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스토리텔링 작가 심지훈 글맛 보통 넘는 ‘보통 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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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11.29. 오후 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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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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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마다 오피니언 리더 300명과 공유한 글 출판

‘보통 글밥’의 저자 심지훈 작가가 아들 심라온 군과 출판기념회를 관람하고 있다. ‘보통 글밥’ 출판기념회는 16일 오후 3시 대구 수성구 박물관 수 별관전시실에서 80여명이 모인 가운데 치러졌다. 김민규 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보통 글밥’의 저자 심지훈 작가가 축하객들에게 저사 사인을 하고 있다.


‘보통 글밥’ 출판기념회에서 곽대훈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민규 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보통 글밥’ 출판기념회에서 색소폰 연주팀 색소폰라이프가 축하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보통 글밥’ 출판기념회가 끝나고 축하객 80여명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민규 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글은 매일 먹는 밥과 같지 않을까요. 아침마다 따뜻한 밥을 내놓는 기분으로 글을 배달했습니다.”

스토리텔링 작가 심지훈(40) 씨가 80일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카카오톡으로 지인 300명과 나눈 그만의 색깔이 담긴 책 ‘보통 글밥(익우당)’을 출간했다.

83개의 단편으로 엮인 이 책은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기반으로 사회 제 분야를 다뤘다. 글 주제에 따라 독자가 잘 씹어 소화할 수 있도록 때론 수필 형식으로, 때론 기사 형식으로 썼다. 글밥은 신선한 재료가 눈길을 잡는다. 다양한 메뉴를 독자밥상에 올렸다. 사회 이슈를 그만의 생각과 논리로 버무리는가 하면, 조카에게 인생 선배로서 옆에서 조근조근 알려주듯 한 편지 글은 청춘들 삶의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혹자는 개인적인 일기이겠거니 예단할 수도 있지만, ‘보통 글밥’을 일단 손에 들면 착각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는 5월 어느 날 새벽, 문득 ‘활용 가치 없는 사유, 공유되지 않는 사유는 그냥 죽은 지식이지 않은가’라는 의문을 갖고 그 길로 새벽마다 그만의 글밥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글밥을 받는 이들은 언론계 선‧후배들과 교수, 교사, (고위) 공직자, 기관장,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 등 오피니언 리더들이었다.

한 언론계 동료는 “누구나 일상에서 쉽게 접하고 겪는 일을 자신만의 색깔로 몰캉몰캉한 젤리를 씹는 기분을 주는 글밥을 매일 받았다”며 “글밥을 받는 독자끼리 만난 적이 있는데 동시에 ‘글밥 중독자들끼리 모였다’고 해 한바탕 웃음보가 터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심 작가는 “처음 글밥을 시작할 때는 생각나는 대로, 글감이 잡히는 대로 쓴다는 심산이었는데 독자들 반응에 어느 순간 의무감에 사로잡혀 매일 수양하듯 글을 지었다”고 말했다.

심 작가는 독자들 요청에 따라 책을 내고, 지난달 16일 대구 수성구 박물관 수 별관전시실에서 ‘보통 글밥’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이날 유명상 대구한국일보 대표와 곽대훈 국회의원을 비롯해 각계 인사 50여 명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심 작가와 따뜻한 글밥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심 작가는 “불혹부터는 잘하는 걸 업으로 삼아 ‘글력’이 센 사람이 되겠다”며 “이제부터는 ‘잘 쓰기 훈련’ 10년에 들어가 지천명에는 브라운관에서 소통하는 작가가 되겠다”고 말했다.

‘심보통’은 무슨 뜻이고, 왜 ‘글밥’인가.

“보통은 보통 사람처럼 살고 싶다는 뜻의 제 필명이죠. ‘글밥’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매일 아침 정성 듬뿍 담아 내놓는 따스한 엄마밥 같은 것인데, 글밥에는 엄마밥처럼 상시 먹어야 살아갈 수 있는 인간사 사유를 담았습니다.”

