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팬 목청 파괴한 록발라드 황태자 `김상민·얀·밴드 야다`

입력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스쿨 오브 락-59] 얼마 전 한 방송사 예능프로그램에서 가수 김상민이 오랜만에 무대에서 노래하는 것을 들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적잖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전성기와 비교해 조금도 퇴색되지 않은 가창력을 뽐내고 있었다. 그가 그날 나와서 부른 곡은 'You'라는 노래다. '스틸하트(Steel Heart)'의 '쉬스곤(She's gone)'과 비교해 난이도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노래다. 김상민이 이 노래로 한창 활동할 시절, 한국에는 유독 고음으로 중무장한 노래가 여럿 터져나와 한국 남성 목을 쉬게 했다. 아무리 애써도 올라가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 왜 그렇게 목에 핏대를 세웠을까. 이번 글에서는 김상민을 비롯해 얀, 그리고 야다(Yada)에 대해 다뤄본다.

먼저 김상민이다. 그의 공식 데뷔는 1999년 앨범 언틸(Until)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는 이전에 미발표 앨범(0.5집 개념)이 있다. 1998년 3월에 나온 메모래벌리티(Memorability)가 주인공이다. 1집 타이틀곡으로 'Untill(하늘이 도우사)'이라는 곡을 내놓지만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두 번째 앨범 페이스(Face)에 실린 'You'가 터지게 된다. 당시 그는 이 노래의 유명세를 타고 '이소라의 프로포즈' 등 당대 유명한 음악 프로그램 도장깨기에 나서며 록보컬 마니아 사이에서 인기몰이를 하게 된다. 최고음이 3옥타브 파에 이르는 'You'를 부를 때 김상민의 보컬은 너무나 안정적이다. '두성 발성의 교과서'라 부를 만큼 완벽하고 깔끔한 두성을 선보이며 노래를 끌어간다. 참고로 쉬스곤의 최고음은 3옥타브 솔인데, 노래 난이도는 김상민의 'You'가 더 위라는 견해가 많다. 이 노래는 '유'라는 발음을 정확한 피치로 찍어주듯 불러야 하는 게 핵심인데 '유'는 모음 구조상 성대를 누르면서 발성해야 하기 때문에 고음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일반적으로 가나다라 등 '아' 모음이 들어간 단어가 고음을 내기에는 좀 더 쉽다) 그리고 2옥타브 후반, 3옥타브 초반의 초고음 영역에서 끊기지 않고 따발총처럼 발음을 쏟아내야 하기 때문에 발음을 뭉개지 않고 이 곡을 완창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 할 수 있다.

실제 그의 가창력은 그가 '쉬스곤'을 부르는 여러 동영상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그가 부른 '쉬스곤'은 국내 내로라하는 가수들의 카피 버전 중 가장 수준 높은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그만큼 역량이 뛰어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는 출중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운이 좋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2집으로 톡톡히 이름을 알리는 데 성공한 그는 3집이 분수령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당시 소속사가 망하는 불운을 겪고, 우여곡절 끝에 4집을 낸 뒤 가수활동에 미련을 버렸다고 한다. 이후로는 실용음악과 교수 등으로 활동했는데, 방송에 나온 그는 학생들이 자신을 '갓상민 교수님'이라 부른다고 자랑을 하기도 했다. 1973년생으로 40대 중반을 넘긴 나이에 그가 부른 'You'를 들으면 그를 '갓상민'으로 추종하는 학생들의 응원이 절로 이해가 된다.

'그래서 그대는' 등의 곡으로 유명한 가수 얀도 공교롭게 1973년생이다. 그는 1997년 드라마 주제곡 등을 불렀지만 크게 주목을 끌지 못했다. 2000년 고음을 기반으로 한 록발라드가 전성기를 달릴 무렵 내놓은 1집 앨범 버진(Virgin)에 실린 애프터(After)가 소기의 성과를 낸다. 가요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의 엄청난 인기를 끈 것은 아니었지만, 고음병에 걸린 중·고등학교 학생 사이에서는 '노래방 최애곡' 중 하나로 떠올랐다. 당시 얀은 어깨에 앵무새를 달고 나와 눈길을 끌고 있었는데, 이 앵무새 이름이 얀이었다고 한다. 당시 무대를 본 사람들은 당연히 새 모양의 인형을 달고 나온 줄 알았다가 앵무새가 눈을 껌벅이며 자세를 바꾸는 것을 보고 경악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앵무새가 그 시끄러운 무대에서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은 아직도 미스터리다)

2집 'II Story'에서는 정준호가 뮤직비디오에 출현해 화제를 모은 '한(恨)' 으로 주목을 끌기도 했지만, 그래도 역시 그를 대표하는 노래는 이 다음 앨범에 실린 '그래서 그대는'이다.

