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프볼]이충희-신동파 지면 대담

  • 입력 2001년 12월 17일 19시 53분


60-70년대 주자 신동파, 그리고 70-80년대를 풍미했던 이충희가 한 방송사의 해설위원으로 인연을 맺었다.

그 동안 많은 만남이 있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이들이 한자리에 있었던 적은 없었다. 어쨌든 한국 농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이들이 한 자리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흥분되는 일이다. 한국 농구의 어제와 오늘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담이 있었던 날은 지난 11월 8일(목)로 프로 농구 정규리그가 개막 직후였다. 한창 바쁘게 일할 시기여서 어렵게 맞춰진 날짜였다. 장소는 올림픽 공원 안의 조용한 한식집이었다.

신동파 위원은 ABC대회에서 한국이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한 1969년 11월의 방콕 대회 필리핀과의 결승전에서 환상적인 슛감각으로 혼자 50점을 쏟아 부으며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그의 한 경기 최고 득점은 휘문고 시절, 홍대부고와의 경기에서 기록한 57점이다. 이를 계기로 고등학생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국가대표에 선발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이충희 위원은 고려대 2학년이던 1978년 처음으로 대표팀에 발탁되어 13년간 대표팀의 주득점원으로 한국 농구를 이끈 당대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다. 이충희 위원의 한 경기 최다 득점은 1987년 12월 17일 농구대잔치 명지대전에서 넣은 67점이다. 이 기록은 아직 프로에서도 깨지지 않는 대기록이다.

-요즘 근황을 간략하게 얘기해 준다면?

이충희=많이 바쁘죠. 신문에 고정 칼럼 쓰고, 토토 예상지 진행하고, 거기에 해설까지 하니까요. 쉴 틈이 없어요. 특히 일요일 밤이 제일 바쁘죠. 다음 주말 경기를 예상을 마감해야 하니까요.

신동파=난 이 위원에 비하면 덜 바빠. 하지만 경기는 많이 보려고 하지. 참 아직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예상과는 많이 다르더라고.

이충희=맞습니다. 하지만 아직 초반이니까요. 예상이라는 것이 시즌 전체를 보는 것이니 좀더 지켜봐야겠죠. 체력이 많이 중요할 거에요. 선수들 이동 거리도 많고...

신동파=그래. 우스갯소리로 우리가 현역 시절 이동하는 버스에선 술 냄새가 났는데, 요즘엔 한약 냄새가 나. 그만큼 몸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고.

-근래에 들어 많은 스타플레어들이 대표팀 차출을 꺼리고, 때문에 대표팀 성적도 기대에 못 미치고 있습니다.

이충희=우리가 뛸 당시에는 가슴에 태극 마크 다는 것이 일생의 소원이었어요. 그것이 운동하는 선수로서 최고의 영광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전혀 설득력 없는 얘기가 돼 버렸죠. 프로가 생기면서 선수들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말하자면 우리 현역 시절에는 나라가 있고, 가정이 있고, 자신이 있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자기 중심이 돼 버렸죠.

신동파=명예가 필요 없어진 셈이지. 내 경우를 생각해 보면 지금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야. 내가 31살에 은퇴했어요. 지금으로 치면 조성원, 이상민 정도의 나이야. 그 이유는 지금같이 프로라든가 그 이상 할 것이 없었어. 대부분 금융팀에서 뛰었는데 어차피 돈하고는 무관한 거야. 대표팀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다든지 명예를 얻으면 바로 은퇴했지.

이충희=요즘 명예가 무슨 필요인가요. 돈의 논리가 우선되다 보니 대표팀 차출도 문제가 생기고, 선후배간의 위계질서도 많이 깨지고 있어요.

신동파=하긴...

예전엔 가슴에 태극기를 달 수 있다는 긍지가 대단했는데.

이충희=선배님들은 목적이 대표팀에서 뛰는 것 하나이기 때문에 운동을 참 열심히 했어요. 제가 선배들이 운동을 잘했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런 점 때문일 거에요.