그는 ‘보통 글밥’에서 보통 글밥을 이렇게 설명했다. “‘글밥’은 비빔밥과 같은 거죠. 매일 우리는 밥을 먹죠. 그건 당연하게 생각해요. 근데 글밥은 어지간히도 잘 안 먹어요. 왜일까요. 비빔밥은 혼자 슥슥 비벼 먹기 쉬운데, 글밥은 혼자 비벼 먹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거든요. 아무쪼록 ‘보통 글밥’을 통해 마음의 양식이 조금씩 늘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보통 글밥’은 제 필명 심보통(보통 인간으로 살겠다는 의미)의 보통에 밥처럼 상시 먹어야 살아갈 수 있는 인간사 사유를 담은 글밥을 나란히 놓은 것입니다.”_14~15쪽

글밥 반응은 어땠나.

“글밥은 ‘활용 가치 없는 사유, 공유되지 않는 사유는 그냥 죽은 지식이지 않은가’라는 의문을 가진 데서 출발했습니다. ‘글밥’이라고 명명하고, 제 사유‧언어 체계를 공유해도 좋을 만한 지인 300명을 독자로 상정했죠. 처음에는 제 일방적인 소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상 외로 독자들 반응이 좋았습니다. 하나의 글로 매일 10명~30명씩 소통했죠. 매일 이른 아침 갓 지은 글을 배달하다 휴가철 잠시 쉬었을 때 휴대폰으로 ‘매일 아침 오던 글밥이 안 오니 뭔가 허전해요. 더 보내줄 수 없나요’라는 문자가 쇄도했습니다. 심지어 생각지도 않은 회사 동료까지 ‘요즘에는 왜 글밥을 보내지 않느냐’는 문자가 이어졌죠. 3개월째 접어들 때 독자들로부터 ‘책으로 엮어 달라’는 주문이 이어졌습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내 글이 오르내리고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고 기다려주는 것만으로도 작가로서 글밥을 지을 의무가 마땅히 생기더라고요.”

앞으로 계획은.

“저는 ‘글력’이 센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작가는 작가인 채로 ‘글로써 밀어붙이는 힘이 세야 한다’고 봐요. 앞으로 10년은 ‘열심히 쓰기’에서 ‘잘 쓰기’로 한 걸음 더 나아가려 합니다. 열심히 하는 걸 업으로 삼는 건 20~30대면 족하다고 생각해요. 불혹부터는 잘 하는 걸 업으로 삼아야 지천명을 이어 환갑에 무사히 이를 수 있다고 봅니다. ‘보통 글밥2’는 내년 봄 시작합니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16일 대구 수성구 박물관 수 별관전시실에서 열린 ‘보통 글밥’ 출판기념회에서 심지훈 작가의 모친 이명희 여사가 부친 고 소설가 심형준(1949~2013) 선생을 대신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민규 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보통 글밥’ 출판기념회 축하무대를 장식한 신예 가수 예나(왼쪽)와 가수 김동아. 김민규 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보통 글밥’ 출판기념회에서 “글력이 센 작가가 되겠다”고 포부를 밝히고 있는 심지훈 작가. 김민규 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보통 글밥’ 출판기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유명상 대구한국일보 대표. 유 대표는 심지훈 작가가 총괄책임을 맡고 있는 한국콘텐츠연구원의 원장을 겸하고 있다. 김민규 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16일 박물관 수 별관전시실에서 열린 ‘보통 글밥’ 출판기념회에서 ‘로시난떼와 민화’라는 주제로 미니 강의를 선보이고 있는 이경숙 박물관 수 관장. 김민규 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보통 글밥’ 출판기념회 식전행사에서 무용을 선보이고 있는 김미숙 고전무용가.


‘보통 글밥’ 출판기념회에서 심지훈 시집 ‘문인송 가는 길’ 중 ‘엄마 마음’을 낭독 중인 정명숙 시낭송가. 김민규 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심지훈(沈芝薰)

2017년 9월 9일 오전 5시 55분, 아들 라온이의 탄생이 자신의 변곡점이자 분기점이라 믿는 심지훈은 스토리텔링 전문작가다. 현재 한국일보 독립법인 대구한국일보 한국콘텐츠연구원 총괄에디터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스토리텔링 이론서 『스토리가 돈이다Storytelling is money』가 있고, 실전 스토리텔링 성과물로는 『‘퍼스트 펭귄’ 전준한 이야기』 『서른일곱 스토리텔러가 쓴 우리 동학』 『변경의 동학-상주동학이야기』 『세상을 바꾼 43일-새마을운동발상지 신도마을이야기(한·영·만화 버전)』 『박정희·이병철 Storytelling-사람이야기』가 있다. 그는 글쟁이는 누구나 시인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호흡이 긴 글의 바탕이 시심(詩心)이라 믿기 때문이다. 지난해 첫 시집 『문인송 가는 길』을 펴냈다.

