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식 작가가 만난 뻔FUN한 예술가 ⑨] 서양화가 김동석

석과불식-1901 180x180x200cm 가변설치 Wires And Seeds, Lighting 2019 김동석
김동석의 개인전 ‘석과불식’(碩果不食)이 5일부터 16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에서 열린다. 어머니의 땅, 길, 씨앗 등을 주제로 30여년 간 화업을 이어온 그의 작품 변천사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다.

[환경일보] 김동석 작가의 개인전 ‘석과불식’(碩果不食)이 12월5일~12월16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에서 열린다. 작가는 30여년 창작 활동을 결산하고, 앞으로의 30년을 설계하고자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

1000m 길이의 와이어로프(wire rope, 여러 가닥의 강철 철사를 합쳐 꼬아 만든 줄)와 10m 평면에 수천 개의 복숭아 씨앗을 오브제로 제작한 설치미술을 비롯해 지난 30여년 간 제작한 대표작 60여점을 선보인다. 이를 통해 김동석 작가는 평생 추구해온 미술 철학과 조형 의지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려 한다.

‘석과불식’은 <주역>에 나오는 말로 ‘마지막 남은 씨 과실은 먹지 않는다’는 뜻이다. 높은 가지 끝에 남아 있는 마지막 과일이 종자가 되어 싹을 틔워 나무로 거듭나게 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석과불식에는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새로운 생명은 탄생한다’는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김동석 작가의 설치작품은 이러한 석과불식의 강한 의지와 희망으로, 작가를 포함한 모든 이가 삶의 목표를 향해 정진해 가기를 소원하는 상징물이다. <작가소개 중에서>

석과불식-1902 180x180x200cm 가변설치 Wires And Seeds, Lighting 2019 김동석

석과불식의 의미로 기획한 김동석 작가의 개인전은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의 작품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살필 수 있고, 작품세계의 변천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서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여러 차례의 개인전에서 어머니의 땅, 길, 씨앗 등 일관된 주제 의식과 다양한 변주의 조형성이 돋보이는 작품을 창작해 왔다. 이번 개인전도 같은 연장선에서 기획됐다. 하지만 종전의 회화 또는 조각적 회화와 함께 설치작품이 곁들여진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또 설치작품은 이번 개인전의 주된 작품으로, 그간 작가가 추구했던 철학과 조형 의지가 함축돼 있다.

석과불식-1904 180x180x200cm 가변설치 부분 Wires And Seeds, Lighting 2019 김동석

설치작품은 때론 작가로선 모험이다. 그동안 회화적 표현 방법으로 작품세계를 보여 왔으며, 미술계와 대중들에게 관심과 호응을 받았던 터라 설치작품이라는 새로운 시도에 대한 두려움도 없지 않았을 법하다. 김동석 작가는 ‘예술은 변해야 한다’라는 철학을 분명히 하듯 과감한 혁신을 추구했다. 이러한 변화는 그의 30여년 그림 작업에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창작활동의 중요한 의미이자 가치이기도 하다.

작가가 새롭게 변화를 추구한 설치미술은 3차원 공간에 오브제(object)를 들여놓고 장치를 두는 작업으로 20세기 후반쯤 새로 시작된 현대예술이다. 설치미술은 작가의 의도에 따라 공간을 구성·변화해 장소와 공간 전체를 작품으로 만드는 특징이 있어 특히 실험적 작가들이 선호하는 조형 양식이다. 이와 같은 설치미술에 쓰이는 오브제는 ‘발견된 사물’이라는 뜻으로서 작품에 이용된 자연물이나 사물 모두를 일컫는다. 오브제는 평면예술인 회화에서는 캔버스 같은 지지체에 부착되는 경우가 많지만, 평면을 벗어난 3차원 공간에서는 바닥에 놓이거나 천장에 매달리는 방식으로 조형화한다. 따라서 설치미술에 있어서 오브제는 그것이 놓인 공간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와 가치가 부여되고, 공간의 확장과 개념의 전시가 이뤄지게 된다. 그만큼 오브제의 선택과 조형화는 작가에게 중요하다.

