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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100] ‘데일리 노가다’ 황태석, 감성 포토그래퍼가 되다

[열정으로 사는 사람들] ‘데일리 노가다’ 포토그래퍼 황태석

입력 2019-10-28 07:00 | 신문게재 2019-10-2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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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석작가-7
황태석 씨가 지난 25일 서울 중구 반도카메라 갤러리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노가다’, 이것저것 가리지 아니하고 닥치는 대로 하는 노동의 잘못된 말. 이 말 그대로 노가다를 하며 공사현장에서의 이것저것을 찍어 올려 ‘막노동 포토그래퍼’로 유명해진 32살의 청년 황태석 씨를 서울에서 열린 그의 첫 사진전에서 만났다.

10월이 깊어진 쌀쌀한 날씨인데도 반팔과 슬리퍼의 자유로운 차림, 한껏 솟아오른 곱슬머리, 가식 없는 웃음, 공사장 먼지로 인한 잦은 기침 등 뭐하나 정돈되지 않은 첫인상이었다. 그러나 강한 눈빛, 중저음의 차분한 음성과 말투, 확고한 생각과 사진의 색채는 그의 첫 인상과 대조적이었다. 

기다림 전시 작품
반도카메라 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황태석 씨의 사진 작품들.

 

‘녹지 않는 나날. 걷히지 않는 밤 무엇 하나 바라지 않은 채로’ 기다림이란 주제로 열리는 그의 첫 사진전 문구다. 작가의 이번 전시 작품을 보면 얼음, 시야를 가린 선캡, 어두움 등이 반복되게 눈에 들어온다. 사진의 요소에 대해 하나하나 묻던 기자에게 그는 “의미를 갖지 않고 봐주셨으면 좋겠다”면서 “흐릿했던 그 시절 기억에 대한 느낌을 담았다”고만 설명했다.

황 씨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고등학교를 그만 뒀다. 이후 그림에 매진해 18살, 출판사에서 표지 일러스트 일을 시작했고 한동안 그림에 빠져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지냈다. 그림으로 대학을 진학하려던 계획은 막상 대학교를 갈 때쯤 되니 생각이 바뀌었다. 황씨는 “지금 있는 그대로만 그림을 그려도 재미있는데, 굳이 대학까지 가서 그려야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군 제대 이후 마주친 방황기

그렇게 대학 대신 그림과 관련된 다양한 경험을 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군 제대 후 그의 인생은 또 다른 쪽으로 방향을 돌리게 된다. 이번에는 프로그래밍이었다. 그는 “프로그래밍을 하려면 선형대수 같은 대학과정 수준의 수학을 알아야 하는데 난감했다”면서 “그래서 중학교 EBS부터 들으면서 공부했다”고 말했다.

원하던 프로그래밍 기술로 개발했지만 이내 망해버렸고, 이후 몇 년간 술에 의존하며 어두운 나날을 보내게 됐다. 황씨는 “망한 것이 슬퍼서 그런 게 아니라, 처음엔 갈 때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마셨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핸드폰도 없애고 사람도 만나지 않고 술병으로 가득찬 방에서 무기력한 그를 일어나게 만든 건 결국 ‘잔액 0원’의 생활고였다.

◇폰카로 막노동 현장을 찍다

당장 돈이 급했던 그에게 막노동은 큰 기술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많은 일당을 받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이끌리듯 나갔던 일이었는데, 해보니까 막상 흥미도 생겼다고 황씨는 말했다. 일하던 중, 어쩌다 만난 기술자 아저씨가 방수(防水) 일을 가르쳐 주신다고 해서 일을 배웠고 회사에 소속돼 팀으로 다니면서 지방을 돌아다니게 됐다.

황씨는 “그때 같이 지냈던 사람들이 술, 담배를 하나도 하지 않아서 강제로 디톡스(해독) 생활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는 술과 멀어진 대신 ‘사진’과 가까워졌다.