신동파=대표팀 차출을 꺼리는 것은 프로가 생긴 후의 현상으로, 선수들의 마음 자세도 문제지만 구단에서도 달가워하지 않죠. 그러니까 국제대회 나가서 성적이 나올 리가 없잖아요. 지난 ABC 대회에서 연장 끝에 3위를 하긴 했지만, 만일 졌다면 지난 1961년 자카르타 ABC 대회 4위 이후 최악의 성적이 될 뻔했어요. 그랬으면 40년을 후퇴한 셈이죠.

이충희=마음가짐이 가장 큰 문제예요. 사실 대회 한번 치른다고 크게 문제될 건 없거든요.

-대책이 없는 것입니까?

신동파=아직 구체적으로 방안을 모색한 적은 없지만, KBL 김영기 부총재하고 얘기를 나눠 본 적은 있어요. 타당한 이유 없이 대표팀 차출에 불응할 경우에 정규리그 몇 게임 출장 정지 등의 제재 조치를 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얘기가 오갔지요.

이충희=제 생각도 어떤 제재 조치를 만드는 것이 현재 유일한 방안인 것 같아요.

-벌써 프로가 출범한지 5년이 됐습니다. 잘된 점과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을 것 같은데.

이충희=프로를 시작했다는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에요. 선수 수명이 연장되고, 환경도 좋아졌죠.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죠. 이제는 한 차원 더 업그레이드시킬 때가 됐습니다. 팬들을 농구장으로 모을 수 있는 수준 높은 플레이를 보여줘야 합니다.

신동파=프로가 되면서 한가지 아쉬운 점으로 감독의 권위가 많이 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해요. 선수나 성적 중심으로 팀이 돌아가니까 생긴 문제겠지요.

이충희=뿐만 아니라 선수들 사이의 선후배 관계도 많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실업 시절보다는 팀을 많이 옮기다 보니까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연봉으로 선수의 가치가 책정되는 탓이 크겠지요. 많이 안타까워요. 사실 다른 스포츠가 먼저 프로가 되면서 겪은 일로 농구는 이런 현상들이 생기지 말았으면 했는데...

-선수들의 수준은 올라갔다고 보십니까?

이충희=거기에는 동감하기 힘들어요. 선수들 스스로 기술을 개발하고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플레이를 펼쳐야 하는데 그런 노력들이 부족합니다. 외형적으로는 좋아졌지만 실질적인 농구 수준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죠. 아마 누구보다도 팬들이 더 잘 알 겁니다. 그리고 선수들이 실력보다 과대 포장된 부분이 많아요. 외양만 프로지 마인드는 아마추어에 머물러 있는 경우도 많죠. 진정한 프로라면 끊임없이 자신을 연마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연봉에만 연연하는 모습은 보기가 좋지 않아요.

-좋아진 부분이 없나요?

이충희=아무래도 힘 좋은 용병들과 상대하다 보니까 그들에 대한 적응력은 좋아졌죠. 예전에는 국제무대에서 피부색이 다르고 큰 선수를 보면 피해 다닐 정도였거든요. 그런 두려움이 많이 없어졌죠. 국제 무대에서 더 나은 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 계기는 마련된 셈입니다.

-용병 도입은 괜찮은 판단이었다고 생각하는지요?

이충희=프로는 아마추어와 뭔가 확실히 달라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힘있는 선수들이 국내에서 뛰면서 팬들에게 ‘다른’ 볼거리를 제공했다는 점은 좋았어요.

신동파=하지만 용병에 너무 많이 의지하고 있는 것은 문제점이야. 용병이 2명이면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 정도여야 하는데, 이건 60-70%이다. 기술이 필요한 곳은 대부분은 용병들이 책임지고 있는 현실은 농구선수 출신의 한사람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지. 물론 그렇지 않은 팀도 있지만 어떤 팀은 국내 선수들이 용병에게 볼이 가기 위한 정거장 역할에 불과해 보여. 용병에 대한 비중은 낮춰야 한다고 생각해.

