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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영 “서예는 꿈, 독서는 길”

평생 품고 가야 할 공부, 서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길,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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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번째 채널예스 독자 인터뷰는 이준영 씨. 못난 손글씨에 컴플렉스가 있는 필자에게, 아름다운 글자를 좇는 그녀는 그저 멋있어 보였다. 인사동 한 공방에서 그녀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본인 소개 부탁합니다.

 

대학에서는 서예과를 졸업했습니다. 제 꿈은 훌륭한 서예가가 되는 건데요. 그렇게 되기까지가 공부도 중요하지만 돈 버는 것도 필요하잖아요. 어떻게 돈을 벌고 공부를 할까 고민하다, 전공과 관련이 있고 선배들이 많이 하고 있는 수제도장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일단 많이 보고 배울 수 있는 곳이 서울이라 생각해서 졸업 후 바로 올라왔어요. 서울에 온 지는 4년 됐네요. 처음에는 수제도장 업체 중에서도 가장 큰 업체에 들어가서 일을 배웠고, 지금은 인사동 토독공방에서 디자인과 밑면을 새기고 있습니다. 쉬는 날에는 서예랑 캘리그라피를 배우러 다니고요. 가끔 전시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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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영


서예에 매료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미술 시간에 서예를 하잖아요. 그 뒤로 어머니께 서예학원에 보내달라고 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어머니께 뭘 해 달라고 요구했던 적이 없는데요. 그러다 보니 어머니도 흔쾌히 보내주셨죠. 그때부터 한 번도 안 쉬고 16년을 계속 서예를 해왔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이미 대학은 서예과를 가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고등학교는 미술 특기생으로 입학했고, 대학도 수시로 합격했어요. 진로 고민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저는 서예만 생각해서인지 큰 굴곡 없이 학창시절이 지나간 것 같아요.

 

대학에 서예과가 많나요?

 

제가 입학할 때만 해도 5군데가 있었는데요. 지금 하나씩 문을 닫고 있는 상황이고 남아 있는 학교가 3군데입니다. 제가 졸업한 학교에서도 곧 없어질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해요. 요즘 인문학이 대세라고 하잖아요. 서점에 가도 인문학 책이 중심 쪽에 진열돼 있고요. 그런데 막상 대학에서는 철학과, 역사학과, 동양학과, 한국화, 서예과 이런 데가 계속 문을 닫고 있어요. 안타깝죠. 나중에는 하나도 남지 않게 될지도 몰라요.

 

대학에서 서예 배우는 과정은 학원에서 배우는 것과 다를 듯합니다.

 

서예는 문자를 기반으로 하는 예술이에요. 모든 예술이 그렇듯 서예도 그 시대 생활이 다 녹아 있거든요. 그래서 대학에서는 역사적인 지식이나 미학, 철학, 종교을 공부하면서 서예를 씁니다.  『사서삼경』 같은 경전은 기본으로 배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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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도장은 팝아트 같은 성격으로 볼 수도 있나요.

 

서예의 한 분야인 전각에서 수제도장이 나왔습니다. 예술이다, 아니다를 논하기는 사람마다 달라질 테고요. 수제도장으로 일반인도 전각이라는 깊고 넓은 예술을 일상에서 간접적이나마 접할 수 있는 점은 있을 것 같네요.

 

예전에는 문서 작업이 많았고 도장도 그만큼 중요했는데요. 요즘은 도장을 잘 안 쓰는 추세잖아요. 그래서 예전 도장과 요즘 수제도장 사이에 차이가 있을 듯합니다.

 

예전 도장은 재질이 대부분 나무였고요. 요즘 수제도장은 돌입니다. 나무에다 새기는 건 서각이라고 따로 명칭이 있어요. 원래 나무로 된 원형 도장은 일본에서 넘어 온 문화고요. 우리나라의 전통 도장은 사각이죠. 국새나 주요기관장 도장을 보면 사각형이거든요. 용도도 많이 변했습니다. 요즘도 인감 도장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제법 있어서 오시기도 하지만, 요즘은 이런 용도보다는 선물 용도가 훨씬 많아요. 인사동의 손님 절반 이상은 외국인인데, 대부분 선물하고자 도장을 새겨요. 그리고 요즘은 종이뿐만 아니라 스캔해서 웹상에서도 쓰고 명함이나 여러 인쇄물에도 사용합니다. 아, 작품 하시는 분들도 많이 오세요. 민화나 동양화, 캘리그라피 하시는 분들이 낙관용도로 많이 새겨가세요.

 

수제도장을 만들면서 여러 사람과 만날 텐데요. 기억 남는 사연이 있었나요?

