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경관 조화 이룬 ‘보행자 천국’…시드니 항구 명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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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11.05. 오전 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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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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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한겨레통일문화재단 공동기획]
‘항만 르네상스’ 현장을 가다
국외-④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달링하버

수변공간을 오롯이 보행자에게만 허용
주정부 “시민에 돌려주자” 내걸고 추진
관광객 몰리며 연간 수익만 8천억원대
컨벤션 지구 지정한 뒤 민자 적극 수용
‘마이스 산업 중심지’ 재도약으로 부흥
달링하버 전경


세계 3대 미항으로 꼽히는 호주 시드니에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오페라하우스가 있다. 이곳에서 하버브리지 방향으로 약 3㎞ 남짓 걷다 보면, ‘달링하버((Darling Harbour)’가 나온다. 알파벳 ‘U’자 형태로 형성된 옛 무역항의 낡은 항만시설을 활용해 연간 2700만명이 찾는 세계적인 해양 위락지로 탈바꿈한 곳이다. 지난 9월25일 정오쯤, 찾은 달링하버의 잔잔하게 일렁이는 바다에는 크고 작은 유람선 여러 척이 힘차게 물살을 가르고 있었다. 바다를 끼고 있는 넓은 정원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수변공간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관광객들로 붐볐다. 평일 낮인데도 해안을 따라 조깅하는 시민과 홀로 도시락을 먹거나 산책하는 직장인들로 분주했다.

시드니 랜드마크 오페라하우스.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달링하버

바닷물이 닿는 부두에서 불과 20∼30m 떨어진 코클베이 워프(Cockle Bay wharf))에는 고급 레스토랑과 바, 노천카페가 줄지어 있었다. 야외에 설치된 테라스에서 관광객들이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바라보며 식사나 차를 즐겼다. 호시탐탐 먹이를 노리는 갈매기떼가 종종 식탁으로 날아들곤 했지만, 이마저도 자연과 공존하는 일상으로 보였다. 잔디 위에 누워 휴식을 취하거나 버스킹을 펼치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낡은 횟집과 수산물 거래시장으로 채워진 우리나라의 부둣가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의류와 먹거리 등이 상점이 밀집한 대규모 쇼핑단지도 있었다. 중국 관광객 웨이장(30대 여성)씨는 “시드니의 물가는 정말 비싼 편이지만, 그래도 자주 방문하게 된다. 낮과 또 다른 달링하버의 야경, 그 아름다운 풍광에 거리낌 없이 지갑을 열게 된다”고 말했다.

옛 부두시설에 들어선 상점가 앞 산책로에서 조깅을 즐기는 시민들.


목제로 된 접안시설 위에 있던 빈 창고나 냉동공장 등을 개조한 고급 상점이나 식당, 숙박시설, 주택도 눈에 들어왔다. 여러 겹의 녹방지 칠이 돼 있는 옛 철골 시설물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1820년대부터 정박장과 냉동공장, 창고 등이 들어서면서 시드니의 물류중심지로 성장한 달링하버의 역사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달링하버는 다른 교통수단의 발전과 주변에 현대식 신항 등이 개발되면서 1970년대부터 쇠퇴하기 시작해 1984년 결국 무역항의 기능을 완전히 잃게 됐다.

관광도시 시드니의 이미지를 망치는 흉물로 전락한 이 낡은 항만은 뉴사우스웨일스(NSW·이하 주정부) 주정부의 골칫거리였다. 이에 주정부는 ‘150여년 통제된 달링하버를 시드니 시민에게 돌려주자’는 슬로건 아래 ‘달링하버법’을 제정해 항만 재개발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프로젝트를 주도할 당링항만청(현 시드니항만연안공사·이하 연안공사)도 만들어 공공건설과 연안 관리 권한까지 넘겨줬다. 연안공사는 기존 항만시설을 최대한 보존하고, 활용하는 방식을 택해 주변 경관을 헤치지 않도록 개발 방향을 설정했다. 달링하버가 뉴사우스웨일즈의 금융·무역·상업중심지구와 연결돼 있지만, 업무용 빌딩 등 고층 건물 위주의 개발을 지양하고 친수공간으로 개발을 추진했다. 이는 주정부가 달링하버 부두에 깔린 철로를 걷어내고, 60만㎡ 규모의 개발용지를 확보해 사업비 부담을 줄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시드니 달링하버 아쿠아리움 내 최고 인기를 끌고 있는 펭권마을 보트 체험.


맛·멋·여가 모두 갖춘 ‘관광 명소’로 탈바꿈

프로젝트 추진 4년 만인 1988년 5월 수족관과 해양박물관 등의 일부 시설만 갖추고 공식적으로 달링하버를 개장했다. 이후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계기로 컨벤션시설 등이 들어서고, 민간 투자가 활발해지면서 엘지(LG) 아이멕스 영화관을 비롯해 고급 호텔들이 문을 열기 시작했다. 대형 크루즈와 요트, 유람선 등 90여척이 정박할 수 있는 선착장과 계류장을 만들었다. 수상택시 마리나시설도 마련했다. 수변공간에는 세계 3대 수족관 중 하나인 ‘씨라이프’(Sea Life)과 국립해양박물관, 동물원, 쇼핑센터, 전시컨벤션센터도 지었다.