석과불식-1905 180x180x200cm 가변설치 부분 Wires And Seeds, Lighting 2019 김동석

김동석 작가의 설치미술도 이러한 오브제가 핵심적으로 구성돼 있다. 종전의 회화작품에서 그랬듯이 씨앗은 그의 철학과 조형 의지를 설치미술로 승화시키고 있으며, 작가는 오브제인 씨앗을 설치하는 데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건축설계나 기계설비 같은 치밀한 구성계획도 그렇지만, 씨알에 가늘게 구멍을 내는 일, 그 구멍에 줄을 넣어 고정하는 일, 씨알을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하는 일, 각각의 씨알을 커다란 씨앗 형태로 구성하는 일들이 그렇다. 작가는 그만의 조형 의지와 심미성, 독창성 발현을 위해 치밀하게 공간을 구성한 뒤 오브제의 크기와 수량, 설치 위치와 조명 효과 등에 대해 많은 실험을 거쳤다. 물론 그 과정에서 실패와 착오의 흔적들이 작업실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작업실 바닥에 놓인 커다란 도면은 세밀한 작가의 정신을 드러낸다. 도면 위에 줄을 길게 펼쳐놓고 씨알을 일정한 간격으로 끼워 고정하는 작업은 단순하고도 반복적인 행위지만, 공학자 같은 치밀한 계산과 논리적 구성을 요구한다.

작가의 설치작품에서 씨알과 씨알 사이 공간은 여백이다. 그러나 3차원 공간 속 여백과 2차원 평면 속 여백은 전혀 다르다. 2차원 공간의 여백이 작가의 의도를 모두 반영하는 것과 달리, 3차원 공간의 여백은 작가의 의도와 함께 주변 환경이나 관람객의 관점 또는 참여로 완성된다. 이때 관람객은 작품의 단순한 감상자가 아니라 작품의 의미와 가치를 창조하는 해석자가 된다. 김동석의 씨앗은 종전의 캔버스라는 2차원 평면에 부착되는 오브제에서 벗어나 3차원 공간에서 군집으로 조형화되고, 외부 환경에 의해 움직인다. 이 과정에서 3차원 공간을 넘어 4차원의 세계로 확장되는 특징이 있다. 사방으로 확장된 시각적 공간에 빛의 세계가 더해지고, 오브제가 관람객이나 주변 환경에 의해 움직이고, 변화하는 시간성이 부여되면서 그의 설치작품은 4차원 예술을 제시한다.

석과불식-1906 180x180x200cm 가변설치 부분 Wires And Seeds, Lighting 2019 김동석

김동석 작가의 설치작품은 씨앗이라는 오브제의 생명성을 전시장이라는 열린 공간 속에 함축하고 확산한다. 이러한 특징은 이전까지 씨앗 오브제가 2차원 평면에 붙어 회화적 조각으로서 평면과 입체, 색채와 물성의 조화를 유기적으로 보여줬던 것과는 다른 조형 방식이다. 오브제를 엮은 줄들이 육면체의 공간을 구획하고, 그 공간 속엔 군집의 씨알이 둥근 모양으로 떠오른다. 이 원형(圓形)은 철학적 관점에선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라는 우리 전통 우주 관념인 천원지방을 연상케 하고, 미학적으로는 직선과 곡선이 조화를 이뤄 균형과 변화를 보여준다. 이러한 철학적·미학적 조형성은 작가의 씨앗 오브제 설치작품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아래로 길게 뻗은 줄에 엮인 수백 개의 씨알은 생명을 품은 객체이자 군집으로서 크고 작은 씨앗을 이룬다. 이상적 비례와 균형을 갖춘 군집의 거대한 씨앗 이미지는 바닥에서 솟구치는 찬란한 빛의 향연 속에서 새로운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는 식물의 생명체뿐 아니라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와 이를 아우르는 우주이기도 하다. 스스로 싹을 틔워 나무가 되는 작은 씨알에서 만물의 생명을 품은 우주로 확산된 것이다. 이는 씨알이 갖는 ‘석과불식’의 본질 때문에 가능하다. 석과불식에는 추운 겨울의 역경과 고난을 이겨낸 뒤 새로운 생명이 재탄생하는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씨알은 화려한 꽃을 피운 뒤 맺은 열매의 결정체다. 그것이 땅속에 묻히면 움을 틔우고 싹이 돋아 나무가 된다. 그만큼 씨알은 성장과 발전을 의미하고, 자신의 몸을 태워 세상을 밝히는 촛불처럼 자신의 몸을 썩혀 생명을 환생시키는 희생정신을 보여준다. 이 점에서 김동석 작가의 씨앗 작업은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이타적 문화의 갈망이자,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의 시각화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이번 김동석 작가의 개인전이 갖는 의미이다. 석과불식이 새로운 생명의 부활을 촉진하듯 씨앗 오브제가 철학적·미학적 언어로 소통되고 확산하기를 기대한다.

석과불식-1907 180x180x200cm 가변설치 부분 Wires And Seeds, Lighting 2019 김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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