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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예수는 인류의 평화와 화합,용서,사랑 때문에 온게 아니다.

예수는 인류의 평화와 화합,용서,사랑 때문에 온게 아니다.

 

 

예수는 인류의 평화와 화합,용서,사랑 때문에 온게 아니다.

예수가 지상에 온것은 천국 복음과 지옥 심판을 전파하기 위해 온거다.

 

덮어 놓고 무조건 용서가 아니다.덮어놓고 무조건 사랑이 아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혔을때도 무조건 용서해달라고 기도한게 아니다.

사람들이 모르고서 지은 과실치사죄를 용서하라고 기도한 거다.

 

 

성경에 없는 말을 하면 소금이 맛을 잃은것과 별 차이가 없다.

 

 

마0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03:0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마03: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눅18:01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눅18:02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눅18:0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눅18:0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눅18:0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눅18:06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눅18:0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눅18:0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계06:0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계06:10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계06:11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거짓말 했다고 용서 못받고 성령에게 살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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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비공개
끌올 작성일2013.12.31 조회수 6,200
1번째 답변
탈퇴한 사용자의 답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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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실하고 깨끗하신 예수님을

 

다시 보내실때

 

가장 음행하고 더러운 몸에 들어오셨으니

 

그런 쓰레기 몸이 무슨 남의 허물된 몸을 심판하고 지옥보내고 합니까?

 

간음한자들이여 지옥으로 가라~ 나도 가야한다~ 같이 가자~ 그리스도가 지옥에서 벌이나 받고 있을 짬밥입니까?

 

주님 오시면 모두가 웃는 세상...........올것같습니다 물론 슬피우는 애들이 없을순 없고

 

 

3번째 답변
탈퇴한 사용자의 답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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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신이유

 

요한복음 3장16절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장17절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정죄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를 통하여 세상이 구원받게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구주이신이유 요한복음14장  예수님이 죽으셔야만하는이유 히브리서9장

 

요한복음14장6절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은 아무도 없느니라 

 

요한복음14장23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들을 지키리니 그러면 나의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것이며 또 우리도 그에게 와서 우리의 거처를 그와 함께 정하리라

 

하나님에게 예수님은 사람의 죄값을 홀로 감당하시고
자신의피값으로  사람의죄값을 치루시고 죽으셧기때문에
더이상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사람의 죄값을 찾지않으 시며 또한 
예수님은 자신의 피값으로 하나님에게 사람을 사신분이기에 사람에게 예수님은 구주이시며
예수님을 말미암지않코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수없는것이됨니다

 

사람은 지금도 죽습니다 하나님앞에 아직도 사람은 죄인이라는걸아셔야하며 죽으면 심판이잇다는걸 아셔야합니다
또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하여 구원이 이루어진것이아님니다 구원을 이루게 하시려고 라고 말씀하신걸아셔야할것입니다 구원은 이루어가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가르침을 지키고 행하면 예수님의증거를주시며 그증거는 열매이며 나의열매는 곳 예수님의열매가되는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일곱교회를 주관하시는예수님의 말슴을 읽어보시면 구원은끝까지 이루어가는것이라는걸아실것입니다 교회가 잘못한점을 정확히 말씀하셧으며 그말씀을 지키지않는자는 환란에도넘겨지기도하고 지키는자는 축복을 받음을 알수잇듣이요

 

그리고 천년왕국과  첫번째부활과 두번째부활과 심판에관한말씀과 지옥과 불못에 관한 말씀은 요한계시록20장을 다읽어보시면 알수잇습니다 

4번째 답변
c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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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째 답변
서라벌 대명리철학원
채택답변수 3,938
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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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의학과, 불교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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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사회

“자꾸 이혼하라는데

  나마저 떠나면 안될 것 같아…”

 

  

기사입력 2013-11-25 03:00:00

기사수정 2013-11-25 10:29:45

 

[보이지 않는 형벌, 흉악범의 가족]


<上> “피해자는 더 할텐데…” 말 못하는 고통의 나날
         아내의 ‘고통’

 

강도 살인을 저지르고 무기수로 복역 중인 남편이 류은희(가명) 씨에게 보낸 편지.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류은희 씨(가명·52·여)는 붉은 정장 바지를 입고 빨간 양말을 신고 있었다.
"빨간색을 좋아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
혼자 집안 꾸리는 여자는 어디서 무시 안 당하게 강해 보여야 한다"고 답했다.
 
