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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이야기

권인하 천둥호랑이 창법, 다시 포효하다.

권인하 천둥호랑이 창법

권인하 천둥호랑이창법의 레전드 가수를 아는가?

권인하는 아직도 활발히 활동중인 정말 몇 안 되는 국내 보컬리스트 중 탑 오브 탑이다. 요즘 권인하를 두고 천둥호랑이 창법이라고, 그의 창법을 일컫는 말이 생기고 더욱 사랑 받고 있는데, 사실 그의 이런 청둥호랑이 창법이 이제 생긴 것도 아니요 그가 창법을 바꾼 것도 아니다. 가수 권인하가 6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새롭게 재조명 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천둥호랑이창법

권인하의 창법을 두고 왜 천둥호랑이 창법이라 하는가?

파워풀한 창법 특히 샤우팅을 잘하는 가수들은 정말 많다. 그런데 왜 유독 권인하 선생님의 이런 창법이 천둥호랑이 창법이란 닉네임을 가지게 된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그의 나이와 상관이 있을 것이다. 권인하 선생님은 1959년생이다. 그러니까 대략 만으로 올해 딱 60세다. 우리나라에 이 나이까지 이렇게 훌륭한 컨디션을 유지한 가수가 몇이나 있을까?

 

천둥호랑이 권인하

 

물론 관리를 잘해서만 청둥호랑이 창법이란 별명을 얻은 것은 아닐 것이다. 애당초 ‘그것만이 내 세상’ 같은 노래를 진성으로, 샤우팅으로 그렇게 끌어올려 파워풀하게 질러대는 가수가 몇이나 되겠는가? 우리나라에는 보컬 하면 무조건 김나박이를 떠올리는 팬들이 많은데 왠걸...아마추어 보컬들이 김나박이 어렵다고 매일 따라 부르다 가끔 권인하 샘의 노래를 우습게 알고 불러서 뒷목잡고 실려나간 경우가 의외로 많다.

 

권인하 보컬 레전드

애당초 권인하 샘의 타고난 피지컬은 넘사벽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도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전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우리의 샤우팅 보컬리스트들 지금 어떻게 됐는지 한번 보자. 80~90년대 전성기를 가졌던 보컬리스트 중 김경호, 박완규, 임재범 요런 분들 떠올릴 수 있겠는데 이분들 사실 전성기 때는 권인하 샘 못지 않은 최고봉들 이었다. 그런데 지금 어떤가?

 

80~90년대 최고의 보컬들 김경호, 박완규, 임재범

 

가장 처참한 상태인 김경호를 보자. 지금도 물론 잘 하지만 정말 그의 전성기 때를 생각하면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플 지경이다. (실제로 얼마 전 유스케에 나와 금지된 사랑을 부르는 것을 보고 울뻔했다) 그 놈의 성대결절...박완규도 마찬가지다. 지금처럼 다시 회복한 것만으로도 기적이라 할 만큼 어마어마하게 성대가 파괴되었던 목을 다시 돌려놓은 건 정말 인간 승리라고 박수 쳐 주고 싶지만 어쨌든 전성기에 비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보컬의 신이라 생각되는 임재범 행님은 어떤가? 워낙에 역대급이라 지금도 잘 부르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의 아시아나 활동 때를 생각하면 피지컬이 많이 약해진 건 사실이다. 외국의 경우에는 나이든 보컬들이 실력을 잃지 않고 잘 보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동양인의 피지컬 한계 때문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으나 동양인,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정말 60이 되어서도 이렇게 파워풀한 천둥호랑이 창법은 고사하고 원래 피지컬을 유지하는 분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러니 왜 조용필 선생님을 아직도 가왕 이라고 칭하는지 이해가 간다.

 

권인하 식지 않는 열정

가수 권인하의 식지 않는 열정

요 얼마 전에도 ‘복면 가왕’에 출연한 권인하 선생님! 너무 귀여우시다. 워낙 타고난 보이스 이기에 사람들 속이는 건 애당초 포기하셨지만 정말 이소라의 제발을 부르실 때는 하... 팬티를 갈아 입어야 했다. 가수 권인하는 말한다! 젊게 더 가까이, 사람들에게 기획만 된다면 다가가고 싶다고... 이것은 그의 유튜브 채널이나 다른 인터뷰에서도 항상 심심치 않게 나오는 말이다.

