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일)

스타 끝장 인터뷰

김혜수 "여배우, 나이의 굴레에 가두지 말길"(인터뷰②)

김지혜 기자 작성 2012.08.07 10:17 조회 8,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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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수

[SBS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어릴 때 전 뭐든 좀 느렸어요. 특히 정신적인 성숙함은 또래의 친구들에 한참 못 미쳤었죠. 그게 스스로 콤플렉스였을 정도니까요”

김혜수는 스스로 “사춘기가 늦게 찾아온 아이”였다고 말했다. 또래의 친구들보다 키는 컸을 지언정 자의식은 늦게 확립돼 열등감까지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믿을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김혜수는 늘 또래의 여배우들보다 성숙해보였고, 노련해보였다.

20대까지도 사춘기였던 것 같다는 김혜수는 30대 무렵부터 '배우 김혜수'로서의 자의식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생의 절반이 넘는 시간을 투자한 연기, 또는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자신만의 의미를 찾는 과정 중에 있다는 것.

30대 초반 무렵부터 시작된 이 여행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어쩌면 그 여행은 김혜수가 배우로 바로 서게끔 하는 가장 확실한 동력이 아닐까 싶다. 

김혜수

Q. 데뷔 후 25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미모와 스타일, 그리고 자신만의 당당함을 유지하고 있다. 40대 여배우의 활약이 많지 않은 현 영화계에서 김혜수와 전도연은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A. 배우의 나이에 한계를 두는 것을 싫어한다. 말로는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인생을 표현할 수 있다고 하면서 실질적으로는 그런 환경이 조성되지 못하고 있다. 다양한 연령대의 콘텐츠가 많아지는 게 필요한데, 현실은 오히려 폭이 좁아지고 있다. 나이로 배우의 기능적인 역할을 정의내리는 것은 별로다.

Q. 20~30대와 비교해 나이로 인해 제약을 받고 있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는 말인가?

A. 나이라는 건 극복해야 하는 게 아니고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40대 여배우에 대한 인식, 한계라는 것은 보이지 않게 존재한다. 일단 주어지는 콘텐츠가 제한적이다. 생각해보면 확실히 20대에는 지금보다 시나리오를 많이 받았어도 억지로 책장을 넘겨야 하는 작품이 많았다. 그러나 오히려 지금은 들어오는 편수는 적어도 한번쯤 고민해볼만한 질적으로 수준 높은 작품의 비율이 높다.

Q. 고현정, 전도연 등의 비슷한 연령대의 여배우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시나리오가 많이 안 들어온다고 하더라. 어떤가?

A. 맞다. 많이는 안 들어온다. 충무로는 대부분 남자 영화 위주고 남자 대본이 많다. 그러다보니 여배우에게는 남자 캐릭터의 뒤를 받추는 부수적인 역할이 많이 주어진다. 이것은 원톱, 투톱 주연의 문제가 아니라, 캐릭터 자체로 고민 할만한 매력적인 역할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니 역할 선택의 폭이 줄어든다. 그런 점에서 최동훈 감독은 충무로에서 생생하고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를 만드는 몇 안 되는 감독이다. 

Q. 반대로 감독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른 이야기들이 나온다. 충무로에서 여성영화가 기획되지 못하는 것은 톱여배우들이 몸을 너무 사린다는 것이다. 그러나보니 여성 캐릭터 자체가 매력적으로 나올 수가 없다고 말한다.

A. 물론 몸을 사리는 배우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여배우들이 몸을 불사를만한 작품이 많이 없기도 했다. 연기에 대한 열정이 있는 배우라면, 좋은 작품이라는 확신이 있는 작품에는 무모한 불나비처럼 달려들 것이다. 그런데 적당히 예쁜 척만 하는 뻔한 여성 캐릭터라면, 김혜수가 하나 고현정이 하나 누가 해도 별 차이가 없을 텐데 배우들이 무슨 욕망을 느끼겠나.

김혜수

Q. 배우로서 당신을 자극시키는 배우, 혹은 요소들은 무엇인가?

A. 난 수시로 자극받고, 수시로 배운다. 그게 때로는 사람, 때로는 책, 때로는 음악이 되기도 한다. 가장 많은 자극은 사람들에게 받는다. 사람을 만나면서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들, 행동들 하나하나에서 자극받고 머리가 환기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촬영장에서 만나는 배우, 현장에 있는 스태프들의 열정을 통해서도 많은 것은 배운다. 또 이렇게 인터뷰를 하면서 만난 당신을 통해서도 뭔가를 배울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 밀도를 중요시한다.

