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스코세이지와 드니로, 거장의 품격 돋보이는 영화 ‘아이리시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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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스코세이지와 드니로, 거장의 품격 돋보이는 영화 ‘아이리시맨‘
  • 김이나 컬쳐에디터
  • 승인 2019.11.29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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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I Heard You Paint Houses' 원작...지미 호퍼 실종과 프랭크 시런의 이야기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과 로버트 드 니로, 조 페시, 알 파치노, 하비 케이틀 등 관록의 감독과 배우 '총출동'
조지 루카스의 ILM 스튜디오 '특수효과'로 배우들 외모 '디에이징'하는 신기술 선보여
IMDb
영화 '아이리시맨'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뉴스를 보며 놀라는 모습. 왼쪽에서 세번째가 로버트 드니로, 네번째 알 파치노.사진=IMDb

[오피니언뉴스=김이나 컬쳐에디터]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넷플릭스와 손 잡고 만든 영화 '아이리시맨'이 극장 개봉에 이어 27일 넷플릭스에 공개됐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 처럼 먼저 상영관에서 개봉한 후 넷플릭스에 오픈되는 수순을 따랐다.

'아이리시맨'은 스코세이지 감독이 지금까지 만든 작품 가운데 가장 많은 제작비(1억7500만달러)를 들인 작품이다. 찰스 브랜트가 2004년 발표한 소설 '듣자하니 자네가 페인트칠을 한다던데(I Heard You Paint Houses)'를 원작으로 1975년 의문의 죽음을 당한 전미트럭 운송노조위원장 지미 호퍼 살해사건과 이에 얽힌 히트맨(암살자) 프랭크 시런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 사건은 미국내 장기미제사건 중 하나로 스코세이지 감독은 지난 2008년부터 작품을 준비했다.

넷플릭스에 대해 공공연히 반대의 입장을 나타내는 스티븐 스필버그와 달리 스코세이지는 넷플릭스와는 밀월관계다. 그는 "스트리밍 서비스는 혁명과도 같다"면서 "간섭을 받지 않고 원하는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후원을 받는다면 우리에게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해 호감을 표했다.

스코세이지 감독의 페르소나 로버트 드 니로와 '좋은 친구들'의 조 페시, 이번에 처음 작업에 참여하는 알 파치노, 스코세이지 뉴욕 영화학교 졸업작품 '누가 나의 문을 두드리는가'에 참여했던 50년지기 하비 케이틀 등 관록의 명배우들이 명연기를 펼쳤다. 각본은 '갱스 오브 뉴욕', '쉰들러 리스트'의 각본가 스티븐 자일리안이 맡았다.

영화는 트럭운송노조 임원 '아이리시맨' 프랭크 시런(로버트 드니로)이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구성으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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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러셀(조 페시,왼쪽)와 프랭크(로버트 드니로)의 첫 만남. 사진=IMDb

 

◆미 근현대사를 관통한 아일랜드인 프랭크의 굴곡진 삶
 

영화는 요양병원에 있는 갱스터 시런의 회상으로 시작한다.


어릴 때 난 페인트공이 집을 칠하는 사람인줄 알았어.
내가 뭘 알았겠나. 난 노동자였어.
필라델피아 남부 트럭 노조 107지부의 교섭 위원이었지.
일개 근로자 중 하나였어. 오래가진 않았지만.
그러다가 페인트칠을 시작했지. 내 손으로.


아이리시맨 프랭크는 트럭운전자. 트럭에 싣고 간 고기를 식당에 빼돌리는 일을 하다가 경찰에 적발된다. 다행히 변호사 빌 버팔리노(레이 로마노) 덕분에 프랭크는 무죄 판결을 받게 되는데 승소를 자축하는 자리에서 '내 여생을 바꿔 줄 사람'을 만난다. 빌의 사촌형이 다름아닌 러셀 버팔리노(조 페시)였던 것.

언젠가 동네 주유소에서 프랭크의 차를 손봐주었던 그가 알고보니 그 일대의 거물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식당에서 러셀과 대화하는 사람은 필라델피아 마피아의 보스 안젤로 브루노(하비 케이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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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이 안젤로가 끼고 있는 반지와 똑같은 반지를 프랭크에게 끼워주면서 은연중에 의리를 강조하는 장면에서. 사진=IMDb

러셀은 프랭크와 대화하면서 아일랜드 출신인 프랭크가 어떻게 이탈리어를 잘하게 됬는지 알게된다. 프랭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에서 참전해 이탈리아어도 배우고 담력도 키웠던 것. 러셀은 처음부터 프랭크를 맘에 들어했고 일을 맡기기 시작했다. 그는 겉으로는 포목점을 하지만 모든이들의 민원을 들어주는 그 지역 대부 역할을 맡고 있었다.

한편 둘째를 낳고 식구가 늘어나 돈이 필요한 프랭크는 위스퍼스(폴 허먼)가 1만달러를 벌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수락한다. 그러나 그 일은 안젤로가 관련된 사업체에 위해를 가하는 일이었고 하마터면 보복을 당할뻔 하지만 안젤로는 러셀을 봐서 프랭크를 용서한다. 대신 프랭크는 안젤로의 지시로 위스퍼스를 죽여야 했는데 그 일이 바로 페인트칠의 시작이었다. ('페인트 칠'은 총으로 사람을 쏴 벽에 피가 흩뿌려지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한 것)

 

위스퍼스 사건 이후로 모든게 달라졌어.
마치 군대 같았지.명령을 따랐고  그대로 처리했으며 보상을 받았어.

러셀을 위한 일은 돈 때문에 한 게 아니었어. 존중의 표시였지.
심부름을 했으며 부탁을 들어주고 받기도 했어.
그리고 항상 서둘러 돌아왔지.

