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남자 57세·여자 4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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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11.10. 오후 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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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2월27일은 한국 여성노동운동사에서 기념비적인 날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빨리 퇴직할 이유가 없다, 성차별적 정년제는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내려졌다. 전화교환원 김영희씨가 대부분 여성인 교환직렬 정년을 일반직 55세보다 낮은 43세로 정하고 자신에게 정년퇴직을 통보한 것은 헌법과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며 한국통신공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승리를 거뒀다. 7년의 소송에서 노동계·여성계를 중심으로 일터에서의 여성 차별에 반대하는 후원회가 결성됐다. 여론이 뜨거워지며 1989년 12월 남녀고용평등법 제정으로도 이어졌다. 이 판결은 2008년 사법 60주년을 맞아 ‘한국을 바꾼 시대의 판결 12건’ 중 하나로 선정될 만큼 시대적 의의를 지닌다.

30여년 만에 이 판결을 떠올리게 하는 대법원 판결이 최근 나왔다. 여성이 대부분인 직렬의 정년을 남성보다 10년 이상 낮게 정한 국가정보원 내부 규정은 합리적 이유가 증명되지 않는다면 부당한 차별이라 무효라는 내용이다. 국정원에 출판물 편집 등을 담당하는 전산사식 직렬 공채로 입사했다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계약직으로 일해 온 ㄱ·ㄴ씨가 퇴직 후 소송을 냈다. 이들은 국정원의 계약직 근무상한연령이 여성이 대다수인 전산사식·입력작업·전화교환·안내 직렬은 만 43세, 남성들만 종사하는 영선(건축물 유지·보수 등)·원예 직렬은 만 57세라는 점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에 사건이 올라간 지 6년여 만에 1·2심 패소를 힘겹게 뒤집었다.

남녀고용평등법 11조 1항은 “사업주는 근로자의 정년·퇴직 및 해고에서 남녀를 차별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한다. 근로기준법 6조엔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해 남녀의 성을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한다”고 돼 있다. 당연한 사항을 아직까지 여성들이 ‘싸워서’ ‘쟁취’해야 한다. 최근에도 ‘점수조작으로 채용 성차별’ ‘면접에서의 성차별, 성희롱’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채용에서 정년까지 성차별 사회’다. 대체 여성·남성 직렬의 정년 차이 14년은 어떤 근거로 나왔나. ‘여성 전용 직렬’ ‘남성 전용 직렬’이라는 말을 이처럼 공공연히 써도 되는 것인가. 2019년 한국은 ‘1982년생 김지영’이 크게 공명되는 사회다.

송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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