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영화 스크린 현장

[시네마Y] '브이아이피' 흥행 실패, 여혐 논란 때문일까?

김지혜 기자 작성 2017.09.04 15:24 조회 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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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아이피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영화 '브이아이피'(감독 박훈정)가 쓸쓸한 퇴로를 걷고 있다. 개봉 첫날 청소년 관람불가 오프닝 신기록을 세우며 쾌조의 출발을 했지만, 2주 차에 박스오피스 5위까지 추락했다. 개봉 12일 차에 접어든 현재 누적 관객 수 131만 5,517명을 기록 중이다.

평일 관객은 3만 명대, 주말 관객은 10만 명을 넘지 못하고 있다. 상영작 중 두 번째로 많은 스크린 수를 자랑하고 있지만 좌석 점유율은 15.8%로 전체 22위에 머물러 있다.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250만 명.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150만 돌파도 여의치 않아 보인다.

사실상의 흥행 실패다. 잘나가던 '브이아이피'의 급정거는 각종 논란 때문일까. 아니면 영화의 힘이 여기까지였던 것일까.

'여혐 논란'이 직격타가 됐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총 5개의 챕터로 구성된 영화에서 가장 큰 문제 된 것은 프롤로그 부문. 북한 로열패밀리의 아들 김광일(이종석)의 사이코패스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이 장면에서 미성년으로 보이는 여성은 나체로 여러 명의 남자에게 고문을 당한다.

이 장면은 공개 이후 지나치게 길고 잔인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단순히 이 장면에 대한 비판에 그치지 않았다. "'브이아이피'에서 여성은 시체 아니면 곧 죽을 사람'으로만 그려진다"며 여성 혐오 논란, 평점 테러로 확산됐다. 

브이아이피

논란은 예비 관객의 호기심을 키우는 게 아니라 비호감 지수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논란이 설에만 그쳤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실 관람객의 평가도 호보다는 불호가 컸다. 그러다 보니 입소문의 탄력을 거의 받질 못했다.

영화평론가 황진미 씨는 "여혐 논란이 흥행 부진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으리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연쇄 살인범 설정이나 범죄에 대한 지나친 묘사는 윤리적 비판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면서 "젠더 감수성이 부족했다는 감독의 해명도 전혀 변명이 되지 못한다. 그 말 자체가 세상의 절반인 여성, 관객의 절반인 여성을 '특별히 신경 쓰지 않으면 틀릴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여기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고 지적했다.     

영화의 완성도가 관객의 기대치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평가도 많다. '신세계'를 만든 박훈정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는 개봉 전부터 관객들의 큰 관심을 모았다. 180억 대작 '대호'의 흥행 실패 이후 자신이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남자 영화로 돌아와 관객들 사이에서 '필람 영화'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남한과 미국의 이해관계 때문에 기획 귀순시킨 북한의 VIP가 연쇄살인마였다는 흥미로운 소재에도 불구하고 완성도와 재미가 아쉽다는 반응이다. 

그로 그럴 것이 박훈정 감독의 장기인 매력적인 캐릭터 구축에 실패하며 등장인물 중 누구도 관객의 마음을 뺏지 못한다. 촘촘하게 그려졌어야 할 각 집단의 이해관계와 정치 역학 구도 역시 느슨한 편이다. 그러다 보니 영화는 예상 가능한 전개와 클리셰로 큰 아쉬움을 남긴다. 

감독은 개봉 전부터 "'신세계'와 정반대에 있는 이야기, 차갑고 건조한 영화"라고 강조했지만, 색깔의 차이만은 아니었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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