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영화)/줄거리 및 의문


이 문서에는 독자연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으며, 신뢰성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이 문서는 독자연구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사실과 상식에 기초하여 문서를 편집하여야 하며, 정당한 반론이 있을 경우 내용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정확한 출처 제시는 논리를 강화하며 내용을 풍성하게 하므로 되도록 출처를 제시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이에 각별히 주의하여 틀 아래의 내용을 읽어 주세요.
주의. 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이 틀 아래의 내용은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의 줄거리나 결말, 반전 요소가 직, 간접적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품의 내용 누설을 원치 않으시면 이하 내용을 읽지 않도록 주의하거나 문서를 닫아주세요.

1 줄거리

영화의 가장 첫 장면, 시골의 흔한 하천가의 모습이 보이고 낚시 모자와 조끼를 입은 어떤 사람(=외지인=일본인)이 낚싯바늘에 미끼(지렁이)를 꿴다.[1]

전라남도 곡성의 촌가의 새벽, 걸려오는 전화에 잠을 자던 부부는 잠을 깨고, 무슨 전화냐는 아내의 물음에 남편 종구(곽도원 분)는 '인삼 키우는 조 씨의 아내가 죽었다'며 경찰 제복을 주섬주섬 주워입는다. 비가 내리는 을씨년스러운 날씨. 문 앞을 나서던 종구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는 장모에게 같은 대답을 해준 뒤 나서는 종구. 그러나 장모는 "사람이 죽었어도 산 사람은 먹어야 한다"며 밥은 먹고 가라 한다. 장모의 말에 이른 아침을 먹는 종구. 사건에 대해 얘기하다 종구의 딸, 효진이가 일어나 누가 죽었냐 묻자 종구는 귀찮은 듯(또는 딸이 아직 어리니까) 대꾸 대신 효진에게 밥을 먹인다.

뒤늦게서야 현장에 도착한 종구. 현장에는 온몸이 두드러기에 뒤덮인 거지꼴의 사내, 박흥국이 눈을 까뒤집은 채 수갑을 차고 평상에 앉아 있고, 현장에는 칼에 난도질당한 채 죽어 있는 조 씨의 아내와 포대에 넣어진 조 씨의 사체가 있었다. 치정이라 지레짐작한 경찰들은 박흥국의 집으로 조사를 간다.

흥국의 집 처마에 달린 오래되어 말라 비틀어진 금어초[2]를 이상하게 바라보던 종구는 동료의 부름에 급하게 흥국의 집 창고로 들어선다. 그 곳엔 피 칠갑 투성이인 창고가 있었다. 이에, 경찰들은 흥국이 조 씨를 여기서 죽인 후에 포대에 넣고 조씨네 집까지 다시 가져갔다고 추정하고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의아해한다. 계속 수사하던 도중 창고의 깊숙한 곳을 발견 하게 되고, 그곳엔 새 둥지와 비슷한 나뭇가지 뭉치와 촛불이 놓인 수상한 제단이 있었다. 황당해하는 경찰들의 모습을 뒤로하고 영화 타이틀이 올라온다.

깊숙한 산기슭, 한 남자가 덫에 걸린 고라니를 짊어지고 내려가려다 중심을 잃고 굴러떨어진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남자는, 훈도시 차림의 골룸노인이 산짐승의 내장을 뜯어먹고 있던 것에 놀라 경악한다. 남자는 바위 뒤에 숨을 죽이고 노인을 지켜보는데, 갑자기 노인이 고개를 돌리자 바위 뒤로 머리를 숙인다. 잠시후 고개를 들지만, 산짐승이 있는 자리에 노인이 사라져 당황하다가 뒤를 돌아보니 세로로 째진 붉은 눈을 한 노인이 자신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것을 보고 놀라 비명을 지른다.

이때 장면이 바뀌고, 밤에 파출소에서 근무중인 종구와 종구의 동료인 성복이 등장한다. 사실 이것은 성복이 종구에게 들려주고 있던 마을에 도는 소문이었다. 어뗘? 겁나게 무섭지라? 종구는 시큰둥한 반응으로 만화책[3]을 보며 저번에 있었던 살인사건의 이야기를 한다. 검사 결과 혈액성분에서 정신착란을 일으키는 환각 버섯 성분이 대량 검출됐다는 종구의 말에 그것 좀 먹는다고 사람이 그리되진 않는다는 성복. 성복은 요새 마을에서 이상한 사건이 터지는 것이 저번에 일본인이 오고 나서부터 시작되었다며 일본인이 부녀자를 겁탈해 그 여자가 정신이 돌았다는 등 일본인에 대한 여러가지의 소문이 파다하다고 한다. 그러다 갑자기 비가 오고 벼락이 치면서 파출소가 정전이 되고, 그와 동시에 종구는 문 앞에 서 있는 나체의 여자를 보고 기겁을 한다. 성복은 허겁지겁 손전등을 찾아들고 문을 열고 뛰쳐나가 밖을 살펴보지만 이미 그 여자는 사라진 뒤였다.

다음 날, 화재가 발생해 아내를 제외한 일가족이 사망 혹은 부상을 입는 [4] 사건이 발생한다. 뒤늦게 나타난 종구는 실성한 듯 날뛰는 안주인을 제지하다 오히려 안주인에게 공격 당한다.[5] 소장:에휴 저 등신 바보새끼 십새끼

파출소로 돌아와 의기소침하던 종구. 소장 曰 : 어쩌것냐, 니 똥담이 작은 것을.. 곧이어 효진이가 종구의 갈아입을 옷을 들고 나타난다. 이런저런폭풍 잔소리 이야기를 하고나서 파출소를 나서는 효진. 그런데 효진은 자신의 머리핀[6]을 파출소 문 쪽에 떨어뜨리고 가고, 종구가 이를 발견한다. 머리핀을 주우러 가는 도중 어제 봤던 알몸의 여인이 생각나 종구는 불현듯 불난 집 안주인이 그 여인이었던 것을 기억해 낸다. 그러나, 안주인은 충격 때문인지 얼마 안 가 나무에 목을 매어 자살하고 가족들이 화재 때문이 아닌 자상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진다. 그 안주인의 몸에도 두드러기가 보여서 종구는 이를 수상하게 여겨 성복을 피부과에 두드러기 환자에 대해 탐문 보낸다. 같은 시각, 종구는 화재가 난 집 현장을 지키고 있었는데 웬 살짝 광년이끼가 보이는 박춘배의 옷을 입고 있던 젊은 여자(무명;이름없음-천우희 분)가 종구에게 돌을 던지다가 갑자기 자기가 사건을 목격했다는 얘기를 한다. 그래서 두 사람은 같이 현장을 둘러본다. 이 때 성복의 전화 연락이 오게 되고 종구가 이를 받는 사이에 무명은 사라진다. 무명을 찾으려고 돌아다니다가 뒷문으로 나간 종구는 훈도시만 입은 채 고라니를 뜯어먹는 노인을 목격한다. 붉은 눈의 일본인은 종구를 따라오고 종구는 도망치다가 자빠져서 일본인이 덮치려는 찰나,

꿈이었다. 잠에서 깬 종구[7]는 딸 효진이 아픈 것을 알게 되고, 직장에 가서는 목격자를 놓쳤다고 시말서를 쓰게 된다.[8][9]

그 후 종구는 산속에 홀로 사는 외지인(일본인 노인)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 성복과 함께 앞서 성복의 이야기에 나왔던 소문의 건강원 남자(덕기)를 만나 그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끝내는 산속 외지인의 집을 찾아간다. 외지인의 집 근처에서 썩어가는 고라니의 유해를 보고 겁먹은 덕기는 때마침 쏟아지는 폭우를 핑계 삼아 돌아가려 한다. 종구가 '여기까지 왔는데 지금 가면 어쩌냐'고 하여 실랑이를 벌이다가 비탈에 발을 헛디딘 덕기가 구르게 되고, 분노한 덕기는 폭언을 내뱉는다. 이때 덕기가 하는 폭언이 하필 '벼락맞을 놈'이었고, 덕기는 진짜로 벼락을 맞는다. 그렇게 그 날은 외지인의 집에 찾아가보지도 못한 채 덕기를 병원에 데려다준다. 다행히 덕기는 벼락 맞고도 용케 살아있었다. 오열하는 덕기의 아내 옆에서 숙연히 있던 종구와 성복은 박흥국이 위급한 상황이란 얘기를 듣고 응급실로 황급히 달려간다. 도착한 병실에서 흥국은 여러 사람이 붙잡아도 말릴 수 없는 엄청난 힘으로 발작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러다 발작 중 허리가 활처럼 꺾이더니 더 꺾일 수 없는 상태가 되자 뼈가 부러져 몸 밖으로 튀어나오고, 피를 토하며 사망한다. 이를 보고 충격에 빠진 종구와 성복은 외지인을 제대로 찾아가기로 한다.[10]

그 날 밤, 잠을 못 이루고 마루에서 담배를 피던 종구는 아프다던 효진의 방쪽에서 효진의 울음소리를 듣게 된다. 놀란 종구가 방에 들어가자 효진은 발작을 일으키고 있었다. 종구를 보고 간신히 진정한 효진은 종구에게 어떤 아저씨가 자꾸 문을 두드리고 들어오려고 한다며 서럽게 운다. 우는 딸을 다독이며 안심시키는 종구.

다음날, 딸 효진이 아프고 난 뒤 평소 좋아하지도 않던 생선을 몇 십마리나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것을 보고 기이함을 느낀 장모[11]는, 종구에게 옆집 할머니를 통해 용한 무당에게 부탁할 테니 그렇게 알고 있으라 한다. 그 후 성복과 그의 조카라는 부제 양이삼[12]과 다시 일본인의 집에 찾아가는데, 마침 출타 중이란 것을 알고 집을 수색하기 시작한다. 수상하게 생긴 잠긴 방문을 따고 들어간 종구는 동물 두개골 등으로 구성된 괴이한 제단을 발견하고, 성복은 다른 방의 벽장에서 벽에 빼곡히 붙은 그동안 죽은 마을 사람들의 아직 살아있을 때의 모습과 그들이 미쳐서 죽어버린 모습을 찍은 사진들을 발견하고 큰 충격을 받는다. 그러다 집주인인 일본인이 돌아오자 종구와 이삼은 무릎 꿇고 용서를 빈다. 이 때 일본인은 사진을 본 성복과 눈이 마주 치게 되고, 성복은 아무 말도 행동도 하지 못한 채로 가만히 서 있는다. 그러고 나서 종구 일행은 일단 철수하는데, 성복은 돌아오는 내내 일본인이 범인이라고 중얼거린다. 종구가 이해를 못 하자 갑자기 종구의 딸 효진의 실내화를 보여주는 성복.

집에 들어온 종구는 효진에게 일본인에 대해서 묻지만, 효진은 계속 질문을 회피하다가 오히려 소리를 빽 지르며 폭언을 해댄다. 충격을 받은 종구는 그날 밤 잠든 효진의 방에 들어가 효진의 물건들을 뒤져보는데, 공책에는 욕설과 괴이하고 성적인 낙서들이, 효진의 허벅지에는 그동안 사건의 가해자들의 몸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었던 두드러기가 있었다. 자신의 딸에게도 일련의 사건들과 연관이 있는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한 찰나, 눈을 뜨고 조용히 바라보고 있던 효진이 어린아이답지 않은, 아버지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쏟아내며 종구를 쫒아낸다. 뭐시 중허냐고 이 씨불넘아!!! 엑소시스트 [13]

효진으로 인해 불안이 고조된다. 종구는 통역으로 부제 양이삼을 대동하고 다시 일본인의 집을 찾아간다. 정체를 묻자 일본인은 여행을 하러 한국에 왔다고 한다. 어제 성복이 본 사진들이 없어졌는데 그걸 어디댜 뒀냐는 질문에 부엌에서 태웠다고 하여 아궁이를 뒤져보니 쪼가리도 남기지 않았다. 말해도 믿지 않을 거라며 이후에는 대꾸조차 하지 않자, 극도로 화가 난 종구는 근처에 있던 곡괭이로 집과 사당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종구를 공격한 개까지 죽여버린 후, 일본인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사흘 안으로 이 고장을 떠나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간다.[14] 다음날 아내와 장모는 집 대문 앞에 흑염소의 사체를 매달아 놓은 것을 보고 아침부터 괴성을 지르는데, 아내에게 가려던 종구가 자신의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움직이지를 못하고 이를 아내가 발견한다. 급하게 침을 맞으러 한의원으로 향한 종구, 아내 그리고 장모. 침 맞다가 정신을 차린 종구가 애(효진이)를 어디다 두었냐고 하자 장모는 옆집 할머니에게 맡겨놓았다고 한다. 이에 종구는 애가 중요한데 애를 두고 오면 어떻게 하냐면서 집으로 가자고 하는데, 집에 와 보니 옆집 할머니는 바닥에 피를 흘리며 중상을 입은 채 쓰러져 있고 효진의 손에는 피 묻은 가위가 들려 있었다.

