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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기 쌤, 진심어린 충고와 걱정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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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기 쌤, 진심어린 충고와 걱정에 감사합니다

[북 카페에서 띄우는 인문학 편지(14)] 그루가 보내는 인문학 편지

어른다운 목소리와 실천

터기 쌤의 보살핌과 걱정이
저를 안심 시키고 위안이 됩니다


“아빠, 나 학교 안 다닐 거다. 가면 뭐해? 재미도 없고 수업 시간 잠만 자는데…. 쌤이 인제 야단도 안친다. 또, 대학은 가면 뭐해? 돈 아깝게. 차라리 일하면서 돈 벌 거다. 나 그리 생각 정했으니 맘 바꿀 생각 말고 건드리지 마라!”

며칠 전 여름 방학 기념으로 식구들과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가 뒤 테이블에서 들려온 대화 중 일부입니다.

순간, 또 한 명의 저를 만난 것 같아 고개를 살짝 돌려보니 평범하게 보이는 여학생이었습니다. 누가 보아도 그런 엄청난 발언을 할 것 같지 않은 평범하고 어여쁘기 짝이 없는 아이였지요. 고 1 정도 될 듯한 여학생. 그 아이는 자기 할 말을 주르륵 쏟아내고 태평하게 상 아래로 다리를 뻗고 앉아서 스마트폰에 빠져있더군요.

그럼 그 아이의 아빠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그래 네가 생각한 거면 그리해야지 어쩌겠냐?”

의외로 덤덤하더군요. 아마도 이런 비슷한 대화가 자주 오고간 상태이며 거기서 더 반대하거나 타박을 한 대야 더 나아질 것이 없었던 것 같아요. 아니면, 그 분의 생각 또한 아이와 같았을 수도 있고요.

늦은 저녁이라 배가 고팠음에도 그 장면 이후, 밥맛이 없어지고 어깨부터 발끝까지 힘이 죽죽 빠지고 말았습니다.

터기 쌤, 지금 우리에겐 저보다 더 헤매는 그루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어찌 보면, 그 동안 우리가 너무 대학 열풍에 맹목적으로 뛰어든 결과가 아닐까요? 대학 졸업장이 황금의 티켓이라는 사회적 장치로 생각하고 무조건 가야 할 통과 의례로 집착했던 거지요. 한 학기에 400만~500만원에 육박하는 등록금을 들여가며 거주비용과 생활비까지 감당하면서 대학 생활을 감내해 내야 할까요? 바꾸어 말하면 대학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따져보지도 않은 채 사회적 인증서를 거머쥐기 위해, 성인 시기의 보험을 들 듯 몰빵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 여학생 그루의 경우도 따져보면 옳은 선택을 하고 있는 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대학교를 안 갈 테니 고등학교도 다닐 필요가 없다? 나는 수업 시간에 마음대로 잠을 잔다. 야단치지 않는 선생님을 핑계로 학교에 갈 필요가 없다? 그리고 내 하고 싶은 대로 할 텐데 그건 우선 스마트 폰으로 무언가를 하는 일이다. 언뜻 유리창에 비친 화면은 움직임이 빠른 영상인 것으로 보아 게임 장면임이 틀림없었습니다. 어찌 보면, 이 아이는 곧 저의 모습이기도 한데 말입니다.

터기 쌤, 저 여학생 그루의 이야기가 남 이야기로 들리지 않겠죠? 저조차도 고 1,2학년. 나아가 3학년인 지금까지도 학교와 공부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방황을 많이 했잖아요. 물론 수시 전형이 다가오는 현재까지도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요.

그런데 터기 쌤, 선생님이 그 동안 제게 인문학 편지를 보내 주셔서 지루하고 힘든 고3 생활을 견디고 있습니다. 물론 제 주위에 계시는 부모님과 학교 선생님, 때로는 주말 학원 선생님 등 많은 분들이 저의 성장을 돕고 있지요.

하지만 선생님께서 들려주시는 인문학 편지는 제가 누구인가를 알아 가는데 큰 도움을 주시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느끼게 해 주셨습니다. 또한 우리 또래 아이들이 그러하듯 감정 조절의 어려움, 충동질, 인내심의 부족, 심지어는 자살 충동까지도 헤아려 근거 있는 이유로 다독거려 주셨습니다.

그 동안 편지로 도로시 데이부터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제게는 교과서에 나올까 말까, 기억이 날까 말까하던 인물들의 목소리를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은 내용이라도 위대한 인물이 들려준다 생각하니 잔소리로 들리지 않고 더 믿음이 가고 품격이 느껴진 것은 사실입니다.

저에게도 사실은 저만의 철학을 이루기에 충분한 자양분의 추억이 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학원을 다니지 않았습니다. 중 1때까지 엄마랑 공부를 해 왔고 누가 봐도 공부 습관이 잘 들어있었습니다. 책을 읽어도 끝을 볼 때까지 읽었고, 보던 책을 다 읽지 않으면 잠을 안 자고 읽었습니다. 저의 엄마께서도 어떤 일이 있어도 계획된 대로 해야 한다고 가르쳤지요. 또한 이웃에 살던 사촌 누나랑 동생 등 다섯 명이 주말마다 모여서 같이 공부했지요. 한 주 동안 토요일을 손꼽아 기다리고, 토요일 아침을 일찍 먹고 있으면 사촌들이 저희 집으로 우르르 와서 공부하고 밥 먹고 놀기도 했습니다. 가끔은 영화도 보고 운동도 하면서 즐겁게 지냈죠.