<그래서 그대는>

나는 나에게

길들여지길 바래요

그동안 그댈 너무 많이

닮아 있었나봐요

지워질 때도 됐는데

그댄 또 누군가에게

길들었나요

혹시 그 사람

예전 나완 많이

틀린가봐요

그래서 그대는

날 잊고 사는지

내 아름다운 사람아

여전히 나는

네 모습인데

또 다른 사랑 배워갈

그대 가슴에

내 작은 기억 하나만

내 눈물나는 사랑아

같은 아픔에

머물수 있게

다른 이별에 울어도

내 품안에서

그 마음 아물게 해요

후략

이 노래의 최고음은 '2옥타브 시' 정도다. 슈퍼고음을 자랑하는 김상민의 'You'와는 다소 성격이 다른 곡이다. 용감한 남성들이 어떻게 올려볼 수 있지 않을까 착각하며 노래방 버튼을 누르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누르는 순간 곧바로 개미지옥에 빠지는 것이다. 한마디로 엄청난 곡이다. 이 곡의 최고 난이도 부분은 '내 눈물나는 사랑아 같은 아픔에 머물수 있게' 부분인데, 여기 '게' 부분에서 곡 최고음인 2옥타브 시로 거의 한마디의 음을 끌어야 한다. 가수 '얀'은 두성을 기반으로 한 꽉찬 발성으로 이 노래를 소화하는데, 일반인이 이렇게 부르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노래 실력이 아주 출중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대다수 이 부분이 시작되기 전 '내 작은 기억 하나만'을 플랫된 목소리로 간신히 소화한 뒤 '내 눈물나는 사랑아 같은 아픔에 머물수 있게'의 게에서 장렬히 삑사리를 내고 "아 안되겠다"하며 노래방 '취소' 버튼을 누르는게 전형적인 코스다.

얀의 가창력은 매우 훌륭했지만 비슷한 시기 같은 콘셉트의 록발라드 가수가 여럿 쏟아지며 차별화에 실패한 것이 그의 발목을 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록발라드가 마지막 불꽃을 피우던 시기에 데뷔해 가요계의 주류가 '걸그룹'을 위시한 아이돌로 급격히 판도가 넘어간 것도 그가 가수활동을 접은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가 부른 노래 동영상 댓글을 보면 상당히 많은 록발라드 팬들이 그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머지않은 시기에 대중과 호흡하는 얀의 모습을 다시 한번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록밴드 야다는 당시 누렸던 인기 측면에서만 보면 김상민과 얀과 비교해 한 수 위였다. 다수의 히트곡을 내놓으면서 당대 록발라드 제왕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야다는 1999년 결성돼 2004년 해체됐는데, 무수한 아이돌이 뜨고 지던 당시 '아이돌 록밴드'의 이미지를 갖고 가면서도 실력 면에서 당대 최고 록발라드 그룹과 비교해 전혀 빠지지 않는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은 밴드라 볼 수 있다. '이미 슬픈 사랑' '진혼' '슬픈 다짐' 등 이들의 대표곡은 아직까지 노래방에서 널리 불리는, 당대를 풍미했던 명곡이라 할 수 있다.

야다는 창단 초기 아역 배우였던 장덕수와 보컬과 기타를 겸한 전인혁, 베이스 김세현, 기타의 윤희원과 드럼 민진홍으로 결성돼 있었다.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야다의 메인보컬로 수많은 남성 성대를 상하게 한 장본인인 전인혁이 어린 시절 '기타 신동'이었다는 점이다. 야다에 합류한 계기도 기타를 너무 잘 쳐서였다고 한다. 하지만 노래도 너무나 잘한다는 것이 알려지며 결국 그는 기타와 보컬을 겸하는 '투잡'을 뛰게 된다. 강력한 스크래치가 걸린 그의 보컬은 매우 높은 난도의 곡을 무리없게 소화한다. 이재혁이 작사 작곡한 그들의 인기곡 '이미 슬픈 사랑'도 2옥타브 시의 고음으로 거의 한마디가 이뤄져 있다.