-용병에게 의지하게 된다는 것은 역시 팀 성적 때문이고, 성적은 코칭스태프의 역량과 직결된다는 관점 때문에 자꾸만 심화되는 것이 아닐까요?

이충희=잠시만 성적이 좋지 않아도 감독 경질설이 나오고, 한 시즌 성적이 나지 않으면 감독을 바로 바꾸는 풍토가 아쉽습니다. 사실 그 감독이 추구하는 농구가 자리잡기까지는 몇 시즌이 필요해요. 구단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감독들을 지켜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신동파=우리들은 모든 면에서 여유가 부족한 것 같아.

-다른 문제점은 없나요?

신동파=역시 자세가 문제야. 프로 선수들은 프로다운 점이 있어야 한다고. 프로라면 어떤 상황에 있어서도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거지. 예를 든다면 미국의 드림팀이 한국대표팀과 경기를 한다고 했을 때 그들이 설렁설렁하겠어. 200점을 넣어도 최선을 다할 거라고. 우리는 아직도 그런 점이 부족해.

이충희=스타라는 것은 경기장에서 게임을 잘했을 때 스타인 것입니다. 이름만 가지고 스타 행세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우리 선수들에겐 실력보다 거품이 많이 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름만 가지고 스타면 저나 신 위원님이나 아직도 스타여야 맞죠. 스타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프로의 지역방어 부활에 대한 의견은...

이충희=팬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한 일환 같은데. 다른 것은 잘 모르겠고 우리도 프로에서 조심스럽게 적용해야 한다고 보는데. 국제 대회에 나가면 우리 선수들은 지역방어에 대한 적응력이 없어. 이런 점 때문에 맨투맨 수비만 인정하는 현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지.

-프로의 전망은 밝은 편이라고 생각하나요?

이충희=요즘 어린 친구들에게 농구와 배구 중에 어느 종목의 선수가 되고 싶으냐고 물으면 대부분 배구라고 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프로가 시작되기 전에는 선수로 대학을 졸업하면 취직이 거의 됐어요. 지금은 프로로 가지 못하는 선수에겐 대책이 없습니다. 대학 졸업생 30-40명중에 상당수가 취업을 못하고 있어요. 이런 현실 때문에 어린 선수들은 농구를 꺼리고 있죠.

신동파=경기 자체의 박진감도 많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야. 3쿼터까지 점수차가 많이 벌어지면 4쿼터는 포기하는 경우가 많잖아. 이렇게 선수들이 대충대충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곤 하는데, 그러면 프로가 아니지. 스코어야 감독이 선수 기용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고, 일단 코트에 나선 선수들은 자신의 기량을 최대한 보이고 들어와야 한다고.

- 해결 방안으론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충희=2군제도가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습니다. 구단에서는 예산 문제를 생각하겠지만, 현재 선수들 연봉이 전체적으로 높은 편입니다. 거품이 들어있는 거죠. 그런 것이 빠지고 제대로 된 평가가 있을 때 프로농구가 한층 성숙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2군 선수단 운영비는 그리 많이 들지 않습니다. 1군에서 성적이 좋지 않거나 무리를 일으킨 선수는 내려보내 2군에 있는 동안은 따로 책정해 놓은 2군 연봉을 주는 겁니다. 선수들이 경쟁심리도 생기고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거죠.

-현행 프로 농구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가 새로운 스타가 없다는 점입니다. 이상민, 우지원, 서장훈, 문경은, 전희철 등 프로 농구를 대표하는 스타들 밑으로는 없다 시피한데요. 그것은 대중에게 어필한 메리트가 적다는 애기도 되는데...

신동파=선수들 스스로 자기 계발에 소홀히 한 부분도 있고, 한국 농구 시장 자체의 한계도 있어요.

이충희=맞습니다. 실제로 새롭게 치고 올라오는 선수가 없어요. 매스컴의 관심에서 대학 농구가 멀어진 부분이 제일 아쉽죠.

-또, 상대적으로 아마 농구는 침체 일로에 있습니다.

