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이해하는게 아니라 느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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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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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의 아포리즘 - 61]

#149

아름다운 선 하나에 고개 숙이는 날이 있다.

#150

혼란한 시대일수록 단순논리가 힘을 얻는다. 명징해 보이고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단순논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발화자의 콤플레스와 욕망이 그대로 드러난다. 흡사 구강기 리비도를 보는 것 같다

#151

사견을 전제로 나는 놈 촘스키가 못 미덥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에서 살면서 미국을 비판하면서 먹고살기 때문이다. 미국을 누리고 미국을 활용하면서도 겉으로는 미국을 욕하는 그의 글에서는 묘한 한계가 느껴진다. 그는 언어학자였을 때가 더 미더웠다. 선입관인가….

#152

시는 이해하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시가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을 난 이해할 수 없다. 시는 설명하기 위해 존재하거나, 논리를 주장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건 아니다. 설명이나 주장을 할 거면 그것에 합당한 글쓰기 방법은 너무나 많다.

언어로 구성됐다는 이유 때문일까. 시를 읽으면 논리적으로 사실관계가 이해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시는 물감 대신 문자를 사용해서 그린 그림에 가깝다. 시는 설명이 아니다. 이미지를 가슴으로 전달해주는 것. 그것이 시가 아닐까. 시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므로.

[허연 문화전문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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