 

자신에게 일을 맡기고 믿어주는 러셀을 위해 프랭크는 어쩔 수 없이 페인트칠을 계속한다. 프랭크의 성실함을 인정한 러셀은 필라델피아 지부에 있던 프랭크를 노조 집행부에 소개시킨다. 노조 집행부는 미국과 캐나다의 트럭운전자들이 내는 기금을 주무르며 각종 이권을 거머쥐고 있는 조직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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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운송노조위원장 지미 호퍼.막강한 권력으로 정치권마저 좌지우지하려한다.사진=IMDb

러셀이 전화로 소개시켜준 사람은 그야말로 거물중의 거물 '지미 호퍼'(알 파치노)다. 그는 '50년대에는 엘비스만큼 유명했고 60년대엔 비틀즈와 맞먹었다는, 대통령 다음으로 가장 파워가 쎈 '전국트럭운송 노조위원장'이었다. 지미는 프랭크에게 "듣자하니 자네가 페인트칠을 한다던데?"라면서 프랭크가 자신을 도와주길 바란다. 그는 위원장 자리 때문에 신변의 위협을 느끼던 중이었다. 

프랭크는 노조위원장 지미의 2인자이자 보디가드처럼 활동하면서도 자신을 가족처럼 생각하는 러셀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러셀과 그의 친구들은 폭주기관차같은 지미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느 날 러셀은 자신과 안젤로가 끼고 있는 반지와 똑같은 반지를 프랭크에게 끼워주면서 '이 세상에 단 세개만 있는 반지'라며 은연중에 의리를 강조한다. 그 후 빌 버팔리노의 결혼식에 가는 길에 러셀은 프랭크가 거절할 수 없는 '페인트칠'을 그에게 부탁한다.

영화는 전후 1950년대부터 미국 근현대사를 살아온 어느 트럭 노동자의 삶을 씨줄로, 존 F. 케네디 대통령 당선과 암살, 쿠바 미사일 위기, 워터게이트, 지미 호퍼 실종 등 미국 근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을 날줄로 엮었다.

영화는 아이리시맨 프랭크가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이 장악한 범죄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그의 비정한 '페인트칠'에 대한 블랙 코미디이자 20세기 중반 미국 정치권과 노동계의 알력, 음모, 배신 등을 그린 수작이다  

요양병원에 있는 프랭크에게 형사들이 찾아와 누가 지미를 죽였는지 말해달라고 한다. 그러나 절대 입을 열지 않는 프랭크.
 

"내 변호사인 라가노 씨를 찾아가게. 호파씨나 그 일에 관해 얘기하고 싶다면 난 달리 해줄 말이 없네."

"그분은 돌아가셨어요." 

"누가?"
"선생님 변호사 라가노 씨요."
"죽었다고? 누가 그랬지?"
"암이 그랬죠."
"다 죽었어요 시런씨.  다 끝났다고요. 전부 떠났어요." 

 

형사들은 가해자로 의심되는 이들이 다 사라졌으니 아직도 슬픔에 젖어 살아가고 있는 호퍼의 유족을 위해 진실을 말해달라고 하지만 그는 끝끝내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

그가 페인트칠을 하고 스쿨킬 강에 총을 버렸듯이 진실은 강물 속 깊이 가라앉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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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중인 로버트 드니로(왼쪽)와 마틴 스코세이지(오른쪽).사진=IMDb

 

◆완벽한 연출과 연기 그리고 특수효과

최고의 캐스팅, 그러나 문제는 배우들의 나이였다. 로버트 드니로와 알 파치노는 자신의 나이보다 30년 젊은 캐릭터를 연기해야했다. 제작진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시도한 특수 효과인 '디-에이징'(de-aging) 작업으로 배우들을 젊어 보이게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

이 작업은 ILM 스튜디오(Industrial Light & Magic)에서 개발한 기술로 배우들의 외모를 젊게 만드는 혁신적인 기술이다. ILM은 세계 최고의 '시각 특수효과' 스튜디오로, 1975년 제작자 겸 감독인 조지 루카스가 '스타워즈' 제작을 위해 설립했다. 1995년 '포레스트 검프'에서 톰 행크스를 60년대 필름과 합성한 특수효과로 제14회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게 만들기도 했다.

또한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실제 사건과 에피소드 등을 촬영해야 했으므로 방대한 자료조사를 토대로 로케이션, 의상 등 시대상에 맞는 설정 등이 첨가되었다. 로케이션 팀은 적합한 곳을 찾기 위해 200여 곳의 장소를 물색했고, 로버트 드 니로에게는 백 벌 이상의 의상을, 다른 배우들에게도 시대와 캐릭터에 맞는 의상들을 준비한 의상팀 덕분에 영화에 색다른 볼거리가 더해졌다. 

하지만 특수효과와 의상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있었으니 배우들의 제스처와 걸음걸이였다. 스코세이지 감독은 배우들에게 몸 동작 하나하나도 극중 인물의 나이에 맞도록 교정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알고보면 더 재밌어요

△마틴 스코세이지와 로버트 드니로의 9번째 콜라보 작품. 1973년 ‘비열한 거리’에서 처음 작업한 이후  ‘택시 드라이버’, ‘뉴욕 뉴욕’, ‘성난 황소’, ‘코미디의 왕’, ‘좋은 친구들’, ‘케이프 피어’, ‘카지노’ 그리고 ‘아이리쉬 맨’ 까지 함께 작업했다. 단편 영화 '오디션'까지 포함하면 10번째 작업이다.

△이 영화에서 아일랜드 출신 배우는 한 명도 없다.

△드니로는 "I Heard You Paint Houses"의 제목을 영화 타이틀로 하길 원했다.

△러닝 타임 3시간 30분으로 마틴 스코세이지가 연출한 영화 중 가장 긴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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