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인종차별 장벽 부순 '터스키기 공군부대'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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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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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은 군용기 조종사가 될 수 없다" / 조종 포기 후 보병 된 벤자민 데이비스 / 터스키기 흑인부대서 파일럿 자격 따 / 2차대전 때 아프리카와 유럽서 맹활약 / 美공사 비행장 이름으로 영원히 남다


미국 공군에서 ‘터스키기(Tuskegee)’라는 지명 겸 부대명은 인종차별의 흑역사가 담긴 동시에 그 차별을 극복한 불굴의 의지력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미 공군사관학교가 이른바 ‘터스키기 공군부대’ 창설 78주년을 맞아 그 이름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한 기념사업을 펼쳐 눈길을 끈다.

◆"흑인은 군용기 조종사가 될 수 없다"

31일 미 공군에 따르면 콜로라도주 콜로라도스피링스에 있는 공사 캠퍼스 내 항공기 이착륙장이 오는 11월1일부터 ‘벤자민 올리버 데이비스(Benjamin Oliver Davis)’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인 벤자민 O. 데이비스 공군 대장(1912∼2002)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다.

젊은 조종사 시절의 벤자민 데이비스 장군. 미 공군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태어난 데이비스는 1932년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 1936년 졸업과 동시에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여기엔 인종차별의 흑역사가 녹아 있다. 당시는 공군이 창설되기 전이었으나 전쟁에서 항공기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던 때였다.

당연히 육군 항공대(Army Air Force)의 군용기 조종사는 젊은 육군 장교들 사이에서 가장 선망하는 직위로 통했다. 데이비스도 사관생도 시절 항공병과를 지망했으나 거절당했다. 그가 ‘흑인’이라는 이유에서다.

남북전쟁과 흑인 노예 해방을 계기로 미 육사는 1877년부터 흑인 졸업생을 배출했다. 그로부터 거의 60년이 지났는데도 육군의 최고 인기 병과인 항공 분야는 아직 백인이 ‘독점’하고 있었던 것이다.

◆2차대전 때 아프리카와 유럽서 맹활약

본인 희망과 무관하게 보병 장교가 된 데이비스한테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1939년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미군의 군용기 조종사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미 육군은 1941년 앨라배마주 터스키기에 있는 항공기지를 흑인 조종사 양성 및 작전을 위한 전용 부대로 지정하고 흑인 파일럿 지망자들을 뽑아 교육에 들어갔다. 이른바 ‘터스키기 공군부대’의 출발이었다.

데이비스는 1941년 5월 터스키기 비행학교에 입교해 이듬해인 1942년 3월 조종사 자격을 취득했다. 이후 보병에서 항공으로 병과가 바뀐 데이비스는 미 육군 항공대 소속 조종사로 북아프리카 전선에 투입됐다.

그곳에서 데비이스는 에르빈 로멜 장군이 이끄는 독일 아프리카 군단을 지원하는 독일 공군, 일명 ‘루프트바페(Luftwaffe)’와 정면으로 싸웠다. 독일군이 아프리카에서 축출된 뒤 영·미 연합군은 이탈리아 시칠리아에 상륙했고 1943년 결국 이탈리아는 연합국에 항복했다. 데이비스가 속한 터스키기 부대도 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 등 유럽 전선으로 이동해 계속 독일 공군과 교전했다.

2차 대전에 참전한 터스키기 부대는 조종사 994명을 비롯해 정비사와 지상요원 등 1만6000여명에 이른다. 대전 기간 1만5000회 이상 출격했으며 나치 독일 공군기 112대를 격추하는 성과를 냈다.

◆美공사 비행장 이름으로 영원히 남다

전후 미 본토로 복귀한 데이비스는 1947년 공군 독립 후에는 육군에서 공군으로 옮겨 지휘관으로서 이력을 계속 쌓아갔다. 1965년 별 셋, 중장으로 진급한 그는 58세가 된 1970년 퇴역했다.

1998년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은 과거 미군의 인종차별을 사과하고 2차 대전 당시 터스키기 부대원들의 헌신을 기리는 뜻에서 이미 퇴역한 데이비스를 대장으로 진급시켰다. 클린턴 대통령이 직접 데이비스의 어깨에 4번째 별을 달아줬다.

1998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왼쪽)이 1970년 공군 중장을 끝으로 퇴역한 벤자민 데이비스 장군(당시 86세)을 대장으로 진급시켜 별 넷 계급장을 달아주고 있다. 미 공군

미 공사가 캠퍼스 내 항공기 이착륙장에 데이비스 대장의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유족 측은 “미 공사의 항공기 이착륙장이라면 전세계에서 뜨고 내리는 비행기가 가장 많은 곳일 텐데 데이비스 장군이 그런 뜻깊은 장소에서 오래도록 기억된다는 것은 크나큰 영예”라는 소감을 밝혔다.

이어 “데이비스 장군은 미국 사회에 존재하던 모든 종류의 장벽을 부수려 했던 분”이라며 “그분께서 장벽 부수기를 그로록 열망한 것은 미국을 하나의 ‘단결된’ 나라로 만드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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