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콘기업 60%가 '융합형 기술·사업모델' 보유
올해 세계 260여 개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 중 대한민국 기업은 3개에 불과하다. 국내 창업 기업의 3년 생존율은 38% 정도로 스웨덴(75%)의 절반 수준이다. 미국(58%) 프랑스(54%) 독일(52%) 등의 60%대에 머무르고 있다. 국내 중소·벤처기업의 낮은 생존율과 성장성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적게 잡아 연 10조원이 넘는 지원성 투자와 1000개가 넘는 각종 프로그램에도 이처럼 생존율과 성장성이 낮은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어떤 전략으로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잡아나가야 할 것인가.

핵심은 역량 확보의 속도

국내 벤처기업인 I사는 폭발물 등 위험물질 탐지와 관련해 세계적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본격적인 성과를 내려면 미국 시장, 그것도 군이나 경찰 등이 속한 특수 영역에서 검증받아야 하는데 이와 관련한 접근 채널, 마케팅 역량은 전무한 상태였다. 외부 지원을 받아 여러 시도를 해봤지만 역부족이라고 판단했다. 반면 자체브랜드로 다양한 주방용품을 개발해 대형 유통채널에 납품하고 있는 E사는 국내외 유사 제품과 경쟁하면서 급격한 매출 감소로 고심하고 있다. 납품을 위한 가격 경쟁력 확보, 품질관리, 유통채널 등에서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만 신상품 기획 및 추진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중소·벤처기업은 필요 역량을 모두 갖추기 어렵다. 부족한 역량을 보완하는 데는 수년이 걸리고 감당하기 힘든 비용이 수반된다. 주저하는 사이 비즈니스 기회는 사라져버린다. 보유 역량의 한계를 인식하다 보면 일찌감치 포기하는 일도 다반사다. 중소·벤처기업의 낮은 생존율, 성장성의 근본 원인은 결국 필요 역량을 확보하는 속도가 너무 느리기 때문이다.

연계·협력을 통한 역량 확보

국내 대형 교량의 차세대 지능형 시스템 구축을 위한 시범사업을 5개 벤처기업의 컨소시엄이 추진하고 있다. 전체 100억원이 넘는 사업 규모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대규모 시스템통합 전문업체가 주관하고 자사가 보유하지 못한 요소 기술에 한해 벤처기업 등에 하청을 주는 방식으로 이뤄졌을 것이다.

중소·벤처기업이 일정 규모를 넘는 사업 기회에 도전하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여겨왔다. 하지만 여러 벤처기업의 역량을 연결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인식의 전환, 실행의 결과다. 한 분석 자료에 의하면 유니콘기업 중 약 60%가 융합형 기술, 융합형 사업모델을 갖고 있다. 즉 연결을 통해 새로운 사업모델을 창출하고 비즈니스 기회를 잡아 성과를 내고 있다는 의미다.

연계·협력을 통한 비즈니스 성공 사례는 해외를 중심으로 다수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자동차산업에서 150여 개 중소기업 간 협력 네트워크인 제네프로사, 중소기업 간 기술융합을 통해 무인 행상 풍력발전 시스템을 개발한 플로트마스트(FloatMast)사 등이 있다. 이처럼 비즈니스를 중심으로 필요 역량을 연결해 대응하는 전략을 벤처 콤비네이션이라고 한다.

벤처 콤비네이션 촉진 체계 필요

국내에도 중소·벤처기업 간 협력, 교류, 융합 활동 등을 지원하는 제도와 프로그램이 있다. 하지만 공동 연구개발 등으로 영역이 제한적이고 일정 기간의 협력 지원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교류 및 협력 기회의 발굴, 추진도 중소기업에 대부분 맡겨둔 상태다. 이런 방식으로는 벤처 콤비네이션을 촉진하기 어려울 것이다. 가능성 있는 추진 모델을 정립하고 추진 효율을 높여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유니콘기업 60%가 '융합형 기술·사업모델' 보유
국내외 사례를 검토해 보면 5개 정도의 유형이 발견된다. 첫째는 신시장 개척 등을 위한 융합 상품 및 서비스의 개발(Fusion-Up) 유형이다. 둘째는 기술 간 교류, 특히 지식재산 관점에서의 결합을 통한 강점 강화(Strength-Up) 유형, 셋째는 타사가 보유한 역량을 결합 활용함으로써 의사결정이나 이행 속도를 높이는(Speed-Up) 유형이다. 넷째는 원천기술-양산기술, 생산-마케팅 등 이질적 보유 역량의 통합(Synergy-Up) 유형이며 다섯째는, 특정 허브기업을 중심으로 다수 중소·벤처기업의 결합을 통한 규모의 확대(Scale-up) 유형이다.

가능성 높은 유형을 집중 연구하고 이를 통해 이해도, 공감대를 확산해나가야 한다. 벤처 콤비네이션을 추진하려면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개별 중소·벤처기업의 역량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과 적정한 비즈니스 기회의 발굴이다. 이를 위해 가칭 중소·벤처기업의 역량 시장(Competency Market) 조성이 시급하다. 아울러 개성이 강한 경영자들을 조율할 융합전문가 양성과 협력지원 프로그램, 통합 리스크를 줄여줄 수 있는 콤비네이션 펀드 조성도 필수적 과제라 판단된다. 이런 역할과 기능이 효과적으로 추진되려면 기존의 중소기업 컨설팅사나 엑셀러레이터 등과는 차별화된 매칭 플랫폼 성격의 새로운 육성 전문 조직을 구성해야 할 것이다.

정재우 < 메이키스트엑스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