<이미 슬픈 사랑>

널 볼 수 있어 행복했었지

그대가 날 위해 있어준 시간만큼

너의 부모님께 전해들었지

나 아닌 사람과 결혼하게 된 걸

너 그렇게 힘든데 내게 말 못하고

울고있던게 생각나

떠나는 그대여 울지 말아요 슬퍼말아요

내가 단념할게요 마음 편히 가시도록

내사랑 그대가 날 떠나 행복할 수 있다면

내가 떠나갈께요 나의 그대 삶에 축복을....

후략

이 노래는 김세현(현재 이름은 김다현이다)의 보컬로 시작해 하이라이트가 시작되는 초입부터 전인력이 마이크를 이어받는 구조다. 클라이맥스 부분인 '떠나는 그대여 울지 말아요'로 한마디가 이뤄져 있는데 '떠'부터 '말'까지 9음절의 음이 공히 2옥타브 시로 동일하다. 2옥타브 시의 고음을 발사하면서 쉴 새 없이 입 모양을 바꾸며 소리를 내뱉어야 한다는 얘기다. 탄탄한 발성을 기반으로 소리가 띄워져 있지 않으면 애초부터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그런데 전인혁은 이 부분을 특유의 속이 시원한 고음 스크래치를 동반해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며 소화한다.

2집부터는 멤버 구성이 좀 달라진다. 장덕수와 윤희원이 나간 자리를 기타 오인환이 메꾸게 된다. 2집에 실린 노래가 수많은 남성 영혼을 훔쳐간 '진혼'이다.

<진혼>

내일이면 눈뜨지 않고

영원히 잠들길 바래

그대 없다면 내가 살아있어도

그건 죽은 거니까

타고남은 나의 모든 것

그대의 곁에 뿌려 줘

못 다했었던 우리 사랑 나눌 수 있게

마지막 부탁이야

그래 죽는 날까지

같은 날에 하고 싶다고

우리 함께 약속 했었잖아

혼자 두고 떠나면 안돼

그대를 따라서 이 세상 떠나가려해

오 우리 사랑 영혼까지 함께 해

아름다웠었던 그 모습 아직 기억해

이 세상 빛이 사라진다해도 찾을 수 있어

후략

이 노래의 최고음은 시 플랫인데 이 곡 역시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기는 마찬가지다. 노래의 하이라이트인 '그대를 따라서 이 세상 떠나가려해' 부터 '이 세상 빛이 사라진다해도 찾을 수 있어'까지 약 7마디를 소화하면서 2옥타브 라~2옥타브 시플랫의 파사지오 구간에서 끊임없이 음을 내야 한다. 웬만한 가창력으로는 절대 소화할 수 없는 구간이다.

야다 해체 이후 전인혁이 보인 행보는 흥미롭다. 가장 큰 파격은 고유진이란 걸출한 보컬을 가진 밴드 '플라워'에 기타리스트로 합류한 것이었다. 마이크를 잡은 고유진과 기타를 잡은 전인혁이 한 무대에 선 것은 아이러니였다. 둘 다 당대 최고 수준의 보컬리스트로 이름을 떨쳤는데, 포지션을 달리해 한 몸으로 무대에 선 것이기 때문이었다. 전인혁은 당시 인터뷰에서 "고유진이 나보다 훨씬 노래를 잘하기 때문에 (기타를 잡는 것에 대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는 취지로 말한 바 있는데, 당시 그의 인터뷰를 듣고 아쉬움을 표한 사람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한다. 고유진도 물론 최고 수준의 보컬리스트이지만, 전인혁의 실력이 빠진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전성기 시절 최고 골키퍼인 잔루이지 부폰과 마누엘 노이어를 동시에 보유한 축구팀이 눈물을 머금고 둘 중 하나를 백업으로 돌려야 하는 심정이랄까. 밴드 플라워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를 빌려 소개하는 자리를 가져보고자 한다.

[홍장원 기자]

▶뉴스 이상의 무궁무진한 프리미엄 읽을거리
▶아나운서가 직접 읽어주는 오늘의 주요 뉴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생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