껴지는 불맛과 소주 한잔을 참 좋아했다. 이탈리아에도 소나 돼지 내장을 이용해서 만드는 요리 ‘트리파’가 있는데 내장 요리는 유독 미식가들이 사랑한다. 안젤라의 서른여섯 번째 푸드트립은 호루몬이다.

#버려지던 내장의 재발견, 호루몬

에스트로겐, 테스토스테론 같은 호르몬이 아니다. 대학생 시절 강남역을 걷다 ‘호르몬 구이’ 전문점이 있는 것을 보고 ‘호르몬을 대체 어떻게 굽지? 무슨 맛일지 상상이 안 가는데…’ 하고 호기심을 느꼈다. 호르몬이 아니라 호루몬(Horumon)이다. 소, 돼지, 닭 등의 내장 부위를 이야기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일본말로 호우루모노의 준말이다. 호우루는 던지다, 버리다라는 뜻이고, 모노는 물건이어서 사전적인 의미로는 ‘버리는 것’이다. 일본은 1200여년 동안 육식을 금지했는데, 1868년 메이지유신 때 문명 개화 시대를 맞이하고 1872년에 육식 금지령을 풀었다. 그때부터 고기를 먹기 시작했는데 그 당시 오사카를 중심으로 재일교포들이 일본인들이 먹지 않고 버리는 곱창, 대창, 막창 등 내장을 싼 값에 구입해 먹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은 소의 가죽 껍질과 쇠고기 사이의 아교질인 수구레라는 부위로 국밥을 만들어 먹기도 했고, 나라 자체가 빈곤했기 때문에 버리는 부위 없이 다양하게 요리했기 때문이다. 주로 내장을 불고기 양념처럼 달큰한 간장양념에 재워서 누린내를 없애고 구워먹거나 국물에 넣어 전골로 만들어 먹었다. 그 맛을 본 일본인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고, 일본에 사는 한국인들로부터 비법을 전수받았는데 이제는 호루몬야키라는 ‘내장구이 전문’들이 오사카 JR 쓰루하시역 앞의 골목을 가득 채우고 있다. 마치 을지로 뒷골목 같은 분위기 속에서 하이볼 한잔과 여러 내장 부위를 잘근잘근 씹고 있는 직장인들을 보니 그동안의 스트레스가 많아 보인다.

#오돌뼈 같은 돼지목연골과 씹는 맛이 일품인 소의 동맥구이

우리나라에서는 호루몬구이라는 말보다는 양대창집, 곱창집, 막창집 등으로 세분화돼 있는데 최근 논현동에 오픈한 호루몬 규상이라는 곳에서는 지금껏 먹어보지 못한 특수 내장부위들을 맛봤다. 소의 동맥부터 돈설(돼지혀), 목연골, 오소리, 애기보, 유퉁 등 이름만 들어도 조금 소름이 끼치는 메뉴들이 있는데, 실제 먹어보니 정육 부위보다 더 매력이 있다. 가장 인성적인 부위는 돼지목연골. 얇게 썬 핑크빛 목연골을 마치 꽃봉오리가 피어난 것처럼 담아서 주는데, 연골과 연골에 붙어 있는 살점이 꽤나 조화로운 색상을 이룬다. 뜨겁게 달궈진 불판을 지방으로 닦아서 기름을 내준 뒤 목연골 네 점을 올렸다. 연골을 중심으로 서서히 쪼그라드는데, 워낙 얇아서 앞뒤로 몇 번 구우면 금세 먹을 수 있다.

질감에 집중하고 싶어 가볍게 소금만 찍어 먹어보니 약간 오돌뼈와 같은 식감이라 오독오독하고 씹을 때마다 “와그작 와그작” 하며 머리통이 울렸다. 하이볼 한잔 마시고, 목연골을 씹으니 스트레스도 풀린다. 지방보다 단백질이 더 많은 부위라 살도 덜 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 다음으로 도전한 부위는 소의 동맥. 격자로 칼집을 내서 그런지 불판에 구우니 마치 어릴적 엄마가 도시락 반찬으로 해준 오징어 구이처럼 보인다. 피가 지나간 자리라 불쾌한 냄새가 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매콤달콤한 소스에 버무린 상태로 구웠기 때문에 누린내는 없었고, 입 안에 넣어보니 “뽀드득 뽀드득” 소리를 내며 씹혔다. 역시나 씹을 때 나는 소리는 귀로 들리지 않고, 머리로 들렸다.
#같은 내장이어도 국가마다 조리법이 달라

내친김에 다른 나라의 내장 요리도 살펴보니 어느 나라마다 내장 요리는 있었지만, 조리법이 달랐다. 예를 들어 트리파라고 부르는 이탈리아의 내장은 스프와 파스타의 재료로 변신한다. 비가 오는 날 이탈리아 볼로냐를 거닐었는데 약간은 감기 기운이 몰려와 콧물을 훌쩍였다. 국물요리를 찾다 트리파 수프라고 적혀 있어 한걸음에 들어갔다. 약간은 곱창전골 같은 요리인가 기대를 했는데, 토마토 소스로 뭉근하게 국물을 낸 수프에 양을 양껏 넣어 씹는 맛을 살렸다. 당연히 맵지는 않았지만 토마토의 깊은 감칠맛이 수프의 농후한 맛을 살렸고, 양은 부들부들해서 아주 편안하게 씹을 수 있었다.

그 옆의 중앙시장에도 갔는데 내장 샌드위치를 파는 곳 앞에 줄이 아주 길게 서있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매운맛을 좋아하냐며, 두툼한 바게트 빵을 반으로 갈라 양쪽에 매콤한 크림소스를 바르고 그 안에 삶은 곱창을 얇게 썰어 넣었다. 프랑스에 가면 푸아그라를 맛볼 기회가 많은데 오리의 간을 살찌워서 지방간으로 만든 뒤에 먹는다. 세계 3대 진미 중 하나이긴 하지만 가바주 방식으로 만들기 때문에 동물학대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대구에 가면 소 등골을 생으로 먹기도 하지만, 보통 전골이나 구이 형태로 먹는데 우리나라의 국물 문화와 삼삼오오 둘러앉아 고기를 구워먹는 문화에서 비롯됐다. 버리는 것에서 찾아먹는 것이 된 호루몬의 가치를 재발견하며, 같은 재료여도 국가마다 다른 조리법에서 음식에 더 깊은 매력을 느낀다.

김유경 푸드디렉터 foodie.angel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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