Q. 정말 원시적인 궁금증인데, 어려서부터 배우를 꿈꿨었나?

A. 아니다. 학창시절 때는 외교관을 꿈꿨다. 그래서 연기 활동을 하면서도 외무고시를 준비했었다. 물론 내 꿈이었다가 보다는 부모님의 바람이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연기 활동은 취미 정도였다, 외교관이 되기 위해 지원한 대학에 합격했다면 아마도 다른 길로 갈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연극 영화과에 들어가면서 연기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된 것 같다.

Q. 어떤 인터뷰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배우생활을 하게 될지 몰랐다는 답변을 봤다. 그 말은 어렸을 때는 연기에 대한 열정이 지금처럼 뜨겁지 않았단 것인가?

A. 나는 너무 어려서부터 연기활동을 시작했고, 나이대가 높은 배우들과 어울리다 보니 사춘기를 늦게 겪은 편이었다. 10~20대에는 내가 배우라는 것에 대한 자각과 이 일에 대한 열정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떠밀리다시피 연기를 했었던 것 같다. 그러다 30대에 들면서 누군가 나를 인정해주고 정의해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연기를 하고 배우로 사는 이 시간을 스스로 인정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Q. 이야기를 들어보니, 배우로서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있어 적잖은 시행착오들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 20대로 돌아간다면 조금 다른 배우 생활을 할 것 같나?

A. 시행착오에 대해 후회할 때도 있지만, 지나온 것을 후회하기 보다는 지금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그때는 그럴 만 했었으니까.(웃음)

Q. 80년대에 데뷔해 90년대 절정의 인기를 누렸던 하이틴 스타였다. 그 당시에는 그런 케이스가 흔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보편적인 상황이 됐다. 요즘 아이돌 스타들을 볼 때 '어린 김혜수'가 활동했던 그 시대와 가장 큰 차이는 뭘까?

A. 요즘 아이돌들은 훨씬 더 자발적이고 의지적이다. 스스로 자신의 재능에 대해 확대하고 싶은 욕망 같은 게 뚜렷하고 구체적인 것 같다. 적어도 등 떠밀려서 하는 건 거의 없다. 또 요즘 아이들의 자의식은 내 어린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숙하다. 내 조카가 6살인데 그 애의 자의식은 내가 중학교 시절에도 생각 못한 수준이니.

김혜수


Q. 연기를 제외한 지금 당신의 최고 관심사는 무엇인가?

A. 요즘 오페라에 빠져 있다. 과거에 '카르멘'이라는 오페라를 본적 있는데 그때 너무 지루해서 '아, 이건 나랑 안 맞는가 보다' 했었다. 그런데 요즘 오페라 강의를 듣고 있는데 너무 재밌는 거다. 오페라는 문학과 영화 등 모든 예술 장르의 근원 아니가. 오페라를 공부하면서 그 스토리를 각색해 영화를 만들면 좋겠단 생각도 든다. 

Q. 오랜 기간 연기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슬럼프도 찾아올텐데, 어떻게 극복하나?

A. 극복하려 하지 않는다. 난 그냥 두는 스타일이다. 다만 사람들 만나는 건 좋아한다. 그러면서 푸는 것 같다. 이런 우연한 만남도 아주 즐겁다.

Q. 25년 전 연기를 시작할 때 목표는 무엇이었나? 또 앞으로 10년간 김혜수가 꿈꾸는 새로운 지향점은?

A.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어릴 때는 장희빈이 그렇게 하고 싶었다. 결국 서른이 넘어서 했다. 어쨌든 목표를 이뤘다. 지금의 목표는 음...칸 영화제, 할리우드 진출, 1000만 배우, 이런 건 경험해보면 좋겠지만 꼭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살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쏟은 연기, 배우라는 직업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것이다. 그 시간의 의미를 내 스스로가 동의할 수 있게끔. 지금도 찾아가는 중이다.

Q. 차기작은 결정했나? 이야기가 오가는 작품이 있다고 들었다.

A. 작품 하나를 보고 있다.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아주 재밌더라. 물론 매혹적인만큼 그에 대한 대가는 따르겠지만.

Q. 명감독, 좋은 시나리오가 수반하는 '즐거운 괴롭힘' 같은 것 말인가? 배우들은 그것을 괴로워하면서 즐긴다고 하던데?

A. 고통을 즐기진 않는다. 괴로운 건 괴로운 것일 뿐. 하하하. 그저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하려 노력할 뿐이다.

ebada@sbs.co.kr

<사진 = 김현철 기자 khc21@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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