우리 다섯 명의 보모 역할을 맡으셨던 엄마는 그 날 주어진 학습지를 다 풀거나 그날 읽을 책을 다 읽었는지, 그리고 독후감 한 바닥을 다 썼는지 확인하고 할 일이 완료되면 간식과 함께 휴식 시간을 주셨습니다. 그 때 몸에 밴 규칙적인 생활과 스스로 공부하는 보람, 책 읽기 습관이 저를 크게 성장시켰습니다.

그러다가 중2로 올라갈 때, 삼촌이 다른 지방으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사촌들도 함께 이사를 가게 되어 저는 다시 어린 동생과 함께 남게 되었습니다. 마침, 저의 엄마께서도 취업을 하셔서 자주 주말까지 일을 하게 되었지요. 그 때부터 갑자기 저는 모든 것이 싫어지고 재미가 없어져버렸습니다. 갑자기 닥쳐 온 사춘기와 상황의 변화가 저를 전혀 다른 아이로 만든 것입니다. 가끔 마주하는 저희 엄마는 저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셨지요. 그렇게 보이도록 치밀한 연극을 제가 했던 것이 맞겠네요.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었고, 3월 첫 모의고사에서 저의 형편없는 등급은 저를 지옥 같은 불구덩이로 몰아넣어 버렸습니다.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에 충격을 받으신 엄마는 당장 일을 그만 두셨고 그때부터 제게 다시 집중을 하셨지만 저는 이미 모범생이 가져야할 생활 습관을 버린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게임이나 담배 등 자극적이고 재미난 일들을 멈추기가 어려웠고 그래서 엄마와의 갈등은 전쟁 상태로 전개가 되었지요.

간혹 엄마의 울음소리가 들렸지만 외면하고 저는 오히려 더 당당하게 공부를 버리고 게임으로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애원, 협박, 간구에도 불구하고 저희 엄마께서는 그것만은 절대 안 된다고 하여 시간 때우기 식으로 고2를 마쳤지요. 골목길 강아지도 공부한다는 고3이 되었지만 저는 언제든지 학교를 그만 둘 수 있다고 생각했고 방에만 틀어박혀 제가 좋아하는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맘대로 쓰며 살고 싶었지요.

그러던 중, 저는 북 카페에서 띄우는 인문학 편지의 주인공이 되어 터기 쌤들의 귀한 편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1주일에 한 번 배달되는 편지 덕에 저는 지금까지 견디어 왔습니다. 물론 터기 쌤 편지가 쉽게 읽히거나 전부 와 닿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저에 대한 진심어린 충고와 걱정, 어른다운 목소리와 실천이 저를 안심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전국에 계시는 선생님들이 자신의 직위를 버리고 터기 쌤이라는 익명의 선생님이 되어 저를 보살피고 걱정해 주시는 마음에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학교 담임 쌤께서는 9월 9일이 수시의 시작이라고 입시 현실을 강조하십니다. 생활기록부 기록도 해야 하고, 소개서도 써야 하며 추천서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더는 기록할 것도 없고 소개할 스토리도 없으며 추천해 줄 실적도, 선생님도 없는 저입니다.

그 전에 근본적으로 저는 대학 자체를 가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면밀히 따져보면 그것이 또한 저의 진심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지금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화가 나고, 죽고도 싶고, 다 포기하고 싶지만 그것이 또 순간적인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명문대학의 멋진 대학생이 되는 건 도중에 제가 잃어버린 꿈이기 때문인지 저하고 엮이기도 싫습니다. 그래서 대학도 학교도 다 싫다고 떼를 쓰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다만, 저는 지금 인문학이 좋아지고 있다는 걸 말씀드립니다. 편지 속에서 읽었던 시를 한 번 더 읽어보고, 절규하는 그림에서 저의 마음을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거울 앞에서 저를 바라볼 때도 있고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의 억울함과 당당함을 우러러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런 편지 따위가 저를 구제해 주거나 제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해 주지는 못할 거라고 아직도 억지를 부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저를 다독여 주시고 제게 진심어린 조언을 해 주시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선생님들이 계시다는 점이 큰 위안이 됩니다. 제가 지나 온 짧은 인생길. 거기서 만난 터기 쌤들의 인문학에 대한 애정과 실천, 그 에너지를 받아 저도 좀 더 성숙한, 제대로 된 저의 삶을 살아 볼 생각입니다.

오늘은 지난 인문학 편지들을 반복해 읽으면서 어렵게만 여겼던 인문학이 제 삶에 조금씩 다가오는 걸 느낍니다. 지금까지 제게 보내주신 사랑의 인문학 편지를 앞으로도 기다리며 오늘은 저의 서툰 넋두리 편지를 먼저 보냅니다. 울퉁불퉁 모나고 흙탕물처럼 더렵혀진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끌어안으시는 선생님의 사랑에 부끄러움 담아 감사한 마음을 보냅니다.
그루가 터기 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