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공명지조(共命之鳥)' 소고(小考)

강재규 선임기자 승인 2019.12.16 10:11 | 최종 수정 2019.12.17 05:28 의견 0
공명지조 (사진=채널A 갈무리)


[한국정경신문=강재규 기자] 한해가 저물어 갈 즈음이면 거름없이 내놓는 게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다. 교수들이 올해 뽑은 사자성어는 ‘공명지조(共命之鳥)’였다. '명(命)'자에서 엿보이듯 운명 또는 숙명적으로 맞닿아야 하는 세상 이치를 교훈하는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한 두 가지만 비춰보다라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을 법하다. 

올 한해 정치권은 단 하루도 조용할 날 없이 서로 치받고 격돌하며 막말을 쏟아내면서 달려왔다. 그러고도 문제를 다 풀어내지 못한 채 도리어 갈등이 극에 달했다. 갈등의 극에 오른 상태서 국회 문밖으로 치고 나가 광장과 길거리 성토로 이어졌다. 급기야 올 한해 마무리를 며칠 앞두고서도 막판 극한 대치로 몸살을 앓고 있다. 공명(共命)의 이치를 깨닫지 못한 채 공멸(共滅)로 가는 예를 우리는 수도 없이 봐왔다. 인간은 욕심이 한이 없는지라 그걸 알아도 공멸의 길로 달려간다. 

패스트트랙이 그랬고 조국사태가 또한 그랬다. '이게 나라냐'는 물음이 재 등장했으며, 국가 사회의 공정과 정의에 대한 근본 물음에 모두가 부끄러워했다. 좌와 우가 수레의 양바퀴라고 머릿속으로는 알지만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한 바퀴로만 수레를 굴리려하니 언제고 제자리를 맴돌 뿐이었다.

공명조는 ‘아미타경’ 등 불교 경전에 등장하는, 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를 가리킨다. 한 머리는 낮에 일어나고 다른 머리는 밤에 일어난다. 한 머리는 몸을 위해 항상 좋은 열매를 챙겨 먹었는데 다른 머리는 이를 질투했다. 어느 날 한 머리가 독이 든 열매를 몰래 먹어버렸고, 결국 둘 다 죽었다. 

한 몸을 이루는 두 머리가 어떻게 사이좋게 공존하느냐가 해결해야 할 숙명인 것이다. 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좀 더 크게 보면, 남과 북도 마찬가지이고, 한일, 한중, 한미도 마찬가지다. 지구의 동서와 남북이 모두 마찬가지 운명에 처해 있다.

인간이 운명을 그저 피하기만 한다고 능사는 아니다. 그같은 운명에 누구든 맞닥뜨릴 수는 있다. 하지만 인간이 보다 높은 피조물의 위치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지혜가 있기 때문일 게다. 지혜를 얻지 못하면 개 돼지나 마찬가지다. 

강인택 교수의 지혜를 빌려 얘기하자면, 공명지조 이야기는 다음 네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1. 서로 갈등한다.
2. 갈등의 결과로 공멸한다.
3. 공멸할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피할 길을 찾는다.
4. 피할 길을 찾아 아예 처음부터 공멸을 피한다.

우리의 현실은 1을 지나 2로 내달음질치는 형국이지 싶다. 2단계까지 가서는 그걸로 사실상 끝이다. 공멸한거다. 원자폭탄과 핵이 그래서 무서운거다. 인간의 삶도 완전 나락에 떨어진 뒤에라면 그걸로 끝일 뿐이다. 끝나고 다시 할 수 있으면 다행이다.

교수들이 이 사자성어를 뽑은 이유도 이제는 2를 하지 말자는 데 있을 것이다. 2를 극복하고 3단계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의 교집합일 듯하다. 그 단계를 뛰어넘어본 사람들만이 4단계로 가는 지혜를 얻게 된다. 겪어보지 않고 아는 사람은 현자다. 4단계로 곧바로 가는 사람이라면 그는 정말 지혜자다.

적어도 2단계에서 공멸을 피하기 위해 깊이 숙려해야 한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치킨게임은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와도 같다. 공멸대신 공생(共生)하는 법을 생각해야 한다. 공생은 윈-윈게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3단계에서, 사회든 조직이든 국회든 조정자가 중심을 잘 잡아줘야 하고 공정하고 냉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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