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발 주무르고 볼 쓰다듬고" 박항서는 '파파 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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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12.11. 오후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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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 [언어 장벽 뛰어넘은 박항서의 '파파·스승·스킨십 리더십']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22세 이하(U-22) 축구대표팀이 10일(한국시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2019 동남아시안(SEA) 게임 결승전에서 인도네시아를 상대로 3-0으로 이기고 승리했다. /사진=로이터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22세 이하(U-22) 축구대표팀이 10일(한국시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2019 동남아시안(SEA) 게임 결승전에서 인도네시아를 3-0으로 이기고 승리했다.

이번 승리로 베트남은 동남아시안게임 감격의 첫 우승을 차지했다. 큰 성과 뒤엔 박 감독 특유의 리더십이 있었다. 새끼를 보호하는 닭, 파파(아빠), 스승 같은 리더십을 보여주며 베트남 축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왔다는 평가다.



발 주무르고 볼 쓰다듬고… 말 대신 '스킨십'으로


박 감독은 한국인으로서 베트남어나 영어에 능숙하지 않다. 그럼에도 베트남 축구를 성공적으로 이끈 데는 박항서 감독의 리더십이 주효했다. 박 감독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선수들을 보살피고, 선수들과 스킨십을 늘려 감정 교류를 하는 등 '아래를 향한 리더십'을 보여왔다.

선수들과의 스킨십은 박 감독이 가장 중요시 여긴 리더십 중 하나다. 박 감독은 지난 4월 국내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처음 베트남에 갔을 때 영어와 베트남어를 할 줄 몰랐다"며 "내가 선수들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스킨십(육체적 접촉) 뿐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매 경기가 끝나면 나는 주장과의 스킨십 통해 긍정적인 요소를 보여준다"며 "팀이 패했을 때는 더 안아주고 등을 토닥거렸다"고 설명했다.

/사진=수비수 딘흐 트롱 SNS

지난해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때 수비수 딘흐 트롱 선수가 SNS(사회연결망서비스)에 올린 8초짜리 동영상도 스킨십 리더십의 사례였다. 당시 딘흐 트롱은 '선수들을 극진히 사랑하는 감독님'이란 설명과 함께 박 감독이 발마사지기를 통해 발을 문질러 주는 영상을 게시했다.

영상이 화제가 되자 박 감독은 "마사지하는 게 찍힌 줄 몰랐다. 의무실에 의무진이 2명밖에 되지 않아 손이 모자란다. 시합에 나갈 선수가 혼자 마사지를 하고 있어서 해줬다"면서 "소집 기간에 SNS를 금지하는데 이 친구가 동영상을 찍어 올려 많이 혼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에도 선수들을 품는 스킨십으로 화제가 됐다. 베트남 국영TV인 VTV가 찍어올린 영상에 따르면 베트남 축구대표팀 선수들은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대회에서 우승한 뒤 선수들은 박 감독의 기자회견장에 갑자기 뛰어들어왔다.

이후 선수들은 박 감독에게 물을 뿌리고 껑충껑충 뛰더니 박 감독을 잡아 흔들고 탁자도 내리쳤다. 기쁜 마음에서 한 행동이었지만 박 감독의 얼굴과 안경에 물이 묻고, 기자회견이 잠시 중단되는 등 분위기가 애매해졌다. 하지만 박 감독은 싫은 내색 없이 선수들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한 선수의 볼을 쓰다듬고 어깨를 토닥였다.



힘든 좌석 앉아 새끼 닭 보호하는 아빠 닭 '박항서'


박 감독은 부모님에 비유될 정도로 무한하고 끝없는 사랑을 보여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는 '파파 리더십'이라고 불렸다.

지난해 화제가 된 '비즈니스석 양보'도 박 감독의 부모 마음을 잘 보여줬다. 박 감독은 지난해 12월7일 스즈키컵 결승이 열리는 말레이시아로 향하면서 부상당한 선수에게 항공기 비즈니스석 자리를 양보했다.

당시 선수들은 이코노미석을 배정받았는데, 허리 부상으로 준결승 1·2차전에 모두 출전하지 못한 도 훙 중을 마음 아파하던 박 감독이 그에게 다가가 자리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이코노미석으로 옮긴 박 감독은 비행 도중 옆자리의 선수들에게 차가운 물병을 갖다 대는 등 장난을 치며 함께 어울렸다.

그는 이에 대해 이후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기 자식이 허리가 아픈데 내일 시합이 있으면 어느 부모가 편하게 앉아서 갈 수 있겠냐"라며 "화제가 될 지 몰랐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선수들에게 몸보신에 좋은 음식을 챙기는 등 전형적인 한국인 부모상을 보여왔다. 박 감독은 지난해 8월 가벼운 부상으로 출전 명단에 오르지 못한 선수에게 인삼을 선물했다. 베트남 현지 매체 봉다는 "박 감독이 리그 경기가 끝난 뒤 그라운드로 내려가 부상당한 응구엔 투안 안을 만나 몸 상태를 묻고, 특별한 선물인 인삼을 건넸다"고 전했다.

바쁜 와중 선수들의 결혼식도 모두 참석했다. 박 감독은 지난해 4월 베트남 대표팀 미드필더인 도 훙 둥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도 훙 둥 부부는 박 감독과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어 공개했다. 당시 베트남에서는 "지난해 6월 열린 킹스컵 준비에 바쁜 박 감독이 제자의 결혼식에 참석해 선수들과 대화를 나눴다"며 그의 아버지 리더십을 높이 사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박 감독은 진짜 부모처럼 선수들이 위기에 빠졌을 때마다 한 몸 아끼지 않고 뛰어들었다. 지난 10일 동남아시안 게임 결승전 후반 32분, 박 감독은 거친 플레이를 하는 인도네시아 선수들로 인해 심판 판정에 항의했다. 그럼에도 주심이 반칙 선언을 하지 않자 항의는 격해졌다. 퇴장을 각오한 박 감독의 전략적 행동이었다.

베트남 언론 ZING은 "박항서 감독은 심판의 결정을 인정하지 않았고, 불만을 표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며 "박 감독은 마치 '새끼를 보호하는 닭' 같았다"고 평가했다.

박 감독의 독특한 리더십 덕분에 선수들 사이엔 박 감독을 아버지처럼 섬기며 그를 전적으로 따르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콩푸엉 선수는 "베트남 선수들은 박 감독님을 아버지처럼 여기고 있다"며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감독은 본인의 리더십이 화제되는 게 민망하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그런 일들이 자꾸 회자되는데, 모든 지도자가 하는 일"이라며 "그런 배려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석휘 한국리더십센터 퍼포먼스컨설팅그룹 본부장은 "박 감독의 '파파 리더십'은 아무 리더나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박 감독은 모든 선수들의 사소한 것들에까지 관심을 가지고 정기적으로 일대일 미팅을 통해 관심을 갖고 지도했다. 이를 통해 선수들이 박 감독을 전폭적으로 신뢰하게 됐고, 개인의 니즈와 성장을 위해 박 감독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해 도움을 받았다"고 평했다.

이 본부장은 "또 박 감독은 모든 걸 투명하고 실력에 따라 공정하게 해 '신뢰의 리더십'을 보여줬다"며 "이 모든 것을 통해 박 감독은 베트남을 이기는 게임을 하는 팀으로 성장시켰다"고 말했다.

이재은 기자 jennylee1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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