종구 가족은 굿을 하기로 결심하고 무당 일광을 부른다.

왜 하필이면 자네 딸이냐고? 그 어린 것이 뭔 죄가 있다고? 자네는 낚시할 적에 뭐가 걸릴 건지 알고 미끼를 던지는가? 그놈은 미끼를 던진 것이여, 자네 딸은 그 미끼를 확 물어분 것이고. 그게 다여.

이후 무당 일광이 도착한다. 집 주변을 훑다가 장독을 깨서 숨겨진 까마귀 시체를 발견하더니 일광은 종구에게 "일본인은 인간이 아닌 존재다" 라며 다음날 그에게 살을 날릴 거라는 말을 남긴다. 그리고 천만원을 준비 하라고 한다 또한 살을 날리는 건 위험한 행위이니 몸가짐, 먹는 것, 마시는 것까지도 조심하라는 경고를 한다. 한편 일본인은 일가족 등을 죽이고 행방이 묘연한 상태인 박춘배라는 남성이 산 속 트럭 안에서 자살해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날 밤 일광이 굿을 하며 살을 날릴 때, 일본인은 춘배의 시신 주위에 잔뜩 촛불을 켜두고선 자신의 집에 검은 닭을 매달아 놓고 북을 치며 굿을 한다.[15] 살을 날리는 게 효과가 있는 것처럼, 일본인은 순간 배를 부여잡고 괴로워하며 쓰러진다.[16] 동시에 너무나 괴로워하는 효진의 모습이 교차편집된다. 이러한 딸의 모습에[17] 돌아버린 종구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굿판을 엎어버리고, 또한 일본인도 죽지 않았다. 관객에게 안타까움을 주는 장면. 이후 종구는 효진을 병원에 입원시키고 이삼이 있는 성당으로 가서 신부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 해주는데, 신부는 "본인 눈으로 본거 아니잖습니까? 의사를 믿으세요"라고 말한다. 결국 종구는 죽으면 사람이고 아니면 귀신일 거라며 일본인을 죽이기로 결심한다. 다음날 종구는 동료들과 정육점에서 만나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함께 각종 무기가 될 만한 것들을 챙긴 후 [18] 일본인의 집을 급습해 때려 부수며 일본인을 찾는다. 그 때 숲에서 무언가가 걸어나오는 모습을 종구의 동료가 보고 일행이 전부 모이게 된다. 그 정체는 피범벅이 된 채 되살아난 시체(좀비) 박춘배였다.

대뜸 괴성을 지르며 덤벼드는 춘배를 후드려패는 동료들을 이삼이 제지하지만 오히려 춘배에게 뺨을 물어뜯긴다.[19] 이에 종구 일행들은 삽과 쇠스랑으로 두들겨 패고 찍어버리고, 보다 못한 종구가 돌로 머리를 후려치지만 어째서인지 박춘배는 꿈쩍 않고 오히려 괴성을 지른다. 이어서 머리에 박힌 쇠스랑을 뽑아내버리고, 이를 보고 기겁한 종구를 공격하려는 순간 춘배는 뼈가 꺾이는 듯한 소리를 내다가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그때 종구의 동료가 주변 풀숲에서 몰래 지켜보던 일본인을 발견하고,저기 한놈 더 있는데? 그 새X야...! 그 새X!! 종구는 동료들과 함께 살의를 드러내며 그 뒤를 쫓는다. 끈질긴 추격을 벌이던 중, 절벽에 다다르자 일본인을 놓쳤다는 생각과 딸을 살릴 수 없다는 생각에 종구는 오열한다. 그러나 사실 일본인은 절벽에 가까스로 매달려 있었고, 힘이 다해 미끄러져 떨어진다. 바닥에 떨어진 소리를 듣고 종구의 일행 중 한명이 절벽쪽으로 다가오자 이에 입을 막으면서 고통을 버티는 일본인. 아픔을 참으며 속으로 흐느낌을 삼키는데, 일행이 돌아가자 그나마 안심하던 그 순간, 무명이 숲 속에서 일본인을 보고 있었고 무명과 일본인은 추격을 벌인다.[20] 한편 결국 일본인을 잡지 못한 채 종구와 동료들이 돌아가던 중, 갑작스레 차 위에 뭔가 떨어져 사고가 날 뻔한다. 종구와 일행은 무엇이 차를 친 것인지 내려서 확인했는데 바로 일본인의 시체였다. 이를 본 종구 일행은 일본인의 시체를 끌고 가서 가드레일 밖으로 내던져버린다.[21]이후 종구는 바로 효진이가 있는 병원으로 가고, 효진이는 완치된 모습을 보인다. 이에 안도한 종구 가족은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간다.

장면이 바뀌고, 일광이 두드러기가 있는 여성[22]과 그의 어머니가 찾아온 때에 자신의 집에서 생쌀과 엽전 등을 뿌려보면서 점괘를 보다가 무언가를 느끼고, 이후 일광은 종구의 집으로 향하게 된다. 가면서 계속 종구에게 전화를 걸지만, 종구는 받지 않는다. 종구의 집에 도착한 일광은 갑자기 코피 덩어리를 쏟는다. 이게 뭔가 싶어 주변을 살펴 보는데, 집 근처에서 하얀 옷을 입은 여자(무명)가 무섭게 서있었다. 그리고 일광은 갑자기 엄청난 양의 코피와 구토를 쏟아낸다. 빨갛고 노란 것이 댐이 부서진 듯 무지막지하게 터져나오고 무명이 "여긴 뭣허러 왔어? 가." 하자, 일광은 급히 집으로 도망친다. 그는 다급히 주문을 외우고 방울을 흔들며 초에 불을 붙인다. 연신 주문을 외우며 집안을 살피던 중, 일광은 다시 무언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다음 순간 화면에 초 하나가 불이 꺼진 것이 클로즈업 된다. 그것을 보고 일광의 안색은 크게 변하고, 이어서 죽은 까마귀가 그의 집 안에 던져진다. 일광은 혼비백산하여 집안 물품들을 챙겨서 차를 타고 곡성 밖으로 도주한다. 고속도로를 달리던 일광은 갑자기 자신의 차 앞유리에 수 많은 벌레가 부딪혀 운전이 힘들 정도가 되자 급하게 차를 멈춘 후 바깥으로 나온다. 나와보니 앞유리는 깨끗했고 이러한 힘에 할 수 없이 일광은 다시 곡성 쪽으로 차머리를 돌린다. 같은 시각, 일광에게서 계속 전화가 왔던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긴 종구가 일광의 무당집으로 가보니 집안은 아무도 없이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그 때 또 일광이 전화를 걸고, 자신이 점괘를 잘못 봤다며 아까 종구 집에 찾아갔을 때 웬 하얀 옷을 입은 여자를 봤는데, 일본인은 자신과 같은 무당이고 진짜 귀신은 그 하얀 옷을 입은 여자다라는 말을 한다. 종구에게 어서 집으로 돌아가 딸이 무사한지를 보라고 말하는데 종구는 불현듯 예전에 봤던 광년끼있던 여자를 떠올린다. 일광에게 차림새를 물어보자 그 여자가 맞다. 곧장 집으로 돌아가는데 효진이가 사라져 있었다. 아내와 장모에게 집에서 효진을 찾으라 한 뒤 본인은 집 밖에서 효진이를 찾던 중 그 하얀 옷 입은 여자(무명)를 맞닥뜨리게 되는데 무명과의 입씨름 중에 무명이 효진이를 알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무명은 효진이가 지금 집에 들어갔다고 말한다.[23] 이에 종구는 집으로 가려 하지만, 무명은 종구 쪽으로 걸어 나오면서 종구의 집에 귀신이 들어갈 것이라 한다. 이때 일광에게서 전화가 오고, 종구는 지금 그 여자(무명)와 같이 있다고 한다. 일광은 그 여자는 무조건 믿지 말고 당장 집에 가야 한다고 말한다. 전화를 끊자, 무명 역시 그 남자는 일본인과 한패라면서 자신을 믿으라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종구의 집에 귀신을 잡을 결계를 설치했다고, 근처에 있는 닭이 3번 울기까지 집에 들어가지 말라고 한다. 닭이 두 번 울고 나서 갈등하던 종구가 이내 집에 들어가려고 하자 무명이 종구의 손을 잡으며 말린다.[24] 이때 종구는 무명이 있던 장소에 떨어진 효진의 머리핀과 무명이 입은 옷[25]을 보고 일광의 말을 믿기로 마음을 굳힌다.[26] 종구는 3번째 닭울음을 남겨 두고 집으로 뛰어가버린다. 그러나, 종구가 집에 들어가자 문 앞의 금어초가 쪼그라들고 자신과 효진을 제외한 일가족이 모조리 죽은 현장을 보고야 만다.

동시에, 이삼은 낫과 손전등을 들고 일본인을 찾으러 나선다.[27] 일본인 집 근처의 동굴을 발견한 이삼은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데, 동굴 안쪽에 가보니 일본인이 살아있었다! 이삼이 너의 정체가 뭐냐고 묻자, 일본인은 내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고 되묻는다. 그간의 귀신 타령을 했던 마을 사람들과는 다르게 이삼은 일본인을 악마라고 생각했다. 일본인은 '넌 내가 악마인지 아닌지 그 의심을 확인하려 온 것 아니냐, 내가 나의 진짜 정체를 말한다고 한들 뭐가 달라지겠느냐'고 한다. 이에 이삼이 '니가 악마가 아니라고 하면 난 그냥 갈 것이다'라고 하자 일본인이 갑자기 미친 듯이 웃는다. 그러더니 이삼에게 "여길 나가고 말고는 니가 결정할 사항이 아니다"라는 말을 한다. 그 후에 일본인은 카메라를 들더니, 이삼의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28] 카메라를 들고 있는 일본인의 손톱은 검고 길어지고, 등은 이상하게 구부정하다. 손바닥에는 구멍이 나 있고 성경 구절을 읊으며 "바로 나다."라고 말한다. 카메라에서 얼굴을 뗀 그 자는 붉은 눈에 주름진 얼굴을 가진, 그야말로 '악마'의 모습으로 웃고 있었다.

종구의 집 앞에 있던 금어초가 쪼그라들어 결계가 해제된 집안에 일광이 들어와 문 앞에서 넋이 나간 듯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효진을 본 뒤 집안에 들어가서 가족들의 사진을 찍어가고, 자신이 집에서 가지고 나온 물품들을 뒤적거리다가, 작은 나무 상자를 바닥에 떨어뜨리는데 일본인이 태워버렸다고 했던 사진들이 나온다. [29] 사진들을 다시 주운 일광은 집을 떠나고, 영화는 웅얼거리는 종구[30]와, 효진과 종구가 놀이공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교차되는 것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2 전체 내용 분석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곡성이라는 영화는 두가지 장르가 혼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스릴러 장르, 다른 하나는 오컬트 장르다. 스릴러를 구축하는 드라마적 개연성은 충분하다. 다만 오컬트적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평이 많다.

