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기의 걷는 자의 기쁨] 서울의 축복, 여기 숨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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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10.03. 오전 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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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의 절경 '백사실 계곡'
산 깊고 물 맑은 부암동, 이항복 별서 자리로 유명


백사실서 바라본 서울도성.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서울 도심과 가까운 곳에 한적하고 아늑한 계곡이 있는 것은 서울의 축복이다. 종로구 부암동 백사실 계곡은 북악산 북쪽 가장자리에 위치했다. 따가운 햇살을 가려주는 나무와 아름다운 새소리로 가득한 숲의 연속이다. 또 넓적한 바위를 돌아 졸졸 흐르는 돌 틈 사이로 물봉선화가 고개를 들고 버들치와 도롱뇽이 사이좋게 살고 있는 곳이다.

부암동 일대는 산이 깊고 물이 맑으며 경치가 아름다워 조선 세도가들의 별서(別墅) 자리로 유명했다. 백사실 계곡의 이름에는 여러가지 이설이 있으나 백사(白沙) 이항복의 별서가 있어 ‘백사실’(白沙室) 계곡으로 불렸다는 얘기가 가장 흔하다.

백사실을 또 ‘백석동천’(白石洞天)으로도 부른다. 백석은 백악(白岳)의 다른 이름이고 동천(洞天)은 ‘산천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곳’이란 뜻이다. 그러니 백악의 아름다운 곳으로 해석이 된다. 백악산은 경복궁 북쪽의 진산으로 북쪽에 있어 북악산이라고도 불려왔다.

◆창의문 지나 만난 김환기 선생의 여적

창의문.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한양도성의 북문인 숙정문(肅靖門)을 지나 가파른 북악의 산마루를 넘어 도착하는 곳이 창의문이다. 백사실 계곡으로 가기 위한 노정을 창의문에서 시작한다.

창의문(彰義門)은 ‘올바른 것을 드러나게 한다’는 뜻으로 자하문(紫霞門)이라 부르기도 한다. 자하골은 청운동 일대를 통칭하는 말로 개성의 자하동과 같다해 사람들이 창의문을 자하문이라고 부르면서 그리된 것이다.

부암동 백사실 가는 길.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창의문을 지나자 수화 김환기 선생의 300여 작품이 상설 전시된 환기미술관을 마주한다. 한국 현대미술의 큰 족적인 선생의 미술관을 지나 북악스카이웨이를 곁에 두고 언덕길을 오른다. 이 길을 따라 백사실 계곡까지 걷는 길을 능금나무길이라 부른다. 예전 이곳에 능금나무가 많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데 이름만으로도 침이 고인다.

언덕길을 오를수록 눈앞을 가렸던 집들이 사라지고 좌우로 북악과 인왕산의 모습이 눈에 확 들어온다. 산을 따라 이어진 성곽이 아름다운 흰 선을 그으며 북악에서 인왕으로 넘어간다. 드라마 <커피프린스>로 유명해진 산모퉁이 카페가 있다. 코끝을 스치는 커피향을 뒤로 하고 이정표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백사실 계곡 입구에 들어선다.

◆백석동천, 백사실에 들어서다

백사실 계곡 초입의 백석동천(白石洞天) 각자(刻字).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숲으로 들어서자 부드러운 흙길이 반기더니 곧 바위가 병풍처럼 서있는 모습이 들어온다. 바위에는 ‘백석동천’(白石洞天) 네 글자가 음각으로 새겨 있다. 이곳이 명승지로 알려져 조선시대 많은 선비가 드나들던 곳임을 짐작케 한다. 한양 도읍에 이런 곳이 있으니 충분히 그럴 법하다.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왼쪽으로 가면 백사 이항복의 집으로 추정되는 집터이고 오른쪽은 능금마을로 가는 길이다. 초가을, 인적이 없다. 아무도 없는 고요함은 깊은 사색의 시간을 내어준다. 오랜 시간 이곳을 지켜온 나무의 시간을 마치 내가 함께한 듯한 신묘한 기분이 든다.

