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도 돌아와 투표… 성난 민심, 친중파 궤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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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11.26. 오전 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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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선거]
홍콩시위 6개월만에 구의원 선거, 反中 범민주파가 싹쓸이
친중파, 구의회 18곳 중 17곳 내줘… 투표율 71.2% 역대최고


6개월째 반정부·반중국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홍콩에서 24일 치러진 구의원 선거 결과, 민주당 등 범(汎)민주파가 전체 의석의 최대 86%까지 차지하며 친중(親中)계 정당을 누르고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투표율도 역대 최고를 기록하면서 "홍콩인들이 정치적으로 각성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홍콩이공대 몰려간 당선자들 "5대 요구사항, 1개도 못 물러난다" - 24일 치러진 홍콩 구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야권 범민주 진영 후보들이 25일 홍콩이공대 캠퍼스 밖에 모여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 완전 철회 등 5대 요구 사항에서 1개도 물러날 수 없다'는 구호를 외치며 다섯 손가락과 한 손가락을 번갈아 펴들고 있다. 홍콩 경찰은 시위대의 거점인 홍콩이공대를 열흘 가까이 원천 봉쇄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25일 홍콩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구의원 452명을 뽑는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 등 야당이 166석을 얻었다. 언론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야당 성향 무소속 후보까지 포함하면 최소 347석(77%)에서 최대 388석(86%)을 범민주파가 차지했다고 홍콩 언론들이 보도했다. 지난 선거에서 308석을 차지했던 민주건항협진연맹 등 친중계 정당 연합은 63석을 얻는 데 그쳤다. 홍콩 언론은 '붕괴' '일방적 패배'라고 표현했다. 친중계 정당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던 18개 구의회도 이번 선거로 17곳이 범민주계로 넘어가게 됐다.

선거 결과가 발표되자 범민주파 지지자들은 투표소 앞에서 환호를 지르고 일부는 홍콩 시위대의 구호인 "광복 홍콩"을 외쳤다. 샴페인을 터뜨리고 맥주 캔으로 축배를 들기도 했다. 선거에서 1당이 된 민주당 우치와이(胡志偉) 대표는 기자회견을 열고 "6개월간 계속된 송환법 반대 운동이 '민의(民意) 대폭발'을 일으켰다. 홍콩인을 정치적으로 각성시켰다"고 말했다. 홍콩 정부가 중국·대만에서 범죄를 저지른 홍콩인을 범죄가 발생한 지역으로 인도하는 송환법을 추진하자 시작된 홍콩 시위는 행정장관 직선제 요구로 확대됐다. 우 대표는 "중앙 정부(중국 정부)는 홍콩기본법에 규정된 민주정(政)을 원하는 홍콩 시민들의 요구를 바로 봐야 한다"고 했다.


홍콩 시위를 최전선에서 지지했던 인사들도 대거 구의회에 진출했다. 대규모 시위를 조직한 민간인권전선의 지미 샴(岑子杰) 의장은 샤틴구의원에 당선됐다. 그는 "시위 과정에서 시민들이 흘린 피와 땀, 생명 덕"이라며 "나의 승리가 아니라 홍콩의 승리"라고 했다. 시위를 지지하다 괴한의 습격을 받은 로이 퀑 전 의원, 홍콩이공대 학생 대표인 오완리(李傲然) 등도 당선됐다. 홍콩 '스탠드 뉴스'는 송환법을 반대하다 체포된 후보 26명 가운데 21명이 당선됐다고 했다. 반면 친중계 지원을 받으며 "폭도를 몰아내자"고 했던 변호사 주니어스 호(何君堯)는 낙선했다. 범민주파 당선자 60여명은 이날 오후 4시 시위대가 점거 중인 홍콩이공대 근처를 찾아 홍콩 정부에 시위대 요구를 수용하고, 경찰의 이공대 포위를 풀라고 요구했다.

홍콩 구의원은 입법 권한이 없고 선거도 주목을 못 받았다. 하지만 올해 선거는 반정부 시위대가 대학을 점거하고, 홍콩 교통을 마비시킨 직후 치러졌다. 6개월째 계속되는 홍콩 시위에 대한 평가이자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에 대한 신임 투표 성격을 띠었다.

홍콩 범민주파, 구의원 의석 86% 압승 - 25일 홍콩 젊은이들이 전날 치러진 구(區)의원 선거에서 친중(親中)계 정치인이 낙선했다는 소식에 환호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야권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등 범민주파가 전체 의석의 최대 86%인 388석을 차지해 친중계 정당을 누르고 압승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친중계 정당들이 장악하고 있던 18개 구의회 중 17곳이 야권으로 넘어가게 됐다. /AP 연합뉴스

24일 홍콩 내 600여 투표소에는 수백m씩 투표 행렬이 이어졌고, 투표율은 71.2%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해외 유학 중이던 홍콩 학생들이 투표하기 위해 귀국하기도 했다. 홍콩 내 친중 진영과 중국 매체들도 폭력 시위에 염증을 느낀 시민이 많을 것으로 보고 "투표로 폭력을 끝내자"며 투표를 독려했다. 하지만 개표 결과, 범민주파가 압승하면서 캐리 람 행정장관과 그를 공개적으로 지지해온 중국 정부의 리더십이 타격을 입었다.

남구 구의원에서 당선된 케빈 람(林浩波) 의원은 당선 직후 "이번 결과는 (홍콩) 정부에 대한 국민투표이자 재신임 투표"라며 "홍콩 정부와 중국 정부에 대해 시민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명백한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SCMP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중국의 대(對)홍콩 정책에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보도했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이날 낸 입장문을 통해 "시민들의 의견을 되돌아보겠다"면서도 시위 진압 과정에 대한 독립조사위원회 설치 등 범민주파와 시위대의 요구에 대해서는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일본을 방문 중인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홍콩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홍콩은 중국 영토의 일부분"이라며 "홍콩을 혼란시키려는 어떤 기도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폭력을 중단하고 혼란을 막아 질서를 회복하는 것은 여전히 홍콩의 가장 긴박한 임무"라고 했다. 선거 결과는 보도하지 않았다. 이날 홍콩 주식시장은 범민주파의 승리로 시위가 누그러질 것이라는 기대에 전 거래일 대비 1.5% 올랐다.

 

[포토]홍콩선거 민주파 압승에도, 시위대 포위 여전…시민들 밤새 기다려

[홍콩=박수찬 특파원 sooc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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