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전설이 된 김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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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 서역으로 불린 곳이다. 14년 전 겨울, 우루무치는 짙은 연무에 휩싸여 있었다. 항공기조차 뜨고 내리질 못했다. 그곳 사람들은 말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려면 이쯤은 견뎌야 한다.” 연무는 미세먼지였다.

그곳에서 만난 ‘대우맨’. 신장대우기계 법인을 책임진 그는 중국인 직원을 거느리고 홀로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국경을 지키는 파수처럼. “왜 철수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 “회장님이 말씀하셨어요. 중앙아시아의 문이 열릴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대우가 해체된 지 6년이 흐른 때다. 회장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을 이르는 말이다. 이런 말도 했다. “한번 대우맨은 영원한 대우맨이다.” 왜? 총수의 생각이 너무도 뼛골 깊이 박힌 까닭일까.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김 전 회장이 입버릇처럼 한 말이다. 그 말은 1989년 출간된 책 이름으로 남았다. 그 말을 하던 1980년대는 지금과는 판이하다. 중국과 국교를 맺지 않았으며, 냉전의 앙금은 세계 곳곳에 남아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해외출장 길에 오른 김 전 회장. 항공기 일등석은 타지 않았다고 한다. 이코노미석 한 줄을 통째로 빌려 잠을 자며 이역으로 갔다. 실사구시가 꿈틀거린다. ㈜대우를 앞세워 세계시장에 진출하고, 그 뒤를 가전·자동차·조선이 따랐다. 팽창하는 한국경제. 그 한가운데 대우가 있었다.

김 전 회장이 향년 83세로 타계했다. ‘세계경영의 전도사’는 역사 속 전설로 변했다. 그의 운명을 가른 것은 외환위기다. ‘거함’ 대우는 정부가 주도한 산업·기업 구조조정으로 침몰했다. “몇 개월만 말미를 달라”는 호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우를 그렇게 해체해야 했느냐”는 비판은 아직도 이어진다. 그는 분식회계·사기범으로 몰렸다. 70∼80년대 생존경쟁과 외환위기의 격랑을 헤쳐온 우리 기업들. 유리알처럼 투명한 곳은 몇이나 될까.

대우를 잃고 범죄자 오명을 덮어쓴 김 전 회장. 그의 가슴을 열면 새카맣게 타들어간 재만 남아 있지 않을까. 대우는 사라져도 그의 말은 유언처럼 남았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제2, 제3의 ‘젊은 개척자’를 기다린다.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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