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콜라도 한표'홍콩 선거제…행정장관 '친중'탈피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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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11.25. 오후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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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강기준 기자] [홍콩 구의원 선거서 범민주파 싹쓸이
'직능대표' 뽑는 입법회 선거부터 난항 예상
해외법인도 투표 참여 가능한 기형적 제도
선거인단 18명 뽑는데 유권자 120명인 곳도 ]

/AFPBBNews=뉴스1

6개월간 이어진 홍콩 반중국 시위가 범민주진영의 구의원 선거 압승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이번 결과가 내년 입법회 선거와 2022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법인과 코카콜라 같은 외국회사도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홍콩의 기형적인 선거제도 아래서는 한계도 분명하다. 또 행정장관 직선제 도입 여부 등을 두고 또다시 충돌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6개월 시위에 응답한 민심…'친중파' 참패


/AFPBBNews=뉴스1

지난 24일 치러진 제6차 홍콩 구의원 선거는 각종 기록을 양산했다. 18개 지역구에서 4년 임기의 구의원을 뽑는데, 사상 처음으로 452명 전원을 직접 투표로 선출했다. 각 지역을 통틀어 입후보자만 1000여명 넘게 등록했다

투표 인파도 압도적이었다. 홍콩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날 총 294만여명의 유권자가 투표를 해, 2016년 홍콩의 국회격인 입법회 의원 선거 때보다 많은 인파가 투표장으로 몰렸다. 투표율도 71.2%로 지난 구의원 선거(47%)보다 훨씬 높았다. 구의원수는 총 479명으로 나머지 27명은 중국 당국이 임명한다. 현 구의회는 친중파 327석, 범민주파 118석인데, 이번 선거서는 사상 처음으로 범민주파가 과반 이상을 확보할 것이 유력하다.

민생현안 처리가 주업무인 구의원 선거가 이번에 전세계적으로 주목받았던 이유는 홍콩 행정장관 선거인단에 배정된 의석 117석 때문이다. 구의회 선거에서 과반 이상을 획득한 진영이 117석의 배정 의석을 모두 가져간다. 뉴욕타임스(NYT)는 "쓰레기 수거, 버스 노선 등 정치권에서의 역할이 제한적인 구의원 선거가 큰 관심을 받는 것은 선거인단 배정 의석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홍콩 헌법 및 본토사무국에 따르면 구의원 선거 승리 진영은 총 70명의 입법회 의원 자리에서 5석도 확보하게 된다. 입법회는 지역구 35석, 직능대표 35석으로 구성돼 있는데, 지역구 자리는 직접선거로 선출하고, 직능대표직에서 다섯자리를 구의원이 가져간다. 직능대표는 해당 직군 종사자들만이 투표하는 간선제로 뽑힌다.

여기에 2022년 예정된 홍콩 행정장관 선거에서도 범민주진영의 견제가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2016년 12월 치러진 선거인단 투표에선 친중파가 구의회 몫 선거인단을 독식했는데, 이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차기 행정장관 선거 1년 전인 2021년 예정된 선거인단 구성에서 친중파가 과반수를 구성하기가 한층 더 어려워진다는 분석이다.

닛케이아시안리뷰는 홍콩 행정장관 입후보자는 선거인단 중 150명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데, 민주진영에서 구의원 선거로 117석을 확보한 데다가 입법회 선거에서도 돌풍을 이어가면, 자신들이 원하는 행정장관 후보를 등록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권력 사다리' 올라갈수록 한계...입법회 선거부터 '난관'


/AFPBBNews=뉴스1

NYT는 홍콩 사태가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 반대에서 시작해 홍콩의 민주화, 즉 '1인1표' 직선제 쟁취 투쟁으로 번진 것은 권력의 사다리를 올라갈 수록 시민들이 투표로 결정할 수 있는 것들이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시말해, 구의원 선거 이후의 선거들을 보면 시민들이 투표로 목소리를 낼 여지가 점점 줄어든다.

이번 선거 승리로 범민주파는 내년 9월 입법회 의원 선거도 예전보다 수월한 경쟁이 가능해졌지만, 아무리 압도적인 승리를 거둬도 법안 의결 충족수인 전체의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직능대표제라는 전세계 전례없는 선거제도 때문이다.

30석의 직능 대표자들은 투표를 통해 선출되지만, 홍콩의 모든 유권자가 아닌 직군 종사자들, 그중에서도 스스로 등록을 한 이들에게만 표가 부여된다. 그렇다보니 생업이 바빠 유권자 등록을 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 투표 참여율이 크게 낮다.