빨랫감이 어지럽게 널린 임대 아파트의 한 쪽엔 손바닥만한 액자들이 걸려 있었다.
1999년 찍은 사진 속에서 은희 씨는 남편 강준규 씨(가명·52)와 승용차를 세워두고 강변에서 웃고 있었다.
 
2003년 10월 20일 남편은 생활고에 시달린 끝에 돈을 뺏기 위해
차 뒷좌석 안전벨트를 끊어 50대 남성을 묶고 때려죽인 뒤 야산에 유기했다.
은희 씨의 남편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강도살인범이다.

범행일이 다가오던 2003년 10월 초부터 남편은 3, 4일씩 외박이 잦았다.
은희 씨의 전화를 받으면 "
친구 소개로 업소에서 색소폰을 분다.
 
먼 데 있는 곳이라 나오면 여기서 며칠씩 지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한 기술도, 직업도 없던 남편은 색소폰을 잘 불고 노래를 곧잘 했다.
 
교회 행사를 다니며 연주를 해주고 '기름값'으로 5~10만 원씩을 받아오던 남편이었다.
걱정이 됐지만 가사도우미 일에 바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은희 씨는 남편이 검거된 날을 생생히 기억했다.
돌을 막 지난 늦둥이 딸을 안고 남대문시장에서 장을 봤다.
 
남편의 전화가 와 짐을 든 채 엉거주춤 받았다.
행사에 다닌다던 남편은 한참 말을 못하더니 "
경찰에 잡혔다"며 울먹였다.
 
손에 든 짐은 놓쳤고 품속의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허겁지겁 집에 도착하니 형사들이 들이닥쳐 장롱 서랍을 열고 뒤지고 있었다.
"왜 이러시느냐"는 말에 "
 
남편 분을 살인 혐의로 체포했다"는 답이 돌아오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형사들이 주저앉은 은희 씨를 일으켜 경찰차에 태웠다.
 
며칠 만에 고양경찰서에서 본 남편은 수갑을 차고 있었다.
 끌어안고 통곡을 하는 남편의 품 안에서 정신이 혼미했다.

경찰 조사를 받으며 남편이 결혼 전 상습 절도 전과로 수차례 복역된 사람이었다는 걸 알았다.
 
형사는 "
아는 척은 하지 말라"며 "
(남편이) 아내에게는 숨겨달라고 했다"고 했다.
배신감과 공포감에 휩싸였다.
 
은희 씨에게는 두 번째 결혼이었다.
일하던 교회 옆 식당에서 만난 남편은 은희 씨와 은희 씨가 전 남편과 낳은 아들을 모두 아꼈다.
 
결혼 후 함께 트럭을 사서 군밤,
군고구마 장사를 하며 어렵게 살림을 이었다.
 
2000년 남편이 사기 사건에 휘말려 2년 간 모은 전 재산 8000만 원이 날아갔을 때도
무릎 꿇고 우는 남편을 은희 씨는 버리지 못했다.
그 남편이 하루아침에 살인범이 돼 있었다.

중학교 때 이후로 매일 TV로 7시 아침 뉴스와 9시 저녁 뉴스를 챙겨봤다.
망연자실해 집에 있던 어느 날 저녁 켜져 있던 TV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기자는 남편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람을 죽였는지 설명했다.
 
화면에서는 남편이 경찰에 둘러싸여 현장 검증을 하고 있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친정 올케가 "
지금 방송 봤어요?
고모부(남편) 같은데?"라고 물었다.
겨우 "
글쎄,
모르겠어"라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

그날부터 어린 딸을 안고 사흘간 피해자의 집을 찾아갔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만 같았다.
 
피해자의 노모가 살고 있던 아파트를 찾아가 '
식모로 10년이고 20년이고 부모처럼 모시겠다'는 심정으로 울며 빌었다.
굳게 닫힌 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이웃 주민들이 흘낏거렸다.
피해자의 아들이 "
살인자 만나면 밟아 죽여버리겠다"고 하며
돌아다닌다는 말이 있었지만 무서움도 느낄 수 없었다.

삶이 송두리째 뒤집혔지만 아무에게도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중학생 아들에게는 "
아버지가 나쁜 사람과 싸우다가 실수로 크게 다치게 해서 조사를 받는다"고 말했다.
 