이 영화에서 오컬트를 바탕으로 해석하는 건 그리 중요치 않다. 애당초 감독은 모호함을 관객에게 주기 위해 영화를 제작한 것이므로, 이건 맞고 저건 틀리다라는 식의 해석은 의미가 없다.[31] 때문에, 후술할 내용들은 '이것이 정답이다' 가 아니라 '이런 식으로 해석 할 수 있지 않을까?' 로 받아들이면 된다.
'
아래 내용들은 감독과의 대화에서 나온 정보와 그 해석 & 독자연구가 혼재되어 있다. 따라서 공인된 것이 아니다.

참고로 주인공 곽도원은 시나리오를 3번 읽어보고 나서야 줄거리를 이해했다고 한다.

저희가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 누가복음 24:37-39

영화 시작 전에 루카 복음서 24장 37-39절이 나온다. 초반에 낚시바늘을 끼우는 외지인의 모습이 보이고, 일광이 '놈은 미끼를 던졌다'라는 느낌의 대사를 하는데 영화 속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보이는 증거물이나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은 죄다 미끼라고 생각하고 봐도 좋을 정도로 심하게 꼬여 있다. [32]

  • 일광은 종구의 집에 들어가려다 문간에서 무명과 마주치고는 괴로워하더니 이윽고 코와 입으로 피와 위액을 펑펑 쏟는다.[33] 무명은 일광에게 당장 이 곳을 떠나라며 강하게 위협하고, 이에 일광은 혼비백산하며 집으로 돌아간다. 그 곳에서 방금 킨 촛불이 꺼지거나 까마귀가 날아와 죽어있는 등 괴이한 현상[34]을 목격한 일광은 급히 짐을 꾸려서는 차를 타고 서울로 달아난다. 그런데 일광이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리던 와중에 날벌레떼[35]가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많이 날아들어 자동차 앞 유리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린다. 이에 일광은 다시 차를 돌려 종구의 집으로 향한다.[36] 이는 무엇인가가 일광이 도망치는 것을 방해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일광은 분명 무명의 위협에 겁을 먹고 도망을 쳤음에도 불구하고, 무명과는 다른 어떤 알 수 없는 영적 존재가 일광에게 다시 돌아오라는 협박을 보낸 것이다. 이는 외지인과 일광의 관계가 좀 더 쉽게 설명이 되는 복선이기도 하다.
  • 일광은 사실 외지인과 결탁한 상태였다.[37] 무명은 딸을 찾아 밖으로 나온 종구에게 이 3번 울 때까지 집에 가면 안 된다고 하고, 일광은 전화로 반드시 딸을 지켜내야 한다고 한다. 그러자 무명은 일광과 전화를 하는 종구를 보며 아예 일광이 일본 귀신과 한패라고 흔들리지 말라고 말해준다. 그러나 종구는 닭이 2번 울고 난 후에 떨어져 있는 딸의 머리핀과 그 동안 죽은 사람들의 물건 등을 무명이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무명이 자신의 손을 잡으면서까지 막자 그 감촉을 통해 '사람이 아닌 무언가'임을 깨달아 무명이 귀신이라고 확신한다. 무명은 뒤에 남아 오열하며 가지 말라고 하지만, 종구는 무시하고 집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종구가 정문을 지나는 순간 문 앞에 무명이 결계(덫)로 걸어둔 금어초가 쪼그라드는 묘사가 나타난다.[38] 종구가 도착했을 때에 집은 피바다로 난장판이 되어 있었고, 칼로 난도질당한 종구의 아내는 간신히 숨만 붙어 있다가 종구에게 발견되자마자 사망한다.
'닭이 3번 울면'이라는 부분은 성경에서 베드로가 예수를 세 번 부정한 일을 뒤집은 것으로, 원전도 그렇고 영화에서도 그렇고 쉽게 흔들려버리는 믿음을 상징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는데, 종구가 무명과 함께 있을 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것들(앞서 말한 딸의 머리핀 등)이 일광의 전화를 받고 마음에 혼란이 생기자 그제서야 종구의 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이 역시 종구가 무명이 아닌 일광을 믿고 '현혹'되는 모습이며, 어쩌면 종구가 만들어 낸 환각일 수도 있다.[39]
일광이 이방인과 결탁함으로써 얻는 것은 물질적인 풍요로움으로 보이는데, 로고가 크게 찍힌 츄리닝, 손목의 금시계, 그리고 일광의 굿의 비용인 '천만원'이 이를 반증한다. 이미 마을 내에서는 일광을 불러 굿을 한 여러 흔적들이 발견되었고 다른 무당들은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물론 그가 무명의 기에 눌려 서울로 도망갈 때 악마의 방해로 곡성으로 다시 돌아온 걸 보면 단순 금전적인 부분만 보고 그와 결탁한 것은 아니라 보여진다.
  • 영화 후반 일광은 생쌀을 뿌리며 점을 치다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는 종구의 집에 갔다가 무명과 대면하고 피와 구토를 쏟았다. 그리고 다시 자기 집에 돌아와, 주문을 외우며 방울을 흔들며 초에 불을 붙였다. 연신 주문을 외우며 상황을 살피던 중, 일광은 다시 무언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고, 다음 순간 화면에 초 하나가 불이 꺼진 것이 클로즈업 된다. 그것을 보고 일광의 안색은 크게 변하고, 이어서 죽은 까마귀가 그의 집 안에 내팽개쳐지는 것을 목격한다. 혼비백산한 일광은 짐을 챙겨 곡성에서 벗어나려 한다.
이는 무속 측면에서도 해석이 가능하다. 무당이 생쌀을 뿌리거나 방울을 흔드는 등의 행동을 하는 이유는, 신과 소통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빵상으로 유명한 채널러들이 바로 그 자칭 '신과 소통하는 자들'이다. 인간에게 가청주파수가 있듯이, 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특정한 조건에서만 가능하다고 하며, 쌀을 뿌리는 등의 행위는 그 조건을 맞추기 위한 것이라고. 또한 무당은 영력이 강한 신을 마주하면, 하혈을 하거나 구토를 하는 등의 증세가 나타난다고 한다. 일광이 외지인과 한 패라는 점과 함께 생각해보면, 일광이 쌀을 뿌리며 점치다가 이상해했던 이유는 외지인과 소통이 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무명과 만나 피를 쏟으며 구토한 것은 그녀의 힘에 눌렸기 때문.
  • 그 즈음 양이삼 부제는 낫을 들고 외지인의 집을 찾아가는데, 집과 연결된 토굴에서, 모포를 뒤집어 쓰고 '죽었다 살아난' 외지인을 발견한다.[40] 부활한 외지인에게 끈질기게 악마냐면서 정체를 캐묻지만, 외지인은 정확한 답변을 거부하며 이삼에게 "당신은 이미 나를 악마라고 확신하고 있으며, 내가 누군지 말해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만 하다가, "네가 악마라며? 이미 말했네" 라고 하며 돌연 긍정의 의미를 보낸다. 그러자 이삼은 외지인에게 "당신이 스스로 악마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냥 돌아가겠다"고 하지만, 외지인은 섬뜩하게도 "누가 그냥 보내준다고 했나?"라는 말을 던진다. 이어지는 대화 중에 미놀타 카메라를 들어 이삼의 모습을 찍기 시작하는데, 이삼은 무슨 짓이냐며 혼비백산하고 외지인은 그 모습을 보고 웃어대기 시작한다.[41] 이때 외지인의 손톱이 점점 길어지는데, 사진을 실컷 찍은 뒤 카메라를 내려놓자 드러나는 외지인의 눈은 건강원 주인이 보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새빨간 색으로 물들어 있으며 얼굴과 몸이 갈색으로 변하고 울긋불긋해져서 더 험악한 인상을 준다.[42] 다스 시디어스 닮았다 자세히 보면 여태 경우와 달리 눈동자가 흐릿한 게 아니라 날카로운 모습을 하고 있다. 이쯤 되면 악마이거나 그와 관련된 존재로 확신할 수 있는 부분. 사실 성경에서 보면 거짓 예언자 같은 존재는 하느님의 사자를 사칭하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성경에 많은 모티브를 따온 본 영화에 대입해 보자면 성직자를 스스로 예수라 하며 현혹하는 악마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 차를 돌려 온 일광은 종구의 집에 들어가 엉망진창이 된 집안을 둘러보고, 마찬가지로 가족들의 죽음에 정신이 붕괴된 종구의 사진을 찍은 후 집을 나선다. 차 트렁크를 열다가 상자를 떨어뜨리는데 상자 속에 있던 것은 외지인의 별실에서 보였던,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었다. 그리고 정신이 붕괴된[43] 종구가 무언가[44] 웅얼거리면서 끝난다.[45]
  • 3번째 포스터의 일광(황정민)을 자세히 살펴보면 발견할 수 있는데 카메라를 들고 있다. 작중에서 카메라는 영혼을 담는 매개체로 등장한다. 또한 집 밖에서 안을 보고 있는데 이는 금줄이 쳐진 집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존재임을 암시한다. 외지인과 일광이 마을 희생자들의 사진을 모두 가지고 있었던 것은 네크로필리아가 아니고서야 단순히 목숨만을 빼앗은 게 아니라 '현혹'시켰음을 상징하는 시각적 연출이다. 내내 저항하던 종구도 최후에는 일광에게 사진을 찍히고 만다.
  • 무명은 영화 초반부에는 미친 여자처럼 보이다 영화 중후반에서는 진짜 악이자, 곡성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의 배후처럼 보이나 결국 일광과 외지인의 정체가 어느 정도 드러나면서 종구를 진짜로 도우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정체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다. 일단 나홍진 감독은 무명을 무속신앙의 신으로 생각하고 캐릭터를 설정했다고 한다. 무명이 계속 언급하는 할매는 대지모신, 그녀는 곡성의 수호신으로 볼 수도 있겠다.
  • 곡성에서 일어난 모든 기이한 살인 사건에는 처음부터 일광이 개입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화 시작 직후 나오는 일가족 몰살 현장에서 종구가 제사상과 나뭇가지를 엮어 만든 둥지 모양의 형상을 발견하는데, 이 둥지 모양의 형상은 일광이 종구네 집에서 살을 날리기 위해 행했던 굿판에서 다시 등장한다.[46]
  • 일광의 속옷차림과, 종구의 집보다도 먼저 우환이 닥쳤던 집들이 이미 굿판을 벌였는데도 사달을 피할 수 없었다는 점도 일광의 정체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47]
  • 일광이 하는 굿의 내용을 보면, 흰 닭을 제물로 사용하고 장승을 꺾어서 말뚝을 박는 등의 행위를 한다. 장승은 예로부터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외지인에게 살을 날리는 게 아니라 종구의 집 혹은 마을 전체 그리고 곡성의 수호신들의 기운을 약하게 하려는 역 굿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던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감독도 GV에서 감독피셜효진이, 그리고 효진을 보호하던 무명까지 대상으로 굿을 했다고 밝혔다.
  • 외지인이 주술을 행하는 장소에는 뿔 달린 가축의 두개골들이 잔뜩 있다. 효진의 방에 마지막까지 놓여있던 제사상 머리도 뿔 돋아난 수소이다. 보통 뿔 달린 것은 악마의 상징이며 사교(邪敎)에서 쓰이므로 이 점만 보아도 외지인과 일광의 주술이 선한 쪽은 아님을 알 수 있다.
  • 효진의 방에서 굿을 행할 때, 일본인의 방에 있던 것과 똑같이, 천장에 사슬과 말뚝 못을 박는다.
  • 외지인이 키우는 검은 개는 주인공 일행을 위협하는 존재로 등장하는데, 오멘에서도 검은 개가 악마의 하수인으로 등장한다. 검은개는 마녀들의 여왕 헤카테 여신의 패밀리어 (familiar) 이다. 마녀와 마법사들은 꼭 이 패밀리어가 있는법. 해리포터의 보호아재도 검은개. 시리우스는 개라는뜻이고 블랙은 검은색상을 뜻함. 물론 해리포터의 풀타임 패밀리어는 헤드윅. 헤카테 여신은 세마리의 흑구와 함께한다. 그리고 그리스 신화의 지옥문은 머리가 셋 달린 검은개 케르베루스가 지키는데 그리스 신화보다 훨씬 더 오래된 헤카테 여신의 신화에서 따왔다고도 본다.
  • 황정민이 산에서 운전하면서 첫등장하는 장면은 영화 <샤이닝>의 오마주이다. 장소 구도나 음악으로 볼때 많이 유사하다.
  • 무슨 이유에서인지 영화상에서 종구의 장모는 종구와 일광 이외의 인물들과는 직접적인 의사소통을 하지 않는다. 또한 장모와 종구의 대화에도 다른 인물들은 그다지 반응하지 않는다.[48][49]
  • 사실 작중을 보면 결말에 대한 복선이 깔려 있었다. 종구가 밤에 효진의 방에 들어가면서 효진의 물건들을 뒤져보는 장면을 보면, 공책 낙서에 사람이 피를 흘리며 죽는 모습을 그린 듯한 낙서 위에 빨간 색이 칠해져 있었다. 즉 효진이가 일가족들을 죽이는 결말이 이미 파국을 피할 수 없었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3 관점에 따른 해석

