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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마지막 유언 없이 세상을 떠난 이유는?
비공개 조회수 2,047 작성일2019.12.10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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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
수호신 열심답변자
도덕, 윤리 6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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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비록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에 남긴 말은 없었지만 아직 말을 할 수 있을 때

남긴 말이 있습니다.

"평소에 우리가 마지막 숙원사업으로 진행하던 해외 청년사업가 양성 사업을

잘 유지·발전시키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고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장병주 회장은

빈소에서 기자들에게 전했습니다.

유족들은 그것이 그의 유언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한국인들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이라고 생각합니다.

2019.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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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신

"할말은 많지만, 시간이 알게 할거다" 뭐 그런 이유 아닐까요.

2019.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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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경우 1년간 투병 끝에 연명치료는 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고인의 평소 뜻에 따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영면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죠. 마지막 유언은 했는지 안했는지 모르겠지만 폐렴 때문에 말을하기가 많이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2019.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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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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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전 회장은 DJ정권시절 DJ로부터는 지원약속을 받았었지만 당시 재경부장관이던 강봉균, 특히 금융감독위원장을 맡고있던 이헌재씨로부터 지원을 받지못한것이 풀지못한 한이되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당시 회고록을 보면 베트남 하노이에서 DJ와 독대할 때 만 해도 지원약속을 구두로 받았었고 귀국하여 경제관료들로부터 확약을 받기위해 동분서주 했지만 냉랭하게도 이 금감원장등이 외면을하고 지원을 함에 있어 경영권 포기및 사재출연, 대부분의 계열사 매각등의 조건을 붙임으로써 그룹해체및 법정관리의 수순을 밟게 된 것이지요. 더구나 그를 어렵게 했던 건 그당시 지원에 난색을 표했던 대표인물인 이헌재씨는 그보다 거슬러 올라가서 과거 대우그룹에 기획조정실 임원으로 근무했었고 대우반도체 대표등 측근으로 김회장을 모셨던 이력의 소유자란 사실입니다.

사재를 모두 내놓고 대신 자동차 만이라도 회생시켜 보겠다는 그의 절절한 요구를 야멸차게 뭉개고 결국은 이튿날 국내 매스컴에 법정관리 관련 정보를 흘려 회생의 길을 원천적으로 막았다고 보여집니다. 더구나 당시 일본 노무라 증권에 대우그룹의 자금사정을 흘림으로써 대외 채권자들의 개떼같은 채권회수 요구가 들이닥치게 된거죠. 하지만 당시 AP(매출채무) 못지않게 AR(매출채권)도 어마어마했고 그의 회수가 어려워지면서 회수율이 10여% 대에 머물렀다는건 국가적으로도 어마어마한 손실이었겠지요. 대략 수백억불 정도의....이런 모든걸 하루아침에 모두 잃고 몇년동안 베트남과 고국을 오가며 이제 할수 있는 일중의 하나라고 생각되는 리틀 김우중 BIZ(DYBM)을 동남아 국가에서 매년 300명 가까운 인력들을 모아 가르치고 현지 취업및 창업을 지원하는등 돈한푼 안받고 후계자를 양성하듯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누구도 하지못했던..어느누구도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일들을 돌아가실때까지 해 오셨는데 말년에 매스컴과 위정자들이 IMF의 원흉이라며 제물로삼아 상당히 불편하게 했던거 같습니다. 하지만 평가는 IMF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과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대목이 있습니다. 당시 일반적인 분위기야 차입경영이 일반화 되어있고 지금은 잘 나가고있는 현대그룹도 당시 재무제표로 보면 형편없었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현대그룹은 모든 계열사에 자금수혈등의 지원으로 지금은 아주 커졌지요. 하지만 교과서적으로 채무비율이 400%안팎이라는 사실을 물고늘어지면 어느누구도 견디기는 힘들었을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로부터 몇해전에 한보실업이 해체된 상황을 봐도 그 답을 얻기 어렵지 않습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용인에 있는 대우중앙연수원에 가면 로비에 커다란 사진이 한장있지요.. 오래전 김일성과 나란히 찍은 사진입니다. 구 소련이 해체된 이후 동구권을 처음 개척한것도 그분이었고 북한땅에 들어가 김일성과 개성공단 훨씬 이전부터 의류를 생산하고 심지어 거기서 만든옷을 이미 당시 대우그룹 직원들은 유니폼으로 입고있었지요..폴란드FSO같은 경우도 전설적인 대우를 받았던 곳이었습니다. 당시 대우직원이 출장을 가면 바르샤바 공항에 있는 입국 수속장에 별도의 특별통관창구가 있을 정도 였습니다.

우리나라 유수의 기업들이 거의 예외없이 선대회장이 물러날때 후손들에게 나눠줍니다. 그와중에 악악거리며 싸우기도 하고 법정 다툼이 있기도 하지요. 하지만 김전회장은 후손들에 그룹경영을 세습하지 않았습니다. 전문경영인들을 모아 그룹을 키워 나갔고 자식이나 배우자에게 맡긴 거라곤 상대적으로 미미한 먹고살 만큼의 운영권이라고 볼수 있을듯 합니다.

1999년... 그분의 장점을 잘 살려서 최소한의 자금지원으로 소속 계열사 들을 잘 살려주었다면 지금쯤 대우그룹은 어떻게 변화가 되었을까..저도 상당히 궁금한 대목입니다. 세월이 흘러도 역사에 묻히기만 할뿐 그분에 대한 제대로된 평가가 아직도 상당히 인색하기만 한 것 같아 씁쓸합니다. 이런 사실을 혼자서 가슴에 묻고 비엣남을 오가며 후진양성에만 힘을 쏟다가 폐렴으로 쓰러져 일어날수 없을것 같은 마음이 들었을때 유언이 무슨 필요가 있으리라 생각했겠습니까?

2019.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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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유구무언,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한 때 샐러리맨에서 재벌 총수까지 오른 우상이요 신화였지만 결국은 부실 경영으로 쓰러지고 말았으니까요

군사정권때 로비를 잘하여 거액의 금융 특혜 대출을 받아 계열사들을 마구 늘리고 문어발 확장을 하여 매출이 증가하고 한때 재계 순위 4위까지 오르는 재벌이 되었지만

회사가 버는 이익보다 대출 이자가 더 많이 나가는 부채 투성이 부실 경영으로 만성 적자는 지속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김우중은 회사 부채를 줄이고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고 심지어 IMF외환위기로 모든 기업이 쓰러질 위기에 처하여 구조조정을 한다고 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대우는 계열사를 줄이긴 커녕 쌍용차 인수까지 하면서 부채와 외형을 더 늘리다가 결국 부도나고 공중분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후회되는 일은 많겠지만 모든 건 자신의 자업자득이므로 죽음을 앞두고도 할 말은 없었을 겁니다.

2019.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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