 

눈물겨운 사연까지는 아니지만, 치킨집 사장님이 오셔서 치킨집 도장을 만들고 싶대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치킨이거든요. 그래서 엄청나게 파격적인 가격으로 예쁘게 해드렸어요. (웃음) 그 사장님이 문자도 보내시고, 들려서 아이스크림도 사 주시고 지속적으로 고마움을 표시하더라고요. 치킨집에도 오라고 하시고요. 조만간 치킨 먹으러 가려고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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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 작품도 계속 쓰잖아요. 작품에 들어갈 문구는 어떻게 선택하나요?

 

작품에 들어갈 문구를 정하는 작업을 선문選文 이라고 하는데요. 글자의 조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내용에 의미를 두는 사람도 있는데요. 저는 내용에 의미를 두는 편입니다. 주로 중국 한시나, 한국의 선시에서 많이 가져옵니다.

 

선문選文을 하려면 책도 많이 읽어야 할 것 같은데요.

 

네, 책 좋아해요. 학창시절 쓴 독후감만 공책 몇 권이 있을 정도로 좋아했죠. 요즘은 바쁘기도 바쁘고, 연애에 빠져서 책을 잘 못 읽어요. (웃음) 예전에는 1주일에 2~3권 정도 읽었는데 요즘은 산문집을 곁에 두고 짧게 짧게 읽어요. 『밥벌이의 지겨움』,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등의 김훈 산문집이죠. 시집도 많이 읽으려고 하고 있어요. 고은 시인을 좋아해서 그 분의 시집을 가끔 들춰봐요. 

 

좋은 글씨란 무엇일까요? 쓰고 싶은 글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서예도 색다른 시도를 많이 하려 해요. 소재라든지 다양한 구도로 파격적이고 자극적인 방향으로 나가는 분들이 많이 있어요. 저는 분명 그런 시도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만 제가 하고 싶은 서예는 좀 더 전통적인, 전통적이면서도 그 속에서 새로운 걸 끄집어낼 수 있는 작업이에요. 화선지와 먹물과 붓은 그대로 가져가되, 고루해보이고 지루하지않게 보이는 범위 안에서 하고 싶어요. 아마 이것이 제가 평생 품고 가야 할 공부거리인 것 같아요.

 

필방도 많이 없어졌죠?

 

예전보다 서예하는 사람이 많이 줄었기 때문에, 필방을 찾는 사람도 그만큼 적어졌어요. 그래서 인사동에 있는 대다수의 필방들은 문방사우와 함께 외국인들에게 판매할 수 있는 아이템을 겸해서 운영하고 있어요.

 

캘리그라피도 배운다고 했는데, 서예와 캘리그라피는 어떤 점이 다를까요.

 

저도 아직 배우는 단계라 단언할 순 없지만, 캘리그라피는 도구와 색이 다양해요. 서예는 흑에 가까운 편입니다. 서예가 문방사우文房四友라면 캘리그라피는 문방오우文房五友라고들 하더라구요. 종이, 붓, 벼루, 먹에 컴퓨터가 더해진. 캘리그라피는 컴퓨터로 편집이 들어가니까 어느 정도 디지털적인 면이 있죠. 캘리그라피에는 서예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디자인, 타이포그라피적인 면이 있어요.

 

예스24, 채널예스는 어떻게 보셨나요?

 

학교를 익산에서 다녔는데요. 책을 사려면 가까이는 광주, 멀리는 서울까지 가야 원하는 책이 있었어요. 익산에는 큰 서점이 없거든요. 그래서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예스24를 찾았죠. 그러다 여러 곳을 클릭하다 채널예스도 간간이 들어갔어요. 주로 저자 인터뷰가 많더라고요.


책을 왜 읽어야 할까요?


가장 보편적인 대답인데요. 직접 하지 못한 경험을 책으로 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김훈 산문집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작가가 쓴 문장은 간결하고 깔끔하지만, 그속에 얼마나 사고를 많이 했을지가 느껴져요. 작은 사물, 일상적인 상황, 별 거 아닌 일에도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독서의 묘미죠. 독서가 생각하는 계기를 줍니다. 요즘 시대는 생각을 깊이 못하잖아요. 항상 빨리 해야 하고 과정보다는 결과, 결과물이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눈 앞에 나타난 당장의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결과는 당장 안 나올 수도 있어요. 묵묵히 내 할 일을 했을 때, 그 결과는 몇 십 년 뒤, 혹은 사후에 나타날지도 몰라요. 독서는 요즘같이 정신없이 몰아치는 생활 속에서 저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생각도 유연해지구요. 길이라고 할 수 있죠.



독자에게 찾아가는 채널예스!

‘독자와 만나다’는 채널예스를 평소에 즐겨 읽는 독자가 주인공인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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