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친화적인 요리와 와인을 즐길 수 있는 담백한 소통 공간 `TBD`

입력
수정2019.11.18. 오후 3:37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TBD 샌드위치
[미식부부의 맛집기행-86] 간판이 없습니다. 화려한 꾸밈도 없습니다. 밖에서 언뜻 보면 음식점인지, 카페인지, 사무실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주변에 특별한 건물이 없어 내비게이션에 의지하지 않으면 조금 헤매야 찾을 수 있습니다. 다양한 업종 가게들이 인근에 즐비해 이런 데 뭐가 있을까 싶은 서울 성수동 이면도로에 있습니다. 오토바이부터 화물차, 승용차 등의 왕래가 잦다 보니 다소 어수선하기도 합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TBD'와 그 주변 풍경입니다.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들은 길을 걷다 우연히 들리는 분보다 단골손님이거나 지인들 소개,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분이 대부분입니다.

어떤 집을 시간 내서 찾아오는 분들은 뭔가 '이유'나 '목적'이 있게 마련입니다. 같은 집을 반복해서 찾는다는 것은 과거 경험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고요. TBD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특별합니다. 'TBD'라는 이름부터 독특하지요. 주인장에게 물었습니다. '미정'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To Be Determined'를 빌어 가게 이름을 지었다는군요. 가게 오픈을 준비하며 뭐라고 이름을 지을까 고민을 하던 차에 외국인 친구가 아직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했으면 아예 TBD로 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답니다. 그게 자연스럽게 상호로 낙찰되었고요.

TBD 김기환 대표(우), 박정재 셰프(좌)
'미정'이라는 이름, 이 집과 참 잘 어울립니다.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은 목표나 방향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의미도 있지만 고민하는 '과정'에 서 있다는 현재 진행형 뜻이 있지 싶습니다. 뭔가 결정이 되면 정형화된 틀에 맞추려고 애쓰게 마련인데 아직 정해진 것이 없으니까 다양한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를 갖고 있다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고요. 밥 먹고 차 마시고 와인도 즐길 수 있는 이 집의 정체성(identity)을 오너인 김기환 대표(39)는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김 대표는 패션 플랫폼 회사인 'About Blank & Co.'를 경영하면서 TBD를 오픈한데서 알 수 있듯이 다방면에 걸쳐 두루 관심이 많은 열정 맨입니다. "TBD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교감하고 교류하는 공간입니다. 제가 패션 쪽에서 20년 가까이 일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요리와 패션은 일맥상통하는 면이 많이 있더군요. 의류도 원단이 일단 좋아야하고 이를 디자이너가 감각 있게 디자인해서 정성스럽게 가공해야 멋진 옷이 만들어집니다. 요리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는 점에서 패션에서 배운 전략과 감각을 TBD에 많이 적용하고 있습니다."

가게 살림을 주도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이는 박정재 셰프(29). TBD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용어로 부연설명해 주더군요. "TBD는 점심때는 샌드위치 카페, 저녁에는 내추럴 와인 바(natural wine bar)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박 셰프의 친절한 설명 중 유난히 귀에 꽂히는 단어가 '자연적(natural)'이었습니다. 음식에서부터 와인, 커피에 이르기 까지 TBD만의 특징을 꼽자면 바로 '자연적'이라는 것입니다.

"요리를 만들면서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너무 상업화, 획일화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저런 고민을 하던 중 '자연'에서 답을 찾게 되었습니다. 가능하다면 최대한 자연방식으로 돌아가 보자는 것이지요. 식재료를 구하고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인공적인 것을 지양하고 자연 그대로의 단순함과 담백함을 지향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저희는 '어떤 음식이냐?' 보다 '누가 만들었는지?'를 더 중요시합니다.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음식은 설사 맛이 있더라도 신뢰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누가 만들었는지를 명확히 하는 것에서부터 내추럴한 음식은 시작된다고 봅니다. 좀 더 단순화시키면 집밥처럼 우리가 잘 알고 있고 친숙한 맛이 바로 내추럴한 음식이 아닐까 합니다. TBD가 추구하는 음식입니다."

내추럴 와인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와인으로 옮겨갔습니다. TBD는 와인도 내추럴 와인(natural wine)을 추구하고 있으니까요. 내추럴 와인은 일반 와인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내추럴 와인은 자연 상태 포도로 만든 와인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잡초를 뽑지 않은 야생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를 원료로 사용하고, 효모도 배양 효모가 아닌 포도 껍질에 붙어 있는 효모를 발효시켜 만드는 와인을 말합니다. 일체의 인공 첨가물을 넣지 않고요. 3년간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살충제를 사용치 않으며, 스테로이드 성분이 들어 있지 않으면 흔히 유기농(organic)이라고 하는데, 내추럴(natural)은 이보다 훨씬 친자연환경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추럴 와인과 그렇지 않은 와인을 어떻게 구별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박 셰프가 내추럴 와인 한 병을 들고 와 시음을 권하는데 라벨에 어떤 표시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드러나게 표시된 건 없지만 맛을 보면 다릅니다. 기본적으로 와인 생산자의 양식을 믿습니다. 오랜 거래를 통해 저희만의 해외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고요." 와인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부족하지만 박 셰프가 권해주는 내추럴 와인은 설명을 들어가면서 즐겨서인지 일반 와인보다 부드럽고 청량한 맛과 향을 갖고 있다는 좋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와인 애호가분들 중에는 TBD를 거쳐 프랑스로 직접 날아가 내추럴 와이너리를 찾아보시는 분들도 계시다니 맛에 일가견이 있는 분들의 열정에 그저 탄복할 뿐입니다.

