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두 달째 이어지고 있는 홍콩 시민들의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중국 송환법)’ 반대 시위에 대해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 폭력을 응징하겠다”고 밝혔다.


양광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사무공보실 대변인은 29일 베이징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홍콩 시위가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 원칙의 마지노선을 건드렸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중국 정부가 홍콩 내정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한 것은 1997년 영국이 중국에 홍콩을 반환한 이후 22년 만에 처음이다. 중국 정부가 최근의 홍콩 시위를 그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홍콩 시위가 ‘반중, 친미’ 양상으로 흐르고 시위 현장에 미국 성조기가 등장하자 강력 대응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양 대변인은 “홍콩 시위가 평화로운 시위의 범위를 넘어 홍콩의 번영과 안정을 훼손하고 있다”며 “중국 정부는 캐리 람 홍콩특별행정구 장관의 통치와 홍콩 경찰의 엄격한 법 집행을 굳건히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홍콩 시위대에 세 가지 마지노선을 제시했다. 우선 국가 주권과 안보를 해치는 어떤 행위도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중앙정부의 권력과 홍콩의 기본법에 도전하지 말라고도 경고했다. 또 홍콩을 이용해 본토를 위협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중국 지도부는 미·중 무역전쟁 장기화로 경기 둔화가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홍콩 사태마저 해결하지 못하면 공산당의 권위는 물론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리더십까지 흔들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 또 홍콩 시위가 대만에서 반중 정서를 자극해 중국 정부가 견지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이 훼손되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경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시위에 성조기 등장하자…침묵하던 중국 "좌시하지 않겠다"
홍콩 시민들의 시위는 입법회의 송환법 2차 심의를 앞두고 지난달 9일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이날 시위엔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최대 규모인 103만 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1주일 뒤인 16일엔 200만 명이 참가해 홍콩은 물론 중국 정부도 긴장시켰다. 대규모 시위에 놀란 람 장관이 공식 사과하고 송환법 추진을 무기한 보류하겠다고 밝히면서 참가자는 줄었지만 시위 양상은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

28일 시위에선 미국 성조기까지 등장했다. 이날 오후 3시부터 센트럴지역의 차터가든에서 열린 집회에선 일부 시민이 성조기를 들고 시위 대열에 동참했다. 이는 홍콩 사태 해결에 미국이 개입해달라는 의미로 해석돼 중국 정부를 크게 자극한 것으로 분석된다.

홍콩 시위는 공무원까지 가세하며 세력이 확산되고 있다. 홍콩 정부의 여러 부처 공무원들은 성명서를 내고 다음달 2일 시위대를 지지하는 집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집회에는 500여 명의 공무원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홍콩의 공무원 단체가 반정부 시위에 동참하는 것은 처음이다.

이처럼 홍콩 시위가 사그라지지 않는 근간에는 낮은 임금과 치솟는 집값, 각종 불평등 등 홍콩 청년들이 처한 경제적 현실에 대한 불만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양 대변인은 “삶의 질, 직업 전망 등과 관련해 젊은이들의 불만을 해결할 방법을 찾겠다”며 달래기도 했다.

다만 중국 정부가 물리적인 힘을 동원해 직접 개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군대가 투입되면 대규모 유혈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자칫 1989년 톈안먼 시위와 비슷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어서다. 중국 지도부의 속내를 대변하는 환구시보의 후시진 편집장은 “홍콩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 기업과 외국인이 많아 국제적 반발도 우려된다”며 “그렇게 되면 중국 정부가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중국 정부는 이날 미국을 포함한 서방 국가들을 강하게 비난했다. 양 대변인은 “서방이 무책임하게 폭력 행위를 저지른 시위대는 동정하고 이를 진압하는 경찰은 비난하는 황당한 논리를 펴고 있다”며 “중국에 대한 내정 간섭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