높이 15m, 길이 140m의 거대한 파도 치는 물결 모양을 형상화한 수족관은 단층의 소박한 외관과 다르게, 실내는 지하 5층까지 연결돼 5천종 이상의 다양한 해양생물을 관람할 수 있다. 실내에서 보트를 타고 이동하며 펭권마을을 관람할 수 있는 체험과 수중터널 상어 관람이 가장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수족관 쪽은 설명했다. 국립해양박물관 앞 정박장에는 잠수함과 함정 등도 전시돼 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달링하버 주변에는 뉴사우스웨일즈 내 유일한 카지노(슬롯머신 1500개 규모)를 비롯해 수십개의 고급 호텔도 즐비하다. 국제컨벤션센터(ICC 시드니) 주변에는 1만5000여석의 공연시설과 전시시설을 갖춘 엔터테인먼트센터도 들어서 국제 마이스산업의 중심지로 주목받고 있다. 2016년 12월 재개장한 국제컨벤션센터는 2017년 한해에만 1000개 이상의 행사를 유치해 100만명이 다녀갔을 정도다. 달링하버에는 호주 관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 관광객을 위한 중국식 정원도 조성돼 있다. 이곳에서 200여㎡ 떨어진 곳에는 차이나타운과 중국식 대규모 상점도 있다. 달랑하버 항만 재개발에만 23억8천만 호주달러(1조9천억원 상당)가 투입됐다.

수변공간 보행자 전용구역 설정이 ‘신의 한 수’ 달링하버-바랑가루-하버브리지-서큘라키-오페라하우스-울루물루 수변 14㎞를 잇는 차 없는 산책로도 조성돼 있다. 이 산책로는 연안공사가 “우리의 가장 큰 도전은 황폐해진 연안을 세계 최대 규모의 보행자 전용구역으로 바꾸는 것이었다”고 밝힐 정도로 달링하버 개발의 핵심이었다. 출입이 통제된 공간에서 시민들이 언제든지 찾을 수 있는 ’친수공간’으로 바꿔놓은 것이 ’신의 한수’였다.

“자연재해 없는 지리적 환경과 해안선을 따라 형성된 도시의 역사가 낡은 항만을 친수공간으로 바꿔놓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주정부에서 수변공간을 오롯이 보행자에게만 열어줬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달링하버 끝자락에 있는 파라마공원에서 낚시를 즐기던 시드니 주민 제미 앤더슨(47·jemmy anderson)씨의 말이다. 남태평양 완슨스베이에서 시드니 도심으로 이어지는 파라마타강을 따라 수십개의 만(bay)이 산호 돌기처럼 뻗어있다. 시드니 항구의 이런 구조가 일종의 ’자연적 방파제’ 역할을 하는 셈이다.

달링하버 인근에 조성된 차이나타운.


천혜의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룬 달링하버 재개발은 주정부 경제에 크게 기여했다. 주정부의 설명을 종합하면, 달링하버에는 연간 2700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간다. 관광객이 이곳에서 소비한 비용이 연간 10억 호주달러(8066억원 상당)에 이른다. 아울러 주정부 관광부문에서 1만2600개의 전업 일자를 일자리를 만들었다. 세계 5대 축제 중 하나인 달링하버 새해불꽃놀이축제, 호주의 날 축제, 재즈축제, 크리스마스 축제, 한인축제 등 다양한 행사 개최로 관광객 유치 효과를 톡톡히 봤다.

항만 재개발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 공식 개장한 지 30년이 넘어 노후하기 시작한 달링하버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1988년 7월 운행을 시작한 시드니 모노레일은 시설 노후화로 2013년 6월 말부터 운행을 종료하고, 폐선됐다. 시드니 중심업무지구와 달링하버, 차이나타운을 연결하는 3.6㎞ 구간의 철로는 철거하고, 역사만 남겨뒀다. 3층 규모의 하버사이드 쇼핑센터 역시 시설 노후화와 일부 공실도 발생하는 등 상권이 예전같지 않은 상황이다. 주정부는 2014년부터 달링하버 일대를 컨벤션 지구로 개발 계획을 바꿨다. 다만, 추가 재원 투자 대신 민간 투자 유치로 눈을 돌렸다. 민간 투자를 늘리기 위해 그동안 불허했던 고층 빌딩 건축도 이때부터 허용하기 시작했다.

달링하버의 끝자락 바랑가루에는 60층 높이의 크라운카지노 신축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스크린이 설치돼 있던 엘지(LG) 아이맥스 영화관은 철거되고, 그 자리엔 25층짜리 유리 외벽의 독특한 호텔이 내년이면 문을 연다. 아파트와 소매 공간이 복합된 ‘달링스퀘어’와 고층 호텔들도 들어섰다. 그뿐만 아니라 달링하버와 하버브리지 사이에 있는 월시베이의 재래부두와 야적장, 물류창고 시설 20만㎡도, 숙박 및 주거, 상업, 문화공간으로 재개발 중이다. 5개의 부두 중 3곳은 이미 개발을 마쳐,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달링하버 야간 풍경.


고층 빌딩과 화려한 조명으로 변해가는 달링하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주정부는 그러나 달링하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민간과 협력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정 투자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민간의 적절한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항만 재개발사업 초기 단계에 있는 우리나라에도 “과도한 재정 투입보다 민간 부문의 투자와 전문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주정부 기획산업환경부(수석장관: 짐 베츠 Jim Betts)의 대변인인은 “공공을 위해 더 좋고 더 기능적인 장소를 만들고, 지역경제와 정부에도 도움되는 투자를 이끄는 재개발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 이정하 기자 jungha98@hani.co.kr

달링하버 끝자락에 있는 바랑가루에는 60층자리 카지노가 건설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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