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석의 동물병원24시] 개가 인간을 닮아가는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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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병원에 내원하는 동물환자들을 대하다보면 개가 사람을 닮거나 개의 성향이 보호자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미시건주립대학(Michigan State University)의 연구진이 50여종, 1,600 마리의 개를 조사하였다. 보호자에게 개의 성격에 대한 질문과 동시에 자신에 대한 질문도 함께 조사하였다. 산책을 자주 다니고 사교적인 성격의 보호자가 키우는 개는 사회성이 높은 반면에, 불안하거나 공격 성향이 있는 개의 보호자는 부정적인 성격의 보호자가 많았다고 한다. 개의 성격이 환경적 영향을 받으면서 주인의 개성이 반영되었다고 주장한다.

사람을 닮은 개로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한 노리(Nori,믹스견)는 선한 눈과 미소를 띄고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보는 이들을 행복하게 놀래키고 있다.

이렇듯 주인의 개성을 반영하거나 인간화되어 가는 개의 본능은 수 만년 동안 인간에게 의지하며 주인과 교감할려는 진화론적 배경이 바탕되어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사람 얼굴을 닮은 눈과 밝은 표정으로 유명한 노리(Nori) (사진출처: Tiffany Ngo/ Nori Instagram)


▶개와 인간의 공생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석기시대 인간이 개과동물(Wolf-dog)과 공생했던 고고학적 증거들을 통해 개의 기원을 추정할 수 있다.

2019년11월 세계에서 가장 추운 러시아의 야쿠츠크(Yakutsk) 지역에서 완벽하게 냉동보존된 개의 조상으로 추정되는 생명체가 발견되었다. 이 생명체를 스웨덴의 고생물유전학센터(Palaeogenetics Center, CPG)에서 탄소 연대를 측정한 결과 약18,000년 이전에 존재하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유전자 분석 결과는 개와 늑대 어느쪽이라 단정하기 어려워 늑대와 개의 중간 진화 단계의 생명체로 추정되며wolf-dog 또는early dog라 부르고 있다. 이 발견으로 개의 기원이 14,000년 정도 되었다는 기존 학설이 뒤집히고 2017년 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된 개의 기원이 2만년~ 4만년 전 부터 진행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을 가지게 되었다.

2019년 11월, Wolf-dog 또는 early dog 이라 추정되는 생명체가 러시아에서 완벽하게 냉동보존된 채 발견되었다.(사진출처: BBC)


▶개가 유난히 인간과 교감을 잘 나누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존의 학설은 수만년 동안 인간이 필요로 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먹이를 제공받는 공생 관계가 개의 진화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공생관계 만으로는 개의 정서적 교감 능력을 설명하기엔 부족했다.

2000년 대에 들어서면서 개의 유전자 검사와 뇌연구가 본격화되면서 개는 단순한 공생관계 이상의 감정적인 진화가 이루러지고 있다는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다.

개와 늑대는 DNA의 99.9 %가 일치한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는 늑대에서 발견되지 않는 사회성과 관련된 3 개의 유전자가 개의 6번 염색체에서 발견되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 유전자는 인간이 단맛을 인지하는 유전자와 비슷한 위치에 존재한다고 한다.

최근의 다양한 연구들은 인간과 개의 공생 관계는 단순한 필요에 의한 주종관계가 아니라 심오한 정서적 유대 관계가 개의 진화에 더 많은 영향을 미쳐왔으며, 인간의 진화 가지로 분류되는 영장류 보다 개가 더 친밀하게 인간과 감정을 교감하고자 하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개도 사람처럼 눈과 표정으로 대화할 수 있을까?

개의 눈은 인간에게 호소하도록 진화하였다고 한다.

개와 늑대는 상대에게 경고하거나 친밀감을 드러내기 위해서 소리(짖음)와 행동언어(몸짓)을 주로 사용한다. 하지만 새끼가 어미의 보살핌에 의존하거나 동료와 밀착된 공간에서는 얼굴 근육을 이용하여 표정언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Kaminski 박사는 미국국립과학원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개가 늑대에서 길들여지면서 눈꺼풀을 움직이는 근육이 발달했다는 해부학적인 증거를 발표하였다. 눈 주변의 미세한 근육 운동을 통해 개는 늑대에 비해 순해보이고 감정이 풍부해진 "강아지 눈"으로 진화하였다고 주장한다. 해부학자이자 공동 저자인 Anne Burrows교수는 진화론적으로 개의 안면 근육에 대한 변화는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으며 개와 인간과의 감정적인 유대가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영국과 미국의 해부학 및 비교 심리학 연구자들은 개의 얼굴 근육을 이용한 감정 표현 능력은 인간과 함께 살아왔던 수만년 동안 발달하여 왔으며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개의 표정이 인간과의 감정적인 교감과 생존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부분이었는지를 보여주는 해부학적 증가라 할 수있다.

