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한국 축구의 전설 박지성이 직접 김보경을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했다. 등번호 7번을 물려줬고 같은 왼쪽 미드필더로 김보경은 크게 각광 받았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까지 진출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골까지 넣을 정도로 기대를 받았던 김보경은 하지만 이후 소속팀 주전 경쟁 실패와 이적 문제 등을 겪으며 기억 속에 잊혀졌다.

그렇게 흘러가는 선수로 끝나나 했던 김보경은 만 30세의 나이에 축구인생 전성기를 맞았다. 울산 현대를 이끌고 전북 현대와 최종전까지 우승 경쟁을 이끌었다. 13골 9도움은 수치만으로도 엄청났고 김보경은 그렇게 준우승팀 선수임에도 MVP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김보경은 MVP 수상소감마저 너무나도 품위있고 감동적인 명연설로 마무리하며 비록 우승은 차지하지 못했어도 2019년 K리그의 주인공은 자신임을 다시금 증명해냈다.

연합뉴스 제공
2일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 호텔에서는 ‘하나원큐 K리그 어워즈 2019’가 열렸다. 1일 K리그1 최종라운드가 종료되고 오직 부산 아이파크와 경남FC간의 승강 플레이오프(5일, 8일)만 남겨둔 상황에서 전북 현대의 역전 우승과 제주 유나이티드의 강등 등으로 2019시즌이 종료됐다.

비록 팀은 최종전에서 역전 우승을 내줬지만 김보경은 올시즌 13득점 9도움의 엄청난 활약을 인정받아 MVP가 됐다. 김보경은 역대 다섯번째(1999 안정환, 2010 김은중, 2013 김신욱, 2018 말컹) 준우승팀 MVP 수상자가 됐다.

▶박지성의 후계자로 지목됐던 김보경, 아쉬움이 컸던 이후

김보경은 데뷔 당시부터 대형 유망주로 각광받았고 박지성이 국가대표에서 은퇴하면서 자신의 후계자로 직접 김보경을 언급하면서 그 기대감이 더 컸었다. 실제로 김보경은 박지성처럼 일본에서 데뷔해 EPL까지 왔으며 다소 닮은 외향, 왼쪽 미드필더 등의 비슷한 느낌도 컸다.

EPL에서 승승장구 하기도 하며 그 기대에 부응하나 했지만 이후 김보경은 주전 경쟁에서 밀리고 팀을 찾지 못하며 잊혀져가나 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2006, 2010 월드컵에서 7번을 달았던 박지성의 등번호인 7번을 달았음에도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기도 했다.

결국 김보경은 2018 러시아 월드컵 승선에도 실패하고 2019시즌을 앞두고 울산으로 임대이적해 서른의 나이에 이렇게 마무리를 준비하는가 했다.

김보경의 카디프시절 활약상을 전한 외신
▶K리그 복귀 후 만 30세에 축구인생 최고 시즌

하지만 올시즌 김보경은 울산을 이끌고 전북왕조에 도전하는 대항마로 시즌 내내 맹활약을 했다. 13골 9도움은 맹활약의 산물이었다. 이미 시즌중에 ‘MVP급 활약’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물론 최종전에 울산이 전북에게 역전우승을 내줬지만 그럼에도 김보경의 활약은 충분히 인정받았다.

MVP 투표 득표를 보면 김보경의 MVP 수상은 납득이 된다. 일단 12명의 감독 중 5명의 감독이 김보경에게 표를 던졌다. 문선민과 세징야는 3표를 받았다. 완델손은 1표였다.

주장단 12명도 역시 5표를 김보경에게 던졌다. 완델손이 오히려 3표, 문선민과 세징야는 2표씩 받았다. 미디어는 총 101표 중 43표가 김보경에게 갔다. 문선민은 30표를 받았고 세징야는 26표를 받았다.

즉 김보경은 감독단, 주장단, 미디어 모두에게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선수였고 100점만점으로 환산하면 42.03점으로 2위인 24.38점인 문선민을 큰 차이로 눌렀다. 준우승을 하긴 했지만 시즌 내내 압도적인 모습을 보인 것을 모두가 인정한 셈이다.

▶MVP의 품격 높인 명연설

김보경은 이날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 기쁨만 누린 것을 넘어 수상소감을 통해 MVP의 품격마저 높였다. 근래 수많은 시상식에서 이렇게 멋지게 말하는 이가 있었는가 싶을 정도였다.

김보경은 “어제 경기 이후로 포기했다. MVP를 욕심 낸 것은 우승에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감사한 마음도 있지만 미안한 마음이 크다”면서 “정말 모두 쟁쟁한 후보들이었다. 후보에 있던 세징야랑 경기를 해보면 이 선수 공을 뺏을 수 없다고 느낀다. 문선민에게는 공이 안 갔으면 할 정도다. 포항 완델손은 어제 경기도 그랬듯 정말 잘한다”며 자신과 함께 최고의 시즌을 보낸 MVP 후보들을 추켜세웠다.

그러면서 “저는 그 선수들에 비해 나은게 없다. 제가 MVP를 받은건 여러 사람들의 도움 덕분이다. 영광을 돌리고 싶다”며 겸손한 모습도 보였다.

연합뉴스 제공
김보경은 MVP 수상을 개인의 영광으로 돌리지 않았다. “저는 이 MVP 수상을 저만 갖거나, 울산에 속한 팬, 선수들과만 나누기보다 K리그 전체와 나누고 싶다”며 연설을 이어간 김보경은 “올해 K리그가 정말 재미있었고, 저도 올시즌 K리그 선수로 뛰면서 너무 행복했다. 전북현대는 너무 강력한 팀이었고, 대구는 예상보다 너무 잘해서 내년이 더 기대되는 팀이다. 서울도 너무 잘했다. 모든 팀이 이렇게 잘하는데 내년이 어떨지 기대가 된다”며 비록 준우승을 차지했음에도 정말 재밌었던 2019 K리그를 돌아보기도 했다.

최종전 이후 울산 김도훈 감독은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김보경 역시 "모든 분들이 2등을 기억할 필요는 없다. 기억해야할건 우리 울산이다"라며 "한경기로 모두가 실패했다고 말한다. 올해 거둔 2등을 실패로만 생각한다면 정말 실패라고 생각한다. 바꿀 수 없는 이 경험을 가지고 내년에 도전할 것이다. 울산이 다시 우승에 도전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했다.

MVP를 탔음에도 준우승에 그친 아쉬움, 그리고 이 실패를 경험으로 더 앞으로 나아갈 것임을 다짐하는 명연설은 김보경이 단순히 실력만이 아닌 마음가짐과 입담마저 K리그 MVP임을 확인시켜주는 모습이었다.

저작권자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