처음엔 지방 생활이 너무 지루해서 무작정 핸드폰으로 주변에 있는 것들을 찍기 시작했다. 주로 지방이나 신도시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다 보니 그 동네에는 카페도, PC방도 아무 것도 없었다. 일하는 중간 중간 요즘 소위 말하는 ‘감성 사진’ 콘셉트로 친구들한테 공사현장 사진을 보냈던 것이 발단이 됐다. 황씨는 “처음에는 현장을 있어보이게(근사하게) 찍는 게 웃기다고 생각해서 보낸 거였다”면서 “아련한 날의 추억마냥 찍어서 보내던 사진을 친구들이 어느 날 왜 안보내냐고 물어보면서 ‘더 잘 찍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인스타사진
황태석 씨의 SNS 계정에 올라온 사진들. [데일리노가다 인스타그램]

 


◇추(醜)에서 미(美)로

황씨가 올린 사진들은 주로 못, 전선, 나사, 페인트 통, 안전모, 철근 등 건설 자재나 짓다만 아파트 등이다. 땀 냄새 진한 막노동판에서 팔자 좋게 플래시를 터트리는 그에게 나이 지긋한 동료들은 ‘산업스파이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그는 “아저씨들이 왜 맨날 사진 찍냐고 묻길래 예뻐서 찍는다고 말했는데, 아무도 공감하지 않았다”며 “그분들은 자기 일에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계시지만 나처럼 생각하지는 않더라”고 말했다.

그렇게 애정을 갖고 찍었던 현장 사진들을 버리긴 아까워 활동하던 커뮤니티에 올렸고, ‘감성 미쳤다’, ‘예술이네’ 등 댓글 반응은 뜨거웠다. 그렇게 많은 추천을 받아 히트갤러리에 올라가면서 다른 여러 커뮤니티로 퍼져나갔다. 특히 막노동 사진이 여성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는 것이 뜻밖이라고 했다. 황씨는 “현장 사진을 올리는 SNS 계정의 60% 이상이 여성 팔로워”이라며 “오히려 남자들은 시큰둥하게 보기도 해서 그 점이 되게 재밌었다”고 말했다. 황씨 사진의 진가를 알아본 건 일부 네티즌 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사진을 보고 임성호 작가를 포함해 다양한 방송 관계자들도 러브콜을 보내왔다. 그걸 계기로 최근의 전시도 시작하게 됐고, 웹 다큐도 찍게 됐다.

◇“제 작업이 가볍게 소비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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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석 씨가 지난 25일 서울 중구 반도카메라 갤러리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유명해지기 전후의 다른 점을 묻자 그는 “사진을 좀 더 진지하게 하게 됐다”고 답했다. 요즘도 황씨는 매일 막노동 현장에 나가 틈나는대로 사진을 찍고 있다. 여태까지 올린 사진들과 앞으로 찍고 있는 사진을 묶어서 출판을 준비하고 있다는 계획을 조심스럽게 전했다.

그러나 사진만 하고 싶진 않다는 소신도 드러냈다. 그는 “당장은 사진으로 하고 싶은 것들이 많지만, 생활이 많이 어려워지지 않는 한 그때그때 제가 좋아하는 걸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황씨의 SNS 계정 이름을 딴 ‘데일리 노가다’로 굿즈(Goods·상품)을 제작하고 싶다는 소망도 내비쳤다. 막노동 현장에서 버려지는 폐자재들을 모아서 단순히 재활용하는 차원을 넘어 완전히 새로운 제품으로 재탄생 시키는 업사이클링(up-cycling)된 제품을 직접 제작·판매한다는 계획이다.

끝으로 ‘작가’라고 불리고 싶지 않다는 말도 남겼다. 그는 “작가라고 하면 한 사람의 내러티브(narrative)가 생기는데 그걸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면서 “앞으로 제가 하는 모든 작업에서 저라는 존재가 지워져도 콘텐츠 자체로 설 수 있길, 사람들에게 가볍게 소비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이정윤 기자 jyoon@viva100.com
사진=이철준 기자 bestnews2018@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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