다니던 교회에도 나갈 수 없었고 십수 년 연락해온 동창들도 만날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말이 헛나가 소문이 퍼질까 두려웠다.
전셋집을 처분하고 다른 동네에 월세 임대아파트를 얻었다.

3남 1녀 중 막내로 귀하게 자란 은희 씨였다.
친정 오빠들은 하나같이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며 이혼하라고 종용했다.
 
형편이 급속히 어려워지며 시댁 쪽과의 연락도 끊겼다.
'늦둥이가 없었으면 정말로 모든 걸 버리고 떠났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도,
자신만 바라보는 두 자식도 버릴 수 없었다.
식당 서빙일,
배달, 영업 등 할 수 있는 일은 밤낮 없이 했다.
 
다만 스스로가 나쁜 마음을 먹을 게 두려워 매일 새벽 교회를 찾았다.

10년이 흘렀다.
초등학생이 된 딸은 아직도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내 실수로 사람을 크게 다치게 했다고 알고 있다.
 
아들은 힘든 형편에 결국 대학을 그만두고 대형마트 경비 일을 하며 어머니를 돕는다.
 
하지만 커 가며 사실을 알게 된 아들은 더 이상 면회를 함께 가지 않는다.
 
"나마저 이 사람을 떠나버리면 감옥에서 혼자 自殺할 것 같았다"는

은희 씨만 아직도 매달 한 장씩 남편에게 편지를 부치고 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보이지 않는 형벌, 흉악범의 가족

 

 

“살인사건때-사형선고때…

 난 이미 두번 죽은 목숨”

 

기사입력 2013-11-25 03:00:00

기사수정 2013-11-25 10:24:56

 

  [보이지 않는 형벌, 흉악범의 가족]
<上> “피해자는 더 할텐데…” 말 못하는 고통의 나날
         아버지의 ‘자책’
 

 

사형수의 아버지 정환수(가명) 씨가 아들의 사진을 꺼내어 보고 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1996년.
재판장의 목소리가 법정에 울려 퍼지자 수의(囚衣)를 입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던
조직폭력배 정현민(가명·당시 30) 씨가 몸을 떨었다.
 
청부 폭력 사실을 폭로하려는 동료 조직원 임성민(가명·사망 당시 29) 씨와
그의 애인 박모 씨(사망 당시 28·여)를 불러내 살해한 뒤 시체를 암매장한 죄였다.
 
아버지 정환수(가명·당시 69) 씨는 눈을 질끈 감았다.
수천 번 떠올렸던 기억이 다시 머릿속에 그려졌다.

1993년 여름,
막내아들 현민 씨가 집에 친구 3명을 데리고 왔다.
당시 아들과 친구였던 임 씨가 듬직해보였다.
 
환수 씨는 수박을 잘라 먹느라 정신이 없는 아들과 임 씨에게 "
진정한 친구라면 살인도 덮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의리가 중요하다'는 뜻의 평범한 조언이었다.
 
하지만 1년 뒤 아들은 성민 씨를 살해했다.
환수 씨는 자신의 말이 마치 예언처럼 실현된 뒤 평생 아들의 범행을 자책하며 살게 됐다.

범죄자의 실명과 주소가 언론에 나오던 때라 주변 사람 모두 환수 씨가 '
살인범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았다.
 
판결 몇 년 후 환수 씨가 마을에서 작은 직책을 맡게 되자 경쟁 후보였던 주민이 "
아들을 살인자로 키운 사람이 어딜 나오느냐"고 공개적으로 비난한 적도 있다.
 
올해 86세가 된 환수 씨는 21일 기자에게 "
사형수의 아버지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사형 선고가 확정됐을 때, 사형이 집행될 때 3번 죽는다"고 말했다.
 
언제 사형이 집행될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살고 있는 아들의 고통을 아버지도 함께 겪는다는 뜻이다.
지금도 2달에 한 번 꼴로 아들을 만나러 가면 환수 씨는 1시간동안 눈물만 흘리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사형이 확정됐을 당시 현민 씨에게는 한 살배기 아들 용환 군(가명)이 있었다.
 
현민 씨의 아내는 1년도 지나지 않아 집을 나갔다.
환수 씨는 아들을 사형수로 키운 것을 속죄라도 하는 것처럼 용환 군을 성심껏 키웠다.
용환 군이 심장 판막 질환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는 일도 쉰 채 간호에 몰두했다.
 
