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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픽처] 윤지혜는 왜 제 영화에 칼을 꽂았나

[SBS funE | 김지혜 기자] 개봉 예정인 영화의 주연 배우가 자신의 영화 현장이 "불행 포르노 그 자체"였다고 폭로했다. 개봉을 앞두고 누구보다 설레고 행복해야 할 배우는 왜 스스로 제 영화에 칼을 꽂았을까.

배우 윤지혜는 지난 14일 자신의 SNS에 "아직 회복되지 않는 끔찍한 경험에 대해 더 참을 수 없어 털어놓으려 한다"며 "제 신작을 기대하고 기다린다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라며 장문의 글을 올렸다.

지칭한 신작은 오는 19일 개봉을 앞둔 영화 '호흡'이었다. '호흡'은 권만기 감독의 작품으로 아이를 납치했던 정주(윤지혜)와 납치된 그날 이후 인생이 송두리째 무너져 버린 민구(김대건)가 12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졸업 작품으로 제작비 7천만 원이 투입된 독립 영화다.

이 작품은 지난 10월 열린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돼 뉴커런츠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주연 배우가 폭로한 영화 촬영 현장은 작품의 질에 비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 윤지혜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윤지혜는 '호흡'의 촬영 현장에 대해 "한 달간 밤낮으로 찍었다. 촬영 3회차쯤 되던 때 진행이 너무 이상하다고 느꼈고, 상식 밖 문제들을 서서히 체험하게 됐다. 제 연기 인생 중 겪어보지 못한, 겪어서는 안 될 각종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현장에서 저는 극도의 예민함에 극도의 미칠 것 같음을 연기하게 됐다. 사실 연기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폭로했다.

배우가 대표적으로 지적한 현장의 문제는 '안전'이었다. 윤지혜는 "컷을 안 하고 모니터 감상만 하던 감독 때문에 안전이 전혀 확보되지 않은 주행 중인 차에서 도로에 하차해야 했다."며 "요란한 경적을 울리며 저를 피해 가는 택시는 저를 '미친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격앙된 표현으로 현장의 아찔함을 묘사했다.

또한 "지하철에서 도둑 촬영하다 쫓겨났을 때 학생 영화라고 변명한 뒤 정처 없이 여기저기 도망 다니며 이 역시 재밌는 추억이 될 듯 머쓱하게 서로 눈치만 봤던 그들의 모습을 기억한다"고 열악했던 촬영 현장을 구체적으로 폭로했다.

개봉을 앞두고 이뤄지고 있는 홍보마케팅에 대한 불만도 털어놓았다. 윤지혜는 "마케팅에 사용된 영화와 전혀 무관한 사진들을 보고 다시 한번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며 "너무 마음이 힘들어서 실없이 장난치며 웃었던 표정을 포착해 (어떻게) '현장이 밝았다'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이 영화는 불행 포르노 그 자체"라며 "알량한 마케팅에 2차 농락을 당하기 싫다"고 자신의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했다.
◆ 태업인가vs용기있는 고백인가

윤지혜는 2주 전 열린 '호흡'의 언론시사회에 불참했다. 개봉 전 진행되는 홍보 활동에도 참여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종의 '태업'으로도 볼 수 있다. 통상적으로 배우의 영화 출연은 촬영뿐만 아니라 마케팅 참여를 수반한다. 윤지혜는 영화 촬영은 마쳤으나 홍보 과정은 보이콧 중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배우의 의무 위반으로 보이지만, 태업을 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개인의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어 보인다. 윤지혜에 따르면 '호흡'의 제작 현장은 ▲ 잦은 상식 밖 문제 발생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 촬영 주인 없는 현장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윤지혜는 당초 노개런티 출연을 제안 받았지만, 열정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게 싫어 형식적인 개런티인 백만 원을 받았다고 전했다. 독립영화의 열악한 환경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나만 잘하면 문제없을 거야"라는 마음으로 임했다고 했다. 그러나 배우의 결심은 촬영 3일 만에 후회로 바뀌었다.