감독과의 대화를 비롯 여러 인터뷰에서 볼 수 있듯이 나홍진 감독은 이 영화의 편집이나 전개를 일부러 모호하게 만들어, 영화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나오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일반적으로 봤을 때 또는 감독의 생각에 가까운 영화 전개는 외지인과 일광이 악이라는 관점이다. 실제로 그의 각종 언급이나 영화상 전개를 보면 이 노선을 선택하고 영화를 찍어나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감독이 여러가지 해석의 여지를 두었기 때문에 이와는 다른 관점에서 영화를 해석하는 의견도 있다.

  • 외지인과 일광이 아닌 무명이 악의 근원

마지막 상황에서 일광과 무명이 종구에게 요구하는 바 때문에 이런 관점이 성립한다. 마지막에 일광은 무명이 진짜 귀신이니 당장 집에 돌아가서 딸을 확인하라고 하며, 무명은 닭이 세번 울 때까지만 기다렸다가 돌아가지 않으면 일가족이 몰살하리라 말한다. 정황을 따져보면 양쪽의 말이 다 들어맞는데, 종구가 일광의 말을 듣고 곧장 집에 가서 딸을 확인했다면 딸이 아내와 장모를 살해하는 걸 막거나, 내지는 아내와 장모와 함께 딸에게 살해당했을 것이다. 일광은 종구가 빨리 돌아가서 딸을 막아야 한다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무명이 한 말은 어떻게 성립하는가. 만약 종구가 딸이 아내와 장모를 죽이려는 도중에 들이닥쳤다면 종구 역시 살해당했을 수 있고, 딸 역시 다른 생존했던 빙의자들처럼 죽어갔을 것이다. 그러면 일가족이 몰살당하는 셈이 된다. 그러나 종구는 닭이 두번 운 후에 돌아간 탓에 아내와 장모가 살해당한 이후에 집에 도착했고, 따라서 딸과 충돌하지 않았다. 종구의 아내와 장모를 죽인 딸도 종구는 죽이지 않고 내버려두는데, 이는 무명이 종구만큼은 죽이고 싶지 않아 했다는 말이 된다.

이 경우 무명의 목적은 무명이 종구에게 했던 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무명과의 조우 장면에서 '내 딸 어디있어?' 라고 묻는 종구에게 효진이라는 이름까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슴어림에 손을 펼치며 '요만한 여자애?' 라고 되물으며 또한 자신의 딸이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절규하는 종구에게 무명은 '그 아이의 아비가 지은 죄'를 논한다. 종구가 자신의 딸을 '내 딸'로 지칭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명이 '네가 지은 죄'라고 하지 않고 '그 아이의 아비가 지은 죄'라고 말함은 무명이 종구를 효진의 아버지가 아니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하자면 종구의 집안에 종구가 모르는 부정이 있었으며, 무명은 이 부정을 징벌하기 위해 효진을 빙의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효진이 종구의 친딸이 아니라면 부정의 주체는 종구의 아내이며, 무명은 종구의 아내를 벌하려 한 것이다. 무명은 분명 곡성의 수호신 격인 존재이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곡성 땅의 부정을 용납하지 못하고 멸하려 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이 경우 종구가 닭 세 번 울 때까지 돌아가지 못하게 붙드는 이유가 설명이 된다. 빙의된 효진으로 종구의 아내는 죽이더라도 종구까지 휘말려서 죽이기는 싫었던 것이다.

무명이 이런 흑막일 경우, 자연스럽게 일본인과 일광은 이를 저지하기 위한 퇴마사로 볼 수 있으며, 희생자의 사진을 모으는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희생자들의 사진에 남은 귀기를 쫓아서 무명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다. 결정적으로 일본인의 경우 중간에 좀비로 등장하는 박춘배를 조종한다기보다는 추적하는 쪽이다. 마지막에 자신에게 찾아온 이삼에게 '날 이미 악마로 보고 있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겠지'라고 말하는 장면은, 곡성을 수호하는 귀신 무명의 환각이 마을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음을 익히 알기 때문에 읊는 대사라고 볼 수도 있다. 일본인의 형상이 마지막에 괴물같이 변하는 것도 무명의 힘이 발휘된 결과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일광이 마지막에 종구의 사진을 찍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설명할 수 있다. 무명은 아직도 퇴치되지 않았고, 일광과 일본인은 종구의 모습에 남은 무명의 귀기를 단서로 다시 무명을 추적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관점의 경우, 곡성에서 살해당한 사람들은 모두 어떠한 부정에 연관된 이들이며, 이들의 집 앞에 있는 금어초는 부정을 저질러 죽어야 하는 이에 대해 곡성의 수호신이 남기는 죽음의 표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종구가 무명의 말을 듣던 말던 비극을 피하지 못했으리라는 감독의 발언과도 일맥상통한다. 애초에 무명은 종구가 아닌 종구의 아내의 부정을 징벌하기 위해 효진을 빙의시켰으니만큼, 종구가 어떻게 행동하든 파멸을 피할 수 없었던 것. 영화 마지막에 금어초가 삭아들어가는 장면은, 무명이 멸하고자 했던 부정이 씻겨나간 후라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으로 볼 수 있다.

이 해석은 종구가 마지막에 겪은 상황을 두고 일광과 무명의 의견이 대립하는 부분에 대해서 설명하기 위해 나온 가설이며, 해당 정황을 놓고 봤을 때 그럭저럭 아귀가 맞지만, 부족한 부분도 있다. 영화 전체를 통틀어서, 희생자들이 죽어야 했던 '부정'에 대한 단서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흑막을 일본인과 일광으로 설정하고 봐도 희생자들이 희생되는 개연성이 뚜렷하게 나오지 않기 때문에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부분으로 볼 수 있다. 다만 무명이 흑막일 경우는 선역(수호신이자 부정을 단죄하는 존재)이면서 살인을 하므로 명분과 개연성이 필요하지만 악마의 경우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라 불리며 원래 성품부터 악을 좋아하므로 더 자연스럽기는 하다. 낚시할 때 누가 걸릴지 알고 던지냐는 대사와도 통하는 부분.

또한 이러한 가정이라면 외지인도 사람을 구하기 위한 선역 퇴마사라는 소리인데 '내가 어떻게 말하든 소용없겠지' 까지는 제정신으로 본 것이고 직후 사진 찍으면서 즐거워한 거나 '너를 살려보내 준대?' 라고 하는 부분은 환각인가? 하는 점에서 설득력이 모자라다.

  • 등장인물 모두가 독버섯에 중독되어 모두가 다 환각을 보고 있다

다음으로 독버섯 관련 해석은 영화 초반 살인사건의 원인으로 독버섯이 지목되다보니 이것을 사건의 중심으로 놓고 볼 때 주로 생긴다. 허나 이 영화상에서 독버섯은 맥거핀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독버섯 해석론자들은 독버섯으로 인한 환각이 아니면 이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고하지만 영화 내내 인물들이 버섯을 먹는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다. 게다가 영화에서 살인사건이나 이 기묘한 사건에 연류된 사람들이 다같이 음식을 나눠먹었다는 장면이나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집에서 밥이나 과자, 음료, 정육점 육회 등을 먹지만 버섯을 먹는 장면은 없다.[50]

이에 대해 반박으로 마을사람 모두 버섯을 먹고 환각증세가 나타났다고 했는데, 종구의 집 뒤에 할머니가 버섯을 말리고 있었다.효진에게도 먹이는 장면이 있음 (초반 '이것도 무라'하면서 반찬 집어주는장면) 영화 막바지에 양이삼 부제가 병원에 있는 화면에서 뉴스로 독버섯을 정제하여 건강식품을 만들던 공장을 경찰이 수색하는 장면이 있고, 오성복 형사도 피해자라는 언급은 독버섯 중독설과 관련된 맥락의 대사로 등장한다.[51] 또한 초반 피해자의 집에서 종구가 살아있는 돼지를 발견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후에 돼지에 관한 내용은 일절 등장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돼지가 버섯채집에 사용되었음[52]을 생각해보면 돼지고기를 통한 전파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하지만 법적으로 도축장이 아닌 곳에서 돼지 도축은 금지되어 있고, 도축장에서 도축된 돼지가 그 마을에서만 소비된다는 법은 없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 전체가 같은 건강식품이나 돼지고기를 섭취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증상의 수준이 각자 다르고 심장이 멈춘 사람이 다시 살아나거나 건강 식품 맞긴 맞네 일시적으로 다수 인원이 환각을 동시에 본다는 것은 이것 하나로 설명하기 힘들다. 다만 완벽하진 않지만 버섯설도 감독이 뿌려놓은 하나의 떡밥인 것은 분명하다.

  • 이해 관계에 얽힌 존재들 간의 세력 다툼에 휘말렸다

외지인이 악한 존재라는 징표는 영화 전체에 걸쳐서 나타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지인의 맞수로 제시된 무명이 선한 존재라는 근거도 없어서 결국 주인공인 종구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대표되는 무명과 악으로 대표되는 외지인 사이에서 끼어서 희생당한 희생양이라 볼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즉 외지인은 악이라서 악행을 저질렀지만, 무명은 종구를 지키기 위해서 그를 도운게 아니라 마을서 외지인을 몰아내려고 그가 외지인의 미끼가 되는걸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다는 것이다.

칸 영화제 공식 회견에서 나홍진 감독이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3번 닭이 우는 장면 당시 무명의 명을 따르지 않아서 가족이 몰살당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한다. 인간이라는 존재적 한계상, 무명의 명을 따랐어도 비극은 동일했으리라는 것. 그렇다면 정작 자기 말을 따르라고 지시한 무명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으므로 결국 종구 가족이야 어떻게 되든 그저 그들을 미끼 삼아 외지인만 옭아 매려고 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종구의 딸을 지키려고 이런다고 하는 것도 그냥 종구가 자신의 덫을 망치지 못하게 하려는 사탕발림에 불과하게 된다. 그리고 종구가 자기 명을 어기고 집으로 뛰어들어갔을 때 절규한 것도 효진이 때문이 아니라 자기 덫이 망가져 외지인에게 패배하자 울부짖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감독이 말한대로 일광과 외지인이 명확히 한패였다면, 결국 일광의 굿이 외지인에게 역살로 날아갔을 때 이를 중간에서 조작한 것은 무명일 수 밖에 없다. 정황을 모르는 일광의 굿을 이용해 차도살인 계를 시전한 셈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효진이는 극도로 괴로워 하며 몸을 이리 비틀고 저리 비튼다. 그것도 그냥 아프다고 난리 치는 걸 넘어서 몸에서 뼈가 우드득거리는 소리(!)까지 날 지경으로. 그런데 영화의 이전 장면에서 관객들은 비슷한 증상을 보였던 환자가 어떻게 최후를 맞는지[53] 똑똑히 보았다. 만약 종구가 개입하지 않고 굿이 계속되었을 경우, 유사한 증상을 보이던 효진이가 무사했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 즉, 무명은 일광을 이용해 외지인을 제거하려 하면서 정작 자기가 지켜려고 한다던 효진의 목숨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장기말로 쓴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정리하자면 이 싸움에 애초부터 절대적인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하며 자기 텃밭에서 지배권을 지키려는 무속신 무명과 그 텃밭을 점거하려는 외부의 악신 외지인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애꿎은 마을 사람들만 희생된 비극이 바로 곡성이라는 가설인 셈이다.