 

 

권인하 유튜브 채널 넘쳐흘러 (M.C THE MAX)를... 후덜덜 

 

그냥 형식적으로 하는 말이 아닌 것이, 큰 무대가 아니어도 음향 장비가 있건 없건 간에 그는 사람들에게 노래를 들려줄 수 있는 상황이라면 언제나 노래한다. 권인하 샘의 유튜브 채널이 처음 등장했을 때도 그래서 어색하지 않았고 그 이후의 행보도 항상 그런 취지에서 하는 것이 보여지기에 젊은 팬들도 하나 둘 생기며 다시 전성기를 맞이하고 계신 것 같다.

 

언제나 혼신의 힘을 다하는 권인하 쌤

가수 권인하와 처음 만났던 날의 기억

그때가 어제였을까? 아마도 1997년 혹은 98년 정도 됐을 때다. 그때도 사실 가수 권인하는 상당히 연배가 있는 상태였다. 기억으로는 장소가 경희대의 축제였을 것이다. 우연히 축제현장에 갔는데 그 때 야외 공연장에 출연진으로 권인하 샘이 등장하셨다. 물론 그때는 샘의 인기가 시들했지만 아무튼 그 때 음향 사고가 나서 MR이 안 나오는 상황이 연출됐고 그게 길어지자 권인하 샘은 무반주로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노래를 잘하면 MR따위 필요 없다는 것을... 노래가 끝나고 관심 없던 관중들이 모두 일어나서 박수를 쳤던 것이 기억난다. 기억해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천둥호랑이는 원래 그렇게 그 자리에 있었다.

 

권인하 쌤에게 덕본 사람들

권인하 샘의 보컬 능력도 레전드지만 다른 업적들도 많다. 가장 잘 알려진 바로 박효신을 발굴해낸 업적이 있는데 당시 신촌뮤직의 사장으로 있던 권인하 CEO님은 박효신을 발굴해서 1집을 발표하게 한 장본인이다. 당시 박효신은 소몰이 창법으로 노래를 불렀는데 (하 이때가 고3이라니...) 그것을 듣고 권인하 샘이 저걸 뜯어 고쳐서 앨범을 만들까 하다가 당시 회사에 같이 있던 선배에 의해 그냥 그렇게 부르게 놔뒀고 결과적으로 앨범이 대박이 났다는 일화도 있다.

 

권인하 박효신 레전드

 

그래서 그런지 권인하 샘과 박효신의 관계는 아직도 참 좋은 것 같은데 예전에 들국화 헌정 앨범에서 권인하 샘과 박효신이 같이 부른 <그것만이 내 세상>은 지금 들어도 소오름이다. 박효신이 그렇게 밀리는 건 사실 이 때뿐이지 않았을까? 싶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보컬계에선 유명한 최재훈을 발탁해서 키운 것도 권인하 샘이다. 당시 신촌뮤직 사무실에 누군가 들어보라고 데모 테이프를 들려줬는데 데모에서 보컬과 드럼을 담당한 최재훈을 좋게 봐서 드럼 때려 치고 노래하라고 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가수 권인하에게 아쉬운 점

권인하 샘은 지금 상태로도 너무 너무 좋지만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노래 실력과 음악성 (실제로 노래도 잘 만드신다.)에 비하여 히트곡이 너무 없다. 물론 ‘비오는 날의 수채화’가 있긴 하지만 그것 빼고 사실 국민 히트곡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주변에 권인하 샘을 물어보면 ‘비오는 날의 수채화’ 이외에 묘하게 들국화와 전인권 샘의 노래들을 떠올리며 헷갈려 하고 뭐 그렇다.

 

권인하 Forever

 

뭐 그것을 까기 위해 말하는 것은 아니고 아직도 피지컬이 받쳐주고 또, 요즘 젊은이들에게 다시 인기가 올라가는 이런 기회가 또 있을까 싶어서... 이 기회에 히트곡 하나 추가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천둥호랑이의 전성기는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는 생각을 하기에 앞으로 더 기대를 갖고 흐뭇하게 권인하 샘을 지켜볼 생각이다. 아직도 건재한 천둥호랑이 파이팅~

 

신세기 정기수 음악이야기 '보컬레전드 천둥호랑이창법 권인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