TBD는 김 대표나 박 셰프 공히 부자연스러운 꾸밈과 거리를 두고 있는 사람들이다보니 가게를 찾는 고객도 비슷한 취향을 가진 분들이 많아 보입니다. 20여 석밖에 되지 않은 작은 공간에 칸막이도 없고 그냥 사각 테이블 몇 개 놓여 있는 것이 이 집의 전부인데도 번잡함 속에 여유와 고즈넉함을 추구하는 손님들이 모여 샌드위치나 요리를 먹고 커피를 마시고 와인의 맛을 음미합니다. 고객층은 색다름을 추구하는 20·30대 손님이 많지만 40·50대 이상 중년 단골도 적지 않습니다.

TBD 전경


TBD에서는 음식뿐만 아니라 서비스도 담백합니다. 과한 데서 오는 부자연스러움이 없어 절제된 서비스라는 말이 더 적확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도 따뜻함과 편안함이 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오너인 김 대표의 경영철학도 한 몫을 했지 싶습니다. "본점에 이어 2, 3호점을 오픈했는데 본인의 희망으로 그만둔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본인의 의사에 반해 퇴직한 직원이 없습니다. 그저 고마울 따름인데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동료 직원을 신뢰하지만 강조하는 건 딱 두 가지. 친절과 청결입니다. 입맛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이 두 가지만은 이 업에서 반드시 지켜야할 기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컴퓨터를 공부하다 음식에 빠졌고, 맥주를 좋아하다 이제는 와인에 매료되어 있는 박 셰프는 지금 하고 있는 일뿐만 아니라 다양한 특색 있는 시도를 하는 가게가 많은 성수동이 주는 매력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답니다. 경상도 사투리가 섞여 있어 친절한 설명을 100% 모두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낮은 목소리로 와인과 커피와 음식과 일상의 삶에 대해 그 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기 십상입니다. 바쁜 일상에 �i기며 허덕이고 살다가 잠시 내려놓는 여유를 갖고 싶을 때 성수동 TBD를 찾아가 보세요. 따뜻한 공간에서 친구와 담소를 나눠도 좋고, 내추럴 와인을 청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박 셰프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눠도 좋으실 겁니다. 이 집을 몰라서 못가본 분들은 있을 수 있어도 한번 방문했던 분은 다시 찾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는 공간입니다.

♣ 음식점 정보
△메뉴
〔점심〕12:00~15:00
- 무화과와 살구 샌드위치 10,000원, 선드라이드 토마토와 주키니 샌드위치 11,000원, 표고버섯과 파슬리 샌드위치 11,000원, 세스크멘슬 콜드컷과 우메보시 크림 샌드위치 12,000원
- 샌드위치와 커피 +2,000원
- 차가운 시나몬 펌프킨 스프 10,000원
〔저녁〕18:00~00:00
- 차가운 시나몬 펌프킨 스프 12,000원, 코티지 치즈 13,000원, 스파이스 에그 플렌트 19,000원, 로스티드 컬리플라워 20,000원, 돌문어 25,000원, 스텔라 마리스 오이스터 25,000원, 새우 보리 리조또 22,000원, 뇨끼 22,000원, 버터 치킨 29,000원, 포크 넥 31,000원
△위치
- 서울 성수동 연무장길6(뚝섬역 5번 출구에서 375m), 0507-1339-3334
△영업시간: 12:00 ~15:00, 18:00 ~24:00
△규모 및 주차: 24석, 주차장 없음(대중교통 이용 권장)
△함께하면 좋을 사람: ① 가족 ★, ② 친구 ★, ③ 동료 ★, ④ 비즈니스 ★

♣ 평점
맛    ★ ★ ★ ★ ★
가격   ★ ★ ★ ★ ★
청결   ★ ★ ★ ★ ★
서비스  ★ ★ ★ ★ ☆
분위기  ★ ★ ★ ★ ☆

[박정녀 하나금융투자 롯데월드타워WM센터 상무·유재웅 을지대 교수]

▶기사공유하고 코인적립하세요 'M코인'
▶네이버 메인에서 '매일경제'를 받아보세요 ▶뉴스레터 '매콤달콤' 구독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경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