지금도 환수 씨의 거실에는 용환 군이 학교에서 받은 개근상장과 표창장이 잔뜩 걸려있다.
 
몇 해 전 용환 군은 현민 씨의 여동생 자녀로 호적을 바꾸고 한국을 떠나 외국으로 진학했다.
2008년 부인마저 세상을 떠난 이후로는 환수 씨는 평생 가족들과 함께 살았던 집에 혼자 남겨졌다.

환수 씨는 성민 씨의 가족에게 용서를 빌고 싶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날 수 없었다.
 
'사형수들의 어머니'로 알려진 조성애 모니카 수녀가 환수 씨의 소식을 듣고
성민 씨의 아버지를 대신 만난 적은 있다.
성민 씨의 아버지는 현민 씨의 사형 판결 소식을 듣고 "
걔 죽으면 안 되는데….
살아야 하는데…"

라고만 했다고 한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보이지 않는 형벌, 흉악범의 가족]

 


<上> “피해자는 더 할텐데…”

         말 못하는 고통의 나날  딸들의 ‘멍에’


 


“매일 밤 엄마-아빠 보고싶어요”

살인죄로 복역 중인 황선우 씨의 세 딸 지현 지윤 지희(이상 가명) 양이

아빠 엄마의 사진을 보고 있다.

아이들은 사진을 “아빠와 엄마가 보고 싶을 때만 가끔 본다”고 했다.

‘그게 얼마나 자주냐’고 묻자 “매일 밤”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평생 함께한 가족이 어느 날

강력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가게 된다면 남은 가족들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

흉악범죄는 철저히 단죄할 대상이지만 그 가족에 대한 시각은 엇갈린다.

헌법 13조 3항은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해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가해자 가족도 범행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법무부 교정본부와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의 도움을 받아

10월 15일부터 1개월여간 살인 등 범죄로 징역 15년형∼사형을 선고받아 수감 중인

흉악범 4명의 가족 9명을 인터뷰했다.

이들은 사회의 지탄을 받고 정서적 불안을 겪으면서도 고통을 숨긴 채 살고 있었다. 》


#1. 지현이(가명·10·여)의 작은 과자 상자에는 엄선된 '보물' 3개가 들어있다.

선물 포장용 에어캡(일명 '뽁뽁이'), 지현 지윤(가명·9) 지희(가명·6) 세 자매와

아빠 황선우 씨(가명·38)가 원주교도소에서 같이 찍은 사진,

아빠 엄마의 웨딩사진이다.

웨딩사진 속 둘은 TV 드라마 주인공처럼 함께 웃고 있다.

4년 전 '그날' 이후 다시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2009년 1월 태국의 한 피자집. 지현이의 여섯 살 생일이었다.

아빠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엄마는 생일케이크를 자르면서도 울었다.

지현이는 어리둥절했다.

신발 사업을 하던 아빠가 지현이의 생일 며칠 전 캄보디아에서 동업자를 권총으로 살해했다는 것도,

한국으로 돌아가 자수하기 전 지현이의 생일을 마지막으로 챙겨주기 위해

나흘 간 태국으로 도피했던 것이라는 사실도 몰랐기 때문이다.

지현이의 엄마는 2011년 세 자매를 조부모에게 맡기고 집을 나갔다.

어른들은 "아빠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있다"고만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붕어빵 장사를 마치고 밤 10시에 돌아올 때까지

세 자매는 40㎡(약 12평) 남짓한 서울의 한 반지하방에서 할머니가 가져다 준 붕어빵으로 저녁을 때운다.

아빠 엄마와 함께 살지 않는다는 걸 들킬까봐 친구도 데려오지 않기 때문에 TV를 보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다.

어린 자녀 셋을 둔 점과 자수한 점이 참작됐지만 황 씨는 징역 15년형을 받았다.

할머니(64)는 그대로 전하지 못하고 "

너희들이 대학생이 될 때쯤 아빠가 돌아올 거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지현이의 소원은 빨리 대학생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시간이 흐르는 것이 두렵다.

언젠가 아버지 황 씨가 한 일을 알면 세 자매가 엇나가지 않을까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20일 아빠 엄마의 웨딩사진을 보던 막내 지희가 불쑥 기자에게 "

젖니를 스스로 뺐다"며 앞니가 비어있는 입을 보여줬다.

옆에 있던 지현이는 막내에게 핀잔을 놓았다.

"그거 혼자 뺀 게 뭐가 자랑이야?

