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사망 수사관 휴대전화·유서 왜 압수했나

'하명수사' 핵심고리사라져, 다급한 증거확보

2019-12-03 11:37:24 게재

검찰 "사망과 선거개입 사건 의문 없이 규명"

경찰 "숨겨야 할 사실 있나" 강력 반발

압수수색·포렌식 절차 법적 문제 제기될 수도

'김기현 전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의 주요 참고인인 검찰 수사관이 사망하면서 검찰 수사가 난항에 빠진 가운데 검찰이 이례적으로 망인의 휴대전화와 유서 등 유류품을 압수해 간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검찰은 선거개입 사건 수사의 주요 증거물을 보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앞으로 검찰의 수사가 난항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에서 주요 증거물을 확보한 것이라는 얘기다. 선거개입 사건 수사를 끝까지 파헤치려는 의도로 보인다.

하지만 경찰의 사망사건 수사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주요 증거물을 뺏어간 상황이어서 경찰의 강력 반발과 함께 경찰의 사망사건 수사에 협조할 지도 관심사다. 압수수색의 불법성은 없는지, 또 유서에 등장하는 윤석열 검찰총장 관련 내용, 휴대전화에 검찰의 강압수사나 별건수사로 인한 압박을 증명해 줄 내용이 있는지도 관심사다.

굳은 표정의 윤석열 검찰총장│윤석열 검찰총장이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특별감찰반 A수사관의 빈소를 조문한 뒤 굳은 표정으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검찰의 해명 '글쎄' =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김태은 부장검사)는 2일 오후 3시 20분께부터 오후 5시께까지 서울 서초경찰서 형사팀을 찾아 전날 숨진 서울동부지검 소속 A수사관의 휴대전화와 메모(유서) 등 유류품을 확보했다.

검찰은 이날 기자들에게 서초경찰서에 대한 압수수색에 대해 입장을 냈다. 서울중앙지검은 "전 울산시장 관련 사건 수사중 A 수사관이 사망한 경위에 대해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며 "선거를 앞둔 수사의 공정성이 문제된 사안인만큼 주요 증거물인 고인의 휴대폰 등을 신속하게 보전하여 고인이 사망에 이른 경위 및 본 사건의 진상을 한 점 의문없이 규명하고자 압수수색에 이른 것"이라고 밝혔다.

A수사관은 황운하 대전지방경찰청장(전 울산지방경찰청장)이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고발된 사건의 참고인이었다. 이 사건은 김기현 전 울산시장 주변의 비리 첩보를 청와대로부터 황 청장 등이 넘겨받아 수사함으로써 지난해 6·13 지방선거에 부당하게 개입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골자다.

A수사관은 11월 22일 울산지검에서 조사를 받은 뒤 12월 2일 오후 6시 참고인 신분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3시간 전인 이날 오후 3시쯤 서울 서초동 한 지인 사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검찰은 1일 '극단적 선택'을 한 수사관 A씨의 사망원인을 밝히고 '선거개입 사건' 등을 규명하는 데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그의 휴대전화를 확보하고자 법원의 영장을 받아 압수수색했다는 설명이다.

검찰이 A씨의 휴대전화를 가져간 것은 김기현 전 울산시장 주변 수사와 관련한 핵심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검찰이 A씨의 휴대전화를 청와대 특감반의 활동 내용을 규명할 핵심 증거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A씨의 휴대전화에는 그가 보안 메신저인 '텔레그램'으로 청와대 관계자와 나눈 대화 내용이나 음성 녹음 등이 그대로 남아있거나 이를 삭제했더라도 복원할 수 있는 상태일 가능성이 있다.

검찰이 휴대전화 내용을 얼마나 복원 또는 확보하느냐에 따라 이번 선거개입 사건 수사의 성패가 판가름날 수도 있다. 통상 주요 참고인이나 증인, 피의자가 사망하는 경우 수사가 미제로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법률적 문제는 없나 = 압수수색 관련 위법적인 요소는 없는지도 문제다. 통상 경찰 변사 내사 수사결과를 검찰이 사후적으로 점검한다. 하지만 이번 사건수사의 경우 경찰이 변사사건 수사과정에 있는 주요 증거물을 압수해간 상황이어서 사망사건을 방해하고 있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검찰에 사건이 없을 때는 경찰 변사 내사 수사 결과를 사후적으로 점검하는데, 지금은 중요한 사건을 신속하게 수사 철저하게 할 필요가 있어서 한 것"이라며 "변사 사건 사망원인 규명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사망 경위가 검찰이 수사 중인 울산 관련 사건의 아주 중요한 자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런 경우는 아주 이례적이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일반적인 형소법 압수수색 규정에 따라 수사상 필요하고 보전 필요성 있어서 신속하게 조치한 것"이라면서도 "이런 경우가 잘 없다"고 설명했다.

또 휴대전화 포렌식(디지털 저장매체 복원 및 분석) 절차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내용물을 추출할 때는 소유자인 유가족이 있는 상태에서 해야 한다. 검찰 관계자는 "경찰에서 압수할 때에는 경찰이 보관자이기 때문에 경찰 앞에서 압수수색하고, 내용을 추출하고 볼 때는 유가족이 참여 하에 한다"며 "정상적인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 "증거 절도" 강력 반발 = 경찰은 검찰의 이례적인 압수수색에 반발하며 검찰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한 경찰 간부는 "경찰이 수사진행중이던 사건의 증거를 모조리 가져간 셈인데 이걸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느냐"면서 "증거를 절도한 셈"이라고 검찰을 비판했다.

또다른 경찰 간부는 "영장 청구하고 발부받는 시간까지 감안한다면 사건이 발생한 후부터 검찰은 이미 압수수색을 맘 먹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뭘 보려고 유류품을 싹 다 가져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사건들과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이 얽혀 있는 국면에서 경찰이 끼어들지 못하게 검찰이 선방을 날린 것 아닌가 싶다"고 분석했다.

형사사건을 담당해 본 실무진급 경찰은 "어차피 경찰이 사건 수사를 마무리하면 검찰에게 관련 서류나 필요 증거를 넘기게 돼 있는데 그것도 기다리지 못할 만큼 검찰이 마음이 급했다는 뜻 아니겠느냐"면서 "여러 가지 논란이 있을 줄 알면서도 압수수색을 강행한 걸 보면 경찰이 보면 안 되는 뭔가가 있었다는 뜻으로밖에 해석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유서 내용에 관심 = 휴대전화와 함께 유서를 압수한 것에 대해서도 의혹이 제기된다. 윤석열 총장과 관련된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9장 분량의 유서에는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죄송하다. 가족들을 배려해주시길 부탁드린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에 대해 여권에서는 검찰이 과도한 압박을 가해 A수사관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또한 A수사관이나 가족과 관련된 별건수사를 검찰이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도 이날 춘추관 브리핑에서 A수사관이 숨진 사건을 두고 "이유가 낱낱이 밝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이날 오전 A수사관을 부검했다. 경찰은 부검 결과 '특이 외상이 보이지 않는다'는 1차 소견을 전하면서 현장감식, 주변 폐쇄회로(CC)TV, 유족 진술 등에 비춰 현재까지 범죄 관련성은 없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최종 감식 결과는 약 2주 뒤에 나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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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 방국진 김형선 안성열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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