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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백과

김진영

[ 金震榮 ]

요약 일제강점기의 의병이다. 산남창의진에서 활동하였으며 국권피탈 이후에도 김좌진 등과 연계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9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출생-사망 1876 ~ 1921.8.23
본관 의성(義城)
별칭 해영(海榮)
활동분야 의병
출생지 청송(靑松)
주요수상 건국훈장 애족장(1997년)

본관은 의성(義城)이며 경북 청송 출신이다. 을미의병 때 청송의진의 중군장을 역임한 대락(大洛)의 아들이다. 1907년 일본이 정미7조약을 강제하고 진위대와 시위대를 강제 해산하자 전국 각지에서는 국권회복을 위한 의병이 봉기하였다. 이때 김진영은 국내 여러 곳을 방문하며 동지를 규합하다가 산남창의진(山南倡義陣)에 들어가 장영서장(將營書掌)에 임명되었다.

1907년 정용기에 의해 재조직된 산남창의진은 청하, 자양, 신성(薪城) 등지에서 일본군을 격파하는 위세를 발휘했으나 입암전투에서 정용기 의병장을 비롯한 많은 의병들이 순국하였다. 이때 김진영도 입암전투에서 패한 후 전국을 돌며 재기를 모색하였다. 1910년 국권(國權)이 피탈(被奪)된 후에도 만주지역의 김좌진(金佐鎭) 등과 연계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체포되어 공주옥(公州獄)에서 수년간 옥고를 치렀다. 199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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