독립영화 현장을 경험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크고 작든 느꼈을 문제를 윤지혜는 자신의 경험을 빗대 구체적으로 폭로했다. 많은 용기가 필요한 고백이었을 것이다.

배우가 영화 현장의 불합리함을 폭로하고 감독, 제작진, 홍보사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프로 의식의 결여 및 동업자 정신에 위배되는 행동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태도 문제가 지적될 여지도 적잖다. 그러나 윤지혜는 자신의 밥그릇을 걸고 할 말은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 영화계 '열정 페이'는 옛말? 독립영화는 여전히…

영화계는 그 어떤 업계보다 '열정 페이'라는 말이 흔하게 통용돼왔다. 이는 배우나 스태프를 막론하고 적용됐다. 하지만 표준근로계약서(스태프의 장시간 근로나 부당한 처우를 막고자 임금액 및 지급 방법, 근로시간, 4대 보험, 시간 외 수당 등에 관해 노사가 약정한 사항)가 도입된 이후, 환경은 달라졌다. 그러나 이는 상업영화에 국한된 호사였다.

독립영화 제작현장의 한 관계자는 "영진위나 영화아카데미 등의 지원에 기대거나 감독의 자비로 영화를 찍어야 하는 독립영화계 현실에서는 여전히 열정 페이가 난무하고, 배우가 노개런티 출연을 감행하거나 스태프가 개런티를 깎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전했다.

때문에 독립영화를 찍은 감독이나 제작사들은 제작비를 애써 숨기기도 한다. 누군가의 희생 아래 완성된 영화는 그 결과물이 수려하다고 해도 과정은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홍보마케팅비에 많은 돈을 쓸 수가 없어 독립영화는 개봉 전 영화제에 작품을 출품해 수상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수상 이력이 예비 관객의 호기심을 높일 수 있는 최고의 홍보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호흡'은 부산국제영화제 유일한 경쟁 부문인 뉴커런츠상을 받아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마카오국제영화제에서도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덕분에 배급사도 수월하게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음이 개봉 전에 알려졌다. 곪을 대로 곪은 물집이 터진 것이다.
◆ 환경 개선 가능할까?…멀고 먼 노동 예술

'호흡'의 제작을 지원한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역시 난감한 상황이다. 졸업예정자 중 졸업작품 지원작을 선정해 일부 제작비 및 제작 장비를 지원하고, 담당 교수의 지도가 이뤄지지만 교육기관이 촬영 현장까지 직접 관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작품의 최종 책임자인 감독의 역량에 맡길 수밖에 없다.

사실 모든 것은 돈의 문제이기도 하다. 배우에게 충분한 개런티를 지급하고, 1급 스태프를 고용하고, 촬영 장소를 정당한 대가를 주고 빌리며, 충분한 시간을 들여 영화를 찍는 것은 모두 제작비 상승과 연결된다. 독립영화라 할지라도 100분 내외의 장편 영화를 만드는데 7천만 원이라는 돈은 턱없이 적은 돈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는 봉준호, 최동훈, 허진호, 장준환, 조성희 등을 배출한 영화감독의 산실로 불러왔다. 입학자의 연령이나 학력을 제한하지 않아 영화인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의 꿈의 학교로 꼽혀왔다.

그러나 독립 영화를 만드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부족한 제작비에 과도한 열정을 요구해오고 있다. 일은 자아실현의 창구이기도 하지만, 대가를 수반되어야 하는 노동이기도 하다. 예술이라는 이름하에 누군가가 육체적, 신체적으로 고통받고, 무급 열정이 강요돼야 한다면 그것은 예술이 아닌 노동 착취일 뿐이다.

윤지혜는 1998년 '여고괴담'으로 데뷔해 '군도: 민란의 시대', '아수라' 등 다수의 영화에 출연해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준 21년 차의 배우다. 이 배우의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씩 개선해나가야 할 때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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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연예뉴스 영화 담당 김지혜 기자입니다. 영화는 락(樂)이자 업(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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