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떳떳하기보다 남에게 보여주기 바빴던 삶
난생처음 스스로 결정한 40살 은퇴의 기록
여기, 태어나면서부터 모범생이었던 한 남자가 있다. 대한민국의 학교 교육을 착실하게 받았고 공부도 남들만큼은 하는 편이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누군가는 선망하는 직업인 기자가 되었다. 같은 직업을 가진 여자와 만나 결혼도 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예쁜 두 딸도 낳았다. 꾸역꾸역 빚을 다 갚아 서울에 진짜 내 집도 마련했다. 겉으로는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남자의 전형적인 모범생 오브 모범생 인생. 그런데 이 남자, 40세에 은퇴하기로 결심한다. 그의 머릿속, 그리고 마음속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전직 열혈 기자에서 현직 좋은 남편이자 자상한 아빠로 거듭난 김선우 저자가 『40세에 은퇴하다』를 21세기북스에서 출간했다. 『40세에 은퇴하다』는 무작정 은퇴의 장밋빛 미래만을 보여주는 책이 아니다. 그렇다고 은퇴의 A to Z를 담아 은퇴의 정석을 알려주는 책도 아니며, 무턱대고 현실로부터 도피하라고 권하는 책도 아니다. 오히려 『40세에 은퇴하다』는 ‘40세’, ‘은퇴’라는 굉장히 현실적인 단어를 빌려 지금의 삶이 어떤지 한번 뒤를 돌아보고 숨 고르기를 하자고 이야기하는 책이다. 제목에 쓰인 40세와 은퇴는 충분히 다른 단어로 치환될 수 있다. 당신이 몇 살이든 무엇을 하든 엑셀 대신 브레이크를 밟는 시간은 그 자체만으로도 유의미하다. 이 책과 함께 원래 하던 일을 그만두는 용기, 새롭게 할 일을 찾아가는 도전, 삶의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자신만의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하고 후회하는 게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단 낫잖아?”
종횡무진 현장을 누비던 기자에서 평범한 아저씨가 된 한 남자의
좌충우돌 우유부단 솔직담백 리얼 은퇴 스토리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가는 방식으로 일에 뛰어든다. 보통 20대 중반부터 시작해 별다른 사건이 터지지 않는 한 그저 열심히 일한다.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만큼 정신없이 바쁜 한국 사회, 당연히 ‘나’를 돌볼 시간은 없다. 하지만 도태될까 두려운 마음과 살아남고 싶은 마음이 겹쳐 쉬지 못한다. 가족, 친구, 회사 어디에서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하루하루 연명하는 ‘나’의 모습과 마주한다. 지금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30~40대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40세에 은퇴하다』의 김선우 저자도 마찬가지였다. 3수를 하긴 했지만 대학을 무사히 졸업했고 어려워서 소위 언론 고시라 불리는 시험을 통과해 기자가 되었다. 사회의 최전선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며 일하는 기자라는 직업은 더없이 매력적이었다. 앞뒤 가리지 않고 정신없이 일했다. 밤 11시까지 야근은 기본이었고 주말에도 출근했으며 술자리에는 개근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남은 건 초고속 승진도 놀라운 성과도 아닌 한국과 미국으로 멀리 떨어져 사는 기러기 가족 관계, 불규칙한 식사와 잦은 야근 및 술자리에 지친 몸,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나?’ 하는 삶에 대한 회의뿐이었다. 당장이라도 일을 그만두고 가족과 함께하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사회적으로 아무도 아닌 존재가 되는 현실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지금까지 누군가는 선망하는 기자로 살아왔는데, 인정받는 자리를 박차고 내려놓는 과정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나중에 왜 기사로 썼냐고 지적받는 사소한 사건이라도 우선 기사로 쓰는 일이 중요했다. 그래서 후회하더라도 일단 하기로 결심했다. 무엇을? 40세에 은퇴를!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한 생애 첫 결정이었다.
“이 책을 쓰는 데 약간의 용기와 약간의 무모함과
약간의 희망과 약간의 절망이 필요했다.”
삶에 무기력했던 한 남자를 일으킨 은퇴의 과정들
『40세에 은퇴하다』는 특수한 상황에 처한 개인의 은퇴 과정을 담고 있지만 정신없이 바쁜 오늘날의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한번쯤 고민해보고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자도 처음에는 당연히 다른 사람들처럼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힘들더라도 회사에 계속 다니면서 꼬박꼬박 월급을 받고, 제때 승진을 하고, 그럴듯한 좋은 집을 사고, 자랑할 만한 좋은 차를 굴리고, 해마다 해외여행을 다니는 그런 삶. 하지만 그런 삶이 속 빈 강정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약간의 용기와 약간의 무모함과 약간의 희망과 약간의 절망을 더해 저자는 ‘40세’에 ‘은퇴’라는 다른 선택을 했다. 지금이야 파이어(FIRE,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 등 저자의 다른 선택을 지지하는 사회 트렌드가 형성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저자는 다른 선택에 대한 주변의 시선을 기꺼이 견뎌내며 기어코 다른 삶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젖혔다. 월급도, 승진도, 좋은 집도, 좋은 차도, 해외여행도 없지만 아침마다 두 딸의 도시락을 싸면서 담소를 나누고, 별을 보면서 이를 닦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자고 싶을 때 자는 그런 삶이 지금 이 순간에도 문 뒤편에서 펼쳐지는 중이다.
누구나 40세에 은퇴를 선택할 수는 없다. 그리고 누구나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한번쯤 지금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돌아보고 너무 빠른 속도로 달려오기만 했다면 한 템포 쉬어가는 건 어떨까. 이때 쉬어감의 모습은 개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어떤 모습과 마주하든 그 모습을 만나기까지 고민이 거듭된다면 『40세에 은퇴하다』에서 저자가 보여준 삶의 단면을 참고하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모습은 각양각색일 테지만 무기력했던 삶에 생기가 도는 일만큼은 매한가지일 테니 말이다.
“마흔이면 뭐라도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뒤로 가는 느낌을 떨쳐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다소 이르지만 마흔에 은퇴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조금 늦었지만 마흔에 진짜 삶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