반박을 하자면 영화 초반부에 무명은 외지인을 조심하라는 경고를 몇 번하기도 한다. 이 일에 종구가 적극적으로 발을 들이기 전 미리 경고한 셈이다. 하지만 종구는 그 말을 무시하고 끼어들었다. 즉 무명이 절대적인 선까진 아니어도 종구를 미끼로 던졌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고 본인은 희생자를 최대한 막기 위해 분투했지만, 결국 그 싸움에 종구가 끼어들어서 그와 가족들이 피해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도 달리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외지인을 조심하라는 경고는 실제 경고가 아니라 오히려 종구를 이 일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일부러 언질을 준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딸이 엮인 이상 종구가 무슨 일이 있어도 일에서 발을 뺄 턱이 없고 마을의 수호신 격으로 사람들을 다 지켜 보았을 무명이 이걸 모를 리도 없다. 그러므로 무명은 종구를 자신의 패로 사용하기 위해 일부러 그에게 정보를 흘리고 자극을 준 것이다. 자기 딸이 얽혔으므로 매우 적극적으로 움직일 사람인데다가 힘이 세고 팔랑귀에 경찰이기까지 하므로 외지인을 견제하고 몰아내는 데 적합한 용도였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54]

더하여 단순 추측이기는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죽은 후 광인으로 일어나 좀비물을 찍는 건 언뜻 보면 당연히 외지인의 행동으로 보인다. 그러나 외지인은 박춘배의 사체가 사라졌을 때 명백히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55] 게다가 이후에도 광인으로 되살아난 박춘배를 조종한다기 보다는 추적하고 동태를 살피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을 죽인 것은 외지인이지만 오히려 광인으로 만들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건 무명일 수도 있다는 가정도 가능하다. 외지인을 쫓아내기 위해 자기가 광인을 만들고는 외지인이 그런 거라고 몰아 가면서 경각심을 주어 종구와 그 주변 사람들을 이용하려 했다는 것.

  • 사상이 다른 두 초월적 존재에 의한 대립

이 해석은 이 글의 해석에 기반된다. 이 의견은 어느 한 쪽을 전적으로 나쁘다고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관념을 관철하려는 과정에서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일단 무명은 일반적으로 해석되는 것처럼 "수호신"이 맞으며, 외지인은 초월적인 힘을 가진 존재지만 그저 악한 존재가 아니라 "악한 자를 엄히 벌하는 자"이다. 외지인은 마을에 존재하는 악한 자들을 벌하려 하나 "마을의 수호신" 무명은 설령 잘못을 저질렀을지언정 마을의 보존과 인간의 생명을 우선시하는 입장으로 이로 인해 대립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관점에 따르면 작중 저주와 같은 것에 의해 죽어나간 마을 주민들은 불륜과 같은 악한 행위를 했었던 것이다. 위 링크의 해석이 다른 해석들과 비교해서 제일 명쾌하게 설명하는 부분은 '무명과 종구의 마지막 대담' 부분인데, '내 딸이 어딨냐는 종구에게 "요만한 아이?" "효진이"라고 여러번 반문하는 것' 과 '왜 하필이면 우리냐고 묻는 종구에게 "애 아비가"라며 직접 종구를 가르키는게 아니라 3인칭을 사용하는 것' 그리고 '지금 가면 종구의 식구가 다 죽는다고 하였으나 정작 효진이는 살아있는 것' 들이 '사실 효진이는 종구의 자식이 아니며 애 엄마의 불륜으로 생긴 아이'라는 것이다. "내 딸 어딨냐"는 종구의 질문에 무명이 여러번 반문한 이유는 종구의 친딸이 아니기 때문이며, "애 아비가"라며 3인칭을 굳이 사용하며 종구를 직접 지칭하지 않은 이유는 종구가 아닌 친아빠가 따로 있기 때문, 그리고 지금 가면 종구의 식구가 다 죽는다고 했음에도 효진이는 살아있던 건 역시 효진이가 친 딸이 아니기 때문이란 것이다.

4 의문과 논란

관객들 사이에서 일고 있는 의문과 논란[56] 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57]

