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단식이 8일째인 27일 밤 의식을 잃고 병원에 실려감으로써 끝났다. 목숨을 걸고 시작한 단식이었지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청와대측의 반응은 그저 의례적인 수준이었다. 청와대는 정무수석을 보내 단식을 만류하는 수준에 그쳤고, 여당도 이해찬 대표가 찾아와 단식을 풀고 대화를 하자는 제의를 하고는 돌아갔다. 진정성이 없는 단식 만류에 황 대표로서는 단식을 풀기 어려웠으리란 짐작이 든다.

황 대표가 단식중에 쓴 글을 보면 단식에 임하는 마음이 절절히 느껴진다. 황 대표는 지난 25일 단식 엿새째 페이스북을 통해 “고통은 고마운 동반자다. 육신의 고통을 통해 나라의 고통을 떠올린다. 저와 저희 당의 부족함을 깨닫게 한다”고 했다. 황 대표는 “이 길에서 대한민국의 길을 찾는다”며 “중단하지 않겠다. 자유와 민주와 정의가 비로소 살아 숨 쉴 미래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간밤 성난 비바람이 차가운 어둠을 두드린다. 잎을 떨어뜨려도 나무 둥지를 꺾을 수는 없다. 몸은 힘들어도 정신은 더욱 또렷해진다”며 “마음으로 함께 해주시는 국민 여러분 덕분”이라고 적었다. 그랬던 황 대표가 끝내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실려가자 정미경·신보라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이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밤을 새운 뒤 황교안 대표의 뒤를 이어 동반 단식에 들어갔다. 정 최고위원은 “당 지도부로서 황 대표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신 최고위원과 함께 단식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들 역시 선거법개정안·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황 대표와 의원들이 벌이는 단식 투쟁의 역사는 꽤 오래됐다. 현대적인 의미의 단식투쟁은 국가입장에서 국민이 한 명이라도 아사를 하게 되면 곤란하게 된 시점부터 세계 곳곳에서 시작된 투쟁 방식이다. 대표적 사례가 인도의 성웅 마하트마 간디다. 그는 75세의 나이로 옥중에서 3주간이나 단식을 했다. 단식 투쟁은 본래 부당한 권력에 구금된 수감자들이 주로 행한 투쟁방식이다. 사회에서 존경받거나 인지도가 있는 사람일수록, 단식 투쟁을 하면 여파가 크다. 우리나라 정치인 가운데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77년 진주교도소에서 면회 및 변호사 접견 제한에 항의하며 6일간의 단식 투쟁을 했고, 1990년에는 내각제 반대와 지방자치제 실현을 주장하며 13일간 단식을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역시 1983년 전두환 전 대통령에 의해 가택연금 당시 언론통제 전면 해제, 정치범 석방, 해직 인사 복직, 정치활동 규제 해제,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 민주화 5개항을 요구하며 무려 23일간 단식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세월호 특별법 지정을 놓고 단식 투쟁을 하는 김영오를 말리려다 같이 9일간 단식 투쟁을 한 바 있다.

목숨을 건 단식투쟁 속에 황교안 대표가 찾아낸 정국해법은 무엇일까, 패스트트랙 철회를 향한 야당의 강대강 대응이 한 겨울 이 나라 정치를 꽁꽁 얼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