아빠 엄마 없는 거 부끄러운 거야"라고.

#2. 이정화 씨(가명·28·여)는 경북 지역의 한 중소기업에서 사무직을 맡고 있다.

3년 전 사장의 배려로 어렵게 구한 일자리다.

면접을 봤던 이전 회사들은 이력서 '

가족관계' 칸에 아버지의 이름이 비어있는 이유를 꼬치꼬치 물었다.

사실대로 "살인을 저질러 감옥에 계시다"고 답하면 면접은 어색한 분위기로 끝이 났다.

어느 곳도 "살인범의 딸은 뽑을 수 없다"라고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1999년 3월 이후 세상과 정화 씨 사이에

세워진 보이지 않는 벽이 면접위원 앞에도 세워졌다.

당시 정화 씨는 중학교 2학년이었다.

경찰이 집으로 와 정화 씨와 초등학생인 남동생의 머리카락과 손톱을 잘라갔다.

경찰로부터 "'현장'에서 발견된 용의자의 유전자(DNA)와 대조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밖에 듣지 못했다.

'현장'이 아버지 이상민 씨(가명·57)가 사귀고 있던

40대 여성을 살해한 승합차 안이었다는 사실을 며칠 뒤 언론에서 알게 됐다.
사건 발생 1년 전인 1998년 어머니가 이미 가출한 상태였기 때문에

정화 씨와 남동생은 각각 친척들에게 맡겨져 사춘기를 보냈다.

주변 시선을 피해 전학 간 학교에서는 적응을 하지 못했다.

비행청소년들과 만나며 술을 마시고 집에 늦게 들어가는 날이 잦아졌다.

'평범'한 친구들과 더 이상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달 1일 대구의 단칸방에서 기자와 만난 정화 씨는 "

아는 수녀님의 도움으로 마음을 다잡고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가족 아닌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 한다"고 말했다.
대구=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황산테러 피해 30대 “가족도 책임 느끼고 용서 빌어야”

 

기사입력 2013-11-26 03:00:00

기사수정 2013-11-26 08:54:50

 

[보이지 않는 형벌, 흉악범의 가족]
 
<下>피해자-유족이 보는 가해자 가족
      유영철 용서한 70대 “흉악범 가족 불행의 고리 끊어야”


 

황산 테러 피해자 박정아(가명) 씨가 25일 새로 찾은 직장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그는 평소에도 손에 남은 화상 흔적을 가리기 위해

손등이 덮이는 긴 셔츠를 입는다고 한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흉악범죄 피해자와 그 유가족들이 가해자의 가족을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흉악범의 가족도 일부 책임이 있다’는 주장과 ‘
본인의 잘못도 아닌 일로 인해 고통 받아서는 안 된다’는 동병상련이 맞선다.

2009년 옛 직장 대표로부터 얼굴,
목 등에 전치 12주의 3도 화상 황산 테러를 당한 박정아(가명·30·여) 씨는
수차례 치료 덕에 온몸의 화상을 상당 부분 지워냈다.
 
하지만 25일 새 직장에서 기자와 만난 박 씨는 “
가해자 이모 씨(31·수감 중)와 그 가족이 내 마음에 화인(火印)처럼 새긴 상처는
평생 지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건 직후 이 씨 동료의 가족들이 박 씨가 입원한 병실로 찾아왔다.
그 동료는 테러 공범으로 지목된 상태였다.
뜻밖의 방문이었다.
 
가족들은 박 씨와 몇 마디 나누다가 “
합의해 달라”는 용건을 꺼냈다.
가해자 동생이 건넨 편지에는 “
우리 형이 검찰까지 가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이들이 “
감형에는 피해자의 합의가 결정적”이라는 경찰의 조언을 받고 왔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박 씨는 화가 치밀었다.
 
박 씨는 “
흉악범의 부모라면 자식을 잘못 키운 것에 대해 최소한의 도의적 책임을 느끼고
감형과 관계없이 먼저 피해자에게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씨 가족은 박 씨를 사건 이후 한 차례도 찾지 않았다.

살인마 유영철에게 어머니와 아내,
아들을 잃은 고정원 씨(71)는 박 씨와 반대로 흉악범을 용서했다.
유영철의 사형 집행에 반대했을 뿐 아니라 그의 아들을 양자로 들이고 싶다는 뜻까지 밝혔다.
 