PICK ‘보통 글밥’

사유를 할 줄 모르는 자들이 자리를 꿰차고 앉아 있으면, 예의염치를 기대하기 어렵고, 사유서만 넘쳐날 뿐이다. 사유(思惟)할 줄 알아야 사유(四維) 할 수 있다. 그래야 세상에 유익한 인간이 되고, 그래야 세상이 아름다워진다. _41쪽

20시간의 산통은 산파 역할을 하는 간호사나, 엄마나, 아빠에게 모두 생명이 엄마집에서 터지듯 나올 때, 그 경이로움이 어떤 것인지를 너무나도 명징하게 알려주었다.

나는 너의 얼굴 중에서도 눈을 제일 먼저 보았다. 그때 아빠는 ‘아, 내가 아빠 준비를 엉뚱하게 하려 했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아들아, 너는 너인 채로, 하나의 생명인 너인 채로 너무나 강인하게, 건강하게 잘 태어났단다.

하마터면 사랑이란 명분 아래 아빠의 훈수가, 오로지 너의 생으로 가득차야 할 것을 가두고 묶고 절개할 뻔했다는 것에 너무 너무 미안했단다. _68쪽

얼큰하게 취해서는 기차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 인생 선배가 마흔인 후배에게 어떻게 살라고 조언한다면…, 선배는 망설임 없이 정명하듯 말했다. 절문(切問)하고, 행동하라!

선배는 부연했다. 논어 장자편에 나오는 말이라고. 박학(博學), 독지(篤志), 절문, 근사(近思) 이걸 하라. _71쪽

우리는 어릴 때 정직해라,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라고 배운다. 우리가 어른이 되어선 아이들에게 정직해라,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정작 우리를 가르쳤던 어른들과 어른이 된 우리는 여간해선 정직하지 않고, 쓰레기를 함부로 버린다. 왜 그럴까? _74쪽

배운다는 것은, 안다는 것은 실로 고집스러워지는 것이다. 동시에내가 얼마나 무지한 지를 알아가는 것이다.해서 인류를 위해 더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를발견하는 교두보를 마련하는 것이다. _93쪽

마음 머리는 인간의 일생 동안 필요한 머리다. 헌데도 대다수 사람들은 이 머리에는 좀처럼 관심을 두지 않는다. 특히 대한민국은 조선의 신분제사회, 일제식민지, 한국전쟁 등 지난(至難)한 역사 때문에 오로지 공부만이 상층부로 가는 사닥다리라고 신앙처럼 여겨온 탓에 마음 머리가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아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대는 10대다운 아름다운 마음씨를 낼 수 있어야 하고, 20대는 또 20대 대로, 30대, 40대, 50대, 60대… 죽을 때까지 그 나이에 맞는 인간내 폴폴 풍기는 마음 머리를 갖고 살아야 한 가정이 정상 가정이 되고, 한 조직이 정상 조직이 되고, 한 국가가 정상 국가가 되는 것이다. 이 나라가 내년이면 한국전쟁 발발 70돌인데, 전장의 포성소리는 아스라이 까마득한 옛 이야기 같은데, 좌우 이념논쟁은 어제 전쟁 끝난 것처럼 살의(殺意) 담긴 언어의 칼부림이 끊이지 않는 것은 모두 마음 머리를 못 배웠기 때문이다. 이 땅 현대사의 비극이다! _196쪽

일제식민지기 국내에는 사회주의 신봉자들이 점령해 있을 때, 일본 유학 중이던 전진한, 이선근, 김범부 같은 총명한 젊은이들이 목숨을 걸고 자유민주주의를 고수했다. 이들 일본 유학파들은 건국 이후 초대정부 요직을 지냈다. 이들을 감히 누가 친일분자라고 할 수 있나.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구국할 수 있다는 일념’으로 쌀 한 수저씩 모아 이 나라 등불- 청년들에게 유학을 보내준 게 우리네 선배들이었다. 이름 모를 우리네 숱한 선조와 선배들은 목숨을 걸고 대한민국에 자유민주주의를 심으려 했다. 과거에 사로잡히면 미래가 갈지자행이다. 부디 이것만 기억하자.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국가다. _5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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