  • 개연성
드라마적 개연성은 분명 존재한다. 종구가 어떻게 파멸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으니깐. 그러나 관객이 혼란을 느끼는 것은 오컬트적 개연성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영화는 '오컬트' 영화다. 이 사태에는 그 어떤 법칙도 존재하지 않는다. 초월적인 존재로 묘사되는 무명이 어떤 때는 한없이 무력해보이기도 한다. 악마에게 낚였다는 증표인 두드러기 역시 누군가에겐 나타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나타나지 않는다. 심지어 두드러기가 나타난 인물들에겐 그 어떤 공통점도 존재하지 않는다. 관람객이 느끼는 개연성 부재는 바로 이 곳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 이 영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가?
감독의 인터뷰 중 곡성의 시나리오를 감독의 주변인이 급사한 후 썼다고 하니 '아무 이유없이 갑작스레 참변이 생길 수도 있다.' 일 수도 있고, 뭔가 좀 다른 의미의로 '누구에게나 나쁜일이 일어날 수 있다'일 수도 있다. 다만 영화 포스터의 "현혹되지 마라"도 그렇고, 모든 것이 절망적이고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도와주겠다고 하는 구세주조차도 의심스러운, 완전히 고립된 상황일 때 인간은 무얼 할 수 있냐는 걸 말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혹은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일에 절대자인 하느님도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허망하더라'는 허무주의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애초에 장르적 쾌감을 얻는 데에 그 목적이 있을 수도 있다. 또 다른 해석은 외지인 악마고 무명이 신이라고 가정한다면 이삼이 외지인을 악마라고 생각하고 있는데도 너가 악마가 아니라면 난 그냥 가겠다는 말을 하는 이중적 모습을 보이자 외지인이 마저 자신의 정체를 보여주고 종구 역시 무명을 믿지 않고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인간은 선과악이 눈앞에 있는데도 그것에 대해 의심하는 존재 또는 눈앞에 초월적인 존재 있는데도 의심하는 존재라고 말하려는 목적도 있을 수도 있다. 종교적인 의미에서 보았을 때는 악마가 인간을 현혹하는 존재이기에 그저 악마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는 , 그러니까 초월적이고 존재 앞에서의 인간의 무력함을 드러내고 있을 수도 있다.
  • 종구가 왜 그렇게까지 피해를 입어야 했는가? 그에 대한 무명(천우희)의 답변 '아이의 애비가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의 의미는?
무명은 바로 앞에 있는 종구를 두고도 당신, 혹은 너라고 하며 명확하게 종구를 지칭하지 않고 '아이의 애비'라고만 한다. 또한, 이와 관련해 나홍진 감독은 과거 이 작품 제작 도중 원죄에 관한 이야기’라는 언급을 한 적 있다. 이를 미루어 생각해보면 '아이의 애비'가 종구를 지칭하는 것이 아닐 확률이 높다. 마지막으로 이동진 평론가는 라이브톡에서 작중 등장하는 성직자의 이름이 양이삼이라는 점에서 요한묵시록 2장 23절[58]이 답이 아닐까 해석했다.또 다른 해석은 무명이 신이라고 가정 했을 때 종구가 신을 의심하고 신의 말씀을 따르지 않아서 재앙이 왔다는 해석을 할 수 있다. 실제로 구약 성경에서는 하느님을 의심하거나 하느님의 말씀을 어기는 자는 예외없이 재앙을 받았다.
  • 외지인은 악마인 건가? 아닌가? 그리고 손바닥에 난 자국은 무엇인가?
외지인이 악마와 관련이 있다는 점은 외지인의 방에 놓여 있던 산양머리와 뿔에서 추측할 수 있다. 서양에서는 산양을 악마의 상징으로 생각한다. 또 종구가 효진의 방에서 발견한 공책에 그려진 괴이한 낙서들을 보면 막판에 뿔이 달린 악마처럼 묘사된 낙서가 있었다. 손에 난 자국은 예수십자가에 못 박힐 때의 성흔처럼 생긴 것으로 보아 예수를 따라한 장면이라 생각한다. 적그리스도 항목 참조. 또 일본 민담 속 '텐구' 라는 설도 있다 # 다만 마지막에 나오는 모습은 일반적인 텐구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59]
  • 일광과 외지인은 언제부터 한패인 건가?
감독 입으로 처음부터 한패라고 밝혔다. 처음 사건이 발생했을 창고에서 종구가 불려 들어간 곳에 일광이 살굿할 때 효진이 주변에 놓은 것과 비슷한 제사상이 있는 걸로 보아 처음부터 한패로 일을 벌렸던 것으로 볼 수 있다.
  • 영화상에서 카메라와 사진의 의미는 무엇인가?
감독 인터뷰로는 사진을 찍어 영혼을 담는 것이라고 한다. 카메라와 사진의 의미는 이렇게 해석할 수 있는 게, 사진기가 처음 등장했을 때 자신의 모습이 동일하게 나오는 것에 대해 두려워 한 나머지 사진기가 영혼을 빼앗아 간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었다.
  • 외지인은 왜 마을에 나타난 것인가?
감독 인터뷰에서 곡성에 온 건 무명과는 관계 없다고 했다. 전라도 밥상 인심에 반해뿌러쓰 일단 작중에는 종구가 외지인에게 왜 곡성에 왔냐는 답변에 여행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일광의 낚시에 관한 말과 연관지어서 생각해보자면, 별 이유 없다.
  • 일광이 날린 살의 대상은 누구인가?
감독의 이야기를 보자면, 일광이 살을 날리는 장면에서 교차편집으로는 외지인을 대상으로 한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앞서 시장에서 보여주는 외지인의 인간적인 면과 이후 외지인이 하는 행위를 마치 '구원'을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여, "혹시 굿의 대상이 효진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불러 일으키게 했다고 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감독 스스로가 굿의 대상을 누구든 가능하도록 했기 때문에 어느 쪽으로든 해석이 가능하다.
  • 종구가 일본인을 의심하고 있었을 당시 효진이 이상한 행동을 보이자 일본인을 만났냐고 추궁하였고 효진은 그에 긍정의 사인을 보낸다. 그리고 만나서 무엇을 했냐고 묻자 화를 내며, "중요한 게 뭔지도 모르면서!" 라고 소리지르며 뛰쳐나간다. - 효진은 일본인을 직접 만난 적이 있다?
많은 추측 중 신빙성이 있어보이는 건 외지인에게 겁탈당하고 저주를 받았다는 설이다. 여기서 겁탈은 공책의 야수화된 외지인 그림과 초반 딸이 악몽에서 깨 울면서 하는 대사로 보아 정신적인 겁탈일 수도 있다. (종구의 동료 경찰과 양이삼 부제의 상태를 떠올려보라)
  • 2번째 피해자 여자가 일본인에게 강간당했다는 소문이 있는 점, 효진의 그림에서 여성의 중요부위가 피를 흘리는 그림이 있는 점, 일본인의 가택에서 발견한 야화집 등 유난히 성에 관련된 것이 부각된다. 과연 영화의 자극성만을 위한 것인가?
외지인의 본성이 악에 가까움을 알리는 복선이라고 볼 수 있다. 혹은 이 장면을 보고 효진이가 외지인한테 강간당했다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감독 인터뷰를 보면 효진이의 2차 성징을 나타내는 그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효진이 어머니가 효진이가 드디어 생리를 한다고 말하는 장면이 삭제되었다고 한다.
  • 일광이 곡성을 벗어나려 마음 먹기 전과 벗어나는 과정에서 일광에게 경고가 미친 듯한 모습
까마귀를 죽여서 경고한 것은 무명이 내 말을 듣지 않았을 경우 너도 이렇게 만들겠다는 협박성의 경고.(외지인은 무명과 격투 후(작 중에선 편집 됨) 도주하다가 종구의 차에 치여 사망했다.) 곡성을 벗어나서 서울로 도망가려 할 때 일광의 차에 부딪히는 벌레는 '내가 부활했으니 다시 돌아와라'라는 외지인의 경고라고 볼 수 있다.
  • 과연 무명은 사람인가 귀신인가
감독 인터뷰 중 무명은 무속신앙의 신이라 말한 대목이 있다. 같은 인터뷰 중 정체를 딱 꼬집어 말하진 않았지만 후반 닭이 3번째 울기 전 돌아가려는 종구를 잡는 씬에서 일초만에 15m를 휙 올 수 있는가-로 대답을 갈음하겠다고 했다. 사람이 아니므니다. 애초에 일광과 외지인이 굿판을 벌이거나 의식을 행해야 했던 것들을 무명은 단순히 보기만 해서 가능하게 했다. 감독의 말로 미루어볼때, 이방인의 집을 찾아갈 때 나오는 서낭당이 그녀를 모신 곳이 아닐까 하고 추측해볼 수 있다. 만약 그녀가 서낭당에 모셔진 신이라면 이방인의 정체나 이방인과 일광이 한패라는걸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무명이 종구를 향해 절규하는 장면에서 눈동자가 녹색으로 변한다. 무명이 사람이 아니라는 걸 표현하기 위한 장치로 볼 수도 있다.
  • 무명은 왜 포진이 있던 여자의 가디건을 입고 있었는가?
무명의 처음 등장 씬에는 남자의 야상, 나중에는 포진이 있던 여자 뿐 아니라 다른 피해자들의 소지품을 갖고 있는데 이는 무명이 다음 타깃인 피해자들을 보호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실제로 무명은 그 이전에도 몰살당한 사람들을 계속 구하려고 했었던 걸로 보인다.) 또한 피해자들의 소품을 가지고 다니게 해 관객과 종구를 끝까지 헷갈리게 하는 장치로 보인다.
  • 종구와 친구들이 박춘배 좀비와 난투극을 벌인 후 외지인을 추격하는 장면 역시 의구심이 생길 수 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외지인은 강력한 힘을 가진 악령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을 피해 절벽에 매달리기까지 하며 몸을 숨겼는가? 또한, 힘에 부친 나머지 절벽에서 떨어지고 난 후 고통과 서러움을 참지 못한 듯 울음을 터뜨린다. 게다가 그마저도 종구 일행에게 들킬까 손으로 입을 틀어막기까지 한다.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힌 이유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악마와 인간, 그로 인한 혼란을 관객에게 주기 위해서라고... 또한 감독이 밝힌 바로는 죽고 완전히 각성했다고 했으니 그 이전까지는 악령과 인간성이 혼재된 상태였을 수도 있다.
이동진 평론가는 이 영화의 훌륭한 점이 오히려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이것을 그리스도교 교리로 해석되는 예수와 유사하다고 추정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를 참 하느님이며 동시에 참 사람[60]이라 하며, 성경에서도 아파하거나 슬퍼서 울거나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고통 속에서 하느님을 원망하는 것 같은 뉘앙스의 말을 하기도 하며 나약한 존재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 인성을 가진 것이 예수의 신성(神性)을 부인하는 증거가 되지 않는 것이 그리스도교 신학의 이야기인데, 일본인 캐릭터 자체가 그런 캐릭터로 묘사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외지인이 도망치며 두려워 서럽게 울기까지 하는 이유는 종구 일행의 추격 때문이 아니라 종구+무명에게 쫓기고 있었기 때문일수도 있다. 절벽에서 떨어진 후에 외지인과 무명이 마주친 후 뒷 장면에서 무명이 도망치고 외지인이 무명을 추격하는 듯한 묘사가 있는데, 사실 이 장면은 완전히 반대 상황으로 외지인이 무명에게 추격당하는 장면일 수 있다. 이 장면에서 무명과 외지인이 한 쇼트에 잡힌 적이 한번도 없었다.
상위 항목에 있는 유튜브 해석에 따르면 일광이 누군가에게 살을 날리던 도중 종구의 방해로 외지인이 역살을 맞게 되어 힘이 약해진 상태였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외지인도 처음에는 일광과 마찬가지로 그저 악령을 섬기는 인간 무당이었다고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런데 종구 일당과 무명의 추격으로 인하여 사망한 후 그 원한 + 악령을 섬기던 사악한 무당이라는 조건이 맞아떨어져서, 무명과는 달리 현실세계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던 악령이 그 몸 안으로 들어와 육화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렇게 본다면 '딸을 구하려던 종구의 행동이 오히려 악령의 힘을 강화시켜버리고 말았다 = 제대로 낚여버렸다' 따위의 생각도 가능해진다.
  • 건강원 아저씨는 어떻게 외지인에게 걸리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
일광의 대사 중 '곡성 땅의 두 다리 달린 것은 다 그놈이 죽일 것'이란 내용으로 미루어 잠정적 타깃일 수도. 그리고 꼭 외지인을 만났다고 희생양이 된다기보다 극 중 대사처럼 낚시를 하면 뭐가 걸려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란 말이 정확할 수도 있다 랜덤이네 외지인이~좋아하는~랜덤~게임~!.[61]
  • 그와중에 가장 큰 방해를 한 종구는 어떻게 살아남고 효진도 어떻게든 살아남았는가?
영화의 후반부에 일광이 효진이가 누워있는 곳에 제사상을 남겨놓고 갔는데, 종구가 이중 5개의 촛불 중 2개만 끄는 장면이 나오고, 나머지를 끄려다 장모님이 말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것이 5개의 촛불 중 2개를 껐던 것이 종구와 효진이 살아 남았던 이유가 되었을 수도 있다고 해석하는 관점도 있다.
  • 장모는 어떻게 일광이라는 무당을 불렀을까?
종구가 초반에 살인이 발생한 현장을 방문했을 당시 새의 둥지와 같이 생긴 공간을 발견하는 데 이것은 마치 일광이 살을 쏘는 굿을 할 당시에 효진의 주변에 잔가지를 깔아놓은 것과 유사한 형태를 띤다. 이로 보아 일광은 이전에도 여러번 이와 같은 일을 반복한 듯 보인다. 따라서 주변에 그에 대한 소문이 퍼지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 이 답은 부족하다. 춘식에게 칼 맞아 죽어 우물에 떨어진 또 다른 무당이 나온다. 즉, 일광만이 사건이 일어나는 동네의 굿을 담당한 것이 아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보강되어야 한다.
다만 여기서 다른 의문이 나올 수 있는데, 굿 자체가 상당히 소란스럽고 각종 물건 등 준비도 많이 필요하며, 굿을 할 경우 주변의 사람들이 그 사실을 다 알게된다. 일광 또한 주변 사람의 소개를 받아 부른 것인데, 그렇다면 이전에 굿을 했는데도 대량 살인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예전에 굿을 했던 일광을 또 부르는 것은 이상하다. 더군다나 일광을 소개시켜줬던 사람은 이후 굿을 한 집안의 사람들이 몰살당한 것을 알았을 텐데도 일광은 수사조차 받지 않는다. 더욱이 장면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다른 피해자들에게까지 여러차례 굿을 해 왔다면, 일광은 용의자나 참고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눞은데도, 정작 경찰인 주인공조차 그런 부분을 알지 못한다. 아예 탐문수사까지 하면서도 피해자들이 굿을 했었다는 사실조차도 알지 못할 정도이다.[62] 그렇다면 아예 일광을 소개시켜 주는 제3자가 일광과 한패라서 굿을 소개시켜 준 후 관련 내용을 은폐한다거나, 외지인이 연관성이 눈치채이지 않도록 계속 무당 파트너를 바꿔가면서 굿을 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이 경우라도 흔적이 남아 있을 정도면 굿을 한 후 오래 지나지 않았을 텐데도, 왜 피해자의 주변 사람들이 피해자가 굿을 했던 사실에 대해서 함구하는지는 의문이다.
  • 과연 종구가 닭이 3번 울기 전 집에 가지 않았더라면 무사할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이동진 평론가가 무비딥에서 답한 바가 있다. 집으로 돌아가기 바로 직전에 3가지 아이템을 보여주는 장면, 온도부터 완전히 다른 차가운 손으로 잡았을 때 느껴지는 섬뜩함, 영화 전체의 흐름 등을 본다면 어느 쪽을 선택했어도 비극은 피할 수 없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고.
추가 해석) 중구가 불에 탄 집을 둘러보던 도중 무명을 만나고, 뒷문에서 동물의 사체를 먹고 있는 외지인을 맞딱뜨린다. 거기서 외지인은 중구를 덮치고, 중구는 기겁을 하며 꿈에서 깨어나게 되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꿈이라고 하는데 목격자를 놓쳤다고 시말서를 쓰라고 하는 장면이 나오며 꿈과 현실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무명과의 대화에서도 무명이 '그거 꿈 아니여' 라고 중구에게 말한다. 마을 보호신인 무명은 인간에게 닥친 비극에 대해 꿈으로 전환하는 어떠한 능력(?)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중구에게 덮친 일련의 비극들이 마치 현실인양 꿈으로 처리되는 부분이 있었다. 고로 닭이 3번 울었다면 이 모든 사건들이 꿈이 되어 어떠한 비극도 마주하지 않은 채 가족들이 전부 생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닭이 3번 울기 전 그 약속을 깼기 때문에 결국 꿈으로 처리될 악몽은 현실의 비극으로 나타나게 된 것.

영화에서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이 많기에 내용을 속속들이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데, 감독과의 대화에서 감독의 발언을 보면 이러한 모호성을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연출을 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모호성을 염두에 둔 연출 자체의 결함이다. '어떤 관점으로든 보는 게 가능한 연출'이란, 어떻게 보면 '어떤 관점으로 봐도 말이 안 되는 연출'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 그래서 상술된 여러가지 시각에서 영화를 해석하는 관점들 역시, 어떤 관점으로 봐도 앞뒤가 안맞는 부분이 있다.

'기존의 영화들이 상징이나 특정 것들을 통해서 분위기를 조성하고 원하는 지점에 다다르는 것과 다르게 영화를 만들었다. (중간 생략) 곡성이란 공간의 시간과 날씨의 변화를 보여주며 분위기를 쌓다가 무명(천우희)과 디졸브를 시키면 그녀가 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이 영화를 좌우한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그 원인을 모르리라.'

다만 각종 의문에 대해선 본문의 감독과의 대화 문단을 보면 어느 정도 답이 나온다. 감독과의 대화
또 볼만한 자료로 위의 감독과의 대화를 기초로 해서 각종 떡밥이나 곡성의 주제에 대한 2시간짜리 이동진 평론가의 곡성 대해부도 있다.