지난달에는 범죄 피해자 및 가해자의 가족을 도와달라며
천주교 사회교정사목위원회에 3000만 원을 기탁했다.
 
첫 수혜자는 한 범죄자의 대학생 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고 씨는 기자에게 “
흉악범의 가족을 돕는 이유가 오히려 유영철 사건 이후 생명의 소중함을 절감했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흉악범이 출소 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거나,
흉악범을 가족으로 뒀다는 이유로 다른 가족이 불행을 겪는 악순환이 반복되면
또 다른 강력범죄가 등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영철의 아들을 돌보고 싶다는 고 씨의 뜻은 이뤄지지 않았다.
다른 피해자 가족들이 유영철 아들의 주소 등을 알면 보복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이유로
유영철의 국선변호인이 공개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흉악범의 가족에 대한 지원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려면
피해자 지원을 먼저 확립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2011년 범죄피해자보호기금법이 시행돼 연간 600억∼700억 원이 피해자 구조금으로 배정되지만
이 중 70%가량은 성범죄 피해자에게 쓰인다.
 
이용우 한국범죄피해자지원센터 이사장은 “
매년 강력범죄가 30만 건가량 발생하지만 지원을 받는 피해자는 6600여 명에 불과하다”며
피해자 지원 확충을 촉구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보이지 않는 형벌, 흉악범의 가족]

 

사건전후 ‘달라진 생활’ 14명 심층분석

 

 

기사입력 2013-11-26 03:00:00

기사수정 2013-11-28 09:19:33

 

 

소득 72% 줄어 경제고통…
인간관계 끊기고 질병 시달려


흉악범의 가족 '달라진 삶' 추적해보니

《 범죄자들의 가족은 ‘보이지 않는 형벌’을 받는다.
경제적인 부담을 떠안게 됨은 물론이고 평생 가슴에 멍에를 지면서 사람들과의 관계도 끊어지기 때문이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몸도 쇠약해진다.
죄인처럼 사는 것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징역 15년 이상부터 사형을 선고받아 수감 중인
흉악범 4명의 가족 9명과 4∼20년간 복역한 뒤 출소한
범죄자 5명의 가족 5명 등 총 14명을 심층 설문해 사건 전후의 삶을 추적했다. 》  

가계소득은 수감 이전 월평균 328만 원에서 수감 이후 93만 원으로 4분의 1 수준이 됐다.
응답자 중 “애초부터 가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고 답한
김은진(가명·56·여) 씨를 제외한 13명이 실질적 부양자였던 가장을 잃었기 때문이다.
 
아내나 자녀들이 일터로 나섰지만 대부분 식당 서빙 등 저임금 비정규직이었다.
 
강민우(가명·24) 씨는 2003년 아버지가 강도살인을 저질렀던 당시 상위권 성적의 중학생이었다.
 
하지만 결국 어려운 형편에 대학을 중퇴하고 대형 마트 경비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하루 11시간 일하지만 아버지가 계실 때보다 가계소득은 40% 줄었다.

친구·친척과 연락이 끊기는 등 인간관계의 단절도 나타났다.
삶이 송두리째 뒤집혔어도 속을 터놓을 사람이 없고 혹여나 말실수를 하게 될까 봐 불안하기 때문이다.
 
정환수(가명·86) 씨는 경기 지역의 한 농촌마을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지만
한순간 동네 사람들과 서먹한 사이가 됐다.
 
그는 아들이 살인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18년째 복역하는 동안 “
편하게 연락하던 친구들 절반을 잃어버렸다”고 쓸쓸히 말했다.

심적 고통에 시달리며 종교 활동에 귀의하는 비율은 높아졌다.
 
안희영(가명·65·여) 씨는 1993년 아들이 강도강간을 저지른 충격으로
신경쇠약을 겪자 주말마다 교회를 찾기 시작했다.

급격한 삶의 변화는 신체적 증상으로도 나타났다.
구체적인 질병을 새로 진단받았다고 응답한 이는 7명이었으며 1명은 산발적인 하반신 통증을 호소했다.
 
대부분 탈모·아토피·당뇨합병증 등 스트레스 질환이나 허리디스크 등
노동량의 증가로 인한 질환을 앓고 있었다.
 
이들이 연간 병원 치료를 받는 횟수는 사건 전 평균 2.6회에서 범죄가 일어난 뒤 평균 29회로 늘었다.

