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심부름꾼에 무죄 내린 법원… 檢警 향해 "관행 안주" "자아도취" 비판

입력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행동책 체포되면 사건 종결하고 주범은 전혀 수사 안해" 지적에
"재판부, 수사 현실 몰라" 반발


수사기관이 잡아온 보이스피싱(전화 금융 사기) 심부름꾼들에게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며 기존 수사 관행을 비판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례적으로 수사기관을 강하게 비판했다.

서울동부지법 형사2단독 이형주 부장판사는 지난 11일 사기 방조 등 혐의로 기소된 중국인 유학생 A(24)씨와 B(22)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둘은 지난 6월 보이스피싱 조직의 지시를 받고 노인 여성 1명에게서 2000만원씩을 현금으로 받아 보이스피싱 조직의 은행 계좌로 입금한 혐의로 기소됐다.

두 사람은 재판 과정에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한국 거주 중국인 생활정보 사이트에서 구인 광고를 보고 업체가 시킨 것을 따랐을 뿐이고, 범죄를 저지를 의도는 아니다'라는 주장이었다. 반면 검찰은 "두 사람이 한국에서 오래 생활해 보이스피싱에 대해 몰랐을 리 없고, 길에서 할머니에게 현금을 받는 것이 이상하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점 등을 들어 범죄 의도가 있다"고 맞섰다.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며 밝힌 이유는 '알고서 죄를 저질렀다는 증명이 없다'는 것이었다. 판결문에서 "피고인들은 보이스피싱 조직의 지시를 정상적 회사 업무로 생각했을 여지가 있고, 불법에 대한 막연한 인식이나 의심만으로는 범죄 의사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어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전체 10쪽 판결문 중 2쪽을 할애해 수사 관행을 비판했다. 재판부는 "행동책이 체포되면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원이 체포됐다'고 발표하고는 사건을 종결짓고, 주범은 전혀 수사하지 않는다"며 "보이스피싱은 주범이 잡히는 경우가 거의 없고, 말단인 행동책이 유죄로 인정될 때 주범과 같은 (수준의) 책임이 인정되는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했다. 이어 "과도한 처벌로 피해자 보호와 사회 방위를 다하고 있다는 생각은 실태에 무지한 자아도취"라며 "현재의 수사·공판 관행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부족한 부분에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울러 외국에서 걸려온 전화를 국내 휴대전화 번호로 변조하는 통신 중계기를 일반인이 아예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제도적 보완 필요성도 제기했다.

경찰 관계자는 "국제 공조는 물론 수사관들의 사적 네트워크까지 동원해서 해외 주범을 추적하고 있는데, 재판부가 현실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했다. 검찰 관계자는 "국정 농단 사건으로 판사들이 줄줄이 검찰 조사를 받은 것을 계기로, 법원이 검찰에 공연한 적개심을 드러내는 모습이 자주 나타나는 것 같다"고 했다. 검찰은 이날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곽래건 기자 rae@chosun.com]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네이버 메인에서 조선일보 받아보기]
[조선닷컴 바로가기]
[조선일보 구독신청하기]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