얼굴의 좌측면은 늑대에 비해 순해보이고 감정이 풍부해진 "강아지 눈"이며, 우측면은 늑대눈을 묘사한다. 개는 얼굴 근육을 이용하여 눈두덩이를 들어올리거나( LAOM) 눈을 궁글게 떠서 감정을 더 호소력 있게 표현(RAOL)하도록 진화하였다.(Kaminski et al. PNAS 2019.)


▶개는 인간의 말과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2000년대 이후 개의 인지 능력에 대한 연구들은 개가 인간의 말과 감정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영국왕립학회 (British Royal Society) Biology Letters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개에게 인간의 행복하고, 화나고, 공격적인 얼굴이미지를 소리와 조합시키며 개의 반응을 관찰하였더니 목소리와 표정이 일치할 때 개의 집중력이 현저히 높아짐을 관찰하였다. 이 연구에 참여한 링컨심리학대학(University of Lincoln School of Psychology)의 Ken Guo박사는 소리와 시각 두가지 감정 정보를 조합하여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는 인지 능력이 개에게 있음을 확인하였다고 주장한다.

영국 서쎅스대학 (University of Sussex)의 연구진은 개가 인간의 대화 속에서 감정적인 신호를 인지할 뿐 아니라, 의미있는 말과 횡설수설하는 부분을 구분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2012년 Current Biology 저널에 헝가리 연구진은 개가 미묘한 상황에서 의사소통을 해석하는 능력을 조사하였더니 영장류에 버금가는 지능과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개의 감정 인지 능력은 6~12개월 된 인간 아기 수준과 같았다고 평가하였다.

SBS TV동물농장에 출연한 감성 천재 아리(웰시코기)와 행복이(레트리버)의 경우는 필자가 직접 개의 아이큐와 감성지수를 평가하였던 케이스였는데, 보호자의 요구가 없는 상황에서도 보호자에게 도움되거나 즐거워하는 역할을 인지하고 행동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었다.

유튜브에서 감성천재 아리의 일상이 소개되고있다.(https://www.youtube.com/channel/UCeXxAet11DPbC8pG-lBOUTQ )


▶우리 개도 똑똑해질 수 있을까?

개는 인간의 미세한 감정을 인지할 수 있는 지구상의 가장 똑똑한 동물이다.

2004년 Science지에 소개된 리코(보더콜리)는 4주 동안 단어를 학습시켰더니 200개가 넘는 물건을 식별하였다고 한다. 2019년 7월에 15세의 나이로 타계한 체이서(보더콜리)는 동물에게 적용한 실험 중에서 가장 뛰어난 기억력을 가진 동물로 위키백과에 등재되어 있다. 체이서는 1000개 이상의 단어와 물건을 식별할 수 있었으며 들어보지 못한 단어를 말하면 낯선 물건과 연계지어 찾아내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었다.

SBS TV동물농장에 출연한 천재견 호야(레트리버), 아리(비글), 행복이(레트리버)를 직접 평가하고 가정환경을 관찰한 적이 있다. 이들 천재견들의 보호자는 전문 훈련사나 과학자가 아니었으며 특별한 학습법을 적용한 것도 아니었다.

관찰 결과 천재견들이 만들어지는 배경에는 주인과 개와의 절대적인 신뢰가 있었다.

신뢰가 형성된 개는 주인이 행복하거나 즐거워하는 감정을 누구보다 빨리 그리고 정확히 감지하며 주인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으로 인식하고 행동하였다. 주인에 대한 정서적 교감 본능이 유전자 속에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내 개가 천재견이 되기를 원한다면 개의 특성을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많은 시간을 함께 해야 한다. 개의 품종마다 기민함과 생활 습성이 다르듯이 품종별로 드러나는 천재성도 다양하게 드러난다.

개와 함께하는 시간이 마냥 즐겁고 행복하다는 보호자들의 개는 사교적이고 똑똑하다.

반대로 보호자가 소리치고 개를 억압시킬 수록 그 개는 불안하고 공격적일 수 밖에 없다.

어느 품종이던 개를 자신의 감정에 치우쳐 화풀이 대상으로 삼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박순석


박순석 탑스동물메디컬센터 진료원장

SBS TV 동물농장 수의사로 잘 알려진 박순석원장은 개와고양이,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한 30여년 간의 임상경험을 토대로 올바른 동물의학정보를 제공하고 바람직한 반려동물 문화를 제시하고자 '동물병원 24'를 연재한다.

특집부 weekl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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