직능대표 선거에는 법인도 투표 가능한 것이 문제다. 한명의 대표가 여러 법인을 보유하고 있다면 법인 개수만큼 투표권을 가질 수 있다. 여기엔 코카콜라 같은 해외 법인 또한 투표가 가능하다. 실제로 중국의 국영기업들은 이러한 제도를 이용해 각 산업군에서 투표에 영향력을 끼쳐왔고, 지난 선거에선 이스라엘 국영항공이 직접 투표권을 행사한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게다가 입후보자들도 홍콩 재벌 등 친중 성향의 사업가들이 차지하고 있어 소수가 뽑는 소수 엘리트들이 당선되는 경우가 많다. 또 중국 당국은 2016년부터 입법회 후보자들에게 '홍콩은 중국 소속'이라는 확인서를 받는 등 사상 검증을 강화하고 있어, 범민주파는 여전히 불리한 링 위에서 대결을 펼쳐야 한다.


코카콜라도 투표 가능한 체육관 선거…'1표'의 가치 불평등


/AFPBBNews=뉴스1

이러한 문제는 홍콩 행정장관 선출 권한을 가진 1200명의 선거인단(선거위원회)을 뽑는 투표에서도 나타난다. 홍콩 헌법 및 본토사무국에 따르면 선거인단은 5년 임기로 4개 부문인 △산업·금융·유통·관광 등 △법조·의료·교육 등 전문직군 △농어업·노동·사회복지·종교계 △정치계 등 4개 부문에 300명씩 배정돼 있다. 4개부문은 다시 총 38개 하위부문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중 구의원 117명은 정치계에 할당돼 있고, 입법회 70명 역시 정치계 소속이다. 이밖에 중국 전인대(NPC)와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CPPCC) 소속 홍콩 인원 36명, 51명 등은 직무상 자동으로 정치계 부문 선거인단에 포함된다. 종교계 등은 각 종교단체마다 10씩 지명하는 방식으로 뽑는다.

1200명에 달하는 선거인단 중 각 직능군 대표도 선거를 통해 선출하긴 한다. 2016년 선거인단 투표 때는 35개 분야에서 총 1034명이 투표로 선출됐다. 하지만 이들을 뽑는 방식 역시 입법회 직능대표를 뽑는 방법과 같다. 각 산업군별로 선거위원수를 할당하는데, 입후보자들을 각 산업 종사자들만이 뽑을 수 있는 방식이다. 그래서 홍콩 시민이 700만명이 넘고, 이번 구의원 선거에 참여한 유권자가 300만명에 달했지만, 선거인단을 뽑는 유권자는 단 25만명 뿐이다.

이렇다보니 1표가 가진 가치가 산업군별로 심각한 불평등을 낳고 있다. 예컨대 지난 선거를 기준으로, 호텔 산업에는 선거위원 18명을 뽑는데, 유권자가 단 120명에 불과했고, 교육계는 30명을 뽑는데 유권자가 8만명이 넘어가는 등 편차가 심했다.

투표라는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당연히 법인을 많이 소유한 부자이자 사회 기득권 층이 투표권을 더 많이 가지고 있고, 중국 정부는 이러한 소수만 관리하면 수월하게 의회와 선거위원회 등을 장악할 수 있는 구조이다.


우산혁명 탄력에도 캐리 람 당선...2022년은?


/AFPBBNews=뉴스1

중국은 홍콩 반환 20주년인 2017년부터 행정장관 직선제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막상 2014년에 내놓은 방안은 '1인1표'의 보통선거 원칙과는 매우 달랐다.

중국 당국은 입후보자는 1200명의 선거인단으로부터 과반수 동의를 얻어야하며 '애국애항(중국과 홍콩을 사랑한다)' 인사여야 한다는 원칙을 발표했다. 사실상 반중 인사의 출마가 불가능한 방식이었다. 이 때문에 2014년 홍콩의 우산혁명으로 불리는 대규모 시위가 일었고, 이같은 직선제안은 입법회에서 부결됐다. 중국은 홍콩인들 때문에 직선제가 무산된 것이라고 탓했다.

결국 2016년말 열린 홍콩 행정장관 투표는 예전과 같은 간선제로 진행됐다. 우산혁명 이후 탄력을 받아 범민주진영은 선거인단 투표에서도 약진했다. 범민주진영은 회계와 건축, 교육 등의 분야에서 역대 최고의 결과를 거두면서 326석을 확보했지만, 여전히 선거인단 의석 비중이 30%에도 못미치면서 당시 지지율 최저였던 친중파 후보 캐리 람 행정장관이 당선됐다.

강기준 기자 standar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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