5 성경과 유사점

효진이는 못 먹던 생선을 갑자기 먹기 시작하고 외지인은 생선을 낚기 위해 미끼를 꿴다.
생선기독교적 심볼[63]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여기서 기독교적 색채를 느끼는 해석도 있다. 다만 못 먹던 음식을 갑자기 폭식하는건 전통적으로 귀신 들림 증상으로 알려져 왔던 것이다.[64]

이동진 평론가는 약간 다르게 해석했는데,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예수가 육체가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나서 대접한 것이 생선이고, 예수가 그것을 먹는데,[65] 먹는다는 뜻은 육체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며, 이 영화에서 생선이라는 것은 초월적 존재가 육체를 가지고 있는 사실과 관련이 있고, 성경에 있는 레퍼런스를 그대로 가지고 와서 효진이 생선을 먹게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즉 '기독교적인 상징물인 생선'을 먹는다는것에 주안점을 주고 해석하는것이 아니라, '생선을 먹는 행동' 자체가 루카 복음서에 레퍼런스를 둔 것이고 그것에 주안점을 두고 해석한 것. (또는 영화의 첫장면에서 외지인이 미끼를 끼우는 모습을 생각하면 효진(생선)이 미끼를 물었다라는 상징적인 의미일수도 있다)

반면 '새'는 악마적인 이미지나 제물로 활용된다. 처음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새 둥지 모양의 제단, 종구네 집의 장독대에서 발견된 까마귀 사체, 일광이 무명을 만난 후 겁에 질려 거처로 복귀했을때 안으로 던져진 까마귀 등. 종구가 양이삼 부제와 이방인을 찾아갔을 때 이방인의 식사 그릇을 보면 닭발인지 뭔지 모를 새의 발이 수북하게 담겨 있다. 일광의 굿판에서는 일광의 손에 들린 흰 닭과 이방인에 손에 들린 까만 닭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2.

토마스 모티브는 나중에 CG로 추가한 것이다.

영화에서 드러나는 선명한 존재를 관객이 다중적으로 느끼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 그를 보고 가톨릭 부제가 "주여"라고 할 때,
"주여"를 과연 누구에게 하는 것인지, 관객이 더욱 극명하게 느끼도록 하게 만들고 싶었다.
하늘에 있는 존재인지, 아니면 앞에 있는 대상인지,
보는 그대로 일수도 있고, 아니면 다를 수도 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각자 더 차이가 나도록 하게 하고 싶었다.
-나홍진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66]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요한 복음서 20장 24~29절

토마스 앞에 부활한 예수가 나타나자 토마스는 믿지 않는다. 그러면서 상처를 만지게 해 달라고 그래야 믿겠다고 한다. 그래서 예수가 손과 발의 상처와 옆구리의 상처를 만지게 허락하고 나서야 예수의 부활을 믿는다. 외지인은 자신의 손과 발을 보라고 하며 자신을 만지라고 하는데 외지인의 손에는 구멍이 난 듯한 상처가 있다.

그러자 곧 닭이 두 번째 울었다. 베드로예수님께서,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울기 시작하였다.

마르코 복음서 : 14장 72절

닭이 세 번 울면 귀신이 함정에 걸린다고 하는 장면

주님께서 사탄에게 물으셨다. "너는 어디에서 오는 길이냐?" 사탄이 주님께 "땅을 여기저기 두루 돌아다니다가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욥기 1:7

종구가 외지인에게 곡성에 온 이유가 뭐냐라고 묻자 한 번은 '여행'이라고 대꾸하고 나중에는 대답을 해줘도 너는 믿지 못할 것이라 말한다. 성경에 의하면 질병과 죽음을 창궐하게 만드는 게 악마의 목표이다.

  • 종구는 외지인에게 경고를 남기는데, 곡성에서 나가도록 3일의 기한을 준다. 그리고 무명에게 쫒기다가 종구의 트럭에 치여 죽고 다시 부활한다. 예수 그리스도 또한 죽고 나서 3일 만에 부활한다.
  • 위에서 일광이 장승을 말뚝으로 박는 모습을 수호신을 약하게 한다는 역 굿이라는 말이지만 다르게 보면 마치 예수를 십자가에 못으로 박는 모습과 흡사한 모습을 보인다 또한 일광이 장승을 말뚝을 박으면서 동시에 외지인이 고통스러운 모습이 나오는데 이것 또한 예수가 십자가에 못으로 박는 것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과 흡사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외지인이 손이 구멍을 난 듯한 모습도 포함 할 수 있다.
  • 요한 복음서 8:52~59 예수가 유대교 지도자들 간의 논쟁에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라고 말하자, 분노한 유대인들은 돌을 들어 예수를 치려고 한다. 곡성의 악마 또한 절벽에 떨어지고 온갖 수난을 겪는다. 예고편에선 성경의 장면처럼 무명이 돌을 집어 들어 올리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 죄없는 자만 돌을 던지라. 무명은 종구에게 돌을 던지며 등장하고, 포스터의 천우희도 손에 조약돌을 들고 있다. 이에 따라 무명이 "죄없는 자"라고 해석한다면 이는 외지인이 악이라는 설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
  • 이러한 성경기독교적 관점에서 봤을 때 관객이 제일 의문스러워했던 대사인 무명이 말한 아이 아버지는 사람을 무시하고 사람을 죽인 죄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도 어느 정도 해석 가능한 부분이다. 자신의 딸이 왜 고통 받아야 하는 지에 대해 묻자 무명은 종구를 "당신"이라고 하지 않고 "아이의 아버지"라고 한다. 게다가 최소한 딸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턴 종구는 남을 의심하고 사람을 죽인 적이 없다. 이 말은 육체적인 아버지의 딸의 관계가 아니라 성서에서 말하는 아버지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아이의 정신을 지배하는 아버지는 초월적인 존재이고, 해석에 따라선 아버지를 악마로 해석할 수 있다. 이 해석으로 따르면 죄는 아버지의 죄로 딸이 살인을 하게 되었다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이 작품은 일본 외지인은 메시아이며 성서의 예수가 악마일 수도 있고 악마가 예수를 흉내 낼 수도 있다는 2가지 의미의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 낫과 손전등을 들고 온 부제 이삼은 오 주여라는 말을 하는데 의심과 믿음에 따라서 2가지 방향으로 해석되게 만들었다는 감독 인터뷰도 확인할 수 있다.
종구의 이야기와 이삼의 이야기는 사실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이삼은 이삼대로 자신에게 혼란을 주는 어떤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그 종착지에서 만난 그 인물이 특정 형상으로 변하면서 메시아가 했던 말을 그대로 읊조린다'
마치 악마가 예수의 흉내를 내며 예수의 제자를 조롱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때 이삼이 '주여'라고 읊조리지 않나. 이것은 해석하기 나름이다.
그를 진짜 악마로 보고 주를 찾는 것, 아니면 예수가 악의 형상을 한 것 뿐이라고 믿고 경배하는 것,
관객도 함께 의심한다. 관객에게 선택권을 줬다
-나홍진

6 침묵하는 신이란 주제

곡성은 왜 일가족이 몰살하고 닭이 3번 울든 아니든 왜 그런 비극으로 가야했냐에 대한 단서를 감독의 인터뷰가 제공한다.
또한 이 주제를 둘러싼 맥락에 대해서는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을 참조할 수 있다.

도대체 당신은 선입니까? 악입니까? 존재는 하시는 겁니까.? 존재하신다면 왜 방관만 하십니까?를 물어보고 싶었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쭈그려 앉은 무명의 초라함, 외로움의 느낌이 그런 느낌이었다. 그게 신의 모습이 아닐까?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더 필요한 게 신이 아닐까 싶었다. 신이 있다면 좀 더 인간미 넘치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나홍진

