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나이 수업’] 혼자서도 잘해요, 멋진 노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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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영은>


제주 서귀포 바닷가에 있는 한 찻집, 저 멀리 바다가 보이는 햇살 가득한 창가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한 줄만 썼는데도 벌써 ‘좋겠다, 부럽다, 여행 중이라고 자랑하는구나’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회의가 있어 제주에 왔고, 짬을 내 4월의 아름다운 올레길이라도 좀 걸으면 좋으련만 일에 쫓겨 몸은 노트북 앞을 떠나지 못하고 그나마 눈만 창밖을 곁눈질하며 호사를 누리는 중이다.

오늘처럼 간혹 집을 떠나 밖에서 잘 일이 생기는데, 그럴 때마다 머리 아픈 회의든 뭐든 50대 아줌마가 밥도 안 하고 식구들과 떨어져 혼자 오붓하게 하룻밤이라도 지내는 게 어디냐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여자만이 아니라 남자들도 마찬가지여서 누군가를 책임지거나 신경 쓰지 않고 나 홀로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들 한다.

짝을 이루어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그런 삶을 택해 놓고는, 또 혼자 누리는 자유와 홀가분함이 그리워 몸부림을 친다. 결혼하지 않은 동갑내기 친구와 만나면 그 친구와 나 역시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지치지도 않고 여전히 서로를 부러워한다. 가지 않은 길을 향한 선망과 해보지 못한 일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함께 어울려 살아가지만 동시에 너나없이 혼자인 존재이다. 관계 속에 있으면서도 결국 자기 몫의 삶을 홀로 견디며 살아내야 하는 시간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요즘 혼자 사는 어르신들 이야기가 하도 많이 나와서 으레 그러려니 하는데, 사실 독거(獨居·혼자 삶)는 노년세대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직장이나 학업으로 인해 가족과 떨어져 살거나 결혼하지 않고 독립해 홀로 사는 젊은 사람도 무척 많다. 예전과 달리 부모가 결혼한 자녀들과 동거하는 경우가 드물어지면서 자연히 나이 들어 홀로 사는 사람이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 또한 지금은 부부가 함께 살고 있지만, 앞으로 어느 한쪽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자녀와 합치기보다는 그냥 홀로 살겠다는 사람들이 훨씬 많으니 이미 우리는 대부분 ‘예비 독거노인’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어떤 공간에 혼자 거주하는 것을 넘어 홀로 지내야 하는 삶 자체를 한번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하다. 같은 공간에 있더라도 서로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지 못한다면 이 또한 홀로 있는 것이다. 자녀들을 비롯해 가족과 함께 산다 해도 진심을 주고받는 진정한 소통이 없다면 형태만 동거일 뿐 독거와 다르지 않다. 중년 이후 ‘홀로 있기’ ‘혼자 놀기’가 중요한 까닭은 앞으로 홀로 꾸려가야 할 삶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혼자 있는 걸 유난히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같이 사는 배우자도, 둘도 없는 친구와 형제자매도 언젠가는 결국 헤어져야 한다. 혼자 지내는 것을 배우지 못하면 늘 누군가에게 시간과 관심을 애걸복걸할 수밖에 없다. 외롭다고 수시로 앓는 소리를 해대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처음 몇 번이야 응해주겠지만 언제까지나 그렇게 해줄 수는 없는 일이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도와주거나 동행할 때만 움직인다면 건강한 성인의 몸과 마음을 가졌다고 할 수 없다.

홀로 있는 게 싫거나 두렵다고 언제까지나 피할 수는 없다. 차라리 그 안으로 들어가 혼자임을 적극적으로 누리고 즐겨보자. 홀로 있기와 혼자 놀기는 아주 중요한 노년준비 항목 중 하나인데 이 또한 연습이 필요하다. 혼자 지낼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기쁨과 소중함을 오히려 더 깊게 느낄 수 있다. 거기다가 혼자여도 결코 혼자가 아님을 안다면 혼자서도 남은 인생길을 씩씩하게 잘 걸어갈 수 있다. “주님께서 친히 그대 앞에서 가시며, 그대와 함께 계시며, 그대를 떠나지도 않으시고 버리지도 않으실 것이니, 두려워하지도 말고 겁내지도 마시오.”(신 31:8)

▒ ‘홀로 있기’ ‘혼자 놀기’ 연습

하나, 나 혼자 보내는 시간 정하기

유경(사회복지사·어르신사랑연구모임 대표)


식구들 다 나가고 혼자 집에 남는 시간이나 출퇴근하는 시간처럼 주어진 시간 말고, 아예 하루 중 일정한 시간이나 일주일 중 어느 요일을 정해 나 혼자만의 시간으로 떼어놓는다. 특별히 할 일이 떠오르지 않으면 ‘멍 때리기’도 한 방법. 심심하다고 친구와 전화로 수다를 떤다면 그건 혼자 있는 시간에 해당하지 않는다. 아무리 짧더라도 정해진 시간을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혼자서만 보내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둘, 혼자를 통해 소중한 관계 들여다보기

나이 들어가면서 인간관계에도 변화가 온다. 한없이 확장될 것만 같았던 관계의 폭이 더 이상 넓어지지 않고 오히려 좁아지면서, 이제는 관계의 질을 생각해야 할 때다.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드는 게 아니라 역설적으로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눈에 들어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한 발짝 떠나야 보이고 멀리서 더 잘 보일 때가 있는 법이다.

셋, 사이좋은 사람들도 따로 또 같이

24시간 365일 무조건 모든 것을 같이하는 것만이 금실 좋은 부부, 절친은 아니다. 취미나 여가활동을 같이 할 수도 있지만 선호하는 활동이 다르면 따로 하는 것도 관계를 좋게 만드는 방법이면서 홀로 있기 연습이 된다. 배우자의 질병 등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 외에는 부부도 필요에 따라 함께 혹은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유경(사회복지사·어르신사랑연구모임 대표)

일러스트=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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