신동파=프로가 생기면서 예견된 문제 중의 하나에요. 프로에서 아마추어 농구를 소홀히 한 부분도 있고요. 하지만 이제 공조가 이루어지고 있고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요. 농구협회와 KBL 사이에 대립이 많았는데 많이 좋아졌고.

이충희=아마추어가 잘돼야 한다는 것은 바로 프로의 생명하고 연결되는 문제라 어느 누구도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대학에서 스타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프로에서 스타가 나오지 않습니다.

신동파=국내에서 농구가 인기를 끌었던 것은 1984년 농구대잔치가 생기면서였어요. 프로만큼 많지는 않았지만 당시도 겨울 내내 장기 레이스를 펼쳤지. ‘오빠부대’가 생긴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어. 연예인들보다 인기가 더 했으니까. 그런 대중의 인기가 없었다면 프로도 생기기 어려웠을 거야. 초심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어.

이충희=그렇지요. 현재 선수들은 프로라는 울타리 안에 좋은 여건과 대우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지만 그 바탕을 만들어준 것은 그 위의 선배들입니다. 그들이 수년간 쌓아온 토대를 바탕으로 프로가 생길 수 있었던 거죠.

-해설위원으로 농구를 보면 현장에 있을 때와 많이 다른가요?

이충희=현장에서 농구를 좀더 알고 난 다음에 전문해설위원으로 나서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젊은 나이에 해설위원 제의를 수락한 것은 현장에서 좀 떨어져서 농구를 보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지난 시즌 감독직을 놓고 나서 신문 논평의원으로 농구를 보면서 시야가 많이 넓어졌는데. 그런 기회를 한번 더 갖게 된 셈입니다.

신동파=이 위원은 기회가 생기면 현직(감독)에 복귀해야지. 지금은 나하고 같이 해설을 하고 있지만 전문적인 해설위원으로 남아선 안돼. 좀더 현역에 있다가 나중에 와도 충분해.

이충희=저는 감독직에 있으면서도 선수에서 은퇴한 다음 코치를 거치지 않고 바로 감독에 올라서서 어딘지 중간이 비어버린 느낌을 가지고 있어요. 이런 야인 생활이 그런 부분을 메워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동파=농구가 좀더 잘 보일 거야.

이충희=예. 처음에는 깜짝 깜짝 놀랐어요. 내가 이런 부분을 놓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 동안 감독 제의가 없었는지?

이충희=있었어요. 하지만 안 맞는 부분이 많았고, 그리고 차분히 밖에서 좀도 농구를 보기로 했어요. 현장에 돌아가면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농구 해설도 물론 매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후진양성에 관심이 많고 나이도 그렇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해설위원으로 일하는 것은?

신동파=함께 일하니까 재밌지. 혼자 할 때 보다.

이충희=제가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신위원님이야 베테랑이시니까요.

신동파=처음에는 방송 용어 때문에 힘들 거야. ‘한골 먹었다’라고 말하면 다 알아듣지만 ‘두 점을 실점했다’라고 해야 해. 그런 것이 힘들지. 거기에 각 팀의 특성도 알아야 하고.

이충희=힘들어요. 그래도 이쪽 팀 감독도 돼 보고, 다른 팀 감독의 입장에 서보기도 하는 것이 재미있어요.

신동파= 어떨 때는 단어 하나가 생각이 안 나 고생하는 경우가 있어. 그때 아나운서가 거들어 주면 고맙지. 좀 지나면 이제 아나운서가 말하기 전에 치고 들어가라고. 그걸 더 좋아해.

-해설위원 입장에서 볼 때 이번 시즌 볼거리는?

이충희=아무래도 신인들의 활약인 거 같아요. 김승현, 송영진, 전형수, 임영훈, 신동한 등의 플레이를 보면 벌써 신인들이 아니에요.

신동파=올 시즌은 신인들이 활력을 넣고 있어. 맛있는 조미료 역할을 하고 있는 거지.

- 모쪼록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고, 이번 시즌 좋은 해설 부탁 드립니다.

신동파-이충희= 감사합니다.

(제공:http://www.jumpba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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