가족이 죗값을 다 치르고 나와도 깨진 가정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4월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옛 갱생보호공단) 자료에 따르면 공단 지원 대상 출소자 588명 중 150명은 “
가족과 연락이 두절됐다”고 답했다.
 
이 중 35명이 ‘출소로 인한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을 원인으로 꼽았다.
사람들의 눈초리에 시달린 가족은 출소자에게 마음의 벽을 쌓았다.
 
출소 후에도 35명은 ‘
가족의 거부’를 이유로 공단의 보호소에서 생활했다.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김혜란 주임은 “
가정의 해체는 결국 출소자의 재범이나 자녀의 초범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선진국에서는 범죄자 가족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다양한 중·장기 재소자 가족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2003년 캘리포니아 주를 시작으로
14개 주가 ‘수형자 자녀가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명시한 ‘
수형자 자녀 권리장전’을 채택했다.
공공·민간 기금 마련 활동도 활발하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복권기금(BIG·Big Lottery Fund)에서
출소자 가족을 위해 31만 파운드(약 5억2800만 원)를 지원했다.
 
싱가포르는 민간 단체인 ‘노란 리본’ 기금에서
2011년 약 9억3500만 원을 모금해
이 중 43%가량을 출소자의 가정 복원 사업에 투자했다.

한국에서도 이 같은 움직임이 일고 있다.
2011년 10월 법무부 등 정부 부처와 관계 당국은 ‘수용자 위기 가족 지원 강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서울대 재학생과 수감자 자녀 간 멘토링 지원도 이뤄지고 있다.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은 내년 6월 출소자와 가족의 관계 회복과 심리 치료 및 학업을 지원하는 ‘
가족희망복원센터’를 열 예정이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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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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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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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는 인류가 끊임 없는 전쟁과 갈등으로 피 끊는 젊은 생명들을 전쟁터로 내밀고 전쟁으로 기아와 빈곤을 가져왔고 전쟁과 갈등을 초래하는 종교 대 통합을 이루고 이 땅에서 전쟁 종식을 위한 하나님의 평화를 위해 각국 정상들의 의지를 모아 유엔 국제법에 이를 상정하고자 지금까지 뛰어 왔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서로 손을 잡아야만 합니다
 
원래 세상이 바뀌는 시대에는

아침 해가 뜨기전이 가장 어둡다고

빛이신 예수께서 다시 오시니 지금이 그러합니다

그러나 해산의 고통도 아들을 얻음으로 사라지듯이

6000년의 산고의 고통도 한 순간 흘러 갈 것입니다

송구 영신 호시절이 눈 앞에 이르니

천하 만 백성들이여 기뻐하고 즐거워하세

동방의 작은 나라여

그 나라가 결코 작지 아니하고 세계의 으뜸이라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 함께 하시니 이 아니 기쁠까

아리랑 아리랑 고개도 어느덧 넘고 넘어 낙원에 이르렀네

무릉도원이라 할까 생명수가 흐르는 땅

만국이 하나님께 경배하러 이 땅에 몰려오니

지구촌도 인종 국경을 넘어 하나되어 한 가족이 되었네

총칼이 사라지고 갈등의 벽도 허물어지니

남북의 막혔던 길도 대로가 열리니 하나가 되었네

기미년 독립 선언문 나라의 앞날을 내다보며 신천지 운세를 그렸으니 

신세계 신천지 하나님나라 만세 만세 만만세 대한민국 만세 만세 만만세

신천지 하늘문화로 세계 평화 광복을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세! 
 
88 올림픽 경기가 이 땅에서 열린 잠실 뻘에 울려 퍼지던
우리 모두의 그날의 평화를 외치던 그 함성과 그 염원을 온 누리에!
세계인이 함께 모여 손에 손 잡고 
 
하늘높이 솟는 불
우리의 가슴 고동치게 하네
이제 모두다 일어나
영원히 함께 살아가야 할 길 나서자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서로서로 사랑하는 한마음 되자 손잡고
어디서나 언제나 우리의 가슴 불타게 하자
하늘 향해 팔 벌려 고요한 아침
밝혀주는 평화 누리자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서로서로 사랑하는 한마음 되자 손잡고
하늘높이 솟는 불
우리의 가슴 고동치게 하네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서로서로 사랑하는 한마음 되자 손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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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올림픽이 열린 24년 후 같은 장소에서 열린 세계인의 축제 제6회 세계 평화 광복 신천지 하늘문화 예술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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