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칼럼-김다은 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 나비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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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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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살의 나이에 살인범의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받았던 앙리 샤리에르라는 자가 있었다. 파리 몽마르트르 포주를 살해했다는 죄목이었다. 그는 프랑스령의 기나아에 있는 감옥에 보내지지만, 탈옥을 거듭하다 무덤과 같은 독방에서 긴 세월을 보낸다. 작은 보폭으로 다섯 걸음인 4m의 공간에 침대 하나, 의자로 쓸 수 있는 시멘트 벽돌 하나, 책이나 종이나 연필도 없고, 오로지 침묵과 어둠과 천장의 쇠창살과 그 위로 7미터 높이의 지붕이 있는 곳이었다. 그는 8번의 탈옥 실패 후, 거친 파도와 상어로 들끓는 천해 감옥인 악마의 섬에 갇히게 되고, 가장 강하고 빠른 일곱 번째 파도에 야자열매 포대를 띄워 9번째 탈옥에 성공한다. 앙리 샤리에르가 실화를 바탕으로 60살이 넘어서 13권의 노트에 쓴 소설 〈빠삐용〉이다.

잘못된 사회제도가 한 인간의 자유를 얼마나 철저하게 짓밟는지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1973년 감독 프랭클린 J.샤프너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주인공이 자유를 찾아 거친 바다로 몸을 날리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그런데 한 해의 마지막 시점에서 필자에게 다시 떠오르는 것은 독방에서의 꿈의 장면이다. 주인공이 하얀 양복과 멋진 모자를 쓰고 사막 위를 걷고 있는데, 붉은 제복을 입은 재판관과 열두 명의 배심원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전 결백합니다. 난 죽이지 않았습니다.”라고 그는 적극 항변한다. 재판관은 “너의 죄는 포주의 죽음과 아무 상관이 없다. 너의 죄는 인생을 낭비한 것이다.”라고 말하자, 그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다. 도리어 스스로 “유죄!”라고 자신에게 판결한다. 돌아서는 그에게 재판관은 “그 죄값은 사형!”이라고 언도한다. 그는 자신에게 계속 “유죄! 유죄!”라고 외치다가 잠에서 깬다.

그런데 〈빠삐용〉 소설을 읽어보면, 이 부분에 작가의 더 심오한 생각이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다. 차갑고 어두운 독방에서 있을 때, 그는 강렬한 빛이 비춰드는 것을 느낀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자신은 결단코 죄가 없는데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느냐고 묻는다. 그때 하나님은 인생을 낭비한 죄보다 더 큰 죄를 말씀하신다. “가련한 아들아, 너의 죄를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구나. 인생을 낭비한 죄, 너는 그토록 소중한 네 젊음을 방탕하고 헛되게 흘려보냈다. 사랑과 용서를 위해 마련된 시간들을 분노와 미움으로 가득 채웠다. 자, 눈을 뜨고 봐라, 그러므로 네가 지은 죄는 그 무엇보다 중한 것이다.”

인생을 허비한 죄에는 시간을 낭비한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지나친 알콜이나 중독 등으로 젊음을 헛되게 보낸 것도 죄지만, 사랑과 용서를 위해 마련된 시간을 분노와 미움으로 채운 것이 무엇보다 중한 죄라는 말이다. 세례를 받은 적도 없다던 앙리 샤리에르는 탈옥 후 자유인이 되어서도 그 강한 빛을 다시 만난다. “바람 속에서, 바닷속에서, 햇빛 속에서, 숲속에서, 별들 속에서, 인간이 연명할 수 있도록 바다에 뿌려놓은 듯한 물고기 속에서까지도 하나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복수하지 말라”는 말씀을 들었다 했다. 빠삐용은 나비라는 뜻이다. 올해 남은 시간은 분노와 미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나비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년 한 해를 사랑과 용서로 채워가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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