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관객의 감정구조와 정서적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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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11.21. 오후 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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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스타 사태의 숨겨진 내막을 파헤치는 영화 <블랙머니>의 한 장면.


꽤 오래전 판사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법과 영화>라는 다소 심심한 제목을 가진 강연이었는데, 그때 소재로 했던 영화 중 하나가 바로 <7번방의 선물>이었다. 판사 중 한 명이 <7번방의 선물>은 지나치게 과장된 영화가 아닌가 싶다고 의견을 말했다. 양형기준이 어처구니없다는 취지였다. 동의한다고 대답했다. 아이가 감옥에 몰래 들어간다거나 실질적 사형중지국가임에도 억지로 사형이 삽입되었다는 의견도 곁들였다. 그러나 이 작품을 1000만명 이상의 관객이 보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200만명이 넘는 관객들은 양형기준이 얼토당토않다거나 판사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대개 법이란 그렇게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고 말이다.

영화 관객이 1000만명이 넘으면 영화의 질적 수준이나 내용의 사실성을 넘어서 사회적 사건이 된다. <7번방의 선물>이라는 사회적 사건으로서의 영화는 법은 평등하지 않다는 당시 관객들의 보편적 정서 위에 서있다. 딸아이 예승이의 하나 남은 가방을 뺏은 자가 고위 공무원, 경찰 공무원 가족이었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실제 여부, 개연성에 관계없이 사람들은 이 설정에 동의했고, 눈물을 흘렸다. 정서적 현실 속에서 법은 불공평하고 공권력은 부당했다.

한국의 대중적 감정은 오랫동안 권위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1980년대 안방을 휘어잡았던 드라마 속에서 유독 재벌이 자주 등장했던 것은 그들이 아주 먼 곳에 있는, 배타적 공간의 별종이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함께 자주 등장했던 인물들이 의사, 검사, 변호사, 기자 등의 전문직이었다. 주변엔 드물었지만 드라마와 영화에서만큼은 이런 전문직들이 참 자주 등장했다. 흥미로운 것은 20~30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전문직이 꽤나 권위를 가진 인물들로 묘사되었다는 사실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영화 속 전문직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말이다.

최근 영화들을 살펴보자면 전문직이나 재벌과 같은 배타적 인물군은 권위가 아닌 권위주의의 산물인 속물로 규정되거나 부패나 부정의 원흉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농담처럼 말하자면 깡패, 양아치 전문 배우였던 류승범이 검사를 연기했다. 더 문제적인 것은 검사로 등장하는 <부당거래>(류승완, 2010) 속의 류승범이 진짜 깡패를 연기했던 영화들보다 훨씬 더 속악하고 경박하게 묘사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연기, 연출이 과장되어 보이거나 어색하지 않고 사실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대중의 감정구조 속에 검사는 더 이상 권위 있고 신뢰감을 주는 인물이 아니라 속악하고, 경박한 인물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정지영 감독이 최근 연출한 <블랙머니>는 한국 사회를 휩쓸었던 론스타 사태의 숨겨진 내막을 파헤치는 작품이다. 론스타, 외환은행과 같은 고유명사와 매각, BIS 비율과 같은 전문 금융용어가 뒤섞여 뉴스와 지면을 지나쳤던, 그러나 그 누구도 그 내막을 분명히 알 수 없었던 중대한 사건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로 재구성한 것이다.

실화 소재를 서사적으로 재현하는 데 탁월한 감각을 지닌 정지영 감독답게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던 문제의 핵심을 정관계 고위직, 금융위원회, 다국적 펀드기업, 검찰의 구도 안에서 입체적이면서도 선명하게 그려낸다. 고전적 스토리텔러답게 멋부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치고 나가는 호흡이나 리듬도 산뜻하다.

눈에 걸리는 것은 바로 “막프로”라고 불리는 영웅적 ‘검사’ 양민혁이다. 검사동일체라는 미명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유기체적 조직의 하부 구조물에 가까운 검사들 가운데 검사 양민혁은 돌연변이이자 외톨이이고 아웃사이더이다. 그는 주요 요직, 즉 정치적 사안에서는 따돌림을 당한 채 교통사고와 같은 민생사건을 주로 처리하는, 그런 검사로 그려진다. 방송 뉴스나 신문에 자주 등장하는 그런 특수부 검사가 아니라 밤낮없이 일에 치여사는, 그런 평범한 검사의 대명사처럼 등장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사를 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검사의 지위를 활용한다거나 검사 신분증 하나로 거의 막힘없이 정보를 얻어내는 모습을 보자면, 대중적 감정구조 안에서의 검사에 대한 이미지와 거의 다르지 않다. 더 큰 권력을 못 가졌을 뿐이지, 가진 권력을 맘껏 쓴다는 점에서는 말이다.

평범한 관객의 감정구조와 가장 어긋나는 부분은 바로 마지막 결말이다.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그는 가히 영웅적 행위를 한다. 대개의 등장인물들이 돈에 대한 욕망, 출세에 대한 이기심에 굴복하는 것과 달리 그는 끝내 독야청청 진실을 부르짖는다. 마블 영화 속 히어로보다 못할 것도 없다.

문제는 막프로 양민혁 캐릭터와 실제 검사 간의 싱크로율이 아니다. 과연 대중의 감정구조 속에서 검사 한 명이 세상의 진실을 드러낸다는 해결책이 설득력 있게 전달될지, 진실한 검사의 영웅적 활약이 가능하게 받아들여질지 의구심이 드니 말이다. 어떤 점에서, 국민의 대중적 감정구조 속에서 검사는 <더 킹>에 그려졌던 정우성이나 배성우의 모습에 더 가깝지 않을까? 국밥 한 그릇에 만족하고, 소주를 마시는 검사보다는 밀실에서 한 병에 2억원이 넘는 술을 마시며 그것을 성공의 기준이자 스스로의 가치라 만족해하는, 그런 모습, 국민의 정서 속 검사 모습에 더 가깝지는 않을까? 검사 한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는 기대는 어쩌면 순진한 판타지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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