가까운 가족이 죽었다. 죽지 않아야 할 상황이었는데 죽었다. 당시 '황해'가 끝나고 난 뒤였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들더라.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뭔가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너무 선한 사람이었는데
그렇게 세상을 떠났으니깐. 장례식에서 예배를 드리고 스스로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유를 찾기 시작하면서 확장하고 확장했다. 그렇게 찾은 이유를, 시선을 부감으로 와이드해서 봤더니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1. 영화의 포스터, 예고편만 봐도 "미끼를 물었다"느니 "절대로 현혹되지 말라"느니 하는 낚시에 관련된 말이 핵심문구로 제시되었다. 그래서 이 장면을 감독과 관객간의 낚시를 비유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의견도 있는데 감독이나 평론가 이동진은 본 영화가 관객낚시를 위한 속임수는 쓰고 있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가 영화에서 가장 의문을 주는 포인트라 이런 해석이 나오는 듯하다. 사실 이 장면은 일종의 힌트이다. 그러므로 진실은 초반부터 밝혀져 있었던 것.
  2. 금어초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금어초는 생화일 때는 예쁘지만 마르면 문자 그대로 해골 모양이 된다.
  3. 용랑전, 딱히 특별한 의도는 없었던 듯하다. 감독의 말로는 그냥 소품팀이 가져다 놓은 건지 원래 있었던 건지 모르겠다고.
  4. 해당 장면에서 날뛰는 사람이 아내 이외에 1명 더 나오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 사람은 피해자 중 하나로 이때 날뛴 후 곧 죽은 모양이다. 결론적으로 이 집안 생존자는 안주인 외에 없다.
  5. 안주인이 마치 좀비 같은 모양새다.
  6. 종구와 아내가 차 안에서 사랑을 나누다가 효진에게 들키고 나서 종구가 효진에게 사준 바로 그 머리핀.
  7. 이 장면에서 종구는 희생자의 마지막 몸부림과 비슷한 자세를 취하며 깬다.
  8. 어디서부터 꿈이고 현실인지 명확히 제시하지 않아, 이 장면 역시 여러 의문점을 남긴다.
  9. 정확히 말하면 종구가 성복에게 목격자를 찾았다고 병원에서 얼른 나오라고 전화를 한 사이 무명이 사라짐. 그리고 나서 무명이를 찾다가 노인이 덮치려는 찰나 아다행꿈이었던 것. 그리고 소장이 종구에게 "너 목격자 찾은 거 맞아? 확실해?" 라고 물어보자 종구가 아니라고 답함. 그러자 소장이 화를 내면서 시말서를 쓰라고 한 것. 그러니 노인이 덮친 것까지는 현실이고 그 다음 기억을 잃었거나 무명한테 증언을 들은 다음 놓친 것까지만 현실이고 그 다음은 집에서 꾼 꿈이었을 것인데, 상당히 애매모호한 연출이지만 종구가 쓰러져 필름 끊겼다는 내용이 주변인물이나 종구에게 전혀 없는 것으로 볼 때 노인이 덮친 건 현실이 아니고 꿈인 듯하다.
  10. 흥국의 죽음을 본 후, 성복과 고기집에서 저녁을 먹던 중 종구는 술집 작부로 보이는 한 여성의 목에 두드러기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11. 전날 밤에 효진과 종구의 대화도 듣고 있었다
  12. 어릴 적 일본에 산 적이 있어서 일본어를 할 줄 알았다. 대부분의 한국 영화에서 나오는 일본어가 다 그렇듯 발음도 어색하고 실질적으로 알아듣기만 하지 말은 잘 못하는 걸로 나온다.
  13.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 중 하나로 극장에서 이 장면이 나갈 때 관객석에서는 숨 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14. 기독교적 은유법(metaphor). 왜 메타포인지 작성자는 추가설명 바람 / 기독교에서 3은 완전수를 뜻하며 여러곳에서 등장한다. 특히 3일이라는 시간은 예수가 죽고 부활한 시간을 나타내며 이는 영적(신화적)의미로 예수의 싸움과 승리를 의미한다. 영화에서는 반대로 악마의 승리로 끝났다.
  15.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장면이다. 광기가 느껴질 정도.
  16. 이때 일본인이 의식을 위해 촛불을 둔 트럭 안의 박춘배 시체가 "커헉.." 하는 소리를 낸다.
  17. 응급실에서 뼈가 튀어나와 피를 토하며 죽어버린 흥국과 비슷한 증상을 보여준다. 종구 입장에서 가슴이 무너지는 장면이다.
  18. 온갖 농사 도구들에 전기톱까지 있었고, 심지어 그 중에는 뼈다귀도 있다. 특히 뼈다귀는 감독의 전작 황해가 생각나는 부분.
  19. 굉장히 잔인하다. 뺨에서 뜯겨져 나오는 살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20. 이후 후술하겠지만, 영화상으로는 무명이 일본인을 추격하는 것인지, 그 반대인지 정확하게 나오지가 않는다.
  21. 이 장면을 보면 종구 뒤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무명이 희미하게 보인다.
  22. 종구가 고기집에서 본 그 여자다.
  23. 참고로 여기서 집으로 가서 문 앞에 서있는 효진의 모습이 나오는데, 몰골이 말이 아니다. 그 다음 장면이 압권이다. 어린애가 냉장고의 모든 반찬과 밥솥의 밥을 싹싹 긁어 먹는데, 옆에서 이를 보는 장모와 아내는 완전히 넋이 나가있다. 밥을 다 먹은 효진이 장모와 아내를 한번씩 쳐다보는데, 둘 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그 다음, 효진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식칼을 보게 되고, 식칼을 클로즈업 하면서 장면이 바뀐다.
  24. 무명이 종구의 손을 잡을 때, 종구가 크게 놀란다. 그리고 나서 무명의 손이 클로즈업 되는데, 사람의 피부색이 아닌 듯한 색이다.
  25. 두드러기가 난 여성의 가디건이다. 또한 종구는 무명을 처음 봤을 때 무명이 박춘배의 야상을 입고 있던 것을 기억해낸다.
  26. 이미 무명을 의심하고 있다가 이것들을 본 후 결심을 한 것이다.
  27. 일광이 점괘를 보고 종구의 집으로 가 무명을 만나기 전에, 이삼은 경찰의 연락을 받고 삼촌인 성복의 집으로 가는데 성복은 자신의 집주인 할머니를 살해한 살인범이 되어 있었다. 넋이 나간 삼촌의 얼굴을 보고, 일본인을 찾으러 가겠다고 결심한 듯 하다.
  28. 영화 내에서는 이 부분과 종구가 효진이를 찾는 부분을 번갈아 가면서 나온다.
  29. 태웠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사진인지, 아니면 그와 비슷한 종교적 형태로써 일광이 가지고 있었던 사진인 줄은 알 수 없다.
  30. “괜찮애, 우리 효진이... 아빠 경찰인 거 알지? 아빠가 다 해결할껴, 아빠가...”
  31. 정확히 말하면 감독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32. 하지만 반대로 증거가 없는 말로 이어지는 증언들(외지인의 정체에 대한 증언)이나 종구의 시선이 닿지 않는 부분(훈도시 등) 혹은 종구의 꿈(외지인이 나오는 꿈)으로 영화를 보면서 이어나가면 의외로 얘기가 쉽게 풀려나가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의 양이삼 부제와 외지인의 대화를 유심히 보면 외지인은 "이미 넌 내가 악마라고 확신을 했고, 그에 대한 증거를 보러 온 게 아니냐"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 양이삼 부제는 자신의 믿음을 이야기하지만 외지인이 성흔을 보여주자 쉽게 흔들려버리고 마는 모습을, 무명이 지니고 있는 물건에 흔들리는 종구와 교차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초반의 루카 복음서와 낚시의 미끼 등과 연관지어서 생각해보면 아마도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던 바대로 볼 수 있는 사실과 믿음과 그 이면에 담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사실 포스터에서도 현혹되지 말라고 보는 방법을 상세히 적어 놓긴 했다
  33. 엑소시즘을 다룬 미디어에서 구마하는 과정 중 악령에 씌인 대상이 괴로워하며 구토를 하는 연출이 많은데, 뒤에 밝혀지는 일광과 외지인의 관계 그리고 감독이 밝힌 무명의 아이덴티티를 생각해보면 일종의 복선이다. 연출상으로는 일광이 종구를 구해주려다 무명에게 당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일광을 선한 쪽으로 생각하기, 즉 현혹되기 쉽다.
  34. 떠나지 않으면 너도 이렇게 만들겠다는 무명의 협박성 경고.
  35. 커다란 나방 수천마리. 엑소시즘 영화에서 악령이 자주 소환하는 잔잔한 아이템.
  36. 막상 당황한 일광이 차를 세우고 내렸을 때는 차와 차 주변에 나방들의 시체가 전혀 없다. 다시 종구의 집으로 향하던 중에도 차는 깨끗하다. 나방들 역시 악마나 초월적 존재의 수하, 즉 현실의 존재가 아니라는 암시.
  37. 관객과의 대화에서 감독이 처음부터 한패라고 밝혔다.
  38. 금어초가 주는 상징성과 이미지도 상당하다. 금어초는 살아있을때는 단아하고 예쁜 모습을 자랑하지만, 시들고 말랐을 때는 마치 해골과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종구의 선택과 행동으로 인해 선이 패배하고 악이 승리했음을 암시하는 모습이다.
  39. 이에 대해 더욱 재미있은 성경의 이야기가 있다. 창세기에서 최조의 여자인 이브(하와)가 타락할 때 사탄의 현신인 뱀이 나와서 선악과에 대해 물어본다. 뱀과 대화한 후에 이브가 그 열매를 보니 이전과 다르게 보기에 탐스럽고 먹음직 스러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40. 이삼이 집까지 찾아가 본 정황은 따로 설명되지는 않지만, 뭔가 예감한 듯 싶다. 왜냐하면 외지인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복 역시 미쳐서 집주인 아주머니를 살해했다고 동료 경찰들이 이삼에게 알렸기 때문. 미친 삼촌을 보며 복수를 다짐했을지도 모른다.
  41. 이때 읊는 대사는 모두 루카 복음서 24장으로, 오프닝에 나온 구절에서 예수가 하는 말들이다.
  42. 일본 영화에 나오는 오니 같은 이미지를 느낄 수 있다.
  43. 역시나 딸의 식칼빵에 희생된 것으로 보인다. 정신이 붕괴된 딸은 몸을 들썩이지만 종구는 꼼짝도 않고 입만 벙긋거리며 목에서 억지로 짜내듯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무명의 모습이 마지막으로 비춰지는 모습에서 소리로 들리는 효진이를 부르는 종구의 말의 마지막 말은 찢어지는 단말마처럼 들린다.
  44. 딸과 같이 놀이기구를 타는 장면을 회상하며 '효진아, 괜찮어. 아빠 경찰이니께 다 해결해줄겨' 라고 중얼거리는데, 이 문구는 사실 공식 포스터에서 종구라는 캐릭터의 대사로 찍혀 나와 있었던 대사다. 그러니까 영화보기전부터 이미 스포일러였다 감독 말로는 삭제되었지만 이 대사 앞 전에 효진이 '나 이상한데 어떻게 좀 해 달라' 라고 애원하는 장면이 있었다 한다.
  45. 딸은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있었는데, 초반에 등장해서 살인을 저질렀던 피투성이가 된 남자도 이런 상태로 경찰들에게 발견되었다.
  46. 둥지 모양의 형상 가운데 종구의 딸을 놓고 굿판을 벌인다.
  47. 첫 번째 피해자의 집에서도 새 둥지 모양이 발견된다. 2번째 피해자인 미쳐버린 젊은 며느리도 시어머니의 강권으로 동일한 굿을 했을 것이다. 이는 무명(천우희)의 대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굿을 하기 싫어했는데, 할매가 하자고 해서 했는데, 다 죽어버렸어. 할매가 대들다가 제일 잔인하게 죽었지. 대갈빡이 뿌셔져서…' 또한 외지인의 주술실에서와 흡사한 새끼줄 쳐 놓은 모습이 효진을 위한 굿 장면에도 나온다. 이 양식을 벗어난 곳은 다른 무당이 굿을 한 걸로 추정되는 박춘배 집이다. 그리고 우물에서 이때 굿을 했던 무당의 시체가 건져진다. 즉 다른 희생자들과는 다르게, 일광이 아닌 다른 한국 무당이 굿을 한 것이다. 박춘배만 외지인이 따로 주술을 거는 듯 나오는 것도 혹 이와 연관이 있을지 모른다.
  48. 장모 역시 귀신이라 생각하고 영화를 보아도 내용상 별 무리없이 이어진다. 이것 역시 감독의 의도일 수도.
  49. 시작부에 종구가 밥을 먹는 씬에 효진이 '누가 죽었디야?'라고 물으며 앉는데 이때 종구의 장모가 고개를 끄덕이고 효진은 할머니를 바라본다.
  50. 하지만 번개 맞은 건강원 남자의 아내가 '평소 남편이 건강식품을 많이 먹었다' 고 하는 장면이나, 종구의 딸이 병원에서 퇴원한 후 집에 왔을 때 약 같은 액체를 마시는 장면이 있다. 버섯 달인 물일지도. 그 후 증세는 더욱 악화된다.
  51. 이 설을 따르게 된다면 과거에 개봉한 극락도 살인사건과 비슷한 플롯이 된다.
  52. 현재도 재배는 불가능하고 개를 사용해 채집. 자세한 사항은 항목 참조. 여담으로 문명5에서는 사치자원 이름이 송로버섯으로 나옴에도 불구하고 그래픽은 돼지 사육장(...)이라 혼돈의 카오스를 겪은 유저도 있었다고...
  53. 효진과 마찬가지로 이리저리 몸을 꼬고 틀다가, 뼈가 부서져 몸을 뚫고 나오며 죽었다.
  54. 일광은 외지인이 내세우는 하나의 패라고 볼 수 있으므로 무명도 맞패로 종수를 내세운 것이다.
  55. 본인이 광인들을 부린 것이라면 당황할 필요가 없다. 어디로 갔는지 스스로 알고 있을 테니.
  56. 사실 출처가 불분명한 논란이나 의문점도 포함하고 있으나,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거나 돌이켜 생각해볼 만한 문제들이다.재미를 위해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
  57. 자의적인 문제점 제기와 그에 대한 해석, 반박, 재반박 등이 이뤄지고 있으니, 편집 시 출처를 명확히 밝힐 것
  58. "그리고 그의 자녀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겠다. 그리하여 내가 사람의 속과 마음을 꿰뚫어 본다는 것을 모든 교회가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너희가 한 일에 따라 각자에게 갚아 주겠다." (가톨릭 성경)
  59. 작중에서 일본인 방에 불상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신토의 일파 또는 밀교를 믿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를 바탕으로 하면 불교에 등장하는 야차나 그에 영향을 받아서 탄생한 일본의 오니를 떠올릴 수도 있다.
  60.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을 모두 갖춘, 둘을 분리할 수 없는.
  61. 극 중에서 고라니를 뜯어먹는 악귀의 모습을 한 일본인을 마주친 건 건강원 아저씨와 종구 2명 뿐인데, 실제로 고라니 시체가 발견된 것과 영화 말미에 무명이 종구에게 '그게 꿈인 줄 알았냐'는 대사를 던지는 걸로 보았을 때 2번 다 무명이 나타나서 일본인을 쫒아냈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다만 이것도 실제로 외지인의 모습을 보았다기 보다는 일종의 예지몽을 꾼 것일 수도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62. 무명이 살짝 언급만 하는 정도이다.
  63. 익투스, 오병이어의 기적
  64. 이전에는 생선은 곧 기독교를 상징하며 이를 먹는 것은 효진이에게 악마같은 무언가가 있는 것을 암시한다는 독자 연구 내용이 있었으나, 기독교적 세계관과는 맞지 않는 내용이므로 줄였다. 애초에 기독교에서 물고기에 그 정도 상징성이 없고, 기독교에선 예수나 하느님을 악마와 대응시키지 종교 자체를 악마와 대응시키지 않는다. 예수를 상징하는 어린양이나 흰비둘기면 빼박이겠지만, 그걸 먹는게 악마를 상징한다고 보긴 힘들다. 성체성사에서 알 수 있듯,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건 성스럽다는 의미이다. 자격 없으면 못 먹는다
  65. 이는 곡성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나오는 루카 복음서 24장 39절 직후인 24장 42~43절에 서술되는 내용이다.
  66. 라틴어로 Dominus meus et Deus meus라고 한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이 한 구절을 가지고 밤새도록 기도하기도 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