오른편 좁은 샛길로 접어들었다. 백사실 계곡의 진경은 이곳에 있다. 가려졌던 장막이 열리듯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아름답다. 커다란 너럭바위와 그 위를 흐르는 물은 이내 아래로 흘러가며 가늘다가도 넓어지고 다시 가늘어지며 작은 개울로 돌아간다. 백악의 어느 곳에서 시작한 계곡물은 이렇듯 아무렇지 않게 소담하게 아래로아래로 흘러간다.

◆백사실의 진경과 고정원

백사실의 물봉선화.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물 틈으로 고개를 내민 물봉선은 여느 꽃의 붉음보다 더 짙다. 계곡을 따라 줄을 매어 사람의 출입을 삼가고 있다. 산개구리, 도롱뇽, 맹꽁이, 버들치, 가재가 어울려 살고 있어서다. 귀중한 생명은 청정함 속에서 귀중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능금마을을 지나 산길로 접어들고 다시 북악스카이웨이와 나란히 가다가 다시 숲으로 들어선다. 넓게 에둘러 백사실 고정원을 향해서 가는 길이다. 힘들지 않지만 땀이 등허리에 맺힌다.

백사실에서 유일한 약수터가 있다. 목을 축이기에 좋고 벤치도 있어 잠시 쉬어 간다. 이곳에 앉아있으면 마치 강원도 깊은 산골에 들어온 양 조용하기 이를 데 없다. 이따금 우리 일행의 작은 소리도 우렁차게 들리는 듯해 한결 조심스럽다.

백사실 계곡.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약수터를 지나면 넓은 분지처럼 고정원(古庭園)이 보이기 시작한다. 연못과 육각정의 초석(礎石)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 뒤로 돌계단과 높은 곳에는 사랑채의 초석이 남아있어 옛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계단을 올라 사랑채 터에 이르렀다. 문득 성북동 수연산방의 집 구조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조선 양반의 사랑채 모습이어서 거의 비슷한 형태를 띠지 않았을까 한다.

문득 옛 선인으로 빙의해 사랑에 앉아 술 한잔 나누면서 연못의 정취를 바라보는 상상을 해본다. 부슬부슬 봄비가 내리고 가을 단풍이 소슬히 떨어지거나 깊은 겨울 온 산에 하얀 눈이 그득한 모습을 실제로 보았다면 정취는 더욱 깊었으리라.

◆별서의 흔적, 육각정 초석과 사랑채 터

육각정 초석에서 바라본 연못. 사랑채의 초석이 보인다.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계단을 밟고 연못으로 다시 내려갔다. 연못 주위로 아름드리 큰 나무들이 곧추서서 제 모습을 뽐낸다. 나무의 키가 매우 커서 연못에 모습을 다 비춰 담을 수가 없다. 찬찬히 연못 주위를 한바퀴 돌았다. 육각정의 초석에서 사랑채를 바라보니 구도가 기가 막히다.

이렇게 경치 좋은 곳에는 으레 사대부들의 별장이 꼭 들어서 있다. 특히 부암동은 경치가 빼어나고 한양 궁성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해 사대부들의 별서가 많았다. 그중 유명한 곳으로는 부암동 인왕산 자락의 안평대군의 무계정사, 윤웅렬의 별서, 그리고 대원군의 석파정이 있다. 무계정사는 터만 남았다. 이중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이 대원군의 석파정이다. 조만간 석파정을 찾아 백사실과 아름다움을 견주어 보리라 다짐한다.

서울 한복판, 너른 바위에서 등을 대고 푸른 하늘을 느끼며 잠깐이라도 망중한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될까. 이곳은 서울 어디서나 가까이 다가설 수 있어 좋다. 가을에 책 한권 들고 와서 독서 삼매경에 빠졌다가 도롱뇽과 대화를 나누고 돌아올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 본 기사는 <머니S> 제612호(2019년 10월1~7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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