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산행기] 금정산, 장군봉 거쳐 고당봉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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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의 숲길은 조용하고 아늑해 좋았다.

백양산, 장산, 황령산을 비롯한 부산의 많은 산 중에서 으뜸가는 산은 금정산(801.5m)이다. 그래서 부산의 진산이라고 말한다. 도심의 산답게 등산로는 다양하다. 이번엔 그중에서 장군봉을 거쳐 정상인 고당봉에 오른 후, 천년고찰 범어사로 내려오는 길을 택해 걸었다. 
들머리는 양산시 동면 계석마을의 극동아파트다. 아파트 단지의 107동 옆 골목으로 들어선 뒤, 밭과 아파트 옹벽 사잇길을 따라가면 무덤 3기. 이어 갈림길에 이르면 먼지를 털기 위한 에어컴프레서가 설치되어 있다.


맞은편 샛길은 무시하고 오른쪽 농장 위로 나 있는 포장길을 따라간다. 산길은 완만하게 오르내리며 산허리를 돌아간다. 약수터를 지나면 말 무덤을 뜻하는 ‘말미’ 안내판과 유난히 큰 무덤이 보인다. 안내문에는 ‘삼장수三將帥의 막내인 이징규가 금정산 일대에서 무예를 닦을 때, 타고 다니던 애마가 죽자 이곳에 묻었다’고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고려 공민왕 20년, 영남지방을 순시하던 순찰사 이전생은 “여기가 바로 길지”라 감탄하며 지금의 양산시 하북면 삼수리에 정착해 ‘양산 이씨’의 시조가 된다. 그는 이곳에서 징석, 징옥, 징규의 세 아들을 얻었다. 이전생의 부인은 세 아들을 얻을 때, 세 번 모두 산이 가랑이 사이로 들어오는 별난 태몽을 꾸었다. 장남인 징석은 영축산, 둘째 징옥은 천성산, 막내 징규는 금정산이 몸속으로 들어오는 꿈이었다. 세 아들 모두 영리했고 힘은 장사였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삼형제를 ‘날개달린 삼장수’라고 불렀단다.


말미를 지나면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임도가 나온다. 질매제다. 임도를 건너 산길로 들어선다. 만만찮은 된비알이 시작된다. 계단을 밟고 다방봉에 오른 후, 뒤돌아보면 이진생의 세 아들이 수련했다는 영축산과 천성산, 그리고 금정산이 삼각형의 꼭짓점을 이루고 있다.


산의 모양처럼 세 형제의 인생길은 너무 달랐다. 무과에 급제한 징석은 조선 세종 15년, 파저강에 침입한 여진족을 무찔러 중추원사가 되었고, 요직을 두루 거친 후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을 도운 공으로 좌익공신의 반열에 오른다. 그러나 탐욕스러웠던 그는 탐관오리로 지탄받아 가문에 오점을 남긴다.


징옥은 김종서를 도와 육진을 설치하고 변방을 안정시키는 공을 세운 무장이다. 수양대군이 왕위찬탈의 걸림돌이었던 김종서를 암살하자 징옥은 이에 격분해 반란을 일으키니 ‘이징옥의 난’이다. 그 후 여진족의 추대로 대금황제가 되어 오국성誤國城으로 가던 중에 종성에서 피살된다. 징옥은 형 징석과는 달리 여진족까지도 존경하는 청백리였고, 호랑이도 꼬리를 내리는 용장이었다고 한다. 막내 징규는 형의 반란으로 모함과 질시의 대상이 되었지만, 세조의 남다른 총애를 받아 병조판서까지 지낸다.


부산의 진산다운 장쾌한 정상 조망


길을 재촉한다. 완만하던 능선 길은 다시 된비알로 변한다. 비알을 힘겹게 오르면 수십 명이 함께 앉을 만큼 너른 마당이 나온다. 왼쪽으로 나 있는 길은 은동굴을 거쳐 외송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직진한다. 은동굴 갈림길에서 20분, 삼각점과 돌탑이 있는 727봉에 도착한다. 다시 두 개의 작은 봉우리를 넘으면 장군봉이다. 장군봉에서 내려오면 장군평전, 넓은 평원에 억새가 무성하다. 억새 능선을 따라가는 길은 범어사, 오른쪽 비스듬히 내려가는 길은 고당봉 가는 길이다. 고당봉과 장군봉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지나 고당봉으로 향한다. 


억새밭 이정표 앞에서 30분 정도 걸으면 리본이 무수하게 붙어 있는 삼거리에 도착한다. 오른쪽 내리막길은 마애석불 앞을 지나 호포전철역으로 가는 길이다. 직진하면 거대한 암봉이 앞을 막는다. 정상인 고당봉이다. 숲길로 들어간 후, 계단을 따라 올라 고당봉에 선다. 부산의 진산답게 막히는 곳 없는 조망이 장쾌하다. 의상봉 원효봉을 거쳐 백양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아스라하게 펼쳐진다.


하산은 금샘 방향이다. 올라온 계단을 다시 내려와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이정표가 기다리고 있다. 이정표에서 왼쪽 금샘 방향 능선을 타면 중간 중간에 매달려 있는 ‘금샘 가는 길’ 팻말이 길을 안내한다.


금샘은 ‘금정산마루의 커다란 바위 위에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금빛 샘이 있고, 한 마리 금빛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내려와 놀았다’고 기록한 동국여지승람의 현장이다. 금정산金井山이라는 산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했단다.


금샘에서 내려와 하산을 계속한다. 왼쪽으로 분명하게 나 있는 길이 보이지만 바위를 돌아 내려간다. ‘북문 가는 길’ 팻말을 지나면 갈림길. 왼쪽으로 꺾어 내려와 천년고찰 범어사에서 5